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18:02:22

케빈 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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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 호주의 경우 임기가 중간에 단절되었다가 다시 집권해도 처음 집권했을 당시의 대수를 유지한다.
역대 국왕 · 역대 총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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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32331><colcolor=#fff> 호주 제26대 총리
케빈 러드
The Hon.[1] Kevin Rudd
AC
파일:Kevin_Rudd_official_portrait.jpg
본명 Kevin Michael Rudd
케빈 마이클 러드
출생 1957년 9월 21일 ([age(1957-09-21)]세)
호주 자치령 퀸즐랜드주 남부어
국적
[[호주|]][[틀:국기|]][[틀:국기|]]
재임기간 제18대 호주 노동당 대표(1기)
2006년 12월 4일 ~ 2010년 6월 24일
제26대 총리(1기)
2007년 12월 3일 ~ 2010년 6월 24일
제18대 호주 노동당 대표(2기)
2013년 6월 26일 ~ 2013년 9월 13일
제36대 외무장관
2010년 9월 14일 ~ 2012년 2월 22일
제26대 총리(2기)
2013년 6월 27일 ~ 2013년 9월 18일
제23대 주미호주 특명전권대사
2023년 3월 20일 ~ 현재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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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32331><colcolor=#fff> 부모 아버지 앨버트 러드
어머니 마가렛 러드
배우자 테레즈 라인 (1981년 결혼)
자녀 3명
학력 호주국립대학교 (아시아지역학 / 학사)
옥스퍼드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 박사)
호주국립대학교 (명예 박사)
글래스고 대학교 (명예 박사)
종교 성공회
신체 179cm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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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정치4. 업적
4.1. 호주 원주민 탄압 정책에 대한 사과4.2. G20 출범 주도 성과4.3. 대침체 선방4.4. 뉴스코퍼레이션 특별 조사 청원 주도
5. 선거 이력6. 저서7. 논란8. 여담

[clearfix]

1. 개요

호주 제28대(26대 2기) 총리 취임 선서

호주의 정치인이자 정치학자. 제26대 호주 총리를 역임했으며, 2022년 12월 신임 주미호주 특명전권대사로 임명되어 2023년 3월 20일 정식으로 취임했다.

2007년부터 2010년, 그리고 2013년에 호주 총리를 역임하였다. 호주 퀸즐랜드 주정부를 통해 처음 공직에 진입하였고 1998년에 그리피스(Griffith) 선거구에 출마해 하원 의원이 되었다. 2001년부터 그림자 내각(Shadow Cabinet)에서 외무부 장관을 맡았던 그는 2006년 노동당 대표 선거에서 현직의 거물 정치인 킴 비즐리(Kim Beazley)를 꺾고 대표직에 올랐고, 2007년 총선에서는 호주 최장수 총리이자 보수성향의 자유당을 대표하는 존 하워드(John Howard)를 꺾고 지역구에서까지 낙선시키는 승리를 거두면서 총리직에 올랐다.

총리로 재임했을 당시에는 과거 정부의 호주 원주민 탄압을 공식사과하는 등[2] 파격적인 행보로 대중적인 인기는 정말로 좋았다. 하지만 재임 당시 노동당 내 갈등이 심했던데다가 난민문제와 광산세 부과 문제로 삐그덕 거리며 지지율이 점차 하락하던 참에 줄리아 길라드 전 총리가 타 계파와 케빈 러드를 총리직에서 축출시키면서 총리직에서 물러나야했다. 그러나 길라드가 총리가 된 이후로 노동당이 삐그덕 거리기는 마찬가지였던데다가 총리 교체 직후에 의석수를 늘리려고 치른 총선에서도 노동당이 과반확보에 실패함에 따라 지지율도 지속적으로 하락하며 삐그덕 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2013년 6월 러드는 노동당 내 경선에 다시 출마, 경선에서 승리하여 구원투수격으로 총리로 복귀했지만 이미 떨어진 노동당의 지지율을 다시 되돌리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쓸쓸히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호주 정계를 떠났지만 오히려 국제적 명성은 더 오른 대표적인 인물이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스쿨에서 미중 관계를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미국의 대표적인 외교안보 싱크 탱크 중 하나인 아시아소사이어티(Asia Society)를 이끌며 중국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최근에는 하버드대에서 진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미중 경쟁과 전쟁을 주제로 하는 피할 수 있는 전쟁(The Avoidable War)이라는 책을 펴내며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3]

