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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BOT 탈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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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A4C78> 업종 | 자동차 제조업 |
국가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소재지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파리 |
설립일 | 1903년 |
해체일 | 1995년 |
모기업 |
자동차의 정신 (L'esprit Automobile). - 1979년 브랜드 런칭 광고, 프랑스어판 - [1] |
[clearfIx]
1. 개요
1903년 설립되어 1995년 해체된 영국-프랑스 계열의 자동차 브랜드.2. 역사
역대 로고의 변천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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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 ~ 1908 | 1908 ~ 1919 | 1919 ~ 1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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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 1959 | 1938 ~ 1954 | 1962 ~ 19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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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 ~ 1995 |
찰스 탤벗(탈보)이라는 영국 기업과 아돌프 끌레멩이라는 프랑스 사업가가 영국에서 창업했고 설립 초기에는 동명의 개[2]가 엠블럼에 그려진 형태였다. 영국의 끌레멩-탈보사는 프랑스 탈보 차종을 들여와 팔며 1938년까지 존속했다. 그 당시 다라끄(Darracq)라는 회사가 지주회사로 탈보 프랑스 법인을 만들고, 영국의 선빔과 탈보와 다라끄를 합친 STD 모터스를 출범시켰다.
1936년에는 다라끄가 떨어져 나가고, 선빔-탈보를 이탈리아계 영국인 엔지니어 안토니오 라고(Antonio Lago)가 탈보 엠블럼 사용권을 인수하여 탈보-라고(Talbot-Lago)라는 고급차 브랜드를 세워 존속하였다. 탈보-라고는 롤스로이스, 부가티가 직접적인 경쟁 상대였을 정도로 호화로운 차들을 만들었지만 1959년에 프랑스의 심카에게 인수되었고, 이후 크라이슬러 유럽 법인[3]이 이 심카와 선빔을 같이 인수했었다가 PSA 그룹이 빚투성이었던 크라이슬러 유럽 법인을 1$에 인수하고 먹고먹히는(...) 인수전을 거쳐 결국 1978년에 푸조 산하 브랜드가 되었다. 이때부터 빨간 동그라미 가운데에 T가 그려진 탈보 엠블럼을 쓴다.#[4]
1950년대까지만 해도 탈보 브랜드 고유의 차종이라 볼 수 있으며 크라이슬러에 인수된 후로 푸조 산하에서 없어질 때까지 유럽 크라이슬러 계열 차종들의 뱃지갈이용 브랜드로 전락했다. 이름은 프랑스스럽지만 기원은 영국이기 때문에 PSA그룹이 영국 시장에 이 브랜드로 상당수의 차를 팔았고 유럽 대륙에서도 1980년부터 심카 브랜드를 대체했다.[5]
탈보가 존속했던 당시, 영국의 브리티시 레일랜드 출신 경영진 중 한명이었던 영국인 조지 턴불(George Turnbull)[6]이 탈보에서 일한 경력이 있었다. 턴불은 탈보 소속 공장들 중 탈보 선빔을 생산하던 스코틀렌드 렌푸르셔의 린우드(Linwood) 공장을 폐쇄하는 대신, 모회사 푸조-시트로엥을 설득해 탈보 소유의 영국 현지공장인 코번트리의 라이튼(Ryton) 공장을 위한 신차생산 포트폴리오를 보장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선빔의 후속이자 PSA 기술력에 기반한 신차로 탈보 삼바의 개발과정이 탈보 소속 휘트니(Whitney)에서 진행되고, 마찬가지로 개발과정에 휘트니 출신 인력들이 같이 참여한 탈보 아리조나가 영국 라이톤 공장에 배정되어 턴불이 퇴사한 이후인 1985년에 푸조 309라는 이름으로 양산되었다.#
하지만 거의 런칭 초기부터 제 2차 석유파동으로 인한 불황기를 맞이하자 PSA 그룹이 푸조와의 자원 공용화를 발표하며 1981년부터 1983년까지 프랑스의 탈보 딜러점 488곳 중 75%를 폐점하는 등으로 구조조정을 계속 가하는가하면[7] 당시 신규 브랜드로서 빈약했던 인지도, 그 결과로 인해 계속 떨어지는 판매량처럼 브랜드에 불리한 상황이 계속되었고 1987년에 호라이즌의 단종 이후 마지막으로 남은 피아트 두카토 1세대의 배지 엔지니어링 모델인 탈보 익스프레스가 1994년에 단종되면서 브랜드 자체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탈보 소속의 공장들은 영국 라이튼 공장이 2007년까지 푸조 차종들의 현지공장으로 유지되었으며, 스페인 비야베르데(Villaverde)와 프랑스 푸아시(Poissy) 공장이 살아남아 2023년 기준 비야베르데가 시트로엥 C4, 푸아시가 DS 3과 오펠 모카를 생산하고 있다.
