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01 16:12:27

케취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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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tshwayo kaMpande
생몰년도 1826년 ~ 1884년 2월 8일

1. 개요2. 생애

1. 개요

줄루 왕국의 제4대 왕.

2. 생애

장남이었지만 이복동생으로 둘째 아들인 음부야지가 아버지 음판데의 총애를 받아 음부야지의 어머니를 대부인으로 삼고 음부야지를 후계자로 삼으면서 영국인들에게 이를 알렸다. 영국인들은 음부야지를 후원하고 줄루 왕국 내에서는 케취와요를 지지해 갈등이 일어났다.

음판데가 음부야지에게 투겔라 강 인근의 땅을 영지로 주어 가까이 사는 영국인의 도움을 받게 했지만 1856년 12월 2일에 케취와요는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음부야지를 공격했다. 제2차 줄루 내전이라 불리기도 하는 은돈다쿠수카 전투에서 동생 음부야지와 동생 5명을 죽이고 줄루 왕국의 실권을 잡았다.

이복형제 움통가를 축출하고 음판데가 총애하는 부인 노만츠하일과 세 아들을 죽이려 해 노만츠하일과 막내 아들을 죽이고 두 아들은 놓쳤으며, 1872년에 음판데가 사망하자 이 일을 은폐하다가 1873년 9월 1일에 즉위했다.

자신이 온 나라를 직접 통치하기 위해 여러 추장의 땅을 빼앗았고 자신의 이복동생을 돕고 왕국의 내정에 간섭한 영국인들을 추방했으며, 줄루 왕국은 트란스발 공화국과 대립했는데 영국이 트란스발을 합병했다. 남아프리카 전체를 식민지로 만드려는 영국과 대립하면서 1879년 1월 11일부터 줄루 전쟁이 일어난다.

전쟁 초기에 동생 다불라만지 카음판데를 총지휘관으로 하고 은칭와요 코자, 마부앵그와 은툴리를 함께 파견해 1월 22일에 이산들와나 전투로 영국군에게 승리하기도 했지만 영국군에게 패하고 4월 1일에 긴긴들로부 전투에서 줄루 왕국의 군사들이 패하자 여러 차례 사절을 보내 휴전하려 했지만 영국군은 그대로 진격했다.

영국군의 공격으로 울룬디가 함락되고 케취와요는 함락되기 몇 일 전에 다른 곳으로 움직였으며, 가넷 울슬리가 이끄는 영국군에게 응고메 삼림지대에서 생포되었으며, 포로로 케이프타운으로 갔다가 영국으로 이송된다. 3년 동안 영국에 있다가 분할된 영토를 통치하는 왕으로 1882년에 나탈로 돌아왔지만 1883년 7월 22일에 우지베부의 공격을 받고 중상을 입어 은칸들라로 철수하며, 1884년 2월 8일에 에쇼웨에서 사망한다.

그는 205cm의 신장과 150kg의 체중을 가진 거구였으며, 목소리가 걸걸해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