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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韓美聯合軍司令部 副司令官 Deputy Commander ROK-US Combined Forces Command | |
<colbgcolor=#000080><colcolor=#fff> 육군 대장 강신철 (제31대) | |
취임일 | 2023년 10월 31일 |
임관 | 육군사관학교 46기 |
관사 |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공관 |
소개 |
[clearfix]
1. 개요
한미연합군사령부의 부사령관. 계급상으로는 대한민국 육군의 대장이다.국군 대장 7명의 국군 의전서열은 '합참의장 > 육참총장 > 해참총장 > 공참총장 > 그 외 대장 3명순이다. 나머지 대장인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육군의 지상작전사령관, 제2작전사령관 중에서는 진급일이 빠른 순으로 서열이 높아진다.
2. 권한과 역할
국군과 미군으로 구성된 한미연합사에서 한국 측 사령관의 역할을 한다. 또한 '부사령관'이란 명칭답게 한미연합군사령관 부재시 역할을 대리하며, 지상작전사령부 창설 이전에는 전시 연합지상군구성군사령관을 겸임했다. 때문에 대한민국 육군 대장이 보임되었고[1] 해당 임무가 지상작전사령관에게 넘어간 이후로도 일단은 육군 대장이 임명되고 있다.[2]연합사 부사령관은 한미동맹 및 연합작전의 중요한 부분을 책임지는 자리다. 한미 연합-합동작전은 주한미군과 작전상 거의 모든 부분의 논의가 필요하고 특히 정보 사정은 미군의 수집 정보를 최대한 빨리 반영한 업데이트가 필수적이다. 이 협조의 총괄 책임자가 연합사 부사령관이다. 미군과의 협조, 연합사령관과의 친목, 한미동맹의 전도사 등 수행하는 업무 자체 특성상 영어를 못 하는 사람이 절대 앉을 수 없는 자리다. 역대 부사령관 중 평가가 나빴던 사람이라도 영어 못한다는 소리는 나온 적이 없었다. 인성에 대한 평가가 나빴던 신일순조차 군내 최고 엘리트에다가 미 육사 웨스트포인트 1호 유학생 출신이라서 영어를 매우 잘했다. 그 때문에 연합사 부사령관 통역장교가 역사적으로 고된 자리로 꼽힌다. 통역의 오류를 수행하는 장군이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리기 때문이다.[3]
이처럼 업무 특성상 연합합동작전 전문가+영어 마스터가 앉는 자리이기에 보직 무게감과 별개로 군 내에서 유능한 작전통 초엘리트가 부임한다. 야전 출신 비육사 장군은 지상작전사령관(전방작전)이나 제2작전사령관(후방작전담당)은 맡았지만 연합사 부사령관은 맡은 적이 없다. 사단장, 군단장 등 하급 부대 지휘관 경력만 있으면 어쨌든 진급시켜 보직을 맡길 수 있는 작전사령관에 비해, 연합사 부사령관은 한미연합합동작전에 대한 뛰어난 역량이 필요한 자리로 분류되었기에 역대 부사령관은 전원 육사 출신이며 합참/연합사 근무 경력이 많다.[4]
3. 보직 특성
대장 보직임에도 위에 사령관을 둔[5] 副(부)자가 붙는 자리이고, 휘하 병력이 적어서 대장 보직 중 영향력 없는 한직으로 보이기 쉬운데, 과거엔 육참총장을 최다 배출하기도 한 요직이었다.[6] JSA 경비대대 부대대장과 함께 부가 붙는 보직 중 요직에 해당하는 희귀한 경우다.[7]보직 관리 측면에서 야전군사령관/작전사령관보다 우월한 편이다. 휘하 5만 이상 병력을 둔 舊 야전군사령관/現 작전사령관은 휘하 부대의 온갖 사고의 관리 어려움 및 대형 사고 발발시 영전이 곤란해지지만, 연합사 부사령관은 2022년까지는 서울 용산기지, 현재는 평택 미군기지에 근무하며 휘하 병력의 관리 책임이 적기 때문에[8] 그러한 곤란을 겪을 가능성이 낮다.
