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58a5dd><colcolor=#ffffff> | |
이름 |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로페즈 Javier Fernández López |
국적 |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
출생 | 1991년 4월 15일 ([age(1991-04-15)]세) |
마드리드 | |
신체 | 175cm |
종목 | 피겨 스케이팅 |
은퇴 | 2019년 1월 26일 |
링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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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의 前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 동메달리스트이다.스페인 내에선[1] 피겨 스케이팅은 물론, 빙상 종목에서 최초로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딴 선수이다. 2016년 스페인 국왕 훈장을 수여받았다.
2. 선수 경력
2.1. 2006-07 시즌
그 전까지는 제대로 된 국제대회에도 출전하지 못하다가, 2007 유럽선수권과 2007 세계선수권에서 프리컷을 당했다.2.2. 2007-08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영국과 에스토니아 대회에서 각각 11위와 9위를 기록했다. 처음으로 출전한 2008 유럽선수권에서는 17위를 했다. 2008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는 13위를 차지하였는데, 프리 경기 도중 부츠와 바지 사이를 고정하는 끈이 풀려 경기 중단 후 다시 시작하였다. 2008 세계선수권에서는 또 프리컷을 당했다.2006-07 시즌부터 이 시즌까지 페르난데스는 스페인의 자카에서 훈련했으나 두 시즌 연속 침체된 성적, 게이라고 놀림받는 환경,[2] 코치들과의 불화 등으로 의욕을 상실하고 마드리드로 돌아와 선수 생활을 지속할지 말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했다. 그렇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참가한 안도라에서의 모로조프 섬머 캠프에서 인생의 첫번째 터닝 포인트를 만나게 된다.
2.3. 2008-09 시즌
세계적인 코치인 모로조프의 캠프에서 모로조프 코치의 눈에 들어 무려 훈련비 무료 제자로 들어갔다. 페르난데스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직후 한 스페인 방송에서 모로조프 밑으로 들어가 훈련하게 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인생 최악의 스케이팅을 했었다며, 모로조프가 자신을 눈여겨 볼 줄은 몰랐다고 한다. 캠프 마지막 날, 모로조프가 자신을 조용히 불러 미국행 티켓을 던져주며 ‘올지 말지는 네게 달려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고민할 것도 없이, 만 17세의 소년은 바로 그 제안을 승낙했다. 많은 이들이 굴곡이 많은 그의 인생의 첫번째 터닝포인트로 꼽는 사건이다. 일단은 세계적인 코치의 눈에 들어 제자로 들어갔지만, 스페인어 외에는 아는게 없었던 하비는 모로조프의 말 한 마디를 알아듣는 데만 몇 개월이 걸렸다.[3] 아무도 말이 통하지 않는 환경 속에서, 하비는 훗날 이 시기에 불안 발작을 겪었다고 회고했다.또한 훈련 비용이 무료라고 넉넉한 생활을 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서의 체류비는 한달에 3000 유로 가까이 들었기에 페르난데스의 아버지는 투잡을 뛰기 시작하셨다. 또한 누나 로라 페르난데스 역시 피겨 스케이팅을 그만둬야 했다. 온 가족의 희생과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셈이다.[4] 이 시기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며 2009 유럽선수권 11위, 2009 세계선수권에서 19위를 차지하며 1956년 이후 처음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스페인 남자 싱글 선수가 되었다. 만 18세에 트리플 악셀 점프를 장착했다. 모로조프에게로 간 후, 기술적인 발전이 급속도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첫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고 2주 후에 바로 랜딩을 했다.
