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 칼리 Cali Santiago de Cali | |||||
<colbgcolor=#CE1126> 국가 | 콜롬비아 | ||||
주 | 바예델카우카주 | ||||
면적 | 619km² | ||||
인구 | 2,227,642명[1] | ||||
인구밀도 | 3,600명/km²[2] | ||||
시간대 | UTC-05:00 | ||||
링크 | 칼리 행정 사이트 | ||||
1. 개요
콜롬비아 남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면적으로는 두 번째, 인구수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태평양 연안으로 접근 할 수 있는 유일한 콜롬비아의 도시이다.2. 어원
칼리의 어원은 칼리 일대에 살던 아메리카 원주민인 칼리마에서 유래했다.3. 역사
스페인 제국이 점령하기 전부터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살았다. 하지만 대항해시대가 시작되고 칼리 일대에도 유럽인 특히 스페인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1498년, 콩키스타도르인 세바스티안 데 벨랄카사르가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페루 원정에 참여하면서 남미로 내려오게 된다. 피사로와 벨랄카사르는 키토를 찾기 위해 갈라졌고 이후 엘도라도를 찾기 위해 현재 콜롬비아 지역으로 입성하게 된다. 벨랄카사르는 이 지역을 탐험하면서 파스토와 포파얀 등 여러 도시들을 세웠고 1536년 7월 25일에 칼리를 설립하게 된다.18세기 까지 칼리는 하시엔다[3]가 차지하고 있었으며, 칼리는 강 근처의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콜롬비아가 스페인으로 부터 독립하였음에도 칼리의 주요 산업은 농업이었다. 그러나 19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반유대주의를 견디지 못하고 수많은 유대인들이 칼리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칼리의 산업화를 촉진하였으며 이로 인해 칼리는 전형적인 남미의 공업도시로 성장하였다.
4. 경제
20세기 초반에는 설탕 재배가 주된 산업이었다. 1910년부터 20년간 농업 위주의 경제 활동에서 산업 기반 도시로 탈피하고자 여러 기반 시설을 건설하게 된다. 1930년대에는 가스, 맥주, 인쇄, 담배회사 등 큰 기업들을 위주로 통해 성장해 나갔고 섬유, 화학, 초콜릿, 건설, 가죽, 가구 회사 등 작은 기업들도 경제 성장의 기반이 되어갔다.1950년대와 1960년대에 이민자들이 급증하면서 민관기업들이 협조해 성장을 주도했고 바예 대학교의 경영대학도 이러한 산업 구조로 인해 혜택을 받게 된다. 1970년대에도 지방정부의 지속적인 투자로 사회 기반 시설을 설립해 나갔고 제조업도 활성화 된다. 1998년, 콜롬비아에 경제적 위기가 닥치자 연방정부는 지방정부에 더이상 도움을 줄 수 없게 되었고 지방정부는 결국 긴축정책을 시행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로 인해 바예카우카노 성장 모델은 실패로 끝이났다. 또한, 콜롬비아 내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얻기 위해 조세를 인상하게 되고 이는 지방정부의 개발 계획에 지속적인 차질을 빚게 된다.
5. 자매 도시
6. 여담
- 칼리는 저렴한 가격으로 성형외과와 미용 센터를 찾는 사람들의 주요 목적지로 유명하다. 그래서 별명이 미주의 성형외과의 수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