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4 13:00:41

하마스/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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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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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아흐메드 야신
(1987~2004)
제3대
칼레드 마샬
(2004~2017)
제4대
이스마일 하니예
(2017~2024)
제5대
야히야 신와르
(2024)
제6대
칼레드 마샬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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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역사를 다루는 문서.

하마스는 1987년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압제에 반항하는 대대적인 봉기(1차 인티파다)를 일으키자 이집트무슬림 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가 떨어져 나와 1987년 12월 10일 아흐메드 야신(1936~2004)이 설립한 정치조직이며 이스라엘 정부가 1차 인티파타를 잔혹하게 진압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89년 이스라엘군을 공격해 2명의 이스라엘 병사를 암살하면서 그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1991년 이즈 앗딘 알카삼 여단이 창설되고 이스라엘군에 많은 공격을 가했다. 1993년부터 민간인에 대한 자살 테러 공격을 서슴치 않는 등 수단이 급격히 과격해졌다. 일각에서는 하마스의 테러가 극우파 유대인이 벌인 헤브론 학살 사건에 대한 복수 차원에서 시작되었다고도 주장하지만 헤브론 사건은 1994년의 일이고 하마스는 이미 전부터 테러를 해 왔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1차 인티파다가 터졌을 때까지만 해도 일부 과격주의자들을 빼면 "하마스는 폭력을 신봉하는, 진정한 팔레스타인의 정당도 아니다!"라는 반대 여론이 강했다. 여성들에게 억압적인 규제를 강요하고 이 중 물담배 금지령은 전통 이슬람 율법에도 언급이 없는 부분이라 반감을 사기도 했으며 자살폭탄테러를 주도하는 집단으로 악명을 떨쳤다. 이들의 테러는 이스라엘 국민과 외국인을 가리지 않고[1] 예루살렘 등지에서 폭탄 테러, 그것도 여자들까지 가담하는 자살 폭탄 테러로 그 과격성이 수많은 팔레스타인 저항조직들 중에서도 가장 심했는데 미성년자를 동원한 자살폭탄테러는 하도 비난을 받다 보니 2006년에는 하마스에서도 금지를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2003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이스라엘 국민들에 대한 테러를 저지르는 하마스를 계속된 처벌 요구에도 벌하지 못하자 분노하여 웨스트뱅크를 공격해 팔레스타인 정부청사를 박살내고 야세르 아라파트(팔레스타인 대통령)의 외출을 제한했는데 아라파트는 촛불에 의존하면서 집무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통치권을 빼앗았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의 이러한 강경책은 오히려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를 사 이스라엘과의 타협을 주도해온 파타에 등을 돌리고 과격파인 하마스를 지지하며 저항이 더욱 격렬해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2004년에는 아흐메드 야신을 헬리콥터 공습으로 암살했다. 그러다 보니 인티파다가 해결이 안 되고 이스라엘의 진압도 한계에 달하자 2007년에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은 양보를 했고 하마스도 파타의 중재를 받아들여 일단은 물러섰다. 하마스는 2000년에 일어난 제2차 인티파다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데다 위에서 언급한 과정 등을 거치면서 PLO가 급속히 약화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주류 세력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2. 이스라엘의 하마스 지원

