支倉常長
(1571년 ~ 1622년)
1. 개요
일본 센다이의 다이묘 다테 마사무네의 가신으로 임진왜란에도 사병으로 참전한 경력이 있다. 기독교인이자 일본인으로서 태평양과 대서양을 왕복해 유럽을 방문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2. 생애
1609년 당시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의 총독 로드리고 데 비베로가 임기가 만료되어 본국으로 귀환하던 도중 풍랑을 만나 배가 좌초되어 일본으로 표류한다. 이미 서양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에도 막부의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후사정을 듣고 서양식 갤리온 한 척을 내주어 그들을 돌려보냈다.[1]이 사건을 계기로 스페인과 정식 교류를 시작하게되자 서양 문물에 관심이 많던 다테 마사무네는 1612년, 유럽에 무역 허가서를 요청하는 사절을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마사무네는 스페인인 "세바스티안 비스카이노"와 선교사 "루이스 소테로"의 도움으로 유럽의 갤리온을 모방한 "산 후안 바우티스타" 호를 건조한 후 천주교도인 하세쿠라와 소테로를 사절단의 단장으로 삼아 유럽에 보냈다.
파일:external/www.geocities.jp/hasekura-tsunenaga.jpg
하세쿠라 츠네나가의 항해도
1615년,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 유럽에 도착한 하세쿠라 일행은 스페인 왕 펠리페 3세를 알현하고 이어 로마 교황청에 들어가 교황 바오로 5세를 알현했다. 그는 유럽에서 귀족급의 대우를 받으며 스페인에서 세례도 받고 교황청에서는 로마 시민 증서도 받았다. 또 몇가지 초상화를 남겼는데 그중에는 현 이탈리아 총리 관저인 퀴리날레 궁에 그려진 벽화도 있다.(#)
이 때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다테 마사무네가 교황에게 보낸 친서에서 자신을 동북 지방의 왕으로 자칭했다는 것. 이미 일본의 사정을 알고 있던 교황 측은 마사무네에게는 일국을 대표할 외교권이 없는 것 아니냐며 따졌는데 사절단의 수행원인 루이스 소테로가 "그는 일본의 30만 천주교도들의 지원을 받아 왕위에 오를 것"이라고 해명했다는 것이다. 또한 스페인 왕에게는 군사 지원을 요청하는 등 마사무네가 도쿠가와 막부를 타도하기 위해 서양의 군세를 빌리려 했다는 설이 있다.
어쨌든 무역 허가서는 받아서 1620년에 귀국했으나 막부가 쇄국 정책을 펼치고 기독교를 탄압하자 이는 휴짓조각이 되고 만다. 그는 실의에 잠겨 2년 후 세상을 떠났다. 그를 수행했던 루이스 소테로도 일본에서 화형 당해 순교했고[2] 그가 가져온 물건과 자료들은 메이지 유신 때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이 물건들은 오늘날 국보로 지정되어 센다이 시립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3. 기타
- 마사무네의 명령으로 건조되어 하세쿠라 일행을 태우고 태평양을 왕복한 산 후안 바우티스타 호는 끝내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귀국길에 필리핀 마닐라에 기항했을 때 필리핀 총독이 네덜란드 해군과의 전투에 필요하다며 어거지로 배를 접수하려 했고, 하세쿠라 일행은 이를 거부하지 못하고 결국 스페인 측에 배를 매각했기 때문이다.
- 2014년 6월, 교황청을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바오로 5세와 하세쿠라 츠네나가가 그려진 그림을 선물하기도 했다.(#)
4. 창작물
- 대항해시대 오리진에서는 해당 사건이 각색되어 아예 다테 마사무네가 직접 유럽을 방문하는 것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