2.4. 2009-10 시즌
처음으로 그랑프리에 초청을 받으며 2009 트로피 에릭 봉파르에서 11위, 2010 유럽선수권에서 8위를 달성하며 다음 해 스페인의 유럽선수권 남자 싱글 출전권을 2장으로 늘렸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종합 14위를 차지했다. 올림픽에서 잘해서 스페인에 피겨 스케이팅을 알리고 싶다던 본인의 소원을 어느 정도는 이룬 셈이었으며[5], 쿼드러플 점프를 처음으로 대회에서 들고 온 시즌이다. 2010 세계선수권에선 12위를 차지했다.2.5. 2010-11 시즌
전 시즌의 활약으로 두 곳의 그랑프리에 배정을 받았다. 2010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5위, 2010 로스텔레콤 컵에서 9위를 기록했다. 스페인선수권에서 웜업 도중 스케이트 날에 손을 베여 경기가 20분 지연됐다. 그럼에도 별도의 웜업 없이 바로 경기에 임해 스페인선수권 우승자 자리를 동명의 하비에르 라야에게 넘겨주며 2위에 머물렀다. 그해 2011 세계선수권에서 쿼드러플 살코와 쿼드러플 토룹 점프를 랜딩하며 9위를 기록했다.이 시즌이 지난 후 코치 변경을 택했다. 니콜라이 모로조프에게 가며 엄청난 발전을 이뤘으나, 모로조프가 훈련지를 자주 옮기고 새 제자인 플로랑 아모디오에게 신경을 쏟자 캐나다 토론토 크리켓 클럽으로 훈련지를 옮겨 브라이언 오서를 코치로 선임했다.
2.6. 2011-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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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스케이트 캐나다 | 2011 로스텔레콤 컵 | 2011-12 그랑프리 파이널 |
그해 유력한 메달 후보로 꼽히던 2012 유럽선수권과 2012 세계선수권에서 각각 6위와 9위를 차지했다. 프로그램 런쓰루[7] 훈련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더 자주 런쓰루를 하며 프로그램을 정비하겠다고 다짐했다.
2.7. 2012-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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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스케이트 캐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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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유럽선수권 | 2013 세계선수권 |
2.8. 2013-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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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로스텔레콤 컵 | 2014 유럽선수권 |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에서 3위를 차지하여 다들 페르난데스가 동메달을 딸 거라고 예상했던 그 때, 결과적으로는 자약 룰을 시원하게 날려먹으며 4위를 했다. 프리 프로그램에선 최대 3개의 점프를 컴비네이션으로 뛸 수 있다. 또한 같은 종류의 점프는 트리플과 쿼드러플 점프를 합쳐 2개까지만 뛸 수 있다. 당시 페르난데스의 구성은 쿼드러플 살코 2개, 트리플 살코 2개로 상당히 위험한 구성이었다. 까딱하다 쿼드러플 살코 1개를 트리플로 뛴다면 바로 자약 룰을 어기게 되기 때문이다. 프리 경기에서 두 번째 쿼드러플 살코를 트리플로 처리하며 이미 1번 트리플 살코를 단독으로 뛰었다. 다행이게도 트리플 플립+하프룹+트리플 살코 컴비네이션에서 후속 살코 점프를 더블로 처리하며 자약 룰을 피하는 듯 했으나, 더블 살코나 트리플 토룹 점프만 뛰었어도 동메달이었던 마지막 트리플 살코를 정말 쓸데없이 잘 뛰며 SEQ[8] 처리를 받고 0점으로 처리가 돼 결국 최종 4위를 차지했다. 이런 경우 보통 플랜 B를 가동해 자약 룰을 어기지 않도록 하는데, 올림픽이라는 큰 대회의 중압감인지 아니면 플랜 B가 없었던 것인지 원래 구성대로 수행해버렸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의 남자싱글 대환장파티[9]의 단골 이야깃거리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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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세계선수권 |
2.9. 2014-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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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스케이트 캐나다 | 2014 로스텔레콤 컵 | 2014-15 그랑프리 파이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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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유럽선수권 | 2015 세계선수권 |
2.10. 2015-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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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컵 오브 차이나 | 2015 로스텔레콤 컵 | 2015-16 그랑프리 파이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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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유럽선수권 | 2016 세계선수권 |
2016 세계선수권 쇼트 프로그램에서 쿼드러플 살코 점프에서 넘어지면서 98점대를 받았다. 심각한 발목 부상으로 제대로 스케이트를 타기 힘든 상태였으나 프리 프로그램에서 인생경기를 하며 끝나기도 전에 마지막 스핀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로서 세계선수권 2연패에 성공했다.
