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17:35:59

파렴치 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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ハレンチ学園

1. 개요2. 상세3. 후기4. 기타

1. 개요

1968년부터 1972년까지 연재된 소년 점프의 초기 연재작, 작가는 나가이 고, 전 13권으로, 크게 나눠서 3부 구성이다.

당시 소년만화로서는 과격한 표현으로 물의를 일으키며 사회현상으로까지 번진 나가이 고의 출세작이자 대표작 중 하나다. 또한 데즈카 오사무, 타카하시 루미코, 아즈마 히데오, 야마모토 나오키 등의 만화가에게까지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있다.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여러가지 성적 묘사를 보여준 학원 병맛 개그만화로 바이올런스 잭과 더불어 수위가 높은 걸로 악명이 높다. 직접적인 묘사 수위는 이후 작품들이 훨씬 하드한데, 당시 보수적이었던 시대적 상황과 아동용 만화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그 수위가 너무 파격적이라 크게 논란이 되었다.

2. 상세

사실 악명에 비해선 초반부는 별 거 없는 작품이었다. 오히려 섹드립보다는 장난꾸러기 학생들과 무능하고 폭력적이며 성희롱을 일삼는 교사들 간의 대립이 주된 내용이었다. 이 작품에서 초반에 사고를 치는 건 학생들이 아니라 교사들이며, 여학생들도 성희롱을 불쾌히 여기는 묘사가 많다. 정작 어린이들끼린 순수한 사랑으로 교제하고 있었다. 후대에 나온 그저 성희롱만 부각하는 만화하곤 맥락 자체가 다르다.[1] 또한 당시에는 이런 만화가 꽤 많았다. 마잇칭구 마치코 선생님이나 아카츠카 후지오의 만화도 비슷하게 과격했고 루팡 3세도 원작 만화책은 꽤나 막나가는 만화였다.[2] 나가이 고 본인이 동시기에 연재하던 아바시리 일가도 이 작품보다 더한데 그건 이 작품에 묻혀서 상대적으로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3] 사실 한창 일본 제국 시절에 한창 군국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들이 학부모로써 사회생활을 하던 때였음에도 당시 일본 만화나 방송의 심의 기준은 매우 느슨했다.

유독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은 건 이게 당시 가장 인기작이었기 때문이지 묘사가 특별히 과격하거나 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나가이 고는 표현 수위 때문에 교사나 학부모들이 화를 낸 게 아니라 교사들을 한심하게 묘사해 권위를 실추시키고, 교사가 학생을 성희롱하는 걸 폭로해서 더 못하게 만들어 공격을 받은 게 아닌가 하는 견해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 당시만 해도 교사들은 공공연히 학생들을 성추행하는 경우가 많았고 나가이 고도 학창시절 교사가 누드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등 성추행을 당했기 때문에[4][5] 그 경험을 만화에 넣은 것이라고 한다. # 당시의 인식은 '선생님=하늘, 신'과 같은 존재였고 교사들은 그 권위를 이용해서 온갖 부조리한 짓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만화는 그 점을 풍자하던 만화였다.

1970년 1월 8일과 9일에 아사히 신문, 마이니치 신문에서 본작이 소개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본작을 둘러싼 여러 소란이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정작 아사히 신문에서는 원작자 나가이 본인이나 옹호파의 의견을 실었으며, 마이니치 신문에서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을 뿐 일방적인 비난 기사는 없다.

