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페루
남아메리카의 경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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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아메리카의 국가 페루의 경제는 풍부한 광물자원을 바탕으로 한 광업 위주이다. 페루의 1인당 GDP는 2024년 10월 세계은행 통계 기준 8,315 달러이다.2. 경제사
스페인 치하 페루 부왕령의 경제는 백인이 모든 권력을 독점한 가운데 전적으로 광물자원과 원주민의 노예노동에 의존했다. 스페인의 식민지배 이후 생긴 사회경제적 구조는 페루 독립 후에도 거의 바뀌지 않았지만 광물, 설탕과 면화 수출이 확대되면서 번성했다. 2차 대전 이후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처럼 수입대체산업화 정책을 펼쳤지만 경제에는 미미한 변화만 가져왔다. 1970년대에는 수입대체산업화의 실패와 오일쇼크의 여파, 과잉투자, 국유화에 따른 미국과의 갈등으로 경기가 좋지 않았다. 1975년 정권을 잡은 프란시스코 모랄레스 베르무데스 장군이 기존 정책 노선을 일부 수정했지만 페루의 주요 수출품인 구리와 은의 가격 하락[1]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1980년대는 이전보다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이른바 잃어버린 10년(Década perdida)이라고 불린다. 1980년부터 1990년까지 GDP는 9.6% 감소, 1인당 GDP는 23.0% 감소했다. 20세기 최악의 엘니뇨로 경제 중심지인 리마 일대에 끔찍한 홍수를 일으킨 1982~1983년 엘니뇨 같은 자연재해와 페루산 원자재 가격 하락 등 외부적 요인도 큰 악영향을 미쳤지만 비슷한 시기 페루 정부의 정책은 거의 재앙적인 수준이었다. 1980년 재선된 페르난도 벨라운데 테리는 수출 부진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인프라 건설 정책을 펼쳐 막대한 낭비를 초래하고 외채 문제(1983년 GDP의 77.8%인 135억 달러)를 더욱 악화시켰다. 또한 자기가 당선된 같은 해 공산반군인 빛나는 길이 준동하는데도 부적절하게 대처하여 추가적인 재산피해와 군사비 지출까지 불러왔다. 인플레이션이 증가하여 1980년대는 연 인플레이션(CPI 기준)이 60% 밑으로 떨어진 해가 단 한번도 없었을 정도였다. 미주혁명인민동맹(APRA)의 알란 가르시아는 경제난과 1984년 시작된 긴축정책 등을 비판하여 벨라운데의 약점을 능숙하게 공략, 1985년 대선에 승리해 정권을 잡았다.
가르시아는 IMF와 같은 외국 기관을 경제난의 희생양으로 삼아 집권 직후 리마의 IMF 사무소를 폐쇄하고 페루 국내의 금융기관들을 국유화했다. 페루는 사실상 디폴트 상태에 처하여 국제 금융시장에서 추방되었다. 같은 해 인플레이션을 때려잡겠다며 통화개혁을 실시, 교환 비율을 1,000:1로 하여 기존 페루 솔을 페루 인티로 교체했는데 자릿수만 줄인 통화개혁은 효과를 전혀 보지 못하고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켰다. 특히 1987년을 기점으로 IMF 투자부적격국 신청과 빛나는 길의 확장 등의 영향으로 인플레이션이 급등하기 시작하여 1989년과 1990년에는 각각 연 3,398.7%, 7,481.7%(둘 다 CPI 기준)를 기록했다. 당연히 인티의 자릿수도 폭등했고 1990년에는 500만 인티까지 발행되었다. 인플레이션은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집권하고 난 후인 1991년 교환비율을 1,000,000:1로 하여 기존 인티를 신 솔(PEN)로 교체한 후에야 비로소 안정되었다.