2. 생애

1957년 9월 21일 호주 퀸즈랜드 주 남부르(Nambour)에서 앨버트 러드와 마가렛 러드의 4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잉글랜드, 아일랜드 혈통으로 고조할아버지인 토마스 러드와 고조할머니인 메리 캐이블 둘 다 범죄자다. 토마스 러드는 설탕 한 봉지를 훔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1801년 영국에서 호주로 건너왔으며 메리 케이블은 1804년 호주로 왔다고 한다.

5살부터 7살까지 류마티스에 걸려 요양을 오래 했다고 하며 훗날 대동맥 판막 치환술(Aortic valve replacement)을 두 번 받았다고 한다. 그가 11살 때 농부였던 아버지가 사망하고 15살 때 노동당원이 되었다. 브리즈번에서 잠시 학창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뒤 호주국립대학교 아시아지역학과에 입학하여 중국어와 중국사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1년동안 대만으로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으며, 약물 재활 센터에서 조수로 일하기도 하다가 1981년 호주 외교통상부에서 커리어를 시작한다. 같은 해 11월부터 1983년 12월까지 스톡흘름 주재 호주 대사관에서 3등 서기관으로 일했고 1984년부터 주중 호주 대사관에서 2등 서기관으로 재직했으며 1985년에는 1등 서기관으로 승진한다. 이 후 1987년 호주 캔버라로 귀국한다.

정계를 떠난 후에도 하버드 대학교 벨퍼센터 등을 거치며 중국 연구를 해오다, 옥스퍼드 대학교 대학원에서 시진핑에 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3. 정치

1988년 웨인 고스(Wayne Goss) 퀸즐랜드 노동당 대표의 비서가 되면서 정계에 입문했고[4] 1996년 고스가 주 총리에서 물러나자 러드도 잠시동안 정계를 떠나 회계법인에서 컨설턴트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 1998년 총선에 출마해 하원의원에 당선된다. 2006년 12월에는 노동당 대표가 되었으며 2007년 11월 총선에서 노동당이 11년만에 승리하며 같은해 12월 3일 호주 26대 총리에 오른다. 2010년 6월 24일 물러났으며 같은 해 9월부터 12년 2월까지 외무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2013년 6월 27일 다시 총리에 오르지만 그 해 9월 7일 실시된 총선에서 자유당에게 패배하면서 6년만에 다시 정권을 내줘야만 했다.

2023년에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 의해 주미국 호주대사로 임명했다.

2024년 11월 13일 러드가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 성공 축하 메시지를 쓰자 트럼프의 측근이던 댄 스커비노 전 선임보좌관은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떨어지는 모습의 짧은 영상을 댓글로 달았는데, 야인 시절 트럼프를 '서구의 반역자' '파괴적인 대통령'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던 것에 대해 트럼프는 러드를 '불쾌한 사람'이라고 평하며 '그는 오래 있지 못 하고 호주로 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응수했고, 모래시계 역시 '너의 시간이 다 됐다'는 의미다. #

4. 업적

4.1. 호주 원주민 탄압 정책에 대한 사과

가장 큰 업적은 단연 '호주 원주민 탄압 정책에 대한 공식 사과, 또는 잃어버린 세대에 대한 사과 (National Apology to the Stolen Generations)'이다. 2008년 2월 13일, 러드 총리는 과거 호주 정부의 원주민 탄압 정책의 피해자들과 그들의 후손들을 호주 의회에 초청하고, 그 자리에서 과거 정책이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여 공식 사과했다. 특히 러드 총리는 과거 정부가 호주 원주민의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격리시켜 기독교 관련 시설로 보내 백인사회로의 강압적인 교화를 시도했던 것에 대해 수차례 용서를 구했다.
이 날 러드 총리의 국가적 사과는 호주 전역에 생방송되었고, 호주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러드 총리의 공식 사과는 초당파적인 지지를 받았고, 정치적 진영을 떠나 호주 정치인들에게 인정받는 업적으로 남아있다.
잃어버린 세대에 대한 사과