당시 사회적 화제를 일으켜 PTA 등 각종 단체나 기성세대들로부터 "성(性)을 마치 놀이처럼 표현한다"며 저질 만화, 변태 만화라는 비난과 규탄을 받았고 드라마가 방영된 1970년에 <아사히신문>까지 "요즘 청소년들이 성에 조숙하도록 부채질하고 있다"라고 질타했으며, 미에현 욧카이치시 중학교 교장위원회까지 해당 만화를 추방하도록 결정하여 미에현 산하 청소년보호심의회에 유해도서로 지정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리고 온갖 뉴스에서 나가이 고의 얼굴과 실명을 거론하며 여론전을 펼쳤고 나가이 고는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고, 심지어 학교 동창에게 항의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나가이 고는 동정이다', '나가이 고는 게이다'라는 여러가지 악성 루머 및 찌라시, 언론의 날조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는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이 엄청나게 심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게이라고 몰아가는 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게 낙인을 찍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6] 나가이 고는 "내가 그때 주간 연재 4개, 한 달에 400페이지를 그렸는데 게이 바에 갈 시간이 어딨습니까." 라고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저런 가십 기사를 쓴 출판사가 파렴치 학원을 연재 중인 슈에이샤가 속한 히토츠바시 그룹 쪽 출판사라 어이가 없었다고 한다.

나가이 고는 이때 작심하고 '표현의 자유'와 '만화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두 쟁점에 서서 굉장히 긴 싸움을 하게 된다. 이렇게 싸우던 시기에 나가이 고는 포기할까도 생각했는데 당시 만화를 보던 어린이들이 보낸 "힘내세요!", "지지말고 더 해주세요!", "어른들은 이것보다 더 야한 짓을 하는 걸 알고 있어요. 아무런 문제 없어요" 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고 저항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뭐 하는 애들인가? # 나가이 고는 작심해서 작품의 수위를 오히려 올리는 저항을 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캐릭터들이 남녀노소 가릴 거 없이 죄다 벗고 다닌다. 후대에 알려진 건 이쪽. 이쪽이 너무 알려져서 이런 만화를 왜 그리냐고 나가이 고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한국에는 현재도 많다. 이런 만화가 왜 나왔는지를 생각해보자.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나온 것이 1부의 충격적인 결말이다. 파렴치 대전쟁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전개인데 부도덕한 모습을 보다 못한 정부(대일본교육위원회)가 출동하여 등장인물들과 전쟁을 벌여 어린이와 교사들을 학살해 전멸시키는 유례없는 막장 엔딩을 선보였다.[7] 그것도 모자라 초등학생밖에 안되는 등장인물이 포탄에 맞고 조각나고 그 와중에 정육점을 운영하는 주인공의 부모는 시체를 고기로 속여 팔려고 밤에 시체를 주우러 나왔다가 어두워서 적이라 생각한 주인공의 총에 맞아 죽고, 날이 밝자 주인공은 부모의 시체를 보고 "이 돼지는 엄마 아빠를 닮았네" 하면서 까르르 웃는 등 정말 잔혹의 극을 달린다.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을 이렇게 잔인하게 죽이는 작가나 현실을 원망하며 죽어간다.[8] 개그만화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지옥도다. 나가이 고는 이 전개는 이탈리아 영화 '나폴리에서의 4일'(Four days of Naples)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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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살려줘………… 안 돼, 죽는 건 싫어…… 아직 하고 싶은 일이 잔뜩 있는데…… 죽는 건 싫어. 왜……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야? 왜 전쟁이 벌어진 거냐고………… 누구야…… 누가 그런 거야……… 아무것도 아닌 일을 크게 키운 건, 커다란 전쟁으로 만든 건……? 나는…… 우리들은 왜 죽게 되는 거야…… 파렴치 학원은 왜 박살나는 거야…… 자유롭게! 자유롭게 살려고 했을 뿐인데!!'

'아유'라는 여자 캐릭터가 어른들이 벌인 전쟁에 휘말려 사망하기 직전[10]의 독백이 이 작품의 주제를 대변하고 있다.