후지모리 집권기 이후로는 남미에서 상대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높은 편이지만 그럼에도 임금수준이 여타 남미 국가와 비교해도 낮기 때문에 자국내에서도 불만이 많다. 이게 어느정도냐면 브라질이나 칠레는 전체 GDP에서 임금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40%대인데 반해 페루는 20%밖에 지출되지 않는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다. 그나마 최저임금이 월 10만원대 초반인 멕시코나 공식임금과 실질임금간의 갭이 큰 베네수엘라보다는 낫다지만 에콰도르나 콜롬비아, 칠레와 비교하면 서민들 생활수준은 나쁜 편이다. 더군다나 물가수준은 남미 기준으로 낮지도 않은 수준이니 더더욱 그렇다. 2015년 이후 페루 솔화의 평가절하로 인해서 상대적인 임금수준이 낮아졌고, 2016년을 기점으로 해서 최저임금이 볼리비아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남미 전체로 봤을 때는 매년 우수한 경제 성장률, 뚜렷한 소득 증가, 중국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들의 적극적인 투자 등으로 비교적 미래는 밝다. 이와 더불어 지속적으로 수도 리마로 인구가 밀집하는 현상을 보여, 수도 자체가 남미에서 손꼽히는 대도시로 성장하고 있다.[2] 다른 남미 국가의 경우 수도에 인구가 많이 집중된 편은 아닌데 페루는 서울 공화국 수준으로 인구와 인프라가 리마에 몰려있다. 인구의 1/3이 리마에 살고 있으니 리마와 타 도시의 인프라 차이가 심각한 편이다.
2010년 대한민국과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었다.
3. 산업
페루 중앙은행(BCRP)에 따르면 농림축산업과 어업은 2021년 GDP의 9.6%를 차지하는 주요 산업이다. 설탕, 감자, 쌀, 커피, 카카오, 망고, 아보카도 등을 생산하며 그 중에서도 해안가의 플랜테이션에서 대규모로 재배하는 설탕이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하다. 페루 앞바다는 남하하는 남적도 해류(난류)와 북상하는 훔볼트 해류(한류)가 만나는 조경 해역인 관계로 인접한 칠레와 함께 수산업이 발달해 있다.광업은 2021년 GDP의 11.2%를 차지하는 핵심 산업으로 페루는 구리, 금, 은, 몰리브덴, 아연 등 현대 산업에 필수적인 비철금속 매장량이 매우 풍부하다.[3] 2019년 기준 구리와 은 산출량은 세계 2위이며, 아연 산출량은 세계 3위, 금 산출량은 세계 4위로 자원 관련 추출, 제련 산업이 전체 수출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웃 칠레처럼 광물자원의 페루 경제도 국제 가격에 일희일비한다. 자급이 불가능하지만 석유도 생산한다.
제조업은 2021년 GDP의 12.9%이며 수도 리마 인근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며 농수산업 및 광업 분야와 관계가 긴밀하다. 주요 분야는 섬유, 식품, 제강, 화학이다. 같은해 GDP의 6.7%에 해당하는 건설업도 페루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에 힘입어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관광업이 발달했다. 2019년 관광객은 500만 명이 넘었다. 칠레와 미국에서 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잉카 제국이 남긴 마추픽추 같은 웅장한 유적과 도시의 스페인 건축물이 매우 유명하고 아시아 이민자에 의한 독특한 식문화로 미식 관광의 새로운 거점으로도 거듭나고 있다. 미라플로레스 같은 번화가는 완벽한 관광지로 알려지고 있다.
4. 기타
이 나라의 자국 음료수 제품인 노란 빛의 잉카 콜라는 코카콜라가 이기지 못한 탄산음료로 유명하다. 결국 코카콜라 컴퍼니는 잉카 콜라의 지분을 돈으로 샀다. 대한민국에는 미국 생산분이 들어온다.[1] 예를 들어 1980년부터 1982년까지 구리의 톤당 가격은 3,000달러에서 1,300달러로 하락했는데 회복세마저 미미하여 1987년에도 1,380달러에 불과했다.[2] 브라질의 상파울루,리우데자네이루에 이어 3번째로 큰 도시다.[3] 메르코수르 경제연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