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2 15:46:16

프랑크 리베리

프랑크 리베리의 역임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US 살레르니타나 1919 주장
프란체스코 디타키오
(2020~2021)
프랑크 리베리
(2021~2022)
페데리코 파시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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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리베리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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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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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 · 2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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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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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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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
마리오 고메스
(VfB 슈투트가르트)
프랑크 리베리
(FC 바이에른 뮌헨)
그라피테
(VfL 볼프스부르크)

2013 FIFA Ballond'or
수상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2위
리오넬 메시
3위
프랑크 리베리
2006 Onze d'Or
Onze d'Or Onze d'Argent Onze de Bronze
티에리 앙리 호나우지뉴 프랑크 리베리
2008 Onze d'Or
Onze d'Or Onze d'Argent Onze de Bronze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 프랑크 리베리
파일:월드사커 로고.png
Player of the Year 2013
수상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2위
리오넬 메시
3위
프랑크 리베리
}}} ||
Unione Sportiva Salernitana 1919 S.r.l.
파일:Franck Ribéry Salernitana.jpg
<colbgcolor=#831d1c><colcolor=#ffffff> 이름 프랑크 리베리
Franck Ribéry
본명 프랑크 앙리 피에르 리베리
Franck Henry Pierre Ribéry
출생 1983년 4월 7일 ([age(1983-04-07)]세)
프랑스 불로뉴쉬르메르
국적
[[프랑스|]][[틀:국기|]][[틀:국기|]]
신체 170cm / 체중 64kg
직업 축구 선수 (윙어 / 은퇴)
축구 코치
주발 오른발(양발)
소속 <colbgcolor=#831d1c><colcolor=#ffffff> 선수 콘티 불로뉴 (1989~1996 / 유스)
릴 OSC (1996~1999 / 유스)
US 불로뉴 (1999~2000 / 유스)
US 불로뉴 (2000~2002)
올랭피크 알레스 (2002~2003)
스타드 브레스트 29 (2003~2004)
FC 메스 (2004~2005)
갈라타사라이 SK (2005)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005~2007)
FC 바이에른 뮌헨 (2007~2019)
ACF 피오렌티나 (2019~2021)
US 살레르니타나 1919 (2021~2022)
감독 US 살레르니타나 1919 (2022~ / 코치)
국가대표 81경기 16골 (프랑스 / 2006~2014)
정보 더 보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831d1c><colcolor=#ffffff> 등번호 프랑스 대표팀 - 7, 22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 7
FC 바이에른 뮌헨 - 7
ACF 피오렌티나 - 7
종교 이슬람
}}}}}}}}} ||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4. 지도자 경력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평가7. 리베리에 대한 언사8. 여담9. 같이 보기

[clearfix]

1. 개요

프랑스 국적의 축구 선수 출신 코치. 포지션은 윙어.

데뷔 초기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뒤, 2007년에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 오른쪽 윙어 아르연 로번과 더불어 '로베리 라인'으로 오랜 기간 활약하며 2012-13 시즌 트레블분데스리가 9회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36세의 나이에 피오렌티나로 이적해, 나이가 무색한 활약을 선보였다.[1]

반면에 프랑스 대표팀에서는 2006 월드컵 준우승에 일조하였으나, 2010 월드컵에서 무너진 프랑스 대표팀의 내분에 깊이 관여되는 등 큰 성과는 내지 못하고 은퇴했다.

또한 FIFA 발롱도르 3위[2]를 기록하고 UEFA 올해의 선수, FIFA FIFPro 월드 XI, UEFA 올해의 팀[2회],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를 수상하는 등의 개인 커리어를 쌓았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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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국가대표 경력

2006년 5월 27일, 1-0으로 승리한 멕시코전에서 74분에 다비드 트레제게와 교체되며 성인대표팀 데뷔를 하였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치른 친선전에서 믿음직한 활약을 펼쳤고, 그에 따라 23인 최종 엔트리에 들었다. 리베리는 프랑스가 참가한 7경기에 출전하였고, 이중 6경기는 선발이었다. 무조건 승리했어야 하는 조별리그 3차전 토고전에서는 파트리크 비에라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하며 16강 진출에 공헌하였다.

