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4 10:59:09

피에트로 비에르코보드

피에트로 비에르코보드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folding ▼ 둘러보기 틀 모음
대표팀
클럽
파일:ACF 피오렌티나 로고.svg

59대
}}} ||
피에트로 비에르코보드의 수상 이력
{{{#!folding ▼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 ||
이탈리아의 축구감독
파일:vierchowod640.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피에트로 비에르코보드
Pietro Vierchowod
출생 1959년 4월 6일 ([age(1959-04-06)]세)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베르가모현 칼치나테
국적 이탈리아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신체 180cm
직업 축구선수 (수비수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ASD 로마네세 (1930~1937 / 유스)
칼초 코모 (1976~1981)
ACF 피오렌티나 (1981~1982)
AS 로마 (1982~1983)
UC 삼프도리아 (1983~1995)
유벤투스 FC (1995~1996)
AC 밀란 (1996~1997)
피아첸자 칼초 (1997~2000)
감독 칼초 카타니아 (2001)
ACF 피오렌티나 (2002)
US 트리에스티나 칼초 (2005)
부다페스트 혼베드 FC (2014)
FC 캄차 (2018)
국가대표 45경기 2골 (이탈리아 / 1981~1993)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4. 기록
4.1. 대회 기록4.2. 개인 수상4.3. 서훈
5. 여담

[clearfix]

1. 개요

위르겐 콜러나 피에트로 비에르코보드와 같은 수비수들이 한 경기에 10~15번씩 내 앞길을 가로막곤 했다.
마르코 판바스턴

이탈리아축구선수 출신 감독으로 2018년에 FC 캄차의 감독을 맡고 있었다.

현역 시절 세리에 A에서만 562경기에 출장하는 기록을 세웠다.[1]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비에르코보드는 하위팀이었던 칼초 코모에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세리에 C세리에 B를 차례로 정복하며 세리에 A 무대를 밟았다. 1981년 ACF 피오렌티나로 이적하여 1년동안 뛰다가 1982-83 시즌에 AS 로마로 이적해 스쿠데토를 들어올렸으며,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상도 수상하였다.

이후 UC 삼프도리아로 이적해 디에고 마라도나마르코 판바스턴세리에 A에 모여있던 세계적인 선수들을 상대로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마라도나는 비에르코보드에게 헐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으며 판바스턴과는 시도때도 없이 충돌하여 라이벌리를 형성하였다.

비에르코보드는 코파 이탈리아 우승 5회를 차지했으며, UEFA 컵 위너스컵스쿠데토 등 굵직한 트로피를 많이 들어올렸다

1991-92 시즌 비에르코보드는 삼프도리아를 유러피언컵 결승전까지 진출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지만 연장전 끝에 로날드 쿠만에게 프리킥 결승골을 허용해 FC 바르셀로나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친다.

1995년까지 삼프도리아에서 활약한 비에르코보드는 1995-96 시즌에 유벤투스 FC로 이적하여 준주전 선수로 활약해 빅 이어를 들어올린다.

이후 AC 밀란과 피아첸자 칼초에서 뛰다가 41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엔트리에 들었지만, 발목 부상으로 컨디션이 나빠 출전하지 못했고, 이탈리아는 비에르코보드 없이도 시레아, 젠틸레 등이 철벽을 세웠고 파올로 로시의 활약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비에르코보드는 주전 멤버로 뛰었지만, 이탈리아는 조별 리그에서는 불가리아아르헨티나와 비겼고, 대한민국을 3:2로 간신히 이기며 16강에 진출하지만 프랑스에게 패해 탈락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비에르코보드는 교체로 2경기에 출전했고, 잉글랜드와의 3·4위전에 선발 출전해 2:1로 승리해 3위를 차지했다.

3. 플레이 스타일

비에르코보드는 막강한 파워의 소유자였으며, 여러 공격수들을 고전시켰다. 뿐만 아니라 100m를 11초에 주파했고, 그리 크지 않은 키에도 불구하고 많은 헤딩골을 넣었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 구에린도로: 1982-83

4.3. 서훈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4등급: 1991

5. 여담

아버지가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제2차 세계 대전소련군으로 참전한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포로로 잡혀 북부 이탈리아의 나치 수용소에 수감돼 있던 중 탈출해 이탈리아 레지스탕스에 가담했다. 종전 후에도 소련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주에 그대로 정착했다. 당시의 우크라이나는 소련에 속해 있었고[2] 그래서 피에트로의 선수 시절 별명도 차르였다.

* 선수시절 마르코 반바스텐 도 뚫기 힘들었다고 한다.


[1] 이는 아직까지도 세리에 A 출장 기록 7위로 남아있다.[2] 소련 붕괴가 피에트로의 30대 무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