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8-05 12:18:51

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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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 루벨스키에
시간대 UTC+01:00 (GMT)[서머타임]
인문 환경
인구 56,127명
면적 39.97km²
언어별 명칭 폴란드어 Chełm
영어 Chelm
러시아어 및
우크라이나어
Холм
이디시어 כעלם

1. 개요2. 상세3. 역사
3.1. 헤움 유대인 우화
4. 경제5. 기타

1. 개요

폴란드 루벨스키에 주 동부에 위치한 도시. 헤움군의 주도이기도 하지만 도시군 분류상으로는 별개 도시군으로 간주된다.

2. 상세

지명의 유래는 원시 게르만어 단어 '훌마즈(hulmaz)'가 변한 원시 슬라브어 단어 '훌무(xъlmъ)'로 추정된다. 이는 언덕이란 뜻으로, 현재까지도 헤움에 위치한 헤움스카(Chełmska)[2]을 일컫는 단어였다.

인구는 약 55,000명으로 추산되며[3] 이는 루벨스키에 주 인구 수 3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는 2000년대에 이르러 인구가 감소한 것이며, 1999년에는 7만 명이 넘어갔었다. 특히 청년층~아동층 인구는 20년 사이 절반이나 줄어 고령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종교는 기독교가 압도적이다. 주민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이나 정교회, 복고 가톨릭 교회(폴란드 가톨릭 교회), 재림교회, 침례교회 등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15세기 이후 이주한 유대인들이 20세기 초까지 인구 절반이 넘어가도록 번성하여 유대교가 널리 퍼졌는데, 제2차 세계대전 때 홀로코스트를 겪고 종전 후 유대인들이 모두 이스라엘로 이주하여 현재는 없다시피 하다.

3. 역사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헤움을 포함한 폴란드 서부 지역은 구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정착한 곳이었다.

7세기 말~8세기 초 서슬라브 부족 중 하나인 렝지아니(Lędzianie)족의 세력권에 포함되었으나, 981년 블라디미르 1세에 의해 함락되어 14세기까지 키예프 루스 영토가 되었다. 1378년에 헝가리 왕국크로아티아 왕국폴란드 왕국 국왕 러요시 1세 치하에 복속되었고, 1382년 러요시 1세가 둘째딸 야드비가에게 폴란드 왕국을 물려준 뒤 1387년 폴란드 영토로 최종 확정되었다. 1392년, 주요 도시로서 자치권을 인정받은 뒤, 15세기엔 귀족 법원이 들어서고 16세기엔 석회암 채굴을 시작하며 경제 및 인프라적으로 크게 발전했다.

하지만 1648년 보흐단 흐멜니츠키카자크 대봉기에 말려든 것을 시작으로 다시 대격변에 휩싸이게 되는데, 대봉기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군이 어찌어찌 막아냈지만 패배한 카자크루스 차르국을 끌어들이고 스웨덴칼 10세 구스타브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과 손잡고 전쟁에 끼어들어 주변 지역이 그야말로 쑥대받이 되자 폴란드-리투아니아 민중 봉기의 중심지 중 하나가 되어 요새화되었다. 그럼에도 시대의 급류를 온전히 막아내지는 못하여 끝내 폴란드 분할이 발생했고, 1795년 합스부르크 제국 영토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그 후로도 1809년에는 프랑스 제1제국 치하 바르샤바 공국이, 1815년엔 러시아 제국 치하 폴란드 입헌왕국이 차지하고, 1912년부터는 아예 정식으로 러시아 제국 영토인 헤움 주의 주도가 되었으며, 1915년 제1차 세계 대전동맹국 주둔지가 되었다가 1918년 폴란드가 폴란드 제2공화국으로서 독립하고 나서야 겨우 다시 폴란드 영토가 된다.

러시아 치하 입헌왕국 시절인 1877년에 연결된 철도 덕에, 폴란드 제2공화국 시기의 헤움은 국립 동부 지역 철도국이 설치되고 신시가지까지 개발되며 나름 확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제2공화국의 잦은 쿠데타와 좌우 대립, 독재, 호시탐탐 폴란드를 노리는 독일과 소련의 외환 탓에 정세가 안정되지 못하고, 결국 1939년 9월 1일에 나치 독일폴란드를 기습 침공하며, 같은 해 10월 8일에 독일군에 의해 완전 점령된다. 2년 후인 1941년에 나치는 헤움에 '슈탈라그 319(Stalag 319)'라는 포로 수용소를 세웠고, 이때부터 1944년까지 폴란드군 포로들과 헤움에 거주하던 유대인들 약 20만 명이 이곳에 갇혔으며, 그 중 9만여 명이 사망했다.

1944년 7월 21일에 소련군과 폴란드 망명정부 본토 지부 치하 무장조직[4]의 협공으로 다시 폴란드 치하에 들어갔으며, 당월 말까지 비공식 수도 취급을 받았으나 폴란드 인민공화국 정부가 명목상 수도를 바르샤바로 정하고 나치 독일에 의해 파괴된 바르샤바를 재건하는 동안 1984년까지 실질적 수도를 우치로 간주함에 따라 비공식 수도 직함을 내어 줘야 했다.

1975년부터 1998년까지 존재했던 헤움 주(폴란드)의 주도였으나, 이후 헤움 주가 해체되고 루벨스키에 주에 편입되었다.