6월 27일, 스페인과의 16강전에서 비에라의 패스를 받은 뒤 드리블하여 이케르 카시야스를 제친 뒤 빈 문전으로 슈팅하여 동점골을 득점하였고, 프랑스는 3-1 역전승을 거두었다. 결승전에도 출전하였지만, 별 다른 활약없이 연장전에 단 한번의 슈팅을 기록하였고, 나중에 트레제게와 교체되었다. 그리고 프랑스는 이탈리아승부차기에서 패하며 준우승에 그친다.

비록 월드컵 신인상은 포돌스키에게 내주었지만, 무명이었던 리베리는 2006 월드컵에서 대회 내내 프랑스의 돌격대장으로 떠오르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스타로 떠올랐다. 지네딘 지단이 은퇴한 후, 리베리는 그의 뒤를 이어 국가대표팀의 상징적 존재가 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실제로는 클럽팀에서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거의 18개월동안 무득점으로 침묵하다가 2008년 3월 26일,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잉글랜드전에서 페널티킥으로 간신히 득점하기도 했다.[4]

UEFA 유로 2008에서, 조별리그 3경기에 모두 출전하였으나, 이탈리아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경기 시작 8분도 채 안된 상황에 왼쪽 발목 인대가 파열되며 교체아웃 되었고 프랑스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며 1무 2패로 탈락하였다.

이후 A매치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2008년 10월 11일 루마니아와의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전에 복귀해 선제골을 기록, 팀은 2-2 무승부를 거두었다. 2009년 3월 28일, 리투아니아전에서 유일한 골을 득점하였다. 사흘 뒤,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리투아니아와의 리턴 경기의 75분에 앙드레피에르 지냑의 패스를 받아 결승골을 집어넣었다.

2010년 5월 11일 그의 두 번째 월드컵인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레몽 도메네크 감독의 30인 예비 엔트리에 들었다. 이후 대회에 참가할 23인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조별리그 3경기에 모두 출전하였다. 그러나 팀은 정말이지 무기력한 모습만 보이며 그대로 1무 2패로 탈락했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 우루과이와의 조별리그 1차전이 종료된 후, 리베리는 전 국가대표팀 스트라이커인 쥐스트 퐁텐로부터 리더십이 있는지 의심과 비난을 받았다. 언론은 리베리와 동료 스트라이커 니콜라스 아넬카가 고의로 요앙 구르퀴프를 따돌린 것을 폭로하였다.

이후, 아넬카는 2-0으로 패한 멕시코와 2차전 하프타임에 언쟁을 벌인 뒤 국가대표팀에서 쫒겨난 것으로 밝혀졌다. 6월 20일, 리베리는 도메네크와 TF1의 축구쇼 텔레풋에 등장해 국가대표팀의 루머를 해명하고 최근 2년간의 국가대표팀 성적에 대해 "우리 (프랑스) 는 당시 고통받고 있었다. 나는 온 국민에게 사죄하고 싶다" 라고 팬들에게 사과하였다. 그 다음날, 팀은 니콜라 아넬카의 퇴출에 항의하기 위해 훈련세션을 보이콧하였으나, 이후 마찰없이 훈련에 복귀하였다.

홈팀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플로랑 말루다가 득점한 이 대회 프랑스의 유일한 골을 어시스트하였다. 경기는 1-2 패배로 끝나면서, 프랑스는 그야말로 최악의 모습만 보이면서 조 최하위로 월드컵 29위로 탈락하였다. 8월 6일, 징계위원회로부터 월드컵 국가대표팀의 파업 주도자로 지목되어 청문회 참석 통보를 받은 5명의 선수들 중 한명이었다. 8월 17일, 그에게 국가대표팀 3경기 출장 정지라는 징계가 내려졌다.