다만 과거엔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등 2차 보직으로 가는 길로 여겨졌던 것에 비해, 최근엔 육군 대장 보직이 줄어 한 보직만 하고 전역하는 케이스가 대다수[9]라 대장 보직 중에선 실질적으로 지휘봉을 흔드는 작전사령관과 육군 조직 전체를 관리하는 육군총장에 비해 메리트가 적은 보직이 되었다. 거기다 한미연합군 부사령관이 겸임했던 한미연합지상군구성군사령관 보직도 지상작전사령관에게 넘어갔다. 종합하면 연합사 부사령관은 군의 외교관 정도로 역할이 축소되면서 예전보다 보직 중요성이 감소했다.
4. 왜 대장 보직인가?
한미연합사는 대한민국에서 사령관과 부사령관이 모두 대장 계급인 유일한 부대인데 이에 대해서는 한미연합사 창설 당시의 사정을 살펴봐야 한다.197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측은 주한미군 병력의 감축을 시시때때로 들고 나왔다. 1969년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리처드 닉슨은 전임자 시절 시작된 베트남 전쟁을 비판하고 중국과의 관계 개선(데탕트)을 공약으로 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당선된 후 베트남에서 미군 철수와 더불어 내친 김에 한반도와 일본 등 아시아 전체에서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한국과 일본의 미군 철수를 실제로 추진하지는 않았다. 닉슨의 주한미군 철수 발언은 그저 미국 내 반전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제스쳐 성격이 짙었지만, 1977년 대통령이 된 지미 카터는 자칭 '인권외교'를 추구하며,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이용해 한국을 압박해 왔다. 이에 한국 측과, 미군[10]은 반발했고, 병력 철수에 따른 안보불안의 대안으로 창설된 것이 연합사였다.
부사령관이 대장인 것은 이재전 장군(1927~2004. 육사 8기. 대통령경호실 차장 역임. 중장 전역)이 생각해낸 전략이다. 그의 회고록을 보면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대장인 차트를 보고, 박정희 대통령이 "아니, 이 장군. 사령관이 대장인데 어떻게 부사령관이 대장일 수가 있소?"라고 묻자 이재전 장군은 "각하, 한미연합사령관은 미군이기에 우리가 계급을 어찌할 수 없지만 우리 한국군이 맡는 연합사 부사령관을 대장으로 하면 미국도 울며 겨자 먹기로 대장을 보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라고 답변하였다 한다. 이재전 장군 회고록 #10 이게 육군이 내세우는 설명이긴 한데, 사실 국군 육군 대장 정원을 한 명이라도 더 늘려 보려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부터 말하자면 굉장히 좋았는데, 부사령관이 대장이 된 덕분에 사령관도 대장으로 임명되었고, 이 덕에 주한미군의 규모를 축소시키는 게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고정된 규모의 부대로 대한민국 국토방위를 고정적으로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한 효과를 낸 것이다. 만약,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의 계급이 대한민국 육군 대령일 경우, 한미연합군사령관의 계급이 심하면 미 육군 대령으로까지 떨어져, 주한미군이 대대 내지는 여단만 주둔하는 참사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실질 규모 뿐만 아니라 주한미군이 편제상으로나마 미'8군', 즉 야전군이란 규모를 갖추는 것도 이와 연관된다.
사실 미군은 사령관과 부사령관, 혹은 참모총장과 참모차장이 모두 대장인 일이 흔하다.[11] 당장 각군의 참모총장과 참모차장은 모두 대장이며, 해병대와 해안경비대의 사령관과 부사령관 역시 대장이다. 미국의 전례를 살폈을 때도, 우리측이 대장 부사령관을 임명하는 것이 무리수는 아닌 셈이었다. 거기에다 지휘를 받게 되는 연합지상군구성군사령관이 대장이라 사령관이 부재시에 대체해야 되는 부사령관도 대장은 되어야 한다. 물론 미군 입장에서도 4성 장군의 정원을 합법적으로 하나 더 둘 수 있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동의하에 놔두고 있다.[12]
가장 중요한 것은 진급할 4성 자리가 한 자리 더 난다는 것이다.