4.2. G20 출범 주도 성과

총리, 외교관, 외교부 장관출신답게 국제정치 분야에서 업적이 많다. G7 체제로 대표되는 강대국 중심의 국제관계가 호주나 한국과 같은 중견국가들에게 불리하다는 점을 인식해 세계 정치의 테이블을 G20 정상회의를 통해 보다 확장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G20 설립 과정에서 우리나라 이명박 전 대통령[5]과 깊은 친분 쌓았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1차 G20 회의를 한국에서 개최할 수 있었던 데에는 러드 총리의 덕분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외교적으로 친중적 성향이 강한데[6], 중국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고 중국과 서방의 관계에 대해 TED에서 강연도 했다.
TED 강연: 미국과 중국은 대립할 운명인가

4.3. 대침체 선방

대침체 시기인 2009년 다른 선진국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때 호주는 대침체 극복에 성공한 다른 선진국인 대한민국(0.8%)보다도 3배 가까이 높은 2.2%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GDP 20위권 안에 든 국가 중 플러스 성장을 기록한 나라들[7]이 한국과 호주를 제외하면 전부 개발도상국이고, 개발도상국이 대침체의 영향을 덜 봤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주 큰 성과이며, 더구나 대침체 전인 2008년의 1.9%보다도 성장률을 높였다는 것은 한국도 달성하지 못한 엄청난 위업이다.[8] 다만 러드가 물러난 2010년에는 2.4%로 거의 제자리걸음 수준이라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 딱히 주목할 필요는 없는 수준에 머무르긴 했다.[9] 그리고 2009년, 2010년 모두 플러스 성장을 기록한 선진국은 한국과 호주 외에도 싱가포르, 카타르, 바레인도 있긴 하나 이들은 모두 국가 체급이 한국, 호주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작다. 출처[10]

러드가 대침체를 아무 일도 없던 듯이 넘겼던 이유로는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118억 달러를 지출했고, 중국을 위시한 신흥국의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며 원자재 수출을 위한 광업 산업이 호황을 이루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11] 이런 탁월한 대처 덕분에 호주 사람, 특히 30세 미만의 청년층 세대들은 당시 경제 위기가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4.4. 뉴스코퍼레이션 특별 조사 청원 주도

러드 전 총리는 호주 출신의 글로벌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 이끄는 대기업 뉴스코퍼레이션이 의도적으로 뉴스를 양극화시키고 정치적으로 뉴스를 가공함으로서 미디어 다양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뉴스코퍼레이션에 대한 특별조사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을 주도해왔다. 뉴스코퍼레이션은 현재 호주 언론의 70%를 장악하고 있으며, 미국, 영국 등 타 선진국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말 그대로 괴물급 언론사이다. 러드 전 총리는 뉴스코퍼레이션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암적 존재, 언론계의 마피아'라며 강력히 비판하면서 청원서에서 뉴스코퍼레이션 계열의 신문사들이 호주 전체 신문 구독자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수십년간 정치권에 부적절한 간섭과 개입을 하면서 표현의 자유와 공정한 여론형성을 왜곡해왔다고 주장했다.

2020년 12월 현재 기준으로 해당 청원에 50만명이 넘는 호주 국민이 서명하였는데, 이는 호주 인구를 고려할 때 어마어마한 참여율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이 청원이 받아들여진다면 뉴스코퍼레이션에 대한 호주식 특별검사제도에 해당하는 로열커미션(Royal Commission)[12]이 이루어질 수 있다.