Pre-1987: Hamas’s Emergence
Hamas’s politicization and militarization can be traced to the first Palestinian intifada(uprising) that began in the Gaza Strip in 1987 in resistance to the Israeli occupation. Its precursor, Al Mujamma al Islami (known simply as Mujamma, or “The Islamic Center”), was established in Israeli-occupied Gaza in the 1970s under the auspices of the Palestinian Muslim Brotherhood, which had links to Muslim Brotherhood chapters in Egypt and Jordan and later developed links to branches elsewhere—most notably among Palestinian refugees and expatriates living in Kuwait.
Sheikh Ahmed Yassin, the group’s leader, concentrated the Mujamma’s activities on religious and social services, following some models provided by the Egyptian and Jordanian Muslim Brotherhood branches, whose open political activism was repressed by state authorities. Yassin’s and his associates’ activities—which led to Hamas’s founding—were countenanced and sometimes supported by Israel, which believed the Islamists to be a convenient foil for the secular nationalist factions such as Fatah that Israel then perceived to be greater threats.
1987년 이전: 하마스의 등장
하마스의 정치화와 군사화는 1987년 이스라엘의 점령에 저항하여 가자 지구에서 시작된 최초의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봉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 전신인 알 무잠마 알 이슬라미 (단순히 무잠마 또는 "이슬람 센터"로 알려짐)는 1970년대 이스라엘이 점령한 가자 지구에서 이집트와 요르단의 무슬림 형제단 지부와 관련이 있으며 나중에는 다른 곳의 지부들, 특히 쿠웨이트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과 국외 거주자들과 관련이 있는 팔레스타인 무슬림 형제단의 후원 하에 설립되었습니다.
이 단체의 지도자인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은,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공개적인 정치적 행동주의가 국가 당국에 의해 탄압받았던 무슬림 형제단이 제공한 일부 모델을 따라 무잠마의 활동을 종교적 및 사회적 서비스에 집중했습니다. 하마스의 설립으로 이어진 야신과 그의 동료들의 활동은 이스라엘에 의해 강화되었고 때로는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슬람주의자들이, 당시에 더 큰 위협으로 인식되던 파타와 같은 세속적인 민족주의 파벌들을 막는 편리한 방어막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미국 의회 조사국, Hamas: Background and Issues for Congress, 42p
Hamas launched in 1988 in Gaza at the time of the first intifada, or uprising, with a charter now infamous for its anti-Semitism and its refusal to accept the existence of the Israeli state. But for more than a decade prior, Israeli authorities actively enabled its rise.
At the time, Israel's main enemy was the late Yasser Arafat's Fatah party
하마스는 1988년 제1차 인티파다 즉 봉기 당시 가자지구에서 출범했으며, 반유대주의와 이스라엘 국가의 존립을 거부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현재의 헌장을 채택하였다. 하지만 이보다 10여 년 이상 앞서서, 이스라엘 당국은 적극적으로 하마스의 부상을 가능하게 해왔었다.
당시 이스라엘의 주적은 야세르 아라파트파타당이었다.
How Israel helped create Hamas, 워싱턴포스트
"하마스는 매우 유감스럽게도 이스라엘의 창조물입니다." 라고 가자지구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튀니지 태생의 유대인 코언 씨가 증언했습니다. 1994년까지 이 지역의 종교문제를 담당했던 코언 씨는, 이슬람 운동이 구체화되어서 경쟁하던 팔레스타인 세속주의자들을 제쳐두고, 이스라엘의 파멸을 맹세하는 호전적인 단체인 오늘날의 하마스로 변모해 가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가자지구의 이슬람주의자들을 억제하려 하지 않았고, 수년 간 이들을 묵인해 왔습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세속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그 지휘부인 야세르 아라파트의 파타당을 견제하는 균형추 역할을 하도록 이들을 지원했다고 코언 씨는 증언합니다.
...
이스라엘의 경험은, 냉전 시절에 이슬람주의자들을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유용한 동맹국으로 간주했었던 미국의 경험을 되풀이합니다. 1979년 모스크바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미국의 지원을 받은 반(反)소련 세력들은 이후 알카에다로 변모했습니다.
...
이스라엘이 1970~80년대 가자지구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을 처음 접했을 때, 그들은 이스라엘과의 대립이 아니라 코란을 연구하는 데 집중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의 전신인 무자마 알 이슬라미야를 자선단체로 등록하면서 공식 인정했습니다. 이를 통해 무자마의 회원들은 이슬람 대학을 설립하고 이슬람 사원과 클럽, 학교를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스라엘은 이슬람주의자들과, 세속주의적인 좌익 팔레스타인 경쟁자들이,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대한 영향력을 놓고 때때로 격렬하게 다툴 때에, 종종 옆으로 물러나서 방관했습니다.
"일련의 사건들을 돌이켜보면 우리가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이스라엘군의 아랍문제 전문가로 가자지구에서 일했던 데이비드 하참은 말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아무도 가능한 결과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은 파타당과 다른 세속주의적인 PLO파들을 추적했지만, 이전에 이집트 군부 통치자들이 이슬람주의자들에게 가한 가혹한 규제들을 철회해주었습니다.
...
이스라엘 군이 주도하는 가자지구 행정부는, 학교와 병원, 도서관, 유치원 등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한 하반신 마비 성직자를 호의적으로 바라봤습니다. 셰이크 야신은 이슬람 단체인 '무자마 알 이슬라미야'를 설립했는데, 이 단체는 1979년에 이스라엘로부터 자선단체로 공식 인정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또한 현재에는 호전성의 온상으로 간주되고 있는 가자지구 이슬람 대학의 설립을 지지했습니다. 이 대학은 최근 전쟁에서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폭격한 첫 번째 목표물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에 가자지구의 통치자였던 요세프 카스텔 준장은, 너무 아파서 인터뷰할 수 없다고 그의 부인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1979년 말, 가자지구에서 통치자로 집권한 이츠하크 세게브 준장은, 야신의 장기적인 의도나 이슬람 정치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전혀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전직 이란 주재 무관으로서, 이슬람 광풍이 이란의 샤 왕정을 무너뜨리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자지구에서는, "우리의 주적은 파타였다"고 말했으며, 그 성직자는 이스라엘에 대해 "여전히 100% 평화로웠다"고 말했습니다. 전직 관리들은, 그 당시 이스라엘이 이슬람교에 적대적인 것으로 보여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세게브 준장은, 어느 정도는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셰이크 야신과 정기적으로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의 이슬람 사원을 방문했고, 그 성직자를 십여 차례 만났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스라엘인들이 PLO에 속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불법이었습니다. 세게브 준장은 이후에, 그 성직자가 이스라엘로 이송되어 병원 치료를 받도록 주선했습니다. "우리는 그와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라고 그가 말했습니다.