5. 역대 연합사 부사령관
지휘 체계 상 직속 상관이 육군참모총장이 아닌 한미연합군사령관이다보니 정기 인사에서 육군참모총장이랑 동기인 장성이 보임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육사 17기 김진영-김동진, 27기 김장수-이희원[13], 28기 박흥렬-김병관, 31기 한민구-황의돈, 36기 장준규-김현집, 41기 서욱-최병혁, 46기 박안수-강신철의 사례가 있다.남영신 총장이 나오기 이전의 육군참모총장 보직과 마찬가지로 육사 출신만 보임되는 자리인데, 야전군사령관 등 다른 대장 보직에 비해 합참/연합사 등에서 연합/합동작전을 한 경력이 중시되는 터라 그렇다. 비육사 출신 장교는 해당 분야에서 경력을 쌓을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기 때문.[14]
계급도 계급이거니와 미군을 부분적으로 지휘하는, 반쯤은 미군에 몸 담그는 자리이기 때문에 12.12 군사반란 때, 육군참모총장조차 억류하던 신군부가 연합사 부사령관 류병현 장군은 반쿠데타파였음에도 끝까지 건드리지 못했다.
||<-8><tablewidth=100%><tablebordercolor=#10007c><tablebgcolor=#fff,#1f2023><bgcolor=#10007c><color=#fff> 역대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
<rowcolor=#fff> 정부 | 역대 | 사진 | 이름 | 계급 | 임관 | 재임기간 | 기타 |
제4공화국 | 초대 | 류병현 | 육군 대장 | 육사 7기 | 1978. 11. 07. ~ 1979. 12. 13. | 합참의장,농림부장관 | |
2대 | 백석주 | 육군 대장 | 육사 8기 | 1979. 12. 21. ~ 1981. 09. | |||
전두환 정부 | 3대 | 박노영 | 육군 대장 | 예현[15] | 1981. 09. 08. ~ 1983. 08. | ||
4대 | 이상훈 | 육군 대장 | 육사 11기 | 1983. 08. ~ 1985. 09. | [국방장관] | ||
5대 | 한철수 | 육군 대장 | 육사 12기 | 1985. 09. ~ 1987. 08. | |||
6대 | 정진태 | 육군 대장 | 육사 13기 | 1987. 08. ~ 1989. 04. | [하나회] | ||
노태우 정부 | 7대 | 나중배 | 육군 대장 | 육사 15기 | 1989. 04. ~ 1990. 12. | [하나회] | |
8대 | 김진영 | 육군 대장 | 육사 17기 | 1990. 12. ~ 1991. 12. 03. | [육군총장][하나회] | ||
9대 | 김동진 | 육군 대장 | 육사 17기 | 1991. 12. 03. ~ 1993. 03. | [육군총장][국방장관] | ||
김영삼 정부 | 10대 | 김재창 | 육군 대장 | 육사 18기 | 1993. 03. 31. ~ 1994. 04. 19. | [하나회] | |
11대 | 장성 | 육군 대장 | 육사 18기 | 1994. 04. 19. ~ 1996. 10. 21. | |||
12대 | 김동신 | 육군 대장 | 육사 21기 | 1996. 10. 21. ~ 1998. 03. | [육군총장][국방장관] | ||
김대중 정부 | 13대 | 정영무 | 육군 대장 | 육사 22기 | 1998. 03. ~ 2000. 04. 28. | ||
14대 | 이종옥 | 육군 대장 | 육사 24기 | 2000. 04. 28. ~ 2002. 04. 10. | |||
15대 | 남재준 | 육군 대장 | 육사 25기 | 2002. 04. 10. ~ 2003. 04. 04. | [육군총장][국정원장] | ||
노무현 정부 | 16대 | 신일순 | 육군 대장 | 육사 26기 | 2003. 04. 04. ~ 2004. 06. 02. | ||
17대 | 김장수 | 육군 대장 | 육사 27기 | 2004. 06. 02. ~ 2005. 03. 31. | [육군총장][국방장관][청와대안보실장][주중대사] | ||
18대 | 이희원 | 육군 대장 | 육사 27기 | 2005. 03. 31. ~ 2006. 11. 21. | |||
19대 | 김병관 | 육군 대장 | 육사 28기 | 2006. 11. 21. ~ 2008. 03. 28. | |||
이명박 정부 | 20대 | 이성출 | 육군 대장 | 육사 30기 | 2008. 03. 28. ~ 2009. 09. 21. | ||
21대 | 황의돈 | 육군 대장 | 육사 31기 | 2009. 09. 24. ~ 2010. 06. 14. | [육군총장][초대자이툰부대사단장] | ||
