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5 21:22:50

코이즈미 요시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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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즈미 요시아키
小泉 歓晃 | Yoshiaki Koizumi
파일:코이즈미_오디세이.jpg
출생 1968년 4월 29일 ([age(1968-04-29)]세)
일본 시즈오카 현 미시마 시
국적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직업 게임 디자이너, 디렉터, 프로듀서
소속 닌텐도 (1991년 ~)
1. 개요2. 상세3. 기타4. 작품

[clearfix]

1. 개요

닌텐도게임 디자이너, 프로듀서, 디렉터이며 현재는 닌텐도 집행임원 및 기획제작본부(닌텐도 EPD)의 본부장 및 닌텐도 산하의 자회사인 1-UP 스튜디오닌텐도 픽처스의 이사를 역임하고 있다.[1]

주로 개발에 참여했던 작품은 슈퍼 마리오 시리즈, 젤다의 전설 시리즈이며, 2000년대 들어서는 주로 3D 슈퍼 마리오 시리즈 개발을 역임하고 있다.

디렉터나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작품들은 전부 슈퍼 마리오 시리즈 내에서도 특히나 좋은 평을 듣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참여했던 슈퍼 마리오 Wii 갤럭시 어드벤처슈퍼 마리오 Wii 2 갤럭시 어드벤처 투게더는 당시 슈퍼 마리오 시리즈 최고의 명작 소리를 들으며 대성공함으로서 슈퍼 마리오 시리즈 내에서 미야모토 시게루의 후계자 자리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2010년대 초 미야모토 시게루가 뒷선으로 빠진 이후로는 지금의 3D 마리오 시리즈를 이끌고 있는 인물이다.

한편 이와타 사토루 전 사장의 사망 직후 닌텐도의 얼굴마담격이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게임 개발에 관여하지 않는 키미시마 타츠미, 후루카와 슌타로 대표이사와 공개적인 행사에 얼굴을 잘 비추지 않는[2] 미야모토 시게루 대표이사 펠로우를 대신해 닌텐도 스위치 공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고, 이후 닌텐도 다이렉트의 진행도 몇번이고 맡았다. 영어로 직접 말했던 이와타 사장과는 달리 일본어로 진행하되, 영어 더빙이 달리는 식으로 진행된다. 2018년을 기점으로는 그를 대신해 타카하시 신야가 대신 닌텐도 다이렉트의 진행을 맡고 있다.

2017년 블룸버그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 중 한명에 포함되었다.

2. 상세

파일:코이즈미_무쥬라.jpg 파일:코이즈미_07.jpg
2000년 젤다의 전설 무쥬라의 가면 개발 당시 2007년 몬트리올 게임 서밋에서

고등학생 당시 영화에 흥미를 가져 오사카예술대학 영상학부에 들어가 재학 중 21살때 동기들이 플레이하던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더 로스트 레벨즈로 게임을 처음 접했으나, 높은 난이도에 어려움을 느껴 젤다의 전설을 사서 플레이했다고 한다. 졸업 후 영화감독의 꿈을 접고 게임에서 경험한 서사를 만들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닌텐도에 지원한다. 입사 면접 당시 미야모토 시게루코타베 요이치에게 본인의 게임관과 애니메이션관을 강력하게 주장해 게임 박스아트 및 메뉴얼의 일러스트레이터로 1991년 4월에 입사하여 매일 마리오를 그리며 코타베 요이치에게 일러스트를 배웠다고 한다. 입사 후 처음 담당한 게임은 젤다의 전설 신들의 트라이포스 였으며, 메뉴얼의 디자인과 작문 그리고 박스아트를 담당했다. 이후 슈퍼 마리오 카트의 일러스트를 맡았지만 현장조사 외엔 큰 역할은 하지 않았고, 신들의 트라이포스의 후속작격인 젤다의 전설 꿈꾸는 섬의 메뉴얼 디자인을 맡았지만 당시 게임이 막 개발이 시작된 참이었기 때문에 개발진을 찾아가 '꿈 속의 섬'같은 포괄적인 플롯과 서브 스토리, 케포라와 바람 물고기의 대사, 보스의 패턴 디자인을 제안했고 이는 본격적인 게임 개발자의 길로 접어드는 것에 큰 도움이 되었다.

