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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원(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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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원
파일:gwvjqgivwjccuczivaobqoblqblwbl ehwowbosb H.jpg
<colbgcolor=black><colcolor=white> 본명 <colbgcolor=white,#1e1e1e>한상원
출생 1960년 11월 14일 ([age(1960-11-16)]세)
서울특별시
본관 청주 한씨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버클리 음악대학(학사)
뉴잉글랜드 음악원 대학원(중퇴)
직업 기타리스트, 작곡가, 프로듀서, 교수
장르 펑크, , 재즈 록
활동 기간 1976년 ~ 현재
가족 관계 아버지 한운사, 어머니 이연순
배우자, 슬하 2녀
약력 호원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
現 한상원밴드 리더
긱스 기타리스트

1. 개요2. 상세
2.1. 활동2.2. 음악적 견해에 관한 논란
3.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기타리스트, 교수로, 현재는 본인의 이름을 딴 한상원밴드의 리더 겸 호원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 상세

2.1. 활동

미국 보스턴의 명문 음대인 버클리 음악대학 입학, 뉴잉글랜드 음악원 대학원 1년 중퇴. 재즈 기타리스트로 주로 분류되지만 본인은 자신이 재즈 기타리스트가 아니라고 부정하며, 자신은 훵크(Funk) 기타리스트라고 한다.

재즈 피아니스트인 정원영과는 소울메이트라 할 정도로 학창시절부터 같이 해온 사이. 이적과 함께한 밴드 '긱스(Gigs)'로도 알려져 있으며 당시 천재 뮤지션이라 불렸던 정재일을 발굴해낸 장본인이다.

자신의 네이밍밴드인 한상원밴드를 이끌며 꾸준한 활동을 하였다. 더불어 정원영과 함께 호원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로 교편을 잡았다.

정원영이 2011 스위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TOP밴드/시즌 1에서 맡은 팀들을 보살피지 못하자 한상원이 대신 나서서 도와주기도 했다.

1997년에 발매한 그의 솔로 2집 앨범인 "Funky Station"은 상당한 명반이지만, 애석하게도 아는 사람만 안다. 음반의 완성도도 뛰어나지만 이소라, 신해철, 이현도, 유앤미블루 등 객원 보컬로 참여한 뮤지션들도 후덜덜 하다.

특히 이현도와는 2집 Funky Station에 객원 보컬로 참여한 인연을 이어가서, 이듬해 이현도와 함께 프로젝트 앨범 D.O.Funk를 제작하게 된다. 하지만 이 앨범의 타이틀곡인 '폭풍'으로 지상파 방송에서 이현도와 함께 앨범 활동을 할 때에는, 안타깝게도 이현도와 한상원이라는 각기 다른 장르의 거장 뮤지션들의 음악적 만남을 조명하기 보다는 특별히 섭외한 스포츠 머리의 유명한 흑인 댄서 Flat Top에 초점을 많이 맞추는 바람에 무대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한상원은 거의 병풍취급 받았다.

또한 유명한 펜더빠로서 실용음악 전공자들이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를 주로 사용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한상원 때문이다.[1]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62빈티지 리이슈 모델을 들고 오면 점수를 잘 준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래서 한때 그 모델은 입시 표준 기타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문외한들까지도 펜더 기타가 최고인 줄 알게 되었다고. 자세한 내용은 펜더빠 참고. 그런데 본인은 인터뷰에서 펜더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빠는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2] 실제로 2023년 시점에는 공연에서 윤병주에게 받는 2003년식 Les Paul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2014년 11월, 한상원 '선생님'이 아니라 한상원 '씨'라고 불렀다가 욕먹었다는 글을 기점으로 예전에 했던 발언들이 발굴되면서 다시 한 번 줄기차게 까였다. 조새트리아니, 잉베이맘스틴, 로이뷰캐넌 등 실질적으로 실력이나 업적으로 까는 게 불가능한 사람들을 되도 않은 개소리로 비판했던 과거 발언이 주된 문제. 하필 앞서 언급했던 오보홀 사건의 관련자로 이름이 거론되었던지라 그를 옹호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비난 여론은 곧 수그러들긴 했으나 썩 좋은 인상을 남기진 않은 듯 하다.

사실 한상원은 동료 뮤지션이나 음악계 종사자들에게는 많은 도움을 준 인물이다. 일례로 1996년경 핫뮤직에서 '한국의 기타리스트 100인'이라는 커다란 기획 기사를 낼 때 한상원이 적극적으로 나서 취재를 지원해주었으며 헤비메탈을 싫어한다는 세간의 평이 무색하리만치 국내의 다양한 뮤지션들과 교류했다.[3]

낙후되어 보였던 당시 국내 음악씬에 대한 반발심리였는지 1세대 유학파로써의 자부심이 순간적인 오만함으로 표출되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많은 업적과 공로가 있음에도 과거의 망언들에 계속 발목을 잡히며 명성에 큰 흠집을 냈다.