2011년 3월 17일, 리베리는 신임 국가대표팀 감독 로랑 블랑에 의해 2010 남아공 월드컵 이래 처음으로 차출되었다. 그는 징계가 풀리는 2010년 10월부터 다시 국가대표팀 경기에 참가할 수 있었으나, 부상으로 인해 3경기를 더 결장하였다. 3월 21일, 룩셈부르크전과 크로아티아전을 앞두고 클레르퐁텐에 도착한 뒤, 리베리는 기자회견에 참석하여 2010년동안 부린 말썽에 대해 사과하였다. 그는 3월 25일, 2-0으로 승리한 룩셈부르크전에서 구르퀴프의 두 번째 골을 어시스트하며 국가대표팀 복귀를 신고하였다. 월드컵 이후 처음으로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크로아티아를 재회한 경기에서, 리베리는 교체투입되며 필드에 입장하였고, 그는 일부에게 야유의 대상이었으나, 연호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UEFA 유로 2012의 예선전에서 주전으로 출전한 뒤, 2012년 5월 29일, 이 대회 본선의 최종 엔트리에 발탁되었다. 3-2로 역전승을 거둔 아이슬란드와의 친선전에서 약 3년 만에 처음으로 득점하였다. 5월 31일, 리베리는 2-0으로 이긴 세르비아전에서 결승골을 득점하였다. 나흘 후, 그는 유로를 앞두고 열린 에스토니아와의 친선전에서 선제골을 득점하였고, 팀은 4-0 완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본선에서는 8강전 상대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에게 2-0으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플레이오프에서는 우크라이나 원정에서 홀로 분전했으나 우크라이나의 역습 두방에 일격을 맞고 월드컵 지역예선 탈락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으나, 스타 드 프랑스에서의 2차전에서 상대의 왼쪽측면을 그야말로 탈탈털어버리며 2어시스트를 기록해 3대0으로 승리, 합계점수 3-2로 조국 프랑스를 무사히 월드컵에 진출시켰다. 게다가 전반전 카림 벤제마의 오프사이드 오심으로 취소된 골도 리베리의 환상적인 킬패스였고 따라서 어시스트 하나도 덩달아 도둑맞았으니 사실상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했던 셈.

그러나 하필이면 14년도 들어서면서 온갖 부상에 시달리던 리베리는 허리 부상악화로 인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한다. 결국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 되고, 그의 빈자리는 앙투안 그리즈만이 대신 하였다. 2014년 8월14일 리베리는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고, 이로써 8년간 국가대표 생활을 마무리 짓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보면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 자체는 준수했으나 클럽에서만큼의 영향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특히 요앙 구르퀴프의 왕따설이 거론되는 등 팀을 이끄는 리더십에 있어 말이 많았으며 파트리스 에브라같은 베테랑들과 함께 주축이 되어 팀을 이끌어주는 리더로서의 역량은 최악에 가까웠다. 2006 독일 월드컵 준우승 이후 UEFA 유로 2016이나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과거의 영광을 찾기까지 프랑스 국가대표는 근 10년 정도 암흑기를 맞이했는데 이 기간 동안의 에이스 위치에 있던 선수가 바로 리베리였다. 클럽팀 동료인 아르연 로번과 비교했을 때 국가대표 커리어는 다소 아쉽게 끝났다.[5]

3.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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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도자 경력

4.1. US 살레르니타나 1919

현역 은퇴 후 2022년 10월 21일, US 살레르니타나 1919의 코치를 맡게 되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평가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처음으로 이적한 2007-08 시즌부터 맹활약하며 바이언의 리그와 포칼 더블, 본인도 2008년 UEFA 올해의 팀,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를 수상하면서 임팩트있는 데뷔시즌을 치러냈고, 이후 영입된 아르연 로번과 함께 로베리 듀오를 결성해 바이언의 트레블을 이끄는 등 바이언의 전성기를 열었고, 그 중에서도 최고 수훈자로 평가받는다. 그 결과 UEFA 올해의 선수를 수상하고 FIFA 발롱도르도 3위에 그쳤지만 재투표 사건만 아니었으면 무난하게 수상했을 정도였다. 이후 시즌에서도 부상으로 이전만큼의 기량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은 활약상을 계속해서 보여주었다. 거기에 리베리가 바이언에서 뛰는 동안, 분데스리가의 역사 한 페이지가 리베리의 발에서 새로 쓰여졌고, 그렇기에 리베리는 2010년대 바이에른의 전성기를 논할때 절때 빠지지 않으며 동 시기 프랑스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인식된다.

반면 레 블뢰 군단에서는 혜성처럼 등장했던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주전 윙어로 출전하면서 대회 내내 활약하여 늙은 수탉이라는 조롱을 들었던 조국을 준우승에 기여하면서 기대를 받았지만, 이후에는 유로 2008 조별리그 탈락, 2010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등 안좋은 성과를 내면서 흑역사를 쌓았고, 유로 2012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8강 탈락했다. 마침 트레블 때의 폼이 직후 시즌에도 유지되었던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유럽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2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조국을 월드컵 본선에 다시 올리지만, 정작 부상으로 인해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면서 전체 국가대표 활약상은 팀 동료 로번에 비해 아쉬운 활약상을 보여주었고, 심지어 커리어 외적으로도 요앙 구르퀴프의 왕따설이 거론되는 등 팀을 이끄는 리더십에 있어 말이 많았으며 파트리스 에브라 같은 베테랑들과 함께 주축이 되어 팀을 이끌어주는 리더로서의 역량은 최악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클럽 커리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활약상을 기록하였다. 리베리가 국가대표로 활동하던 시기는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프랑스의 노장 선수들이 투혼의 준우승을 보여준 이후 유로 2016 준우승, 2018 러시아 월드컵 우승 전까지 프랑스는 다시 한 번 더 긴 암흑기를 겪게 되었다.