2.11. 2016-17 시즌
직전 시즌 쇼트 프로그램 음악을 그대로 썼는데, 시즌 내내 계속 고전하다가 유럽선수권에서 클린에 가깝게 경기하며 개인 최고점을 달성했다. | |
2016 로스텔레콤 컵 | 2016 트로피 드 프랑스 |
모두가 예상한대로 2016-17 그랑프리 파이널은 망했다. 원래 컨시가 안 좋은 쇼트라지만, 그날은 더더욱 심했다. 평소에 트리플 토룹 점프를 연결하지 못하고 고전했던 쿼드러플 토룹+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 점프를 기막히게 잘 뛰고[11] 나머지 두 점프에서 각각 넘어짐에 가까운 스텝아웃과 넘어짐을 기록했다. 보통은 쇼트에서 말아먹고 프리에서 만회하는 타입이어서, 이때만 해도 팬들의 우려의 눈빛이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프리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도 쇼트를 만회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가버렸다. 오프닝 점프인 쿼드러플 토룹을 트리플로 처리했다.[12] 이어진 쿼드러플 살코+트리플 토룹의 쿼드러플 살코에서 랜딩이 박혀버리며 트리플 토룹을 연결하지 못하고 더블 토룹으로 처리했다. 후반 쿼드러플 살코에서도 스텝아웃이 나왔으며, 트리플 악셀에선 넘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전체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이후 첫 포디움 아웃이다. 코치 브라이언 오서의 인터뷰에 따르면 페르난데스가 곧 열릴 아이스쇼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고 한다. 선수로써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그럴만도 한 것이 스페인이란 나라에서 그렇게 큰 규모(12000석)로 아이스 쇼를 한 적이 없었던데다, 워낙 다들 축구를 좋아해서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여튼 그랑프리 파이널을 망친 장본인인 그 아이스 쇼[13]는 모두 매진되며 성황리에 잘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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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유럽선수권 |
2017 세계선수권 쇼트에서 인생경기를 하며 109점대를 받았다. 종전의 세계 신기록 110점대를 깨지 못한 것은 중간에 스핀과 활주에서 살짝 삐끗하는 등 전체적인 프로그램에서 작은 실수를 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진 프리에선 폭망하였다. 최종 4위를 기록하며, 2013 세계선수권 이후 4년 만에 처음으로 포디움 아웃을 기록했다.
2.12. 2017-18 시즌
쿼드러플 룹 점프를 가지고 오겠다는 소식이 있었으나, 프로그램 구성에 더 신경쓰겠다는 이유로 무산되었다. 2017 CS 어텀 클래식 인터내셔널에서 우승하고, 재팬 오픈에서 네이선 첸과 우노 쇼마를 누르며 개인과 팀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 |
2017 엔테르나시오노 드 프랑스 | 2018 유럽선수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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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 동계올림픽 |
2.13. 2018-19 시즌
재팬 오픈에서 개인 3위, 팀 2위를 기록했다. |
2019 유럽선수권 |
3. 평가
첫 세계선수권 프리컷,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14위에 그치는 등 처음부터 탑 스케이터는 아니었다. 두 번째 올림픽인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다 가진 동메달을 자약룰을 어기며 데니스 텐에게 넘겨줘 포디움에 들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세계선수권에서 2연패를 하는 쾌거를 이루며 20대 초반이 전성기라는게[14] 거의 공식처럼 여겨졌던 피겨 스케이팅 남자 싱글에서 전무후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경기에서 구사했던 4회전 점프는 쿼드러플 토룹과 살코였으며, 쿼드러플 룹도 연습했었다. 그렇지만 모든 점프가 정석은 아니었다. 깊은 아웃 엣지로 뛰어야 하는 러츠 점프를 중립-얕은 인 엣지로 뛰었고, 토픽을 이용해서 뛰는 러츠와 플립을 풀 블레이드(날 전체)로 뛰었으며 180도 이상의 프리로테이션을 가졌었다. 안정적인 점프가 강점이며, 가장 잘 뛰는 점프는 쿼드러플 살코였다. 찰리 채플린 같은 느낌을 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4. ISU 공인 최고 점수
<colbgcolor=#58a5dd><colcolor=#ffffff> ISU 공인 최고 점수 | |
쇼트 | 91.84(2019 유럽선수권) |