22대 | 정승조 | 육군 대장 | 육사 32기 | 2010. 06. 24. ~ 2011. 10. 24. | [합참의장][제2대자이툰부대사단장] | ||
23대 | 권오성 | 육군 대장 | 육사 34기 | 2011. 10. 24. ~ 2013. 09. 27. | [육군총장] | ||
박근혜 정부 | 24대 | 박선우 | 육군 대장 | 육사 35기 | 2013. 09. 27. ~ 2015. 09. 17. | [마지막(제5대)자이툰부대사단장] | |
25대 | 김현집 | 육군 대장 | 육사 36기 | 2015. 09. 17. ~ 2016. 09. 22. | [하나회] | ||
26대 | 임호영 | 육군 대장 | 육사 38기 | 2016. 09. 22. ~ 2017. 08. 11. | [알자회] | ||
문재인 정부 | 27대 | 김병주 | 육군 대장 | 육사 40기 | 2017. 08. 11. ~ 2019. 04. 17. | [국회의원] | |
28대 | 최병혁 | 육군 대장 | 육사 41기 | 2019. 04. 17. ~ 2020. 09. 23. | [주한사우디대사] | ||
29대 | 김승겸 | 육군 대장 | 육사 42기 | 2020. 09. 23. ~ 2022. 05. 27. | [합참의장] | ||
윤석열 정부 | 30대 | 안병석 | 육군 대장 | 육사 45기 | 2022. 05. 27. ~ 2023. 10. 31. | [43] | |
31대 | 강신철 | 육군 대장 | 육사 46기 | 2023. 10. 31. ~ 현재 |
6. 기타
-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에게는 재임 기간 동안 거처할 수 있는 공관이 제공되며, 이는 국회의장, 대법원장, 외교부장관,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합동참모의장등의 공관과 함께 한남동 공관촌인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에 있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집무실 이전 및 2022년 11월 15일 한미연합군사령부의 캠프 험프리스 이전 완료로 인하여 기존 부사령관 공관은 대통령비서실장이 공관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부사령관 공관은 한미연합사가 위치한 캠프 험프리스로 이전하게 되었다.
- 한미연합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과 주한미군사령관을 겸하는 것과 다르게, 이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오로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만 맡고 있다. 유엔군사 부사령관[44] 과 주한미군 부사령관은[45] 각각 다 별도로 따로 있다.
7. 관련 문서
[1] 지상군의 주 임무인 지형 숙지와 민사작전 수행은 한국 육군이 미국 육군보다 수월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장비 우수성이 작전 성패를 좌우하는 해군구성군사령관은 평시에는 한국 해군작전사령관이, 전시에는 미합중국 해군 제7함대사령관이 맡으며, 공군구성군사령관은 미 공군 제7공군사령관이고, 부사령관은 한 공군 공군작전사령관이 겸임한다. 해군의 경우 한국 주둔 미국 해군이 함정은 한 척도 없는 지원부대 수준이고 사령관도 준장~대령급으로 비중이 낮아서,(아시아 미 해군은 주일미군이 대부분이다.) 전시 7함대가 이동해 오기 전까진 사실상 한미 연합 해군 전력은 거의 100% 한국 해군 소속이기 때문에, 평시 구성군사령관을 한국 측에서 맡는다.[2] 부사령관을 4성장군으로 박아놓으면, 미국 측에서도 연합사 사령관을 반드시 대장으로 보임시켜야 하기 때문. 4성장군의 파견을 강제하면 자연히 주한미군의 규모를 넉넉히 확보하는 효과가 따라온다.[3]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김승겸 대장. 연합사 재직 시절 통역장교를 갈군 일화가 한 둘이 아니다.[4] 주로 비육사가 가던 제2작전사령관은 역대 역임자 대다수가 합참, 연합사 근무 경력이 적고 이전 계급이 늦은 상태에서 비육사 T/O로 발탁 진급하여 사단장, 군단장 등 야전 지휘관 경력은 보유하고 있지만 고위급 주요 참모 경력이 거의 없다.[5] 편제상일 뿐이다, 사령관과 부사령관은 각각 미군과 한국군의 대표로서 사실상 동일선상에 있다.[6] 권오성 총장을 마지막으로 연합사 부사령관 출신 총장은 커녕 9년간 다음 보직을 받은 사람이 없이 죄다 그 자리에서 전역하며 빛이 바랜 이야기이다. 