종합적으로 보면 화려한 등장에 대비되는 이후 부족한 활약상의 국가대표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바이에른 뮌헨에서 무려 13년간 맹활약하며 반대편 윙어 아르연 로번과 함께 로베리라는 축구 역사에서 역대급으로 기억되는 윙어 라인을 형성하면서 트레블을 비롯한 수많은 우승을 안겨주면서 소속팀을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와 함께 레바뮌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만든 선수이자, 21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윙어 중 한명이다. 무엇보다 리오넬 메시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지배했던 2010년대 축구판에서 한때나마 그 둘과 자웅을 겨룰 만한 기량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리베리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 알 수 있다.[8]

7. 리베리에 대한 언사

파일:external/pre05.deviantart.net/franck_ribery_by_boartt-d6yrsc3.jpg
"그는 매혹적인 개인기와 창의성을 갖춘 선수다. 지난 한 해 경험을 더 쌓으며 원숙한 플레이를 보여주게 됐다. 넓은 시야와 침착한 태도로 팀 전체를 위해 큰 그림 안에서 그는 자신의 개인기를 활용했다. 팀이 완벽한 경기를 펼치기 위해 해야 할 모든 것들을 제대로 해내는 선수는 바로 리베리다"
- 유프 하인케스
"리베리는 스프에서 소금과 같다."
- 프란츠 베켄바워
"기술적으로 리베리는 완벽에 가깝다. 그는 질주를 즐기고, 사자의 심장을 가졌다. 그에게 동기를 부여하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다."
- 오트마어 히츠펠트
"리베리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선수다. 그는 훌륭한 패스를 많이 공급하며 언제나 골문을 향해 돌진해 골을 노린다."
- 에릭 아비달
"리베리는 엄청나다. 선수 두 명, 세 명이 붙어도 그의 공을 뺏어올 자신이 없다."
- 카가와 신지[9]
"그와 승부한다는 것은 두려움이다."
- 다니 알베스