프리 | 179.75(2019 유럽선수권) |
총점 | 271.59(2019 유럽선수권) |
5. 커리어
대회 | 금 | 은 | 동 |
올림픽 | <colbgcolor=#ffe970,#c3a100> 0 | <colbgcolor=#c0c0c0,#555555> 0 | <colbgcolor=#d7995b,#6d441a> 1 |
세계선수권 | 2 | 0 | 2 |
유럽선수권 | 7 | 0 | 0 |
그랑프리 파이널 | 0 | 2 | 1 |
합계 | 9 | 2 | 4 |
올림픽 | ||
동메달 | 2018 평창 | 남자 싱글 |
세계선수권 | ||
금메달 | 2015 상하이 | 남자 싱글 |
금메달 | 2016 보스턴 | 남자 싱글 |
동메달 | 2013 런던 | 남자 싱글 |
동메달 | 2014 사이타마 | 남자 싱글 |
유럽선수권 | ||
금메달 | 2013 자그레브 | 남자 싱글 |
금메달 | 2014 부다페스트 | 남자 싱글 |
금메달 | 2015 스톡홀름 | 남자 싱글 |
금메달 | 2016 브라티슬라바 | 남자 싱글 |
금메달 | 2017 오스트라바 | 남자 싱글 |
금메달 | 2018 모스크바 | 남자 싱글 |
금메달 | 2019 민스크 | 남자 싱글 |
그랑프리 파이널 | ||
은메달 | 2014-15 바르셀로나 | 남자 싱글 |
은메달 | 2015-16 바르셀로나 | 남자 싱글 |
동메달 | 2011-12 퀘벡 | 남자 싱글 |
국제대회:시니어 | ||||||||||||||||
대회 | 03–04 | 05–06 | 06–07 | 07–08 | 08–09 | 09–10 | 10–11 | 11–12 | 12–13 | 13–14 | 14–15 | 15–16 | 16–17 | 17–18 | 18–19 | 19–20 |
올림픽 | 14th | 4th | 3rd | |||||||||||||
세계선수권 | 35th | 30th | 19th | 12th | 10th | 9th | 3rd | 3rd | 1st | 1st | 4th | |||||
유럽선수권 | 28th | 17th | 11th | 8th | 9th | 6th | 1st | 1st | 1st | 1st | 1st | 1st | 1st | |||
GP 파이널 | 3rd | 4th | 2nd | 2nd | 4th | |||||||||||
GP 컵 오브 차이나 | 1st | 5th | ||||||||||||||
GP NHK 트로피 | 4th | 5th | ||||||||||||||
GP 로스텔레콤 컵 | 9th | 2nd | 3rd | 1st | 1st | 1st | ||||||||||
GP 스케이트 캐나다 | 5th | 2nd | 1st | 2nd | ||||||||||||
GP 트로피 에릭 봉파르 | 11th | 1st | 1st | |||||||||||||
CS 어텀 클래식 인터내셔널 | 1st | |||||||||||||||
핀란디아 트로피 | 3rd | |||||||||||||||
네벨혼 트로피 | 4th | |||||||||||||||
메라노 컵 | 1st | |||||||||||||||
컵 오브 니스 | 3rd | 5th | ||||||||||||||
NRW 트로피 | 3rd | |||||||||||||||
골든스핀 오브 자그레브 | 13th | |||||||||||||||
국제대회:주니어, 노비스 | ||||||||||||||||
주니어 세계선수권 | 13th | |||||||||||||||
JGP 스페인 | 4th | |||||||||||||||
JGP 멕시코 | 6th | |||||||||||||||
JGP 에스토니아 | 9th | |||||||||||||||
JGP 영국 | 11th | |||||||||||||||
JGP 네덜란드 | 23th | |||||||||||||||
가데나 스프링스 트로피 | 5th J | |||||||||||||||
유러피언 유스 올림픽 페스티벌 | 4th J | |||||||||||||||
트리글라브 트로피 | 4th N | |||||||||||||||
메라노 컵 | 3rd N | |||||||||||||||
국내대회 | ||||||||||||||||
스페인선수권 | 2nd J | 1st J | 1st J | 1st J | 1st | 2nd | 1st | 1st | 1st | 1st | 1st | 1st | 1st | |||
단체전 | ||||||||||||||||
재팬 오픈 | 3rd T 1st P | 1st T 2nd P | 3rd T 2nd P | 2nd T 2nd P | 1st T 1st P | 2nd T 3rd P | 1st T 5th P | |||||||||
GP=그랑프리, JGP=주니어 그랑프리, T=팀 결과, P=개인 결과, J=주니어, N=노비스, CS=챌린저 시리즈 |
6. 기타
- 우체부이신 어머니와 육군 정비사인 아버지 사이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였던 누나를 따라 6살 때부터 피겨 스케이팅과 다른 스포츠를 병행하다가 8살 때 피겨 스케이팅으로 완전히 전향했다. 어릴 때의 발전 속도는 굉장히 늦었는데, 만 12세에 첫 트리플 점프를 배웠다.[15] 페르난데스의 첫 코치였던 카롤리나 산즈 코치는 그가 훌륭한 재능을 가졌으나 연습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페르난데스를 담당했던 코치들인 브라이언 오서와 모로조프에게서 공통적으로 '게으르다'라는 말이 나왔던걸 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16]
어마어마한 재능충이었다.