1994년 즈음 취미로 아미가를 사용해 집에서 3D 모델링과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미야모토 시게루에게 선보이기도 했고, 이로 인해 3D 게임기 닌텐도 64를 개발하던 닌텐도의 눈에 들어 슈퍼 마리오 64의 어시스턴트 디렉터에 재임해 새벽 2-3시까지 남아 모델 데이터로 활용할 미야모토 시게루의 포즈를 찍으며 3D 모델링과 마리오의 모션 193가지를 만들었다. 당시 3D 그래픽 아티스트는 매우 귀했기 때문에 시점 디자인, 적 모델링, 필드 모델링 등도 관여했지만 앞에서 적을 처치하려 하면 시점이 정렬되지 않아 도리어 번거로워지는 등의 당대 3D 디자인의 한계를 느껴 액션에 관련된 상당수의 아이디어가 활용되지 못한다.

슈퍼 마리오 64의 개발이 끝난 직후 이로 쌓은 3D 그래픽 경력 덕분에 차후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가 되는 64DD[3]로 발매될 3D 젤다 프로젝트에 '오사와 토루'와 '이케다 진'에 이어 3번째로 참여한다. 개발 시작부터 액션보단 퍼즐 요소에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출발했으며, 코이즈미 요시아키는 이를 슈퍼 마리오 64에서 쓰지 못한 아이디어를 사용할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슈퍼 마리오 64 개발에서 3D 액션의 한계를 경험했던 미야모토 시게루는 필드를 돌아다닐 때는 초기 FPS처럼 칼만 화면에 나오게 하고 적을 만나면 젤다의 전설 2 링크의 모험 같은 횡스크롤 액션이 되는 식을 제안했지만, 본인이 디자인한 링크[4]의 모델링이 나오지 않는다는게 못마땅했던 코이즈미 요시아키는 이를 거절한다.[5] 액션을 보강하기 위한 게임적 장치가 필요함을 느낀 3인은 토에이 우즈마사 영화마을[6]로 현장조사를 나가고, 당시 극장에서 하던 1 대 20 검술쇼를 보던 도중 어떻게 1명이 20명을 이길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긴 그는 쇼를 면밀히 살펴보다가 20명이 한꺼번에 검을 휘두르지 않고 한 명이 검을 휘두르다 쓰러지면 다음 사람이 순서대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모티브를 얻은 3인은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의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이라 할 수 있는 Z주목을 고안해낸다. 디자이너의 욕심으로 인해 평범한 마커를 사용하기 싫었던 그는 요정을 생각해 내어 그래픽의 한계로 표현하기 힘든 작은 인간형의 요정 대신 날개달린 공을 디자인해내고 오사와 토루에 의해 나비란 이름을 부여받는다.

1997년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개발이 순탄하게 진행되던 중, 칼싸움의 편의성을 위해 어른 링크로만 개발되던 게임을 감수하던 미야모토 시게루를 포함한 스탭들은 어른 뿐만이 아닌 귀여운 링크도 보고싶다는 제안을 하게 되고 이는 현재의 시간여행 플롯으로 갈아엎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이로 인해 코이즈미가 담당하던 링크의 모션이 약 1.5배 늘어났고, 500개가 넘어가는 모션이 링크에 할당되게 된다. 하지만 당시 64DD 매커니즘 상 디스켓으로는 특정 기계 부품을 이동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므로 많은 양의 모션 데이터가 있는 위치에 따라 부품이 계속 움직이면서 링크가 움직이지 않는 결과가 나타나게 되어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는 데이터를 읽는데 시간이 들지 않는 카트리지를 사용한 닌텐도 64용 게임으로 변경된다. 이후 코이즈미는 슈퍼 마리오 64에서 사용하지 못했던 아이디어 중 하나인 승마를 넣고, 켈트 신화에서 나오는 말의 여신의 이름을 따 말의 이름을 에포나라고 직접 붙인다.[7] 미야모토 시게루는 이 승마 시스템에 대단한 관심을 보였다하며, 처음엔 말이 뛰어넘는 것을 로우 앵글로 보고 싶단 카메라 워크 위주의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8] 이후 코이즈미는 미야모토의 젤다의 전설에 어려운 조작은 필요없다는 말에 자동점프, 말을 타기만 하면 지루하지 않겠냐는 요청에 당근과 채찍 시스템을 넣는다.[9] 이외에도 그는 시간의 오카리나의 서브 퀘스트를 대부분 디자인했다.