8. 여담

  • 한때 이적시장의 떡밥 중 가장 화제거리이던 리베리 떡밥의 주인공. 프리퀄이라 할 수 있는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시절, 2006 월드컵에서의 대박 이후 아스날을 비롯한 다수의 잉글랜드 팀과 리그 라이벌 올랭피크 리옹이 강하게 노렸었다. 본인은 일단 계약이 4년이나 남았다고 부정. 그러나 1년 뒤 마르세유는 클럽 최고 이적료로 리베리를 바이에른 뮌헨으로 보내게 된다.
한국 네티즌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본편은 뮌헨 시절이라 할 수 있다. 리베리는 첫 해 리그 우승을 차지하긴 했으나 유로파 리그를 뛰는 것에 대해 불만스럽게 생각했다. 이때도 루머가 스물스물 퍼져나갔다. 그리고 두 번째 시즌 최악의 부상 사태로 뮌헨이 바르셀로나에게 관광을 다녀오고, 리그에서는 준우승을 하긴 했으나 유에파권까지의 승점차가 4점밖에 나지 않았기 때문에 따라오지 못하는 동료들에 대해 실망감도 많이 표시한 바 있다. 이 기회를 틈타 리베리에게 첼시 FC, 맨유, 레알 마드리드, 바르사, 인테르 등의 팀이 동시다발적으로 영입 제의를 했고 이 중에 레알은 65m을 지르기까지 했으나 회네스는 100m부터 개시라며 튕겨냈다. 특히 레알은 돈에 더해서 리베리의 우상 지네딘 지단을 이용해 리베리를 유혹했으나 뮌헨의 강고한 태도도 있고, 앙헬 디마리아메수트 외질 등의 선수들이 레알에 영입되면서 지나간 떡밥이 되고 말았으나 2년간 아주 뜨거웠던 이적 루머였다.[10]
  • 사실 지단이 가장 아끼는 후배 중 하나가 리베리이고 리베리에게 프랑스의 보석이라고 극찬했을 정도이며 리베리도 지단을 굉장히 존경한다. 요앙 구르퀴프사미르 나스리와의 사이가 썩 좋지 못한 이유도[11] 리베리 자신이 지단의 후계자가 되고 싶어서라는 말도 있을정도니...
  • 하지만 2013-14 프리시즌 아우디컵 때 발견된 사진을 보면 나스리와의 관계는 회복된 듯 하다.
  • 이러한 지단과의 좋은 관계 덕인지 쫄딱 망한 남아공 월드컵에서 지단 음모론(...)이 돌았던 이유 중 하나가 리베리가 지단과 매우 친해서이다.
  • 지단에 의하면 대표팀에서 리베리와 처음 만났을 때 리베리가 자신에게 눈덩이를 던졌었다고 밝혔다. 당연히 다른 선수들을 크게 놀랐지만 지단은 리베리가 존경심이 부족한게 아닌 자신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뜻을 알고 있었고, 당시 지단의 위상으로 인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선수들에 비해 리베리의 정반대의 행동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
  • 외견상 특징으로 얼굴 오른쪽에 세로로 난 큰 흉터를 빼놓을 수 없다. 이는 2살 때 당한 교통사고의 흔적이라고 하는데 덕분에 영어로 별명이 스카페이스(ScarFace)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차범근 MBC 해설위원은 중계 중 리베리의 흉터를 보고 '흉측하네요'라고 말했다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이 흉터로 또래 아이들에게 항상 놀림을 받았고 왕따로 만들어진 원망과 분노를 모두 축구로 풀어냈다.
  • 2012-13 시즌 DFB-포칼 16강 아우크스부르크전에서 구자철의 얼굴을 가격해 퇴장을 당했다. 기사 구자철이 리베리의 공을 뺏으려 하면서 발을 높이 들어 허벅지를 찍었고, 리베리가 공을 되찾으려는 과정에서 정강이를 가격하는 상황이 되었다. 넘어진 구자철을 보며 리베리는 손을 들며 사과의 제스쳐를 보였으나 구자철이 일어나서 달려들었고 막는 과정에서 구자철의 얼굴을 밀쳐냈다. 구자철도 지지 않고 뺨을 때렸다. 국내 네티즌들의 기억과는 달리 구자철은 절대 일방적인 피해자가 아니다.
  • 한 번은 프리킥이 나왔을 때 토니 크로스와 누가 찰지를 정하려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프리킥을 찬 적도 있었다. 여담이지만 뭐 둘다 왼손잡이다. 계약 당시 왼손으로 펜을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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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중에 크로스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보다 못한 아르연 로번이 "이번엔 리베리 네가 양보해라"라고 말하며 중재하자, 빡쳤는지 전반전이 끝나고 라커룸에서 로번에게 주먹을 날려 덕분에 로번은 후반전 내내 얼굴에 멍이 든 채로 뛰게 만들어놓았다. 물론 끝나고 리베리는 사과했다고...[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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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난을 무척 많이 친다. 루카 토니와는 항상 훈련 도중 때리고 튀어 뮌헨판 톰과 제리를 연출했고, 다니엘 판 바위턴과는 마지막으로 클럽하우스에 찾아온 올리버 칸에게 지붕 위에서 물벼락을 맞혔으며,[14]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살라미 제품 광고 모델이 되자 그의 사물함을 미니 살라미로 듬뿍(...) 채워놓았다. 마르세유에서도 홈 스타디움에서 트랙터를 몰거나, 구단 버스를 스스로 운전하다 사고를 내는 등 장난의 끝을 보여주었다. 위에 서술한 알라바와는 서로 뺨을 때리면서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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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프랑스 국가대표에 카림 벤제마가 뽑히지 못하자, SNS에 벤제마를 옹호하는 글을 써서 지지했다.
  • 다혈질이라 욱하는 성격이 강하고, 그 때문에 사건사고에 많이 휘말려 일견 인성에 문제가 있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팀 동료들과 친화력이 상당하며,[15] 경기장 안에서도 항상 열정적으로 뛰어다니며 그 열정 하나로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존재이다. 그리고 그의 SNS를 보면 상당히 많은 게시물들이 부인과 자식들과 함께하는 사진들인 것으로 보아 애처가이자 좋은 아빠인 것으로 보인다.[16]
  • 뮌헨 말년에 솔트배의 1200유로짜리 황금 스테이크를 먹으러 방문한 게시글을 SNS에 올렸다가 돈지랄 할거면 기부나 하라는 악플세례를 받았다. 이에 그냥 넘어가지 않은 리베리는 "질투심으로 똘똘 뭉친 새끼들아 니들은 그저 콘돔에 구멍 뚫려서 태어난 새끼들이잖아. 니들 애미 할미 전부 엿먹어라"라며 폭풍 패드립을 갈긴 적이 있다.
  • FIFA 21 37세 축구선수 중 가장 높은 능력치인 81을 받았다.
  • 코로나로 고생하는 여러 병원들을 위해 5만 유로를 기부하였다.#