훗날 나가이 고가 밝힌 바로는, 정부나 단체가 나서서 표현 규제를 하면 만화와 캐릭터들은 죽는다는 자신의 생각을 밝힌 전개라고 한다. 이후 연재를 계속해달라는 점프 편집부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들여 2부가 시작되고 원래의 밝은 전개로 돌아가기는 했으나 1부 때 죽었던 캐릭터 상당수는 돌아오지 않는다. 정말로 완전히 죽었기 때문이다. 파렴치 대전쟁 때 생사가 애매하게 처리된 캐릭터들은 살아있는 것으로 처리해서 돌아오지만 사망 장면이 확실했던 캐릭터들은 완전 사망처리된다.[11]

3. 후기

작가에 대한 비난과는 별개로 어떤 의미에서는 노이즈 마케팅이 되어서 인기가 상승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1970년)에 드라마, 영화화까지 되었다. 이쪽도 원작보다는 약간 수위가 낮지만 여전히 파격적인 성적묘사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영화의 경우는 수많은 영화사로부터 영화화에 대한 의뢰가 왔지만, 나가이 고 자신이 닛카츠(日活) 영화사를 지목했다고. 하지만 막상 영화가 나오고 나서, 그 완성도에 대해 낙담하였다고 한다.[12] 그도 그럴 것이 표현의 자유나 사회 풍자 같은 건 하나도 없고 그냥 야하기만 한 영화였다. 반대로 동년도에 제작된 드라마의 경우는 폭발적 시청률을 올리며 호평을 받았다. 드라마 영상의 일부 1960년대 후반 일본에 존재했던 "하렌치(파렴치)" 유행어 붐에 있어서 막중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일본에서 이 작품 때문에 "하렌치"는 "야하다, 요란하다" 같은 뜻으로 의미가 변질되어 사용되었다.[13] 이로 인해 당시 일본 최초의 밀리언셀러 그룹인 더 포크 크루세이더스의 앨범 제목도 "하렌치"였다.

또한 이 만화를 본 일본의 문단에서 영향력있는 유명한 문인들이 나가이 고를 지원하기 시작한다. 이때 나가이 고를 지원했던 인물들이 고마츠 사쿄츠츠이 야스타카. 결국 여론이 뒤집히게 되어 나가이 고가 이기게 된다. 해당 사건으로 나가이 고는 큰 고생을 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지속할 수 있었고, 만화의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옹호층까지 얻어낼 수 있었다. 그 증거로 당시 <마이니치신문>에서는 "어른들의 성급한 판단이 옳았는가에 대해서는 오히려 의문이 간다"며 "이 만화를 좋아한다고 해서 청소년들의 정신 상태까지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칼럼을 연일 실었으며, 도쿄어린이교육센터 등 공공기관에서도 "<파렴치 학원>이란 만화가 청소년들의 정서를 해칠 연관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썼다. 시기적으로도 파렴치 학원이 시작된 시기는 68운동이 시작되면서 문화해방주의가 세계적인 추세였기에 풍조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14] 결과적으로 보면 나가이 고가 이겼다.

그러나 나가이 고는 작품의 인기가 정점을 달릴 때 갑자기 연재를 그만두게 된다. 이유는 파렴치 대전쟁편 이후 대부분의 캐릭터가 죽어버려서 어떻게 연재를 이어가야 할지 모티베이션을 잃어버렸다는게 첫 번째 이유이고, 당시 나가이 고가 주간지에서 네 작품을 동시연재 한다는 강행군 중이었던지라 몸이 버티질 못했기 때문에 작품정리를 하기 위함이 두 번째 이유였다고 훗날 밝혔는데, 당시에 함께 연재하던 작품 중의 하나가 바로 나가이 고 최대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데빌맨이다.

