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4 20:01:34

맬컴 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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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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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 호주의 경우 임기가 중간에 단절되었다가 다시 집권해도 처음 집권했을 당시의 대수를 유지한다. }}}}}}}}}

<colbgcolor=#132331><colcolor=#fff> 호주 제29대 총리
맬컴 블라이 턴불
Malcolm Bligh Turnbull
파일:맬컴 턴불 호주 총리.jpg
출생 1954년 10월 24일 ([age(1954-10-24)]세)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시드니
재임기간 제29대 총리
2015년 9월 15일 ~ 2018년 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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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32331><colcolor=#fff> 부모 아버지 브루스 턴불
어머니 코랄 랜스버리
배우자 루시 턴불 (1980년 결혼)
자녀 2명
학력 시드니 대학교
(정치학, 법학 / B.A., LL.B.) (1973년 – 1978년)
옥스퍼드 대학교 브라스노즈 컬리지
(법학 / B.C.L.) (1978년 – 1980년)
종교 가톨릭
국적
[[호주|]][[틀:국기|]][[틀:국기|]]
신체 178cm
소속 정당
}}}}}}}}}
1. 개요2. 생애3. 선거 이력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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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9대 호주 총리.

2. 생애

호주 시드니에서 부동산 중개인 아버지와[1] 라디오 작가 어머니 사이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9살때 부모가 이혼했고 이후 어머니는 미국으로 이민갔다. 어머니가 이민간뒤 아버지의 손에 자랐으며 어린 시절에는 천식을 앓았다.

1973년 시드니 대학교에 입학해 정치학과 법학 복수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부를 마치고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돼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마치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 호주에서 변호사와 기자로 일했다.

정계에 입문하기 전 20년간 기자, 변호사는 물론 은행가, 벤처투자자 등의 일을 했다. 닷컴버블때 오지메일이라는 통신사를 50만달러에 사서 거품의 정점에서 5700만달러에 매각해 큰 부를 쌓았다. 변호사 시절 영국 비밀정보국의 음모를 파헤친 前 비밀요원 피터 라이트의 폭로 회고록 《스파이캐처》가 호주에서 출간되는 것을 막으려는 영국 정부에 맞서 소송을 제기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1981년에 처음 보궐선거에 출마했지만 패배했고 골드만삭스 호주 법인 대표, 벌목 회사 회장 등을 역임하며 부를 쌓으면서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1993년부터 2000년까지 호주의 공화주의 정치 단체인 오스트레일리아 공화국 운동(Australian Republic Movement)의 회장을 역임했다. 1999년 호주에서 입헌군주제를 유지할지, 공화제로 변경할 것인지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됐을 때 공화제 지지파 진영의 지도자를 맡았지만 국민투표에서는 군주제를 유지하는 것으로 가결되었다.

2004년 처음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으며 2007년에는 환경부 장관을,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자유당 대표를,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통신부 장관을 역임했다. 2015년 9월 14일 토니 애벗 전 호주 총리의 후임으로 여당인 자유당 대표에 임명되었고[2] 다음날인 9월 15일 애벗이 물러나자 총리에 취임했다.

낙태와 동성결혼, 왕정 폐지를 찬성하는 등, 사회적 이슈에서는 자유당 내 중도파로 분류된다. 1999년 왕정폐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공화주의 대표로 왕당파 대표 토니 애벗을 상대로 TV 토론에 참여하기도 했다. 통신장관으로 재임 중, 직전 총리이던 강경우익 토니 애벗의 호주 자유당 당내 신임투표를 요구하여, 2015년 9월 15일 토니 애벗을 누르고 제29대 호주 총리에 당선되었다. 2016년 7월 2일 조기 총선 결과 그가 이끄는 보수 연립이 단독 과반을 확보해 재집권했다.

호주의 대표적인 동성결혼 지지자로, 당내 보수파들의 반대를 뚫고 2017년 9월부터 국민을 대상으로 한 우편투표를 실시하였고 찬성 62%의 지지로 법안을 곧 의회에 상정하겠다며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다.

필리핀에서 개최된 아세안 회의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함께 셀카 비디오를 찍으며 친분을 드러내면서 문 전 대통령을 호주로 초청한다고 했다.

한편, 논란이 있었는데, 멜버른에서의 경제 회의에 참석하러 가던 중 노숙자에게 5달러(약 4,300원)를 노숙자에게 주어 논란이 일었다. 재산이 약 1,800억원 이상인 총리가 손에 돈뭉치를 들고있었음에도 겨우 5달러 주느니 안주는게 나을 뻔 했다는 관점이 있고, 돈을 얼마를 주는지는 본인의 자유라며 욕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으로 나뉘었다.

2018년 8월 21일부터 시작된 당내 분란으로 인해 결국 사흘도 채 지나지 않아서 당내 불신임[3]으로 사직하게 되었다. 결국 자신의 측근이었던 스콧 모리슨 당시 재무장관이 차기 호주 총리에 자리에 올랐다.

2018년 8월 31일 의원직 사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10월에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자유당이 무소속 케린 펠프스 후보에게 패하면서 모리슨 정부는 중립을 유지하는 의장을 제외하고도 단독과반이 붕괴되어 소수정부[4] 전락했고 2010년대 들어서 호주 총리의 평균임기가 1년 남짓의 정국불안정상태가 점점 가속되어 결국 의회해산 및 조기총선이 결정되어 6년만의 노동당으로 정권교체가 유력시되나 했지만 자유당의 스콧 모리슨이 당선되었다.

3.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선거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4 2004년 호주 연방 선거 웬트워스
40,847 (55.48%) 당선(1위) 초선
2007 2007년 호주 연방 선거 44,463 (50.37%) 재선
2010 2010년 호주 연방 선거 51,634 (59.57%) 3선
2013 2013년 호주 연방 선거 58,306 (63.32%) 4선
2016 2016년 호주 연방 선거 52,353 (62.26%) 5선

4. 여담

  • 개인 자산이 1,800억원 이상으로 2013년 순자산이 2조 5,700억원인 억만장자 클라이브 파머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될때까지 호주에서 가장 부유한 정치인이었다.

[1] 호텔을 전문적으로 중개했다고 한다.[2] 호주는 총리가 여당 대표를 겸임한다.[3] 주동자는 피터 더튼 현 자유당 대표(2022~) 및 토니 애벗.[4] 호주는 연합이라고 하여 자유당, 국민당, 퀸즐랜드 자유국민당 등이 연립 정부를 구성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