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5 17:45:37

크림힐트

1. 개요2. 니벨룽의 노래에서
2.1. 크림힐트의 최후에 대해
3. 기타 전승4. 미디어에서의 등장

Kriemhild[1]

1. 개요

중세 독일의 영웅 서사시인 니벨룽의 노래의 여주인공으로 부르군트족의 왕 군터여동생이며 지크프리트의 아내. 단순한 히로인을 넘어 니벨룽의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진주인공의 위치에 있다. 니벨룽의 노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 작품의 줄거리 자체가 크림힐트의 결혼부터 죽음까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대로 이 항목으로 옮겨와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

크림힐트는 북유럽 신화의 구드룬에 대응되는 캐릭터이며, 학자들은 구드룬/크림힐트라는 캐릭터의 기원을 훈족의 왕 아틸라의 마지막 부인이었던 일디코(Ildico)와 메로빙거 왕조의 여왕 프레데군트로 추정하고 있다. 구드룬의 둘째 남편인 아틀리나 크림힐트의 둘째 남편 에첼이 모두 아틸라를 모델로 하고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추정이 나온 것. 그간 크림힐트는 구드룬에서 파생된 캐릭터로 보았으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구드룬과 크림힐트는 특별한 선후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의 원형에 해당되는 캐릭터가 구전으로 전파되면서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는 북유럽 신화에 편입돼서 구드룬이 되었고 독일 지역에서는 부르군트족의 공주 크림힐트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2]

또한 자신의 목적을 위해 아틸라와 결혼해서 그의 힘을 빌리려 한것으로 볼때 서로마 제국호노리아 공주의 영향도 있지 않나 추측되기도 한다.

크림힐트는 낭만성이 별로 없고 처절한 비극성으로 점철되어 있는 캐릭터로, 중세 로맨스의 주인공 중에서는 상당히 드문 유형이다. 이런 희소성(?)과 왠지 맛있어 보이는 이름 덕분인지 중세 시절부터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2. 니벨룽의 노래에서

전술한 바와 같이 니벨룽의 노래라는 작품 자체가 사실상 '크림힐트의 사랑과 복수의 일대기'이기 때문에 자세한 사항은 니벨룽의 노래를 참조하기 바라며 여기서는 간략하게 언급한다.

도입부에서 크림힐트는 앞으로의 사건을 예고하는 꿈을 꾸고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이후 지크프리트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의 청혼을 받아 결혼한다. 둘은 결혼 후 지크프리트의 고향 크산텐 왕국으로 떠나고 10년 뒤 크림힐트의 오빠의 이름을 딴 군터라는 아들을 낳는다. 이후 보름스에서 축제가 열리고 부부는 시아버지 지크문트와 함께[3] 오랜만에 크림힐트의 고향을 찾는다. 크림힐트는 행사에서 오빠 군터왕의 아내가 된 브륀힐트와 말다툼을 벌이게 되는데(자세한 것은 브륀힐트나 니벨룽의 노래 항목 참조) 브륀힐트는 지크프리트는 군터 왕의 신하이므로 자신의 남편인 군터에게 복종해야 된다고 하는 반면 크림힐트는 군터와 지크프리트가 동등한 관계이므로 그럴 이유가 없다고 반박한다. 싸움이 점점 격렬해지자 참지 못한 크림힐트는 지크프리트가 자신에게 준 브륀힐트의 허리띠와 반지를 보여주면서 사실은, 브륀힐트의 첫날밤에 그녀를 제압하고 관계를 맺은 것도 지크프리트라고 조롱하며[4][5] 브륀힐트를 지크프리트의 첩이라고 부른다.

진실을 알게된데다 공공연히 모욕당한 브륀힐트는 멘붕했고 하겐은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지크프리트를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기젤헤어는 고작 그런걸로 지크프리트를 죽이냐며 반대했지만, 군터는 하겐의 설득에 넘어갔고 결국 그들은 지크프리트 암살 계획을 모의한다.

하겐은 크림힐트를 찾아갔고 크림힐트는 그를 반기며 자신이 브륀힐트에게 막말했던 사실을 후회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실언한 대가로 지크프리트에게 심하게 매도 맞았으니[6] 그에게 보복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하겐은 그런 그녀에게 지크프리트가 곧 전투에 나가는데 위험할 때 자신이 보호해 주겠다고 하면서 그의 약점부위를 옷에 표시해 놓으라고 요청한다. 그 거짓말을 곧이 곧대로 믿은 크림힐트는 지크프리트의 약점이 있는 등짝 부분에 하얀 십자가를 꿰메어서 표시를 해두고, 하겐은 그 표식을 보고 사냥터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지크프리트의 등을 창으로 찔러 죽인다.