2.1. 부활시도 (무산)
이후 2008년, PSA는 르노가 다치아 로간(Dacia Logan)을 통해 저가차 시장에서 성과를 거둔 것처럼 저예산 구매자를 대상으로 탈보의 재도입을 고려했다. 이 모델들은 탈보 버전의 시트로엥 엘리제와 푸조 206과 같은 중국에서 생산된 모델일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었지만 PSA가 2세대 시트로엥 C-엘리제와 푸조 301을 도입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3. 생산 차량
{{{#!wiki style="margin: 0 -10px -5px; word-break:keep-all; min-height:2em"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colbgcolor=#1A4C78,#1A4C78> 분류 | 단종 차량 |
소형 | 선빔 · 삼바 | |
준중형 | 1100 · 어벤저 · 호라이즌 | |
중형 | 솔라라 · 알파인/1510 | |
준대형 | 타고라 | |
스포츠카 | 바기라 · 무레나 | |
LAV | 란쵸 | |
LCV | 익스프레스 |
4. 여담
- 1981년부터 1983년까지 코번트리 시티 FC를 후원했다. 코번트리 시티 FC를 설립한 주체도 탈보의 전신 중 하나였던 싱어 모터스였으며, 탈보가 스폰서를 맡던 시절 구단의 이름도 코번트리 탈보(Coventry Talbot)로 개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후 탈보를 흡수한 푸조가 1989년부터 1997년까지 코번트리 시티 FC를 후원했다.#
[1] 독일어 버전은 "Die Freude Am Autobil", 이탈리아어 버전은 "Riscopri Il Piacere Dell'automobile"이었으며 영국에서는 "The New Spirit of Motoring"을 사용한 뒤 1980년부터 "On The Move"를 주로 사용했다.[2] 비글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종류로 현재는 멸종되었다.[3] 당시 영국의 루츠 그룹, 스페인의 바레이로스(Barreiros)를 소유하고 있었다.[4] 당시 심카는 마트라하고 공동개발한 차종들이 많았는데, 이 차들은 마트라-심카 엠블럼을 달고 판매하다가 심카가 PSA그룹으로 넘어가면서 브랜드 자체가 폐지되자 탈보-마트라 엠블럼을 달고 팔렸다. 이후 차기 미니밴을 개발하던 마트라는 탈보의 모회사 PSA 그룹으로부터 해당 기획을 거절당하자 PSA 그룹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르노와 손을 잡았다.[5] 푸조 104를 토대로 만든 탈보 삼바 정도를 빼면 대부분이 심카 시절에 개발된 차들(타고라 등)이나 기존 심카나 루츠 그룹 계열 차들의 뱃지 엔지니어링(심카 호라이즌, 크라이슬러 알파인 등), 혹은 그 기반의 변형(탈보 솔라라) 등이 있다. 여담으로 영국 쪽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종종 나오는 과거회상에 따르면 영국에서 탈보 차를 사는 사람들이 중장년층 이상이었다고 한다.[6] 브리티시 레일랜드 설립 당시 레일랜드의 계열사였던 스탠더드-트라이엄프 출신으로, 브리티시 레일랜드가 대량생산 대중차 기업으로 성장하기를 바랬다. 턴불은 브리티시 레일랜드라는 대규모 기업의 전신인 브리티시 모터 코퍼레이션처럼 경영진들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경영방침을 적용하면 오히려 윗선에서 하위 조직의 상황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는 까닭으로 회사의 탈집중화와 계열사 간 자율성 부여를 외쳐, 당시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회장이자 턴불을 기용한 상사 도널드 스톡스와 대립하곤 했다. 결국 도널드 스톡스는 조지 턴불의 경쟁상대이자 영국 포드 출신으로서 회사 권력을 집중시키면서 고급화를 감행해 대당 마진을 키우자고 주장한 존 바버를 자신의 후임으로 선택하였고, 턴불은 존 바버가 승진한 지 5개월만에 브리티시 레일랜드를 떠났다. 현대자동차에서는 동료들과 함께 근무하며 현대 포니의 개발과정에 참여해 한국에서 자동차를 개발,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후에는 이란으로 건너가 루츠 그룹의 루츠 애로우 시리즈를 이란 코드로 파이칸 명의로 현지생산하던 이란 코드로로 이직, 현대자동차처럼 자체적인 자동차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환경을 이란에 조성하려고 했으나 이란 혁명으로 인해 불발되자 루츠 그룹의 후신인 탈보로 이직, 영국의 자동차 수입사 인치케이프로 이직하는 1984년까지 근무했다. 턴불은 인치케이프의 회장으로서 1991년까지 회사를 이끌고, 토요타의 영국 현지공장 설립에 기여하는 것으로 업계에서 은퇴하여 1992년에 작고했다.[7] 이를 기점으로 TV 광고에서도 탈보라는 이름을 단독으로 쓰는 대신 푸조와 함께 등장시키는 경우가 등장했다.[8] 원래는 탈보 애리조나라는 명칭으로 개발중이었으나 탈보 브랜드가 폐지수순을 밟으면서 푸조로 편입되었다.# 탈보 명의로 만들어진 프로토타입의 사진이 남아 있고, 이를 기반으로 한 1:43 사이즈의 다이캐스트도 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