200명 가량의 제작진이 소요된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의 성공적인 발매 후, 아오누마 에이지가 지휘하는 50명 가량의 제작진만이 남아 64DD에 최적화된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확장판을 제작에 들어간다. 이 때 코이즈미 요시아키는 제작진에서 이탈해 자신이 직접 구상한 경찰과 도둑 풍의 보드게임을 기획한다. 이 보드게임의 특징은 게임시간으로 일주일의 시간제한이 있어, 실제로는 약 한시간 가량의 플레이 타임이 되는 게임이었다. 그 무렵, 미야모토 시게루의 지시로 확장판을 위해 던전 퍼즐을 변경하던 아오누마 에이지는 기존 시간의 오카리나의 던전 디자인을 최고의 마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재디자인에 불만을 품었고, 몰래 새로운 던전을 디자인하는 것이 즐거웠던 아오누마는 결국 미야모토 시게루에게 '새로운 젤다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게 되고 미야모토는 '1년 내로 만들 수 있으면 허락하겠다'고 대답한다. 50명은 게임을 1년안에 만들기엔 턱없이 적은 인원이었고, 아오누마 에이지는 회사에서 우연히 만난 코이즈미에게 같이 작업을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코이즈미는 '그럼 시간제한 시스템을 넣게 해주면 제작진에 합류하겠다'고 말하고 이를 아오누마가 동의해 코이즈미는 기획하던 보드게임을 취소하고 젤다의 전설 제작진에 재합류한다. 기존의 50명 가량을 포함한 100명 가량의 제작진이 모여 신작의 개발에 들어갔고,[10] 코이즈미의 제안대로 일주일의 시간제한을 가진 게임으로 기획되었지만 일주일의 시간제한은 젤다의 전설 시리즈로는 너무 동선이 복잡해질것을 우려해 3일로 축약된다. 이후 이런 시간제한 시스템에 하이랄은 너무 크다고 느낀 코이즈미는 맵을 처음부터 새로 만들것을 고안해 주무대가 테르미나로 변경된다. 또한 역시 시간의 오카리나에 이어 무쥬라의 가면에서 가장 호평받았던 부분인 서브퀘스트를 대부분 디자인했다.

2000년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젤다의 전설 무쥬라의 가면의 성과로 코이즈미 요시아키를 눈여겨 본 미야모토 시게루닌텐도 64를 잇는 차기 콘솔인 닌텐도 게임큐브마리오 시리즈 테크데모를 맡긴다. 슈퍼 마리오 64를 잇는다는 뜻에서[11] '마리오 128'이라고 이름붙은 이 데모는 100명의 상호작용중인 마리오를 원반 위에서 구형으로 걸어다니는걸 보여주는 데모로, 스페이스 월드 2000에서 게임큐브의 발표와 함께 공개되었다. 미야모토와 코이즈미는 이를 실제 게임에 활용할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게임큐브의 사양으론 구형 중력을 구현하는게 실질적으로 불가능해 실제 게임 개발에 옮기진 않았다.