당시 소년 점프 편집부에서는 인기작의 연재종료를 안타까워하며 "개그 만화인데 그냥 죽은 애들 살리면 되잖아?"라고 했는데 나가이 고는 "파렴치 대전쟁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 생각과 언론에 대한 분노가 담긴 장면입니다. 거기서 죽은 애들은 정말로 죽은 겁니다. 억지로 부활시킬 수 없습니다."라고 거부했다고 한다. 결국 그렇게 완결되었다. #, #

'치마 들추기' 라는 요소 때문에 작가가 원래부터 성희롱 만화를 연재해놓고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니까 발끈해서 난리친 또라이라는 식으로 왜곡하는 글이 한국에 떠돌아다니는데 이 만화는 애시당초 선생님이 학생들을 성희롱하는 것을 규탄하는 블랙 코미디 만화로 명백히 성희롱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만화였다. 모레츠라고 불리는 치마 들추기 장난은 나중에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저항하면서 나왔다. 그런 게 왜 나오게 되었는지 전후 사정이나 작품의 내용도 이해하지 못하고 무작정 작가가 또라이라고 몰아가는 건 지양해야 할 것이다. 애초에 그런 사람이었으면 나가이 고가 지금처럼 지지층을 얻지도 못했을 것이고 거장으로 불릴 리도 없다.

4. 기타

1994년, 1995년에는 '헤이세이 파렴치 학원(平成ハレンチ学園)'이 주간 만화 고라쿠, 주간 만화 선데이에 연재되었다. 또한 갸가 커뮤니게이션즈(ギャガ・コミュニケーションズ)에서 OVA로 제작하기도 했으며, KSS에서 성인 애니메이션으로, 다이나믹 프로(ダイナミックプロ)에서 PC-9800용으로 에로게가 발매되기까지 했다.

2005년에는 1부의 속편으로 '파렴치골퍼 쥬베에(ハレンチゴルファー十べえ)'가 '코믹 빅골프(コミックビッグゴルフ)'에 연재되었다.

2007년에는 콘도 마사유키(近藤雅之)가 각본, 아루가 테루토(有賀照人)가 만화를 담당한 '파렴치 학원 2007(ハレンチ学園2007)'이 '비즈니스 점프' 신년 4호에서 연재되었다. 그 후 아루가 테루토는 기업을 배경으로 리메이크한 '파렴치 학원 더 컴퍼니(ハレンチ学園 〜ザ・カンパニー〜)'를 연재했다. 이 작품은 대원씨아이에서 '주식회사 파렴치 학원'이라는 제목으로 정발되었다.

본 작품의 히로인 야규 미츠코는 강철신 지그에도 조연으로 나온다. 디자인은 원작에서 파렴치 전쟁 이후 한쪽 눈을 잃은 디자인을 베이스로 나오는데 설정이나 성격은 완전히 다른 캐릭터이다.

훗날 나온 같은 잡지 만화인 투 러브 트러블에도 파렴치 학원에 대한 오마주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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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만화로서 주로 소재로 삼은 것은 치마 들추기(아이스께끼). 제1부 연재 중기였던 1969년 7월 24일에 발매된 4호에서 이른바 '맹렬 놀이(モーレツごっこ)'라는 게 등장했는데, 이는 모델 겸 배우 오자와 로자(小川ローザ)가 출연한 마루젠 가솔린 CM을 패러디한 것으로 여기서 오자와의 대사였던 '오! 맹렬(Oh! モーレツ)'이라는 말을 따라하며 갑작스럽게 여자애 치마를 들추고 달아나는 행위였다. 이 영향으로 일본 전역에서 치마 들추기가 유행했고, 이는 바다 건너 한국에까지 전파(...)되면서 장난이랍시고 여학생의 치마를 들추는 국민학생들이 많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당연히 1970년대가 아닌 지금 시대에 저러면 빼도박도 못할 성추행이다.

현재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보이는 선정성이나 폭력성이 충분히 허락되는 것도, 이 작품의 영향이 매우 컸다고 볼 수 있다. 특히 1980년대의 아키라와 1990년대의 신세기 에반게리온 묘사나 2000년대 이후의 모에화 열풍 역시, 이 작품의 영향으로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의외의 사실로 이 만화의 변태 선생인 히게코지라 선생은 '패미콤 점프 영웅열전'에서 보스로 등장한다.