사실, 그 성직자와 이스라엘에게는 세속주의 팔레스타인 운동가들이라는 공통의 적이 있었습니다. 무자마는 이슬람 버전 적십자인 가자지구 적신월 지도부에서 세속주의자들을 축출하려는 시도가 실패한 이후, 과격 시위를 벌였고, 적신월사 건물을 급습했습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또한 술을 파는 상점들과 영화관을 공격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대부분 방관했습니다.
How Israel Helped to Spawn Hamas 유료기사, 월스트리트 저널, 아카이브#
An Anti-Communist Struggle before Being Anti-Israeli
반이스라엘 이전에, 반공 투쟁부터
The Origins of Hamas: Militant Legacy or Israeli Tool?, 11p

현재의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생각하면 상당히 의외의 사실인데 하마스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분열시키기 위해서 아랍사회주의세속주의 성향의 정당인 파타를 견제할 대항마로 반공주의 성향의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인 무슬림 형제단을 지원해 주면서 성장하였다. 즉, 하마스를 분열된 팔레스타인의 통제되는 위협으로 만들려고 이스라엘이 키워준 것이다.[2]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을 분열시키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지원하는 '갈라치기' 전략을 사용했다고 한다.


영상 18분 10초부터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키워줬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딱히 엄청난 비밀조차도 아니고 이스라엘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한다.
그러한 견해는 이스라엘 우파들에게 널리 공유되어 있습니다. 2015년 인터뷰에서, 스모트리히는 그 당시 팔레스타인의 테러 공격은 대부분 고립된 '분위기'에 있었다고 주장했는데, 다시 말해, 정치적 위험이 아니라, 전략적 위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진짜 위협은 아바스 수반의 외교 전선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스라엘에게는 "팔레스타인 정부는 부담이지만, 하마스는 자산"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간의 정기적인 교전에도 불구하고, 하마스가 통치를 계속 강화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가자지구를 재정복하는 것은 결코 현실적이거나 도덕적인 선택이 아니었고, 팔레스타인의 재통일을 추진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의 통치하에서,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고립되고 힘이 약해졌을 때, 그러한 기회를 피했습니다. 가자지구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통치하로 복귀시키는 것은 분명히, 총리의 계획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하마스는 적이었고, 기괴한 반전으로, 두 국가로 구성된 해결책과 평화라는 외교적 위협에 맞서는 동맹국이었습니다.
...
오늘날의 실수는 더 큰 자만심에 있었습니다. 하마스가 서안지구를 무한정 점령하고 심화시키기 위해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정부가 명백하게 안보를 소홀히 한 것을 더하면 그 결과는 재앙이었습니다.
뉴욕타임즈, Netanyahu Led Us to Catastrophe. He Must Go. #
2009년 두 번째 총리로 취임한 이후 네타냐후 총리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희생시켜 하마스를 강화하는 것이 이스라엘에 도움이 된다는 파괴적이고 왜곡된 정치적 교리를 개발하고 발전시켰기 때문입니다.
이 교리의 목적은 가자지구 하마스와 요르단강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사이의 균열을 영구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이 두 개의 국가로 분할되는 문제를 놓고 팔레스타인과 협상을 벌이는 "위험"을 영원히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모든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