9. 같이 보기

1 랑드로 · 2 붐송 · 3 아비달 · 4 비에라 · 5 갈라스 · 6 마켈렐레 · 7 말루다 · 8 도라수 · 9 고부
10 지단 · 11 윌토르 · 12 앙리 · 13 실베스트르 · 14 사하 · 15 튀랑 · 16 바르테즈 · 17 지베
18 디아라 · 19 사뇰 · 20 트레제게 · 21 심봉다 · 22 리베리 · 23 쿠페
파일:프랑스 국기.svg 레몽 도메네크


[1] 팀 사정상 공격형 미드필더와 최전방 공격수까지 소화했다.[2] 당초 2013년 발롱도르 수상이 유력했으나 석연찮은 투표 기간 연장 및 재투표 시행이라는 희대의 해프닝 끝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발롱도르를 강탈당하시피 했다. 발롱도르/시상 논란 문서에서도 서술되어 있듯 이는 발롱도르 역사상 가장 큰 논란이 된 수상 사례다.[2회] [4] 이 날 득점 이후, 리베리는 전날 사망한 전설적인 프랑스의 축구 해설가 티에리 길라르디에게 조의를 표하는 셀레브레이션을 하기도 했다.[5] 물론 로번 역시도 국가대항전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유로 2004 4강, 2010 남아공 월드컵 준우승, 2014 브라질 월드컵 3위를 기록했다. 특히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그야말로 혼자 멱살잡고 올라갔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로 팀을 하드캐리했으며 이를 증명하듯이 브론즈볼 수상까지 하는 등 엄청난 활약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6] Etoile d'Or[7] 분데스리가 공식 홈페이지 선정[8] 심지어 2013년도 발롱도르는 전례가 없는 재투표 사건으로 논란이 매우 많았던 수상이였다. 발롱도르와 반대로 당해 UEFA 올해의 선수는 리베리가 수상했다.[9]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에서 뛰며 상대해봤던 로번과 리베리를 비교해달라는 질문을 받고 로번은 패턴이 일정하기에 두 명이 붙으면 막을 수 있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그러나 리베리는 딱히 막을 방도가 없다면서 한 말.[10] 이때 리베리는 레알 마드리드가 아니면 아무것도 없다라고 인터뷰 할 정도로 이적에 적극적이었는데 그에 대한 보드진의 대답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리베리는 단호한 보드진에 의해서 2군행까지 당한다. 그리고 리베리의 생일에 보드진이 깜짝 파티와 함께 재계약 서류를 건네자 바로 사인.[11] 특히 나스리는 마르세유 유스 출신으로 둘이서 같이 마르세유에서 한솥밥도 먹은 관계다. 하지만 마르세유의 코치들도 왜 저 둘 사이가 어정쩡해져 갔는지 모르겠다고 하였을 정도.[12] 이게 그냥 리그경기나 컵대회도 아니고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있었던 일이다. 라커룸에서 저 난리가 난 것을 보고 주장이었던 필립 람은 호통을 쳤고, 로번은 리베리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단단히 화가나 그와는 절대 같이 뛰지 않겠다고 했는데, 경기 다음날 회네스, 루메니게 등 보드진은 둘을 불러놓고 '둘이 화해하기 전까진 너희 둘 중 그 누구도 이 방을 나갈 수 없다'고 엄포를 놓으며 화해를 시켰다고...#[13] 알라바가 바이언 유스에 있을 때, 리베리가 학교까지 차로 데려다주곤 했다고 한다.[14] 올리버 칸의 성격을 생각하면 용기 있는 장난이었다.[15] 생일 축하는 물론이요 부상을 당했을 때도 항상 위로하며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왔다.[16] 아들이 바이에른 뮌헨 유스팀에 속해있다. 인스타그램 계정도 있는데 엄마가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