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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1958) 春香傳 | |
<colbgcolor=#444><colcolor=#fff> 감독 | 안종화 |
각본 | 정초전 |
제작 | 이만수 |
제작사 | 서울칼라라보[1] |
촬영 | 김명제 |
조명 | 서영훈 |
편집 | 유재원 |
음악 | 김대현 |
미술 | 임명선 |
출연 | 고유미, 최현, 김승호, 허장강, 김현주, 전옥 |
개봉일 | 1958년 10월 11일 |
개봉관 | 중앙극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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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전 춘향전을 영화화한 안종화 감독의 1958년 개봉 영화.안종화 감독은 필름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영화 《청춘의 십자로》롤 연출한 감독이다. 《춘향전》(1958)은 그의 후기작으로 바로 다음 작품 《견우직녀》(1960)가 그의 마지막 연출작이다.
허장강이 방자 역으로 출연했는데, 그는 "방자 역을 위해 태어난 사나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방자 역에 어울려서 이후 신상옥 감독의 1961년 《성춘향》, 김수용 감독의 1968년 《춘향》에도 방자 역으로 출연했으니 가히 방자 전문배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덤으로 이성구 감독의 1971년 《춘향전》에 변학도 역으로 출연한 적도 있다.
서울물상연구소에서 국내 최초로 총천연색 영화 제작 공정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여 그 첫 시도로 제작된 영화다.# 이미 《선화공주》(1957)와 같은 컬러 영화가 나오기는 했으나 기존에는 많은 돈을 내고 외국에 보내서 가공해 와야만 했었다.
고유미는 본명이 고부용으로 인천 출신이며 단국대학을 중퇴하고 연극 활동을 하다 《경주 보도》라는 문화영화와 《어두운 화원》, 《오해마세요》에 출연한 적이 있다. 《춘향전》이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그러나 이후 두어 작품에 비중이 적은 조연으로 출연 후 영화계를 떠났다.
2. 등장인물
역대 춘향전 영화의 배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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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1955) | 조미령 | 이민 | 이금룡 | 전택이 | 노경희 | 석금성 | |
춘향전 (1958) | 고유미 | 최현 | 김승호 | 허장강 | 김현주 | 전옥 | |
탈선 춘향전 (1960) | 김해연 | 박복남 | 장혁 | 복원규 | 강선희 | 유청강 | |
춘향전 (1961) | 김지미 | 신귀식 | 최남현 | 김동원 | 양미희 | 유계선 | |
성춘향 (1961) | 최은희 | 김진규 | 이예춘 | 허장강 | 도금봉 | 한은진 | |
한양에 온 성춘향 (1963) | 조미령 | 신영균 | 이예춘 | 구봉서 | 전계현 | 전옥 | |
춘향 (1968) | 홍세미 | 신성일 | 박노식 | 허장강 | 태현실 | 윤인자 | |
춘향전 (1971) | 문희 | 신성일 | 허장강 | 박노식 | 여운계 | 도금봉 | |
방자와 향단이 (1972) | 박지영 | 신성일 | 서영춘 | 박노식 | 여운계 | 사미자 | |
성춘향전 (1976) | 장미희 | 이덕화 | 신구 | 장욱제 | 최미나 | 도금봉 | |
성춘향 (1987) | 이나성 | 김성수 | 연규진 | 김성찬 | 곽은경 | 사미자 | |
성춘향뎐 (1999) | 강희선 | 홍시호 | 강구한 | 김소형 | 차명화 | 최문자 | |
춘향뎐 (2000) | 이효정 | 조승우 | 이정헌 | 김학용 | 이혜은 | 김성녀 | |
방자전 (2010) | 조여정 | 류승범 | 송새벽 | 김주혁 | 류현경 | 김성령 | }}}}}}}}} |
3. 줄거리[2]
단오날 시상(詩想)을 더듬어 광한루 풍경을 즐기고 있던 도령은 자기가 써놓은 시지(詩紙)가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줄도 모르리만치 자연에 도취되어 있었는데 그네터로 향하던 춘향이 광한루 밑을 지나다가 떨어져 있는 시지를 주워 음미함에 아늑한 훈풍과 따스한 양광에 부푼 정서 속에 사무치는 시정을 억제 못하고 누구의 시지인지도 분별할 사이 없이 대구(對句)를 지어 놓고는 그네터로 가버렸다. 그로써 인연을 맺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으나 춘향의 달통한 문장 솜씨는 하여금 도령을 감격시켰다.그러나 엄한 사도 슬하의 도령에게 외방에 출입할 자유가 있을 리 없다. 애태우던 도령이 결혼 3일만에는 야음을 이용하여 책방을 빠져나간 것도 허황한 일. 그 밤으로 이별을 고하게 된 운명을 애달파하는 두 사람이 되고 말았다.
오리정(五里亭) 이별에서 춘향에게 받은 신표마저 사씨부인에게 빼앗긴 도령이 입신양명하는 길만이 춘향과 상봉하는 길임을 깨달았을 무렵 춘향은 낭군의 입신을 신명에게 기원하는 것이었지만 신임 사또 변학도가 도임하던 날 수청을 거역한 죄목으로 투옥되고 만다.
마지막으로 입고갈 옷이나 한벌 갖다달라는 춘향에게 매달려 울부짖는 월매였지만 정절을 굽혀 목숨을 살리고 어미를 돌볼 수는 없었다. 오직 옥을 빠져나간 춘향의 백신(魄身)은 광한루로 오리정으로 도령을 찾아 헤매이는 것이었다. 방자가 춘향의 혈서를 가지고 도령을 찾아 상경한다.
많은 부민(府民)들이 삼문(三門) 앞 약방 마루에서 기절한 월매를 둘러싸고 춘향의 안부를 염려할 때 운봉역사 광 속에서 도가(都哥)의 목을 졸라매고 도망쳐나온 방자가 달려와 출도한 암행어사가 도령이라는 것을 알림으로써 월매는 물론 군중들을 대경(大驚)시킨다. 육방관청과 역졸들이 즐비하게 나열한 동헌에 대취타성(大吹打聲)이 울려나오면 앵삼(鶯衫)에 학대(鶴帶)를 띤 도령이 나와 정좌하고 관속들의 죄를 구한 뒤 춘향 손에 옥지환(玉指環)을 짝지어준다. 그제서야 도령을 알아본 춘향은 목이 메일 뿐 도령 품에 안겨서도 흐느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