김승겸 부사령관이 9년만에 합참의장으로 2차 보직을 받았다. 실질적으로 육참총장이 대장 1차 보직으로 변화한 점도 있지만 전시 연합지상군구성군사령관 직을 지상작전사령관에게 넘기게 되면서 안 그래도 높았던 1군과 3군이 합쳐진 지상작전사령관의 위상이 더욱 올라간 것의 영향 때문이다.[7] 국군에서 부가 붙은 자리는 진급이 누락되어 전역이 예정된 장교가 마지막 여가를 보내는 편한 한직인 경우가 많다. 다만 부 자 보직이 붙은 한미한 보직은 이름만 올려두고 파견/교육/보직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8] 평시 편제 기준으로 연합사 부사령관 휘하 병력은 미군과 한국군 기행부대라 머릿수도 적고, 연합사령관도 있으니 책임도 분산된다.[9] 육군참모총장은 과거와 달리 거의 1차 보직화되었고, 합참의장은 육군, 특히 육사에 배분되는 일이 많이 줄었다.[10] 미국이 아니라 미군이다. 문민통제 원칙이 있다 해도 미국 대통령과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남은 거의 유일한 야전군사령부의 상징성까지 있었으므로, 미군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은 미군과 긴밀히 협의하여 감축 의지를 돌려놓기도 했다.[11] 나토군도 그렇다.[12] 사실 미군은 계급 인플레이션이 심해서 전 군에 대장만 50명 정도 된다. 사실 미군에 대장이 너무 많은 거 아니냐며, 안팎에서 지적이 많이 들어오고 있는 부분이다. 현재 약 50명 되는 대장 인원도 그나마 지난 수년간 대장 정원이 조금씩 감축돼서 저렇게 된 것이다. 미군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군대에서는 대장이 몇 명 되지 않는다. 대장이 8명이었다가 최근 7명으로 감축된 대한민국 국군도 사실은 미군을 제외한 타군에 비하면 대장 정원이 많은 편인데(그나마 군대 규모가 꽤 되기 때문에 이게 가능했다), 이렇게 된 것도 사실 미군과 어느 정도는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직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나라 군대도 원래는 대체로 4성 장군이 각군에 한 명 정도지만 미군에서 하도 대장이 수십 명씩 넘쳐나니까 NATO 등에서 미군과 급을 맞추기 위해서 서서히 대장 정원을 늘려가는 나라도 있다. 영국군의 경우에는, 군대가 소규모라 대장은 몇 명 안 되지만 그 대신 장교들 중에서 장성급 장교의 비율이 매우 높다.[13] 대장 2차 진급하면서 동기인 김장수의 후임 부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14] 중장 계급의 합참 작전본부장, 소장 계급의 합참 작전/작전기획부장, 연합사 작전참모차장, 준장 계급의 합참 작전1처장과 연합사 작전처장, 대령 계급의 합참 합동작전과장과 작전기획과장, 연합사 지상작전과장과 연습과장 등 연합사 부사령관 직무 수행 능력 자산이 될 만할 주요 연합/합동작전 참모 보직부터 육사 출신이 독점하기 때문에 그렇다.[15] 예비역에서 현역으로 전환했다는 의미로 창군당시 지금의 미국의 주방위군과 같은 예비군으로 창설된 호국군의 장교 양성기관인 호국군사관학교 출신이다. 호국군은 1948년 창설되었다가 1949년 국군에 통합되었으며 호국군 간부들은 국군으로 편입되었다. 박노영 대장은 바로 그 호국군사관학교를 나온 유일한 국군 대장이다.[국방장관] [하나회] 하나회 멤버[하나회] [육군총장] [하나회] [육군총장] [국방장관] [하나회] [육군총장] [국방장관] [육군총장] [국정원장] [육군총장] [국방장관] [청와대안보실장] [주중대사] [육군총장] [초대자이툰부대사단장] [합참의장] [제2대자이툰부대사단장] [육군총장] [마지막(제5대)자이툰부대사단장] [하나회] [알자회] [국회의원] [주한사우디대사] [합참의장] [43] 최병혁 대장 이후 3연속으로 육참차장을 역임한 장군이 보임되었다. 육참차장 출신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은 중장 시절 합참 작전본부장을 역임했던 강신철로 끝났다.[44] 전/후방 담당 2명이 임명되는데 한자리는 미 제7공군사령관이 겸직하고 다른 한자리는 유엔군 소속의 중장급 장교가 파견되어 임명된다.[45] 미합중국 공군의 제7공군의 사령관이 겸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