이렇게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그래도 한상원은 국내의 펑크 및 블루스 기타계의 대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4] 오랜 밴드 활동을 통해 펑크 음악계에선 거의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서 국내 펑크 음악계의 시조라 불리는 사랑과 평화의 리더인 최이철과의 음악적 교류도 깊은데다 함께 합동공연도 하였을 정도고, 블루스 쪽에서도 역시 그의 음악적 조예를 인정받아 국내 블루스 음악계의 대모인 한영애와 무대에 함께 서는 경우가 많다. 특히 2012년 6월 10일 나는 가수다 2에 새로 투입된 한영애의 첫 경연 무대에도 기타 세션으로 등장하여 현란한 기타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2.2. 음악적 견해에 관한 논란

개인적으로 블루스, 펑크, 재즈 계통 음악을 선호하며, 메탈 음악을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다 이러한 편향된 경향을 여과없이 드러내기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90년대 후반 SUB라는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잉베이 말름스틴, 조 새트리아니, 알 디 메올라등의 테크니션들이 미국에서는 piece of shit이라고 불린다는 둥 근거 없는 헛소리를 지껄이며 노골적으로 깠다가 질타를 받았으며 이에 분노한 기타리스트 안회태는 한상원을 비판하는 글을 '뮤지션과 무지션'이라는 제목으로 핫뮤직에 투고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 밴드 경연대회 등의 심사위원을 할 때 팝/재즈/블루스 계통 밴드에만 높은 점수를 주고 록/메탈 밴드에는 0점에 가까운 낮은 점수를 준 적이 있다고 한다. TOP밴드에서는 메탈밴드에게 "이건 음악이 아니에요." 같은 개소리를 해서 메탈헤드들에겐 쓰레기 목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정도. 사실 메탈헤드 중에서도 국내 밴드 경연대회 같은 데 별 관심이 없어서 앞의 사정을 모르고 한상원을 실드치던 무리도 많이 있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완전히 돌아서게 되었다.

그 외로는 PC통신 하이텔 동호회에서 조 새트리아니는 그루브와 감정이 없어서 형편없다고 깠었고 크로스오버/세션 기타리스트인 리 릿나워의 연주를 들으면 피킹이 불안해서 못 듣겠다고 깐 적도 있다. 다만 장르와 관계없이 이현석, 인재홍등의 국내파 기타리스트들이나 스티브 바이처럼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갖고있는 기타리스트들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했다.

3. 여담

  • 작가 한운사의 아들로 4남중 막내이다.
  • 홍상수 감독이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음악을 지망했었는데, 이때 레슨을 해주었다고 한다.
  • 매주 금요일 저녁 '천년동안도' 재즈클럽[5]에 가면 한상원밴드의 공연을 볼 수 있다.# 주로 자신이 가르치는 호원대 학생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 에서 활동하던 '오보홀'이라는 마개조 약팔이의 고객 중 하나로 이름이 잠시 거론 된 적 있으며, 오보홀이야 본인이 대놓고 좋다거나 하는 리뷰를 남긴 적이 없기 때문에 약팔이만 까였었고, 되려 '저사람 뭔데 한상원 이름을 들먹이나 한상원은 한 마디도 안 하드만' 같은 반응이 오히려 주류였다.
  • 이적 냉면 이적 중 짤방에서 이적냉면이적시킨 장본인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이 아니다. 딴지일보에서 과거 이 사진을 분석해본 특집 기사가 있는데#, 면 다발이 각 그릇들에 걸쳐진 형태로 미뤄볼 때 아래 냉면 그릇의 면을 위쪽 그릇으로 옮기는 도중이라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점, 이적의 표정이 화가 나거나 당혹스러워보이는 표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진 우측 하단 끄트머리에 이미 이적의 냉면 그릇이 있다는 점으로 볼 때 실제 한상원이 이적의 냉면을 본인 그릇에 덜어가는 모습이라 보긴 힘들어보인다는 결론을 냈다. 나중에 해당 사진에 대해 이적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사진은 한상원이 맞은 편에 앉아있는 긱스의 드러머 이상민의 냉면을 덜어주는 장면이었다고 하며, 저 장면에서 본인이 지은 표정의 의미는 "(아무리 덜어주는 거라도)저건 좀.." 정도였다고 한다. 여담으로 해당 사진이 찍힌 음식점은 평양면옥의 서울 논현동 지점이라고 한다.
파일:external/oi50.tinypic.com/23mfew.jpg


[1] 한국 실용음악과 학생들이 양산형 펑키음악을 주로 연주하게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2] 한 예로 나는 가수다 2에서 한영애의 무대에 게스트 연주자로 섰을 때는 레스폴을 사용하기도 했다.하지만 이런 걸 쥐어준다면?[3] 공돌이파파 유튜브의 출연 영상에서 헤비메탈 기타리스트로 분류되는 신대철과 친분이 있음을 보이기도 했다.[4] 다만 '1세대 유학파'라는 간판과 인맥질 및 정치질로 지금의 위치에 온 거품이라는 평도 있다. 명성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실력이라는 의견들도 꽤나 있는 편.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5] 낙원상가 인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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