크림힐트는 지크프리트가 죽은 것을 슬퍼하며 그 범인을 찾고자 지크프리트의 시체를 놓고 모든 부르군트의 신하들이 그 앞을 지나가게 만든다. 하겐이 앞에 나오자 지크프리트의 시체는 갑자기 피를 쏟아내며, 이 징조를 보고 크림힐트는 하겐이 범인임을 추궁하고 하겐도 이를 인정한다. 장례식을 마친 뒤 지크문트는 크림힐트를 데리고 그녀의 아들 군터가 기다리고 있는 크산텐 왕국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크림힐트는 그녀를 잘 돌봐주겠다는 지크문트의 맹세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의 만류로 보름스에 남기로 결심한다.

이후 크림힐트는 지크프리트가 용을 죽이고 얻은 보물을 상속받는데, 하겐은 그녀가 보물을 써서 많은 수의 용사들을 모아 자신들에게 복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이에 위협을 느껴 군터에게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군터와 다른 왕자들은 보물은 엄연히 크림힐트의 정당한 소유물이라 생각해서 하겐의 의견에 따르길 주저하지만, 하겐은 잽싸게 지크프리트의 명검 발뭉과 이 보물을 빼앗아 라인강 어딘가에 숨겨버린다.

크림힐트는 이후 13년 동안 지크프리트를 애도하며 과부로 살았는데, 마침 아내를 잃고 재혼상대를 찾던 훈족의 왕 에첼에게 구혼을 받아 에첼의 아내가 된다. 하겐은 이때도 크림힐트가 음모를 꾸밀걸 우려해서 그녀를 강력한 군주인 에첼에게 시집보내는걸 반대하지만, 군터는 이를 무시하고 혼인을 성사시킨다.

시집간 이후 크림힐트는 왕비 대접을 받으며 살다 7년째 되던 해 에첼의 아들 오르틀리프(Ortlieb)도 낳았지만, 지크프리트의 죽음과 빼앗긴 보물에 대한 원한은 사그라들긴 커녕 끝없이 불타올랐고 마침내 에첼의 재산과 병사들을 이용해서 하겐을 살해할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결혼한지 13년째 되던 해에 친정식구들이 그립다고 남편 에첼을 설득해서[7] 축제를 열게 만든 뒤, 군터 왕과 부르군트의 용사들을 훈 족의 궁전으로 끌어들여 훈 족의 용사들로 하여금 부르군트의 전사들을 공격하게 한다.

크림힐트는 형제들까지 해치고싶지 않았기에 어서 하겐만 내놓으라고 요구했지만, 형제들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충성스러웠던 하겐을 버릴순 없었기에 그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항전한다. 부르군트인들이 워낙 용맹하여 많은 피해가 나왔으나 결국 그들은 모두 죽게 되고, 살아남은 군터 왕과 하겐은 베른의 디트리히에게 포로로 붙잡힌다.

크림힐트는 하겐에게 빼앗은 지크프리트의 검 발뭉을 들고 하겐에게 라인의 황금이 있는 곳을 실토하라고 추궁한다. 하겐이 라인의 황금의 소유자는 오직 군터 왕 뿐이라고 말하며 대답하길 거부하자 크림힐트는 오빠인 군터의 목을 잘라 하겐에게 보여주고 이제 네가 말한 황금의 소유자는 사라졌으니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다.[8] 분노한 하겐은 라인의 황금이 있는 곳은 절대로 대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화를 참지 못한 크림힐트는 발뭉으로 하겐의 목을 베어버리는데, 이를 본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나약한 여자에게 용사 하겐이 살해당한 것에 분개한다. 심지어 크림힐트의 남편 에첼조차 하겐이 비록 적이긴 했어도 훌륭한 기사였는데 아녀자 손에 죽다니 너무 슬프다!!! 며 한탄했다.하겐이 자기 아들 죽인건 아무렇지도 않나보다 분노한 디트리히의 신하 힐데브란트는 직접 검을 들고 나서서 크림힐트를 참살하고, 크림힐트는 힐데브란트를 보고 두려움에 떨며 비명을 지르다가 처참하게 살해당한다.[9]

2.1. 크림힐트의 최후에 대해

"아녀자 주제에 명예로운 기사를 죽였다."는 이유가 현대인들이 보기엔 좀 그랬는지 영화나 산문등 각색을 거치는 매체들에선 아녀자 운운을 빼버리고 크림힐트가 복수를 하겠답시고 관련도 없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끌어들여서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을 문제삼거나, 적법하게 잡힌 포로를 냅다 처형한걸 문제삼는 쪽을 더 부각시킨다.