애니메이터 야마우치 노리야스는 이 작품을 보고 어린 시절부터 다리만 그렸다고 한다.


[1] 단순한 예로 후대에 나온 러브 코미디물인 투 러브 트러블하고 비교해봐도 트러블 쪽이 훨씬 막 나간다. 다만 트러블 자체가 본 작품에 대한 오마쥬 요소가 꽤 많이 들어간 작품이기도 하다.[2] 루팡 3세는 주로 TV판의 쾌남아같은 모습이나 극장판의 순정적인 모습이 잘 알려져서 그렇지 원작의 루팡 3세는 사람 죽이는 걸 우습게 아는 악당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었다.[3] 물론 아바시리 일가도 나가이 고가 여론의 포화를 받을 때 같이 싸잡혀서 욕 먹긴 했다.[4] 그 교사는 남자였으며 나가이 고의 친구는 실제로 사진을 찍히는 피해를 봤다고 한다. 나가이 고가 지금은 수염도 길러 성깔있는 중역 같은 인상이지만 젊을 때는 어느정도 미소년 상이었다.[5] 본편의 '미녀와 야수의 권'에서는 작중 막나가는 교사 캐릭터인 히게고지라 선생이 소녀의 누드 사진집에 감탄하여 교내 제일의 미소녀 아유한테 다짜고짜 누드 사진집을 찍자고 달려들다 응징을 받는 장면이 있다.[6] 다만 이런 호모포비아적인 성향은 한국도 마찬가지여서, 1990년대 한국에서 나온 미국 유학 경험을 담은 책인 '나는 한국인이야'에서는 주인공이 자신한테 접근하는 미국인 게이들을 마구 두들겨 팼다는 이야기를 태연하게 적어놓고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7] 이때 대일본교육위원회 측 회장인 할아버지는 "하하하,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대동아 전쟁 이후로 오랜만에 사람을 죽일 수 있어! 대의명분이 있으면 얼마든지 사람을 죽일 수 있지!"라고 하면서 신나 한다. 그러니까 그 와중에 극우들까지 까는 것이다.[8] '이키도마리'가 "어차피 우리는 주연이니까 안 죽어요"라고 하자 주인공 '오야붕'이 하는 말. "너 이 만화 작가가 누군지 모르냐?! 나가이 고야! 이놈은 주인공이라도 가차없이 죽여! 인기가 있어도 죽여!"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이키도마리는 나가이 고를 원망하면서 네가 뭔데 우리를 죽이냐고, 네가 신이라도 되냐며 저주의 말을 퍼붓고 적진에 뛰어들어 자살한다.[9] 나폴리 마을 사람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나치와 레지스탕스 전을 벌이는 영화다.[10] 메인 히로인인 야규 다음으로 인기있는 캐릭터인데 허무하게 죽여버렸다. 저 말을 하고 머리가 쪼개지고 토막나서 죽는 장면이 그대로 나온다. 후술하겠지만 진짜로 죽은 거라 다시는 나오지 않는다.[11] 주인공 오야붕과 히로인 야규 미츠코 빼고는 거의 다 죽었다.[12] 덤으로 원작의 팬들로부터 엄청난 항의를 받았다. 당시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그냥 그저그런 로망 포르노물에(당시 닛카츠 자체가 로망 포르노로 먹고 살던 영화사이기도 했고) 별 임팩트없는 개그물을 섞은 C급 영화 수준이었다. 예고편[13] 원래 의미는 “몰염치”와 똑같이 “뻔뻔스럽다”는 의미이며, 우리말에서도 이 의미만 있다. 파렴치에 “야하다, 음란하다”는 의미가 포함되는 것은 일어뿐이다.[14] 어느 의미에선 시기를 잘 탄 도전이었는데, 2010년대부터 불어닥친 정치적 올바름이 성행하던 시점에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면 어느정도의 선까지 성공할 수 있었는진 알 수 없을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