코이즈미는 테즈카 타카시와 함께 게임큐브용 타이틀 개발에 착수한다. 당시 미야모토 시게루는 게임큐브의 자연스러운 액체와 물의 질감을 낼 수 있는 성능에 빠져있었고, 게임큐브 특유의 많은 버튼을 이용해 워터 펌프를 사용하여 페인트를 씻어내는 게임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개발진은 슈퍼 마리오 64에서 모티브를 얻은 남쪽 휴양지 풍의 카툰 배경에 실사 남성이 나오는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하지만, 카툰 배경과 실사 캐릭터가 괴리감이 심해 개발 시작 3개월 즈음에 플레이어 캐릭터를 마리오로 변경해 슈퍼 마리오 시리즈의 차기작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워터 펌프로 페인트나 불을 끄는것을 목표로 했던 게임성을 돌려 샤인을 획득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등 여러 변경점 끝에 슈퍼 마리오 선샤인이 발매된다. 평론가들은 게임 디자인 등의 요소 등에 좋은 평점을 주었지만, 카메라 워크에선 상당히 비판적 평을 받으며 판매량은 닌텐도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이후 2002년 닌텐도가 도쿄의 인재 발굴 및 육성을 의도로 닌텐도 정보개발본부(닌텐도 EAD)[12][13] 도쿄 지사를 열면서 코이즈미 요시아키는 도쿄제작부 제2그룹에 매니져로 편입된다.[14] 미야모토 시게루의 제안으로 동키콩 정글비트를 도쿄제작부 1그룹과 공동제작하며 도쿄에서의 작업환경에 적응한다.

2005년 봄 즈음 동키콩 정글비트 개발이 끝난 도쿄제작부는 곧 나올 닌텐도의 콘솔인 Wii를 위한 오리지널 게임을 만들고자 했지만 미야모토 시게루는 '기존 닌텐도 IP의 신작을 만들어줬음한다'는 말을 전하고, 만들어진지 얼마 안되어서 기존 IP를 다루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도쿄제작부는 소규모의 게임을 제안하나 미야모토의 '큰 규모의 게임을 만들고 싶은것 아니냐'는 제안에 결국 도쿄제작부내에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냐는 설문조사가 돌게 되고 결국 차기 슈퍼 마리오 시리즈를 개발하는것으로 결정된다. 디렉터를 맡게된 코이즈미는 이 신작을 개발하면서 미야모토의 감수를 위해 산하의 개발자들과 미야모토의 중간다리 역할을 맡았으며, 미야모토는 이 신작에 게임큐브 시절 활용하지 못한 구형 중력을 활용할 기회라 생각하고 구형 중력을 사용한 작품을 만들 것을 밀고 나간다. 코이즈미는 이를 위해 직원을 선발해 구형중력을 표현하기 쉬운 소재인 행성을 무대로 해 우주를 배경으로 한 프로토타입을 3개월간 제작에 들어간다. 이후 개발은 3D 액션의 문제점인 3D 멀미와 좁은 액션 반경을 최대한 개선하는 쪽으로 맞춰졌다. 슈퍼 마리오 선샤인의 비판요소 중 하나였던 전적으로 유저에게 맡겨진 복잡한 카메라 워킹을 개선하기 위해 다시 카메라가 자동적으로 따라가는 방식으로 변경하고 3D 멀미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테스터들에게 모니터링을 최대화했다.[15]

또한 구형 지형으로 인해 점프해 적을 밟는게 어려운걸 고려해 위모콘을 흔들어 스핀해 적들을 물리치는 방법을 고안한다. 원래는 스핀은 연속으로 사용이 가능할 예정이었으나 미야모토 시게루의 딜레이를 두어 적과의 공격 타이밍등을 생각하게 하면 더 재미있을것같다는 의견에 딜레이를 넣어 변경한다. 그외에도 본인이 한 밥상 뒤집기를 미야모토 시게루가 오히려 아이디어를 수습해 재배치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발매된 슈퍼 마리오 갤럭시(국내명 슈퍼 마리오 Wii 갤럭시 어드벤처)는 평론가들에게 카툰 풍을 활용한 비쥬얼, 위모컨의 다양한 기능을 활용한 게임 플레이, 스페이스 판타지에 어울리는 오케스트라 음악 등이 굉장히 극찬받으며 슈퍼 마리오 시리즈 중에서도 지금도 굉장히 고평가받고 있다. 또한 작중에 등장하는 우주마녀의 동화는 코이즈미 본인이 직접 쓴 것으로, 인터뷰로 실제 동화책으로 엮어내고 싶다고 언급하기도 했으나 이뤄지지 못했다.