그 결함 있는 전략은 하마스를 작은 테러 조직에서 효율적이고 치명적인 군대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고도로 훈련되고 비인간화된 스톰트루퍼, 피에 굶주린 살인자들은 여성, 어린이, 노인들을 포함한 무고한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습니다.

이는 확고한 문서입니다. 네타냐후는 2012년부터 2018년 사이에 카타르가 가자 지구에 약 10억 달러를 송금할 것을 승인했으며, 이 중 적어도 절반은 무장조직을 포함한 하마스에 도달했습니다. 예루살렘 포스트에 따르면, 2019년 3월 11일 자신이 이끄는 리쿠드 당원들과 사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네타냐후는 무모한 조치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에 반대하는 사람은 누구나 카타르에서 하마스로 돈을 송금하는 것을 지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저지할 것입니다." (전 각료 하임 라몬의 히브리어 책 "Neged Haruach", 페이지 417에서 보도된 바와 같이).

2019년 5월 5일 Ynet뉴스 웹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네타냐후 부소장 게르손 하코헨은 "우리는 진실을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네타냐후의 전략은 두 국가의 선택을 막는 것이므로 하마스를 그의 가장 가까운 파트너로 바꾸고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하마스는 적입니다. 비밀리에는, 동맹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채널 13은 2019년 5월 20일자 트윗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네타냐후는 두 국가의 해결책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는 2010년 말 나에게 말했듯이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구를 분리하고 싶어한다"고 전했습니다. 무바라크는 쿠웨이트 일간지 알안바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이런 발언이 갖는 끔찍한 의미를 되새겨볼 가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한 총리가, 이스라엘에서 가장 악랄하고 광적인 적들 중 하나를, 이 나라를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선포한 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키워냈습니다.
이스라엘 제도권 언론 하아레츠의 기사, 아카이브#
수년간 베냐민 네타냐후가 이끄는 다양한 정부들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 사이에 권력을 분할하는 접근법을 취했습니다. 마흐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무릎 꿇게 하는 한편, 하마스 테러집단을 지지하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이 계획은 아바스 수반을 비롯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요르단강 서안지구 정부에 속한 그 누구도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For years, Netanyahu propped up Hamas. Now it’s blown up in our faces, 타임즈 오브 이스라엘 #
정치 특파원 탈 슈나이더는 지난 주 타임즈 오브 이스라엘에서 "수년 동안 베냐민 네타냐후가 이끄는 다양한 정부들은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구 사이의 권력을 분할하는 접근법을 취하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마흐무드 아바스 수반을 무릎 꿇게 하는 한편 하마스의 테러 집단을 지지하는 움직임을 취했습니다."라고 썼다. "그 생각은 아바스 수반 혹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서안 지구 정부에 속한 그 누구도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Haaretz의 칼럼니스트 Dmitry Shumsky도 유사한 입장을 취하면서, 네타냐후 총리가 팔레스타인과의 2국가 해결책을 놓고 협상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외교적 마비" 정책을 추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결점이 있는 전략은 하마스를 "무자비한 이스라엘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피에 굶주린 살인자들을 가진 효율적이고 치명적인 군대"로 바꾸어 놓았다고 Shumsky는 말했습니다.
...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미국 및 서방의 많은 국가들에 의해 테러 조직으로 공식 지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14년 이스라엘의 마지막 주요 지상 침공 이후 이 단체의 군사적 도발을 대체로 무시하고 있으며, 동시에 가자 지구로 막대한 현금이 유입되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텔레그레프, How Benjamin Netanyahu empowered Hamas ... and broke Israel