- 가족들 사이에선 별명이 도마뱀이었는데, 반항적인 성격에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릴 때 스케이트를 타려고만 하면 경기를 일으켰을 정도였다. 난장판을 만들지 않고서는 절대로 스케이트를 신지 않았다고 한다. 빙판에 들어서서도 여자 아이들의 치마를 잡아당기거나 얼음 조각을 던지며 노는 등 피겨 스케이팅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본인들 스스로도 스케이트 선수셨던 부모님이셨기에 최대한 자식들의 훈련비를 지원하고자 하셨다만, 두 아이의 훈련비는 상당했다. 그의 아버지는 1500유로를 벌 때도 매달 450유로 이상을 두 아이의 훈련 비용으로 쓰셨다.
- 2016년 12월 29일, 스페인에서 12000석 규모의 아이스 쇼를 열었다. 본인의 꿈이었던 '스페인에 피겨 스케이팅 알리기'를 제대로 성공한 셈이다.
- 2020년 11월 20일 자국에 첫 피겨 스케이팅 학원을 설립했다.
- 어릴 때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했으며 현재도 가만히 있는 것을 싫어한다.
- 방문하고 싶은 국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다.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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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 | 1908 런던 | 1920 | 1920 안트베르펀 | |||
동계 올림픽 | ||||||
1회 | 1924 샤모니 | <colbgcolor=#3c3b6e,#141425> 2회 | 1928 생모리츠 | |||
3회 | 1932 레이크플래시드 | 4회 | 193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 |||
5회 | 1948 생모리츠 | 6회 | 1952 오슬로 | |||
7회 | 1956 코르티나담페초 | 8회 | 1960 스쿼밸리 | |||
9회 | 1964 인스브루크 | 10회 | 1968 그르노블 | |||
11회 | 1972 삿포로 | 12회 | 1976 인스브루크 | |||
13회 | 1980 레이크플래시드 | 14회 | 1984 사라예보 | |||
15회 | 1988 캘거리 | 16회 | 1992 알베르빌 | |||
17회 | 1994 릴레함메르 | 18회 | 1998 나가노 | |||
19회 | 2002 솔트레이크시티 | 20회 | 2006 토리노 | |||
21회 | 2010 밴쿠버 | 22회 | 2014 소치 | |||
23회 | 2018 평창 | 24회 | 2022 베이징 | |||
25회 | 2026 밀라노· 코르티나담페초 | 26회 | 2030 알프스 | |||
피겨 스케이팅 주요 대회 역대 챔피언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2780c2; font-size: 1em;"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fd700; font-size: 1em;"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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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1회(1896년) ~ 50회(1945년) | |||||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1회 | 1896 상트페테르부르크 |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2회 | 1897 스톡홀름 | ||
3회 | 1898 런던 | 4회 | 1899 다보스 | |||
5회 | 1900 다보스 | 6회 | 1901 스톡홀름 | |||
7회 | 1902 런던 | 8회 | 1903 상트페테르부르크 | |||
9회 | 1904 베를린 | 10회 | 1905 스톡홀름 | |||
11회 | 1906 뮌헨 | 12회 | 1907 빈 | |||
13회 | 1908 트로파우 | 14회 | 1909 스톡홀름 | |||
15회 | 1910 다보스 | 16회 | 1911 베를린 | |||
17회 | 1912 맨체스터 | 18회 | 1913 빈 | |||
19회 | 1914 헬싱키 | 20회 | 1915 | 취소WWI | ||
21회 | 1916 | 취소WWI | 22회 | 1917 | 취소WWI | |
23회 | 1918 | 취소WWI | 24회 | 1919 | 취소WWI | |
25회 | 1920 | 취소WWI | 26회 | 1921 | 취소WWI | |
27회 | 1922 스톡홀름 | 28회 | 1923 빈 | |||
29회 | 1924 맨체스터 | 30회 | 1925 빈 | |||
31회 | 1926 베를린 | 32회 | 1927 다보스 | |||