또한 이즈음부터 이와타 사토루 사장이 진행하던 개발자 인터뷰 사장이 묻는다를 통해 대외적으로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이 문서의 대부분은 사장이 묻는다 시절 인터뷰를 기반으로 짜여진 것이다.[16]

슈퍼 마리오 갤럭시의 성공적인 발매 이후에도 사용하지 않은 더미 데이터 소스가 수북히 쌓임에 따라 미야모토 시게루에게서 이정도면 한개를 더 만들수 있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들은 코이즈미는 개발진들을 불러모아 '좋았던 점들을 회고하는 반성회'를 개최했고 '이런 점은 좋았지만 이렇게 하면 더 좋았을것 같다'는 식의 의견이 점점 쌓임에 따라 자신감이 붙은 코이즈미는 '좀 더 슈퍼 마리오 갤럭시'라는 가제로 차기작 개발에 들어간다. 이때부터 코이즈미는 3D 마리오 시리즈의 프로듀서를 맡기 시작한다. 다만 충분히 활용할만 요소는 어느정도 전작에서 사용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전작에서 등장할 예정이었으나 구형 중력에 몰두하기 위해 등장이 취소된 요시를 중심 소재로 연구하기 시작했고, 파워업 역시 요시 위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작중에서 등장하는 풍선요시 역시 코이즈미가 예시로 제시한 파워업에서 모티브를 딴것이다. 또한 3D가 됨에 따라 요시의 액션을 다시 디자인하고 목소리를 재녹음하는 등 이후 등장하는 3D 요시의 큰 밑거름이 된다.

또한 역시 기획과정에서 코이즈미가 제기했으나 페기된 컨셉이었던 마리오 모양의 우주선인 마리오호를 게임에 끼워넣었으며,[17] 이로 인해 플레이어가 익숙한 지형을 걸어다니면서 얻는 편의성과 휴식장소로서의 편안함의 증대를 노렸다고 언급했다. 초기 컨셉에선 '스위치'란 컨셉을 가지고 개발하기 시작했으나 개발의 환경이 바뀌면서 개발의 한계에 부딪혀 개발진들의 의욕이 줄어들것을 걱정해 원작의 단점을 개량하고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개편된다.[18] 이로 인해 등장한 것이 드릴 아이템이나 구름 마리오 같은 파워업이었으며, 2년 반 가량의 시간을 개량하는데에 집중함에 따라 전작과의 차이점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다.

상술했듯이 코이즈미는 닌텐도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영화를 좋아했었고, 그 경험 덕에 꿈꾸는 섬의 플롯을 짜는 등 스토리를 별로 중요시 생각하지 않는 미야모토 시게루와는 달리 연출이나 스토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그래서 슈퍼 마리오 선샤인과 갤럭시도 마리오를 멋있어 보이게 하기 위해 갖가지 연출이나 스토리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고 한다.[19] 하지만 미야모토 시게루는 연출 부분은 어느 정도 방관하면서도 이에 대해 마리오가 너무 젤다처럼 되는 것이 아니냐며 불만을 갖고 있었고 코이즈미가 디렉터를 맡은 이후로 3D 마리오의 스토리는 개발 과정의 뜨거운 감자가 되기에 이르었다. 결국 갤럭시 2가 개발되는 시점에 이와 관련해서 미야모토 시게루와 면담을 하게 된다. 4-5시간 가량의 면담 속에서 코이즈미 요시아키는 마리오를 만드는데 플레이어들한테 놀라움을 주는 위화감 만큼이나 플레이어들한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공감이라는 요소[20]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갤럭시 2 이후로는 과도한 연출을 배재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는 연출적인 면에서는 전작보다 덜했음에도 전작 못지 않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미야모토 시게루도 이 시점에서 더 이상 코이즈미한테 본인이 관여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것을 느끼게 되며, 전적으로 뒷선으로 물러난다.