이스라엘군 정보 장교인 '하라리'는 당시 하마스와 파타사이에 충돌이 발생했을때에, 하마스가 파타에 맞서 싸우도록 보내줬다고 증언했다. "저는 '만약 그들이 서로를 불태우기를 원한다면, 그들을 보내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하마스가 무기를 몰래 모으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여 무기은닉처를 발견하고 세이크 야신을 체포했었는데, 야신이 파타를 공격하려고 무기를 모았다고 말하자, 1년후 야신을 풀어주기까지 했었다. 하라리 준장은 당시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직접 무장시키려고 한 것은 아니고 위험성을 무시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에 자금을 지원하지 않았고, 무기를 지원하지도 않았다." 이스라엘 내부 보안국인 신 베트의 전 간부인 '로니 샤케드'는 셰이크 야신과 그 추종자들은 그 당시에는 위험성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즉, 세속주의 성향의 파타보다 이슬람 단체인 하마스를 우호적으로 평가해서, 파타를 공격하는 하마스가 무장하도록 묵인했다는 사실이다.

10대 이스라엘 총리와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에후드 바라크 전 이스라엘 총리에 의하면, 하마스의 확장에는 네타냐후의 책임도 있다고 하며, 두 국가 해법을 반대하는 네타냐후에게는 하마스는 오히려 자산에 가깝다고 한다. 바라크는 두 국가 해법만이 해결책이라고 한다#

에후드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의 인터뷰 영상 11분 10초부터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부가 하마스를 지원했다고 말한다. 정확히는 카타르가 하마스에 수억 달러를 지원하는 것을 알면서도 막지 않으며 간접적으로 하마스의 세력을 키웠다는 내용이다.
We know that the Hamas was financed with the assistance of Israel — for years — by hundreds of millions of dollars that came from Qatar with the assistance of the state of Israel, with the full knowledge and support of the Israeli government led by Netanyahu.
Netanyahu, when he took over in 2009, said that his primary responsibility and priority is to destroy Hamas. And throughout the period that he was prime minister, he made every possible effort in order to build Hamas rather than to destroy it. And in a certain way, the expansion of the Hamas and the strengthening of Hamas is largely also a result of this policy of Netanyahu.
우리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도움하에 수 년간 카타르에서 나온 수억달러의 자금을 지원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하마스를 키우는데 동원된 지식과 지원이 네타냐후 정권에서 나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2009년 집권 당시 네타냐후는 하마스를 파괴하는 것이 자신의 주요 목표이자 우선순위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총리 재임 기간 내내 하마스를 파괴하기보다는, 건설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하마스의 팽창과 하마스의 강화 역시 주로 네타냐후의 정책에 따른 결과입니다.
에후드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 인터뷰#
Netanyahu has strongly denied allowing Qatar to fund Hamas in order to divide Palestinians into rival political camps. But the Israeli leader said in 2019 at a Likud party conference: “Anyone who wants to prevent the establishment of a Palestinian state needs to support strengthening Hamas.”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을 분열시키기 위해서 카타르가 하마스를 지원하도록 허용했다는 것을 강력하게 부인해왔다. 하지만 이스라엘 지도자는 2019년 리쿠드당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팔레스타인 국가 설립을 막으려는 사람이라면 하마스를 강화하는 것을 지원해야만 한다"
폴리티코 EU’s top diplomat accuses Israel of funding Hamas

