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성 HAESUNG | |
<colcolor=#FFF> 정식 명칭 | 해성그룹 |
영문 명칭 | Haesung Group |
국가 | 대한민국 |
기업 규모 | 중견 기업 |
창업주 | 단사천 |
회장 | 단재완 |
주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504 해성1빌딩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508 해성2빌딩 |
웹 사이트 | 해성산업 계양전기 한국제지 해성디에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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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북 출신 실향민이었던 단사천 회장이 창업한 기업이다. 처음에는 재봉틀 제조 사업으로 기초 자금을 모았고, 이후 기업 사채와 사업 확장을 병행하면서 한국제지, 계양전기, 한국팩키지, 해성디에스, 해성산업, 세하를 산하로 두고 있다.이렇게만 보면 그냥 평범한 중견기업인데, 창업주 단사천 회장에 얽힌 일화를 이야기하자면 단사천 회장은 같은 이북 출신인 백희엽과 함께 명동 사채업계를 주름잡던 인물로, 전성기에는 천하의 이병철과 정주영 같은 재벌 회장들에게도 돈을 빌려주고 전화를 걸면 그들마저도 벌떡 일어서서 받을 정도의 엄청난 현금부자였다고 한다.이 때문에 과거 단 회장을 둘러싸고 재계와 명동 사채시장에서는 ‘그가 마음만 먹으면 재벌 몇 정도는 금방 날려버릴 수 있다’, ‘그가 부르면 기업 총수들도 두말하지 않고 달려온다’는 식의 무성한 소문들이 떠돌기도 했다.
은행 등 금융시장의 자금조달 능력이 기업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던 경제개발 시기, 단 회장은 현금에 목말라 있는 기업들에게 돈을 자주 빌려주었다. 사채업계를 주름잡았던 단 회장이 큰 돈을 빌려주면서 기업이나 공장, 토지 등을 담보로 잡아 일부에서는 그를 ‘재계의 전당포’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특히, 1960년대 중반, 삼성그룹의 연간 영업이익이 180억 원이었던 시절에는 자기 자금에 산하 쩐주들까지 합쳐서 하루 안에 동원할 수 있는 자금력이 60억 원에 달했으며, 1960년대 후반부터 납세실적 상위자 명단에 랭크되기도 했었다. 1980년대에는 동원 가능한 현금액이 무려 3천억 원이었다고 한다. 당대 대한민국의 현금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지금도 테헤란로에 해성 1/2 빌딩을 비롯한 알짜배기 부동산들을 오너 집안이 직접 보유하고 있고, 다른 기업들도 현금흐름과 재무구조가 견실하다고 한다.기사
이 외에도 해성국제컨벤션고등학교와 해성여자고등학교[1]도 소유하고 있다.
2. 지배 구조
해성산업 HAESUNG INDUSTRIAL | |
주주명 | 지분율 |
단재완 | 28.05% |
단우영 | 12.19% |
단우준 | 12.06% |
참조기사
3. 계열사
3.1. 한국제지
국내 최초로 백상지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62년 8월 국내 최초로 백상지를 홍콩에 수출했다. 1966년 12월 회사 이름을 한국특수제지공업(주)에서 지금의 한국제지(주)로 바꿨다. 1967년 6월 안양공장 1호 코터를 신설하고, 장망식 초지 2호기를 증설한 뒤 아트지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70년 1월 해성문화재단을 세우고, 1971년 6월 주식을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1972년 6월 학교법인 해성학원을, 1977년 4월에는 계양전기를 설립했다.1982년 국내 최초로 중성 초조기술을 적용, ‘천 년의 종이’라 일컬어지는 중성지를 개발하여 국내 중성지 시대를 열었으며, 1983년 원지 위에 도공액을 두 번 코팅하는 더블아트지를 생산해 국내 아트지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1987년 8월 기술연구소를 세웠다. 1989년 8월 온산공장을 준공하고 쌍망식 초지 1호기를 신설했다. 1993년 4월 더블아트지 생산을 개시했고, 11월에는 (주)한국팩키지를 설립했다. 1998년 11월 무역의 날에 '1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2003년 1월 스티커용 우표용지, 내알칼리성 라벨지를 개발했다. 2004년 8월 고품격 프리미엄 아트지인 ‘Hiper X-PRI’를 개발해 출시했다. 2011년 5월 프리미엄 복사지 ‘밀크(miilk)’를 출시했다. 2012년 6월 무광택 미도공지 ‘아르떼(ARTE)’를 출시하며 국내 인쇄용지 품질을 세계 정상의 수준으로 올려 놓았다. 2013년 2월 중국 특수지 사업장인 국일제지(장가항)유한공사의 지분 100%를 인수하였다.
2020년 5월 백판지 제조업체 세하를 인수하였다. 2020년 7월 해성산업을 존속법인으로 흡수합병되었으며, 11월에 지류 제조 및 판매 등 제지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하여 한국제지(주)를 설립하였다.
3.2. 해성산업
해성그룹 지주회사이자 부동산업체. 건물 임대사업과 시설관리사업을 하고 있다. 해성산업은 대주주 일가 소유의 해성1,2빌딩[2]과 회사 소유의 해남1,2빌딩, 송남빌딩, 부산 송남빌딩, 우영테크노센터 등 다수의 빌딩을 관리하고 있다.지배구조개편의 일환으로 2020년 7월 해성산업을 존속법인으로 하여 한국제지(주)를 흡수합병을 하였으며, 11월에 지류 제조 및 판매 등 제지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하여 한국제지(주)를 설립하였다. 분할 후 존속회사인 해성산업이 분할대상 사업부문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부문을 영위한다.
3.3. 계양전기
자세한 내용은 계양전기 문서 참고하십시오.1977년 세워진 공구 제조 전문 업체다. 설립 이후 지금까지 전동공구를 주력 제품으로 사업을 해왔다. 1982년 국내 최초로 전동공구에 KS마크를 획득했고 1988년 주식을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창업자는 역시나 황해도 해주 출신인 단사천 회장이다. 그는 18세 때 서울로 내려와 일만상회라는 재봉틀 조립회사를 세우며 사업을 시작했다.계양전기의 주력 사업 분야는 전동공구 등 산업용품과 자동차 전장품(배터리에서 전원을 받아 작동되는 전기 전자 부품)이다. 산업용품 분야에서는 그라인더, 드릴, 절단기 등 전동공구와 양수기, 살포기, 분무기 등에 사용되는 소형엔진을 생산한다. 초소형 세경 그라인더, 전기식 절단기, 파쇄형 해머, 전기 스크루드라이버 등을 모두 국산화했다. 그라인더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약 60%, 드릴과 절단기의 점유율은 약 65%다.
3.4. 한국팩키지
1993년 11월 8일 한국제지(주)에서 분사하여 설립한 뒤 1999년 12월 코스닥에 상장하였다. 우유팩 제조업체로, 마시는 우유를 잘 살펴보면 한국팩키지라 써졌을 가능성이 크다.3.5. 해성디에스
2014년 3월 6일에 설립된 차량용 반도체 기판(리드프레임)을 생산하는 기업, 경남 창원시 성산구 성주동에 본사와 공장이 있다.(舊)삼성테크윈 사업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