슈퍼 마리오 갤럭시 2의 개발 종료 이후, '이제까지 만들어 온 3D 마리오로의 입구가 되는 게임을 만들자'는 기획으로 신 휴대용 콘솔로 발매될 누구나 즐기기 쉬운 2D에 가까운 3D 마리오를 지향한 개발을 시작한다. 기획과정에서부터 디렉터 하야시다 코이치의 주도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코이즈미는 개발 초기에는 '갤럭시 2'의 재미 요소를 넣는 것과 개발을 단기간에 끝내는 것을 명제로 하고 있었으므로 새로운 것은 하지 않아도 된다며 하야시다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배려해줬고, 부메랑마리오 등 신규 파워업을 이끌어 내는데 도움을 줬다. 이후 발매된 슈퍼 마리오 3D 랜드는 약 1,2년이라는 굉장히 짧은 개발 기간에도 비교적 높은 평가를 들으며 성공적으로 안착한다.

3. 기타

문서 상단의 프로필은 레딧AMA 인터뷰에 쓰였던 사진. 눈 달려 있는 마리오 모자를 보면 알겠지만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 개발 당시의 모습이다.

그리고 광고에 뜬금없이 소+거북이+대마왕인 쿠파가 나와버렸다. 합성 아닙니다

4. 작품

디렉터/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은 굵게 표시.