러드 전 총리의 청원은 호주에서뿐만 아니라 글로벌 차원, 특히 서구 진보진영에서 막강한 지지를 받고 있는데, 특히 영국에서 이러한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최근에는 영국 유명 배우 휴 그랜트가 공개적으로 해당 청원을 지지하고 나서기도 하였다. 아래는 관련 영상.
뉴스코퍼레이션 조사 청원 관련 영상

5.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선거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 1996년 호주 연방 선거 그리피스
36,761 (48.53%) 낙선(2위)
1998 1998년 호주 연방 선거 41,689 (52.43%) 당선(1위) 초선
2001 2001년 호주 연방 선거 46,654 (55.66%) 재선
2004 2004년 호주 연방 선거 47,207 (58.63%) 3선
2007 2007년 호주 연방 선거 43,957 (53.09%) 4선
2010 2010년 호주 연방 선거 47,007 (58.46%) 5선
2013 2013년 호주 연방 선거 45,805 (53.01%) 6선

6. 저서

- (대중서) 'On Xi Jinping (시진핑에 대하여)'
- (대중서) 'The Avoidable War (국문번역서: 『피할 수 있는 전쟁』)'
- (대중서) 'The Case for Courage (용기는 역사다)'
- (자서전) ‘Not For the Faint-hearted: A Personal Reflection On Life, Politics and Purpose 1957-2007 by Kevin Rudd (나약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닌: 삶, 정치 그리고 목적에 대한 개인적 회상 1957-2007년)’
- (자서전) 'The PM Year (총리 시절)'
- (학술) 'The Future of U.S.-China Relations Under Xi Jinping: Toward a New Framework of Constructive Realism for a Common Purpose (시진핑 지도 하에 미중관계의 미래: 공통의 목적을 위한 새로운 건설적 현실주의 체제를 향하여)'

7. 논란

  • 총리 재임 당시 미국 방문 중에 보좌관들과 스트립 클럽에 간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되었지만, 쿨(?)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정치적 위기로까지 번지진 않았다.
  • 한편 2012년에는 러드 총리가 중국어로 총리 인사말을 녹화하는 도중 카메라가 켜진 줄 모르고 욕설을 섞어가며 불만을 토로했던 녹화 내용이 고스란히 유튜브에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키도 했다.

8. 여담

  • 1981년 1살 연하의 테레스 라인 여사와 결혼해 2남 1녀를 낳았다. 사위는 홍콩계 호주인이다.
  •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현재는 성공회 신자다.
  • 1993년과 2011년 심장 판막 이식 수술을 받았다.
  • 전술했다시피 중국어가 유창하다.
  • 시골에서 태어나 스스로 본인을 '농장의 아들', '시골 출신'으로 표현하길 즐긴다. 하지만 호주 역대 총리 중 언변이 좋고 억양이 고급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1] The Honourable, 총리 본인에 대한 경칭[2] 전임 총리 존 하워드는 재임 시절 원주민 탄압 사과에 대해 이를 부정하는 입장을 내비쳐 비판을 산 바 있다.[3] https://www.avoidablewar.com/[4] 고스는 1989년 12월 퀸즈랜드 주 총리가 돼 96년 2월까지 재직했고 그 기간동안 여러 장관직을 거치기도 했다. 1951년생 변호사 출신이며 뇌종양으로 투병하다 2014년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5] 이 둘은 후술하듯 대침체에 성공적으로 대처한 유이한 메이저 선진국 국가수반이기도 하다.[6] 다만 이는 러드가 총리였을때 한정이다. 후진타오가 물러나고 시진핑 정권이 출범한 후부터는 중국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7] 중국, 인도, 호주, 대한민국, 인도네시아[8] 한국도 2008년 3%에서 거의 1/3토막났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놀랍다.[9] 한국이 동년 기준으로 무려 6.8% 성장한 것과는 대조된다.[10] 주소의 2023을 2009, 2010으로 바꾸면 확인할 수 있다.[11] 한국도 대침체에서 선방한 게 호황기였던 중국에 대한 높은 무역의존도 덕분이었다는 의견이 있다. 덤으로 대침체 시기 중국의 지도자가 대외적으로 비교적 온건했던 후진타오이기도 했고.[12] 호주의 로열 커미션은 사회적으로 중요하거나 논란이 큰 사안에 대해 조사를 벌이는 호주 의회의 특별조사 기구로 호주의 정부제도 하에서는 가장 강력한 조사 기구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