뉴욕 타임즈의 분석

3.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철수팔레스타인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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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이스라엘 총리 아리엘 샤론과 부총리 시몬 페레스의 주도에 따라 가자 지구 등 21개 변경 지역에서 유대인 정착촌이 일거 철수하였다(2005년 이스라엘의 가자 등 지구 철수 사건). 이러한 조치는 공식적으로는 평화와 타협을 위한 것이었으며 전략적으로는 서안 지구의 유대인 세력 강화가 꼽혔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갑작스러운 정책은 국제 사회로부터 지지를 얻었으나 아리엘 샤론 본인이 몸담고 있던 우파 정당 리쿠드에서는 반발하였고 이스라엘 민족주의자들은 '해당 지역의 혼란이 도래할 것이며 팔레스타인이 세력을 확장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현재 이스라엘 보수주의 세력들이 대 팔레스타인 강경책을 고집을 꺾지 않는 데 동원되는 근거 중 하나다.

한편 유대인들이 철수한 시점에서 민심을 통제하는 질서의 유지에 절실하게 필요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공권력은 허약했고 정치적 공백을 포착한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내전을 통해 가자 지구 전역의 세력을 장악했다. 이스라엘의 철수를 두고 이스라엘 세력이 약해졌다는 증거로 해석하는 여론이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 퍼졌고 조금만 더 싸우면 최종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하마스에 대한 지지가 높아졌다.

4. 2006년 선거 대승과 2008-2009년 가자 전쟁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2008-2009년 가자 전쟁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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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변경 철수 이후 하마스는 2006년 1월 25일 총선거에서 132석 중 74석을 획득하는 대승을 거두었다.[3] 그러나 승리의 기쁨을 누리고 수립된 내각을 제대로 이끌 시간도 없이 파타와의 갈등이 시작되었고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의 경제 봉쇄가 강화되면서 하마스 정권의 지배력은 가자 지구로 축소된 채 파타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정부와 내전에 돌입했다. 2006년 6월 이스라엘의 함정이 가자 지구의 해변에 포격을 가해 피서를 즐기고 있던 수십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스라엘 정부는 인명피해가 하마스가 해변에 묻어 놓은 지뢰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너무 말이 안 되는 주장이었기 때문에 국제적인 비난을 샀다. 이 도발을 계기로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전쟁을 시작했다.

강력한 화력을 앞세워 무자비한 공격을 퍼부은 이스라엘군으로 인해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의 피해가 심해지자 3개월만에 하마스는 파타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평화 조약을 제안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를 불신했으나 불경기와 경제불황으로 인해 경제 사정이 좋지 못해 장기전이 불가능한 터라 강경파들의 반대에도 조약을 승인했지만 조약은 1년만에 깨지고 2007년에 다시 전투가 시작되는 등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특히 심각했던 것은 2008년 연말에 터졌던 2008-2009년 가자 전쟁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모두 평화 조약을 여러 번 맺었지만 양측 모두 상대방에 대한 불신이 극도에 달한 상태여서 '상대방의 멸망'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 갈등이 계속되는 배경인 셈이다.

2012년 11월 초 이스라엘군은 당시 하마스의 리더였던 아흐메드 알 자바리를 미사일로 공격해 사살했는데 이 과정에서 민간인 어린이도 사망했다. 하지만 애초부터 후계자가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리더의 사망은 혼란을 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하마스측을 분노하게 만들어 하마스의 로켓 공격으로 11월 15일 이스라엘 민간인 3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에 이스라엘 정부도 가만있지 않고 가자 지구를 공격하면서 이 교전으로 팔레스타인측에서도 15여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텔 아비브(이스라엘의 경제중심)를 목표로 한 미사일 공격이 있었으나 지중해 어딘가로 떨어져서 미수에 그쳤다. 하마스가 쏘아대는 포격은 이스라엘의 요격 병기 아이언 돔이 90% 가량의 요격률을 보이면서 대부분 막히고 있는데 이게 잘 막는다고 무작정 좋아만 할 일이 아닌 것이 아이언 돔은 그 가격이 하마스가 쏴대는 까삼 로켓의 수십배에 달하는 비싼 무기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측도 시가지로 향하는 로켓들만 선별적으로 요격하는 식의 대처를 하고 있으나 어쨌든 가격 교환비가 좋지 않은 것은 여전하다. 텔 아비브에 대한 아랍 세력의 공격은 1991년 이래 처음으로, 주민들에게 미친 영향도 컸다고 한다. 로켓 공격은 막심한 재산피해를 주었고 이스라엘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적대국인 이란의 기술 지원으로 사거리가 갈수록 늘어나 벤 구리온 국제공항의 근처까지 떨어져서 공항을 폐쇄하는 소동까지 일어났다. 공항 폐쇄의 여파는 굉장히 큰데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과 외국 항공사들이 관광을 거부함에 따라 이스라엘 관광업에 큰 손실을 가져다 주었다.