[1] 이 때문에 슈퍼 마리오 3D 랜드 이후 코이즈미가 프로듀서로 역임하는 게임들은 대부분 1-UP 스튜디오가 협업을 맡고 있다.[2] 진행하는 것에 자신이 없어서 그런지 보통 인터뷰나 프레젠테이션의 게스트로 초청되는 식으로 얼굴을 드러낸다.[3] 다만 실제로는 그냥 64로 발매되었다.[4] 코이즈미의 인터뷰에 의하면 시간의 오카리나부터 링크의 디자인이 서양풍 미남으로 변하는데, 기존 링크의 디자인을 보고 주먹코에 주목한 아내의 "닌텐도 캐릭터는 다 코에 특징이 있네? 닌텐도 캐릭터는 다 이래?"란 말에 충격을 받아 코를 날렵하게 만들고 구레나룻을 좀 더 가볍게 만드는 등 아내의 이상형으로 디자인했다고 한다.[5] 다만 주변 스탭들에 의하면 코이즈미를 제외한 스탭들은 당시 제안대로 테크데모를 만들긴 했지만 시각적으로 흥미롭지 않았기 때문에 폐기했다고 한다.[6] 토에이 교토 스튜디오 파크; 토에이가 60년대 사극영화의 수요감소에 따라 노선을 야쿠자물로 변경하고 사극을 촬영하던 이 스튜디오를 개량하여 1975년 민간에게 공개한 테마파크다. 현재도 사극 촬영이 이뤄지고 있으며, 가면라이더 시리즈슈퍼전대 시리즈의 촬영 역시 빈번하게 이뤄진다.[7] 아오누마 에이지에 의하면, 개발진은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개발 초기엔 말을 '아오'라고 불렀다한다.[8] 주변 스탭에 의하면 미야모토 시게루는 영화 같은 연출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연출 관련 요청을 하는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고 한다.[9] 그 후에도 미야모토 시게루는 말타고 활쏘기와 마상전투를 요청하지만 활쏘기만 구현되고 마상전투는 닌텐도 64의 사양상 구현되지 못한다. 결국 마상전투는 젤다의 전설 황혼의 공주 개발때 미야모토의 재요청으로 구현된다. 승마와 별개로 미야모토는 전투에서 칼을 위로 치켜드는게 가능한걸 원했다고 하지만 역시 사양상으로 구현되지 못했다고 하며 젤다의 전설 스카이워드 소드에서야 구현된다.[10] 이러한 타이트한 개발기한과 이에 비해 적은 개발인원은 결과적으로 젤다의 전설 무쥬라의 가면의 어두운 분위기와 어려운 난이도로 이어졌다. 특히 아오누마 에이지에 의하면 개발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땐 작업량이 매우 많아 힘들었다고 하며, 미야모토 시게루는 이를 걱정해 자신을 불러 게임 발매를 연기할것을 제안했지만 자존심이 긁힌 아오누마는 꼭 1년안에 만들겠다고 고함쳤었다며 회고했다.[11] 다만 1999년 닌텐도 파워의 미야모토 시게루와의 인터뷰에 의하면 64DD 용으로 2P로 루이지가 플레이 가능한 후속작을 만들고 있다고 언급했으나, 64DD의 부진으로 취소되었다.[12] 아케이드 동키콩의 히트후 미야모토 시게루와 이케다 히로시가 주축이 되어 개설된 부서인 닌텐도 개발제4부(닌텐도 R&D4)가 개발한 슈퍼 마리오브라더스젤다의 전설의 대히트로 1989년 슈퍼 패미컴의 발매에 대비해 확장된 부서로, 특히 닌텐도 DS닌텐도 Wii 때 두각을 나타냈다. 제작부와 도쿄제작부, 정보개발관리부, 기술제작부 4부서로 나뉘어져있었으며, 교토엔 미야모토 시게루를 포함한 핵심 그룹외에도 총 5그룹의 개발인력이 있었으며 700명이 넘는 개발자들이 상주했다.[13] 교토의 제작부의 5그룹은 각각 전문적인 개발담당이 나뉘어 콘노 히데키가 매니져를 맡은 닌텐독스마리오 카트 시리즈 개발을 담당한 1그룹, 노가미 히사시가 매니져를 맡은 Wii 시리즈동물의 숲 시리즈 개발을 담당한 2그룹, 아오누마 에이지가 매니져를 맡은 젤다의 전설 시리즈 개발을 담당한 3그룹, 키무라 히로유키가 매니져를 맡은 말랑말랑 두뇌교실뉴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시리즈피크민 시리즈 개발을 담당한 4그룹, 스기야마 타다시가 매니져를 맡은 Wii Fit와 스틸 다이버 시리즈 개발을 담당한 5그룹으로 나뉘었다.[14] 도쿄제작부 1그룹은 시미즈 타카오가 매니져를 담당했으며, 투어가이드 타이틀이나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3D젤다의 전설 무쥬라의 가면 3D같은 젤다의 전설 시리즈 리메이크 작을 주로 맡았다.[15] 당시 프로듀서였던 시미즈 타카오가 언급한 바에 따르면 자신 역시 3D 멀미가 심한 편이라 3D 멀미를 감지하기 위해 자주 쓰였었다고 인터뷰했다. 이후 미야모토 시게루가 특정 부분에서 연출을 강화해야 한다고 감수가 왔을 때 그렇게 하면 자신이 멀미가 온다고 반박해도 테스터 우선으로 묵살당하곤 했다고 가볍게 투정부리기도 했다.[16] 사장이 묻는다 슈퍼 마리오 갤럭시 편, 사장이 묻는다 닌텐도 DSi 편, 사장이 묻는다 슈퍼 마리오 갤럭시 2 편, 사장이 묻는다 슈퍼 마리오 25주년 편, 사장이 묻는다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3D 편, 사장이 묻는다 슈퍼 마리오 3D 랜드 편, 사장이 묻는다 슈퍼 마리오 3D 월드 편[17] 코이즈미는 이로 인해 슈퍼 마리오 갤럭시의 제작과정에서도 마리오 모양의 행성을 넣을것을 꾸준히 제의했으나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고 회고했다.[18] 슈퍼 마리오 갤럭시 2 작중 등장하는 점프하면 다른쪽으로 스위칭하는 발판이나 스위치를 누르면 호수가 얼어붙거나 용암이 얼음으로 바뀌는 등의 기믹은 스위치 컨셉일때 고안한 소스이다.[19] 특히 슈퍼 마리오 선샤인은 적이나 장치를 먼저 구상하는 보통의 마리오와는 달리 플롯을 어느정도 정하고 적이나 장치를 만들었다고 한다.[20] 쉽게 말하자면 뉴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Wii는 플롯이나 스토리 면에서는 고전의 마리오와 같으므로 위화감은 거의 없지만 반대로 오랜만에 마리오를 해본 사람들이나 처음 마리오를 해보는 사람들이나 누구나 할 수 있으므로 공감 면에서 큰 어필을 한 게임이다.[21] 마리오와 요시, 루이지는 슈퍼 마리오 64에서, 링크는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에서의 3D 모델링에서 참고해서 사용했다. 두 작품 모두 3D 모델링에 참여한 작품.[22] 로젤리나의 동화책의 스토리를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