또한 저런 영화나 각색본들이 크림힐트의 죽음을 묘사하며 그녀가 힐데브란트의 공격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며 품위있게 죽거나 아예 비명지를 새도 없이 순식간에 베여버리며[10] 시신도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겨져서 나름대로 존엄성을 지켜주는 것과는 달리 원전에서는 최후는 굉장히 비참하게 묘사된다.

사실 힐데브란트가 크림힐트를 단죄할 이유는 충분하다. 부르군트와 싸우는 과정에서 디트리히의 다른 부하들은 모두 죽고, 그 중에는 힐데브란트의 조카도 있는데다 힐데브란트 자신도 하겐에게 죽을뻔 했다. 그래도 하겐과 군터는 옛 전우이고, 무엇보다도 왕인 디트리히부터가 저렇게 피를 보고도 굳이 두 사람을 생포해서 크림힐트에게 죽이지 말라는 약속까지 받아냈는데, 싸움을 부추기기만 한 크림힐트가 약속까지 어기고 두 사람을 베었으니 참고 있던 힐데브란트도 분노할 수밖에. 왕국에서 쫓겨나 훈족 궁정에 머물고 있던 식객 주제에 훈족 왕비를 베어버리는 패기

복수를 이루고 장렬하게 산화한 여걸로 알려져있고 크림힐트가 치밀하게 계획을 짜서 형제들과 하겐을 몰락시킨줄 아는 사람도 많지만 원전의 행보는 치밀함이나 카리스마와는 좀 거리가 멀다. 2차 창작의 크림힐트를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복수자"를 상상하고 원전을 접했는데 여기저기 부르군트놈들 좀 죽여달라 부탁만 하다 으악! 하고 죽어버리는 전개에 실망했다는 감상도 은근히 보인다.

3. 기타 전승

추바시전승에서는 아틸(Attil)에게 정복당한 부족장의 딸 크림킬테(Krimkilte)로 등장한다. 크림킬테는 다른 전승에서와 마찬가지로 매우 아름다웠고 그녀에게 반한 아틸은 아내와 충신을 내치고 크림킬테와 결혼한다. 그러나 크림킬테는 아틸에게 부족의 복수를 할 생각이었는지 첫날밤에 그를 독살해버린다. 크림킬테의 최후는 전승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이후에 붙잡혀서 그녀를 도운 연인과 함께 황무지로 추방당하거나, 죽어가는 아틸의 귀에 모든 진실을 밝히고 연인과 함께 무사히 탈출하기도 한다.

4. 미디어에서의 등장

게르만어권에서는 여기서 이름을 따와서 여자 이름으로 쓴다.

[1] 가면 쓴 전투(Masked battle) 혹은 가면 쓴 힐트라는 뜻의 이름이며 노르드어 쪽의 그림힐드(Grimhild)와 같은 어원이다. 정작 그쪽 전설에서 크림힐트에 해당하는건 구드룬이고 어머니인 우테 왕비에 해당하는게 그림힐드다.[2] 독일지역의 게르만족은 스칸디나비아에 있던 게르만족보다 일찍 기독교화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신화성이 약하다.[3] 아들 군터는 너무 어려서 여행에 동행하지 못했다.[4] 지크프리트는 돕기만 했지 실제로 첫날밤을 보낸건 군터가 맞다. 크림힐트가 억측했거나 분노한 나머지 실언한거다. 그러나 브륀힐트의 반지와 허리띠가 처녀성의 상징이기에 초기 전승에서는 지크프리트가 브륀힐트와 관계를 맺은게 맞으나 이는 기독교에서 금기시하던 외도이기에 문서화되면서 검열빔을 맞은거라는 추측도 있다.[5] 군터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청혼 당시 브륀힐트가 내건 난제들을 대신 해결한게 지크프리트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6] 그당시 서유럽 사회에 남편이 아내를 물리적으로 처벌할 권한이 있었던게 반영된 부분이다. 다만 가정폭력을 연상케 하는지라 현대에 각색된 버전에선 대부분 생략한다. 북유럽 버전의 구드룬은 입단속 못한걸로 구타당했다는 묘사가 없는걸 보면 문화나 정서상의 차이인듯하다.[7] 의외로 형제들을 그리워한건 진심이었다. 크림힐트의 원한은 자신을 기만한 하겐에게 집중돼있었다.[8] 사실 황금의 소재는 군터도 알고 있었다. 하겐은 군터의 목을 보자 이 사실을 알려주면서 군터가 죽었으니 자기만 입다물면 영원히 황금의 소재를 찾을 수 없게 된다고 크림힐트를 도발한다.[9] 허리를 쳐서 두동강냈다는 번역도 있고 아예 여러 조각으로 베어버렸다는 판본도 있다.[10] 1966년 영화판에서는 복수를 마친 크림힐트가 자신이 들고 있던 발뭉을 힐데브란트에게 쥐어주고 냅다 뛰어들어서 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