5. 2012년 가자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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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가자 전쟁에서 하마스는 비록 리더를 잃긴 했으나 세력에는 큰 타격이 없었고 11월 29일에는 되려 유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을 비가입 참관국으로 인정하면서 정치적으로도 큰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유엔에 팔레스타인 대표가 출두할 때는 파타에 의해 하마스가 배제되었는데 이와 관련된 사항은 2012년 가자 전쟁 문서 참조.

6. 2014년 가자 전쟁과 지지율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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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아랍의 봄의 여파로 인해 상황이 좋지 않았다. 적극적인 후원 세력이었던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이 몰락하고 군부가 재집권하면서 이집트에서의 지원이 뚝 끊겼다. 이전까지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공격에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이집트측이 땅굴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이었는데 이를 상실하여 큰 타격을 입은 셈이다. 2014년 가자 전쟁에서도 하마스는 정치적 승리를 거두었으나 이집트측의 싸늘한 반응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시리아 등 다른 지역에서의 지원도 이란과 레바논, 카타르를 제외하곤 거의 없어졌다. 호의적이었던 국제여론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의 등장 이후 완전히 차갑게 식어 버렸다.

외부에서의 지원이 급감하면서 내부에서의 지지도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파일:external/www.pewglobal.org/PG-2014-07-01-islamic-extremism-09.png
결국 2014년 자체 여론조사에서 팔레스타인 국민 63%가 하마스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하마스 입장에서는 아닌 때에 발등에 불 떨어진 격이다. 하지만 이것도 2014년 7월에 이스라엘과 하마스간의 전면전으로 역전되어 지지로 바뀌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내부적으로는 하마스가 벌이는 전쟁에 지쳤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 때문에 이스라엘이 무력행사를 하면 어찌됐든 하마스를 지지하는 양상을 보였는데 한때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던 하마스의 입장에서는 결코 바람직한 변화는 아니다.

7. 2021년 가자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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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또 다시 이스라엘과 대규모로 충돌했다.

8.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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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침투로 인해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일어나면서 또다시 전쟁이 진행되고 말았다. 특이한 점은 평소에는 미사일을 발사하는 식의 도발을 주로 하던 하마스가 이례적으로 쳐들어가 점령전을 시도하면서 끝내 전면전이 되었다는 점이다. 주된 이유로는 미국이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국교정상화를 주도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되면 하마스는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이게 되므로 이를 훼방놓기 위해서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사건 이후 하마스를 비난하는 아랍 국가는 없는데 그랬다간 아랍세계를 적으로 돌리거나 자국민들의 지지를 잃게 된다. 이스라엘 사법개혁 반대 시위 때문에 이스라엘 내부가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는 타이밍을 노려 침공했을 가능성이 크다.


[1] 국제적으로 적을 만들지 않으려고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알카에다와 달리 외국인 테러는 웬만하면 하지 않는다.[2] 로버트 드레이퍼스는 2006년 서적인 Devil's Game에서 이런 점을 지적했다.[3] 임기는 4년이었지만 하마스와 파타당의 끊임 없는 갈등으로 원래 실시되어야 했던 2010년 1월 25일은 물론이고 그해 7월 17일, 2012년 5월 4일, 2014년 5월 ~ 10월 등으로 미뤄지다가 결국에는 무기한 연기되었으며 2017년 9월 17일을 기해 하마스는 가자지구 정부를 해산하고 통합 정부를 위한 총선에 합의했다고 선언했지만 현재까지도 차기 총선 계획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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