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텔레리아 해전 Battle of Pantelleria | ||
시기 | ||
1586년 7월 13일 | ||
장소 | ||
지중해 판텔레리아 앞바다 | ||
원인 | ||
레반트에서 잉글랜드로 향하는 잉글랜드 소함대를 섬멸하려는 스페인 제국-몰타 기사단 연합군의 공격. | ||
교전 세력 | ||
지휘관 | ||
병력 | ||
갤리선 11척, 프리깃 2척 | 갤리온 및 무장한 상선 5척 | |
피해 | ||
많은 갤리선이 심하게 파손되었고, 사상자가 많음. | 사망자 2명, 부상자 15명. | |
결과 | ||
잉글랜드군의 승리. | ||
영향 | ||
잉글랜드군의 스페인 함대에 대한 대응법 터득. |
1. 개요
1585~1604년 영국-스페인 전쟁 시기인 1586년 7월 13일, 스페인 제국과 몰타 기사단 연합 함대가 지중해를 지나던 잉글랜드 상선들을 요격하면서 벌어진 해전.2. 상세
1580년 엘리자베스 1세의 승인을 받고 시리아에 대한 무역 활동을 시작한 레반트 상인 회사(또는 터키 회사)는 알레포에 본사를 뒀고, 코스탄티니예, 알렉산드리아, 스미르나 등지에 부서를 두고 상업 활동을 벌였다. 그러다가 잉글랜드와 스페인 간의 전운이 감돌자, 레반트 회사는 잉글랜드 왕실의 자금 지원을 받고 선박을 무장했다. 1585년,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는 지브롤터 해협에 자리 잡은 조반니 안드레아 도리아가 이끄는 2개의 갤리선 함대와 스페인과 몰타 갤리선으로 구성된 시칠리아 함대에 잉글랜드 상선들을 요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1585년 11월, 레반트 회사 소속 선박 5척이 런던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300톤급 갤리온선 머천트 로열을 기함으로 삼은 '대행 제독' 에드워드 윌킨슨의 지휘를 받았다. 그들은 지브롤터 해협을 스페인 함대의 감시를 피해 몰래 빠져나간 뒤 트리폴리, 코스탄티니예, 베네치아에서 무역 활동을 수행했다. 그 후 함대는 자킨토스에서 집결해 식량을 모은 후 귀국길에 올랐다. 이 소식을 접한 시칠리아 함대 사령관 페드로 데 레이바는 갤리선 11척과 프리깃 2척을 이끌고 이들을 요격하러 출진했다.
1586년 7월 13일, 튀니스와 시칠리아 사이의 판텔레리아 앞바다에서, 잉글랜드 상선들은 스페인 함대와 마주쳤다. 에드워드 윌킨슨은 스페인 함대에 포위당하면 꼼짝없이 섬멸당한다고 판단하고, 섬 해안에 가깝게 항해하도록 명령한 후 전투 준비를 했다. 당시 잉글랜드 함선에는 세이커, 컬버린, 데미 컬버린 등 대포들이 실려 있었는데, 아직 바다에서 이 대포들을 써본 적이 없었기에 효용성이 있는지는 불확실했다. 페드로 데 레이바는 잉글랜드 함대에 접근한 뒤 머천트 로열에 전령을 보내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다. 윌킨슨이 무역하러 터키에 들렀고, 이제 잉글랜드로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레이바는 스페인 국왕에게 복종하라고 요구했지만, 윌킨슨은 단호히 거부했다. 레이바는 침몰시키거나 항구로 끌고 가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지만, 윌킨슨은 다시 한번 복종을 거부했다.
이에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 레이바는 장병들에게 적을 향해 총격을 가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마천트 로열에 설치된 컬버린에 발포했고, 전투가 개시되었다. 잉글랜드 선박 1척당 스페인 갤리선 2척이 달려들었고, 스페인 장병들은 등선을 시도했다. 잉글랜드 진영은 이에 대응해 컬버린, 데미 컬버린, 세이커를 꾸준히 발포해 적선에 타격을 입혔다. 스페인과 몰타 갤리선에도 50파운드짜리 대형 함포가 있었지만, 사거리가 짧아서 잉글랜드 함선에 충분히 다가갈 때까지 쏠 수 없었다. 한 갤리선은 바짝 다가가서 함포를 두 발 발사해 수잔 호에 탑승한 잉글랜드 병사 2명을 사살하고 15명을 다치게 했지만, 적 함포의 맞대응에 밀려 후퇴했다. 윌리엄 앤 존 호는 해안선을 따라가다가 잠시 좌초되었지만, 때마침 강풍이 분 덕분에 항해를 재개할 수 있었다.
레이바는 곧 적의 대포 공격 때문에 자신의 함대 피해가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심지어 그가 탄 갤리선조차도 심각한 손상을 입고 전장에서 후퇴했다. 결국 스페인 갤리선들은 큰 타격을 입었고, 일부는 침몰 직전까지 몰려서 선원들이 어떻게든 배에 난 구멍을 메우고 배에 스며든 바닷물을 퍼내려고 고군분투했다. 반면에 잉글랜드 함대는 별다른 손상을 입지 않고 서쪽으로 계속 항해한 끝에 무사히 전장을 빠져나갔다. 이렇게 5시간 만에 전투는 끝났고, 레이바는 기함을 유지하기 위해 심각하게 손상된 다른 두 갤리선과 함께 기함을 묶은 채 시칠리아의 가장 가까운 항구로 피신했다.
잉글랜드 상선들은 보급품을 구하기 위해 알제에 입항한 후 짙은 안개의 도움을 받아 지브롤터 해협에서 대기 중이던 스페인 함대를 피한 뒤 본국으로 유유히 귀환했다. 한편, 카이로에서 무역 협상을 위해 회의 중이던 레반트 회사 직원들은 상선들이 스페인 함대의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경악했지만, 전투 결과를 전해 듣고 환호했다. 그들은 모든 상선에 에드워드 윌킨슨이 수행한 작전대로 할 것을 명령하기로 했다. 이 소식은 잉글랜드 본토에도 전해졌고, 잉글랜드 사령관들은 판텔레리아 해전을 교본으로 삼아 장차 스페인과 대규모 해전을 치를 때 적이 등선하지 못할 거리를 둔 채 함포를 사격해서 적선에 피해를 주는 방식으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