33회 | 1928 베를린 | 34회 | 1929 런던 | |||
35회 | 1930 뉴욕 | 36회 | 1931 베를린 | |||
37회 | 1932 몬트리올 | 38회 | 1933 취리히 | |||
39회 | 1934 스톡홀름 | 40회 | 1935 부다페스트 | |||
41회 | 1936 파리 | 42회 | 1937 빈 | |||
43회 | 1938 베를린 | 44회 | 1939 부다페스트 | |||
45회 | 1940 | 취소WWII | 46회 | 1941 | 취소WWII | |
47회 | 1942 | 취소WWII | 48회 | 1943 | 취소WWI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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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선수권 남자 싱글 챔피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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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바예호 (2006)[17] | → |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2009) | → | 하비에르 라야 (2010) |
하비에르 라야 (2010) | → |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2011~2018) | → | 헥터 알론소 (2019) |
[1] 스페인은 하계 종목에서 유명하지만, 동계 종목은 역사상 올림픽 메달이 페르난데스의 동메달을 포함해 4개밖에 없을 정도로 발전하지 못했다. 그나마 올림픽 메달 4개 중에서도 페르난데스의 메달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설상 종목에서 가져간 메달이다.[2] 사실 남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에게 게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비단 스페인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안무와 함께 음악을 표현하는 요소가 포함된 종목이라 그런 것으로 보인다.[3] 현재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4] 피겨 스케이팅이 상당한 돈이 들어가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선수들의 가정환경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페르난데스는 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인지는 몰라도 항상 가족에 대해 각별한 사랑과 고마움을 드러낸다.[5] 두 시즌 만에 프리컷에서 올림픽 14위가 된 것이니, 페르난데스 기준에선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한 것이다.[6] 쇼트와 프리 둘 중 하나는 1위를 차지했다.[7] 음악에 맞춰 처음부터 끝까지 맞춰보는 것을 뜻한다.[8] 당시 명칭은 시퀀스였으며, 현재는 REP로 바뀌어 기초점만 깎으나 당시에는 컴비네이션 점프를 1번 뛴 걸로 간주했다. 당시 4S+2T, 3Lz+2T, 3F+1Lo+2S로 컴비네이션 3개를 모두 썼는데 마지막 점프가 SEQ 처리가 되며 아예 무효가 됐다.[9] 당장 금메달리스트인 하뉴 유즈루도 2번을 넘어졌고, 은메달리스트이자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패트릭 챈도 프리 경기를 말아버렸다.[10] 前 트로피 에릭 봉파르였으나, 에릭 봉파르 회사가 더 이상 후원을 해주지 않게 되면서 이름이 바뀌었다.[11] 심지어 후속 토룹의 회전수를 풀고 내려왔다.[12] 쿼드러플 토룹의 기초점(10.3점)은 트리플 토룹(4.3점)의 2배보다도 약 2점 가량이 높다.[13] 본인 외에 메건 두하멜 / 에릭 래드포드, 안나 카펠리니 / 루카 라노테, 안도 미키,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키이라 코르피가 참가했다.[14] 여자 싱글의 경우 10대 후반기가 최고의 전성기이고, 남자 싱글 선수는 대부분 20대 초반이 신체적 전성기이다.[15] 시대가 다르지만, 보통 한국 여자 선수들은 평균적으로 만 12세에 3회전+3회전 컴비네이션 점프를 구사한다.[16] 브라이언 오서는 처음 페르난데스가 크리켓 클럽으로 왔을때, 아침에 깨우느라 꽤나 고생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17] 2007년과 2008년에는 대회가 개최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