3.1. 헤움 유대인 우화

헤움에는 15세기부터 17세기 중반까지 지속된 경제 성장기와 전성기에 유대인들이 대거 이주하면서, 구약성경(타낙)과 탈무드에서 비롯된 유대인들 간의 우스갯소리나 기존 거주민인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을 조롱하기 위해 지어낸 농담들이 지어지고 전파되었다. 그러던 19세기에 계몽주의가 대두되면서 아슈케나짐을 주축으로 하여 유대 전통적 요소를 통합하려는 시도가 속속들이 등장했고, 이 과정에서 이디시어 문학이 발전하였다. 하지만 20세기에 이르러 반유대주의가 확산되어 한동안 문학계에서 묻혔다.

그러던 중 유대인 차별이 덜했던 미국에서는, 1935년 미국으로 이주한 폴란드계 유대인 작가 겸 언론인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Isaac Bashevis Singer[5], 1902-1991)가 유대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신문인 더 포워드(The Foward)에 헤움을 배경으로 한 유대인 유머를 이디시어로 표기하여 기재하였고, 1966년 이들을 <헤움의 바보들과 그들의 역사(The Fools of Chelm and Their History)>라는 전연령판 유머집으로 엮어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1973년에는 이를 영어로 번역하여 비유대인 사이에서도 인지도를 쌓았다.[6]

헤움 유대인 우화는 중근세에 유대인이 다수 거주했던 헤움에서 종종 발생한 유대교적 가치관과 기독교적 가치관의 충돌을 모티브로 하여,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유대인들이 해결 방안이랍시고 황당하고 몰상식한 망상을 떠올려 무작정 진행하거나 외부인에게 속아넘어가서 일을 더 망치고 마는 줄거리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오래도록 차별받으면서도 전통적인 종교와 문화를 고수하며 독자적인 생활 방식을 형성한 역사를 반영하여, 이렇게 일을 망쳐버린 상황에서도 나름의 방식으로 이를 수용하는 결말로 끝나곤 한다.

헤움 유대인 우화는 보통 아래 문구로 시작한다.
신께서 세상을 창초하시고, 그 세상을 사람으로 채우셨습니다. 신께서는 이어서 천사를 시켜 사람들의 지혜와 어리석음을 모아 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신의 명령을 따라 지혜와 어리석음을 모으고 보니, 어리석음이 든 자루가 지혜가 든 자루보다 훨씬 크고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그것을 들고 날아가려 해도 어리석음이 든 자루는 계속 땅에 끌리면서 헤져 버렸고, 헤움스카 산에 다다르자 산꼭대기에 걸려 찢어져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자루에서 빠져나간 어리석음이 모두 헤움으로 떨어져 버렸고, 이 때문에 헤움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헤움 사람들은 자기들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이들이라고 믿습니다.

헤움 유대인 우화의 예시로 아래 유머들이 있다.
세계적인 산업화와 교통 및 통신 기술 발전에 맞춰, 헤움 사람들도 마을 공동 시계의 필요성을 실감했습니다. 하지만 최신식 시계탑을 지으려니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서, 그나마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해시계를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날, 해시계 안에 눈이 쌓여서 시간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헤움 사람들은 이와 같은 불상사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 의논하다가, 처음에 해시계를 설치했던 장인들을 다시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해시계에 튼튼한 지붕을 달아서 비나 눈이 와도 시간을 볼 수 있게 해 주시오."[7]

장인들은 어이가 없었지만, 돈만 받을 수 있으면 다른 건 그들이 알 바 아니었기에 묵묵히 지붕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떤 헤움 사람이 자모시치의 시장에서 살아 있는 송어 한 마리를 샀습니다.

그런데 이 송어를 장바구니에 집어 넣으려는데, 이놈이 꼬리로 그 헤움 사람의 뺨을 '찰싹!' 하고 때리고 말았습니다.

헤움 사람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이 송어를 헤움 법원으로 데려가 고소해 버렸습니다.

헤움 법원은 송어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중범죄자로서 강에 빠뜨려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8]
헤움의 한 대장장이가 어느 날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싶어서 모스크바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대장장이는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새벽에 출발해 무작정 모스크바로 걸어가다가, 점심때에 잠이 와서 낮잠을 자기로 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나아가려는 방향을 착각하지 않기 위해, 신발을 벗어서 신발끝이 모스크바를 향하도록 가지런히 놓고는 잠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그 신발을 발견하고는 자기 발에 맞을지 살피기 위해 들어올렸다가, 너무 낡은 신발이라 갖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제자리에 놓고 다시 갈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신발끝이 어디를 향했는지 신경쓰지 않아서 헤움 쪽을 향하도록 놓아 버렸습니다.

대장장이는 그런 줄도 모르고 곤히 자다가, 일어나서 신발끝이 향하는 쪽을 확인하고는 다시 신발을 신고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빨리 모스크바에 도착한 게 아닌가요?[9]

더욱 놀라운 사실은, 분명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텐데 풍경이 헤움이랑 다를 게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건물의 모양과 배치도, 사람들의 모습도 똑같았고, 심지어 헤움이라면 자기 집이 있을 곳으로 가 보니 자신의 가족들과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가장도 자신처럼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고 합니다.

대장장이는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알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 보려 했지만, 다들 저마다 바쁜 사정이 있다며 제대로 대꾸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대장장이는 세상 사람들은 본래 모두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서로 간의 오해로 모두 다르게 살아간다고 착각할 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모스크바에서 자신과 똑같이 살던 대장장이가 돌아올 때까지 그곳의 가족들의 가장 노릇을 하며 지내다가 그가 돌아오면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전해 주기로 결심했습니다.

4. 경제

16세기에 시작된 유서 깊은 석회암 광업이 경제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오늘날 헤움의 주요 산업으로는 우크라이나에 연결된 화물 운송 철도를 위시한 무역업과 1960년 시멘트 공장 건립 및 직후 유리 제조업 활성화로 크게 성장한 제조업이 꼽힌다. 또한 폴란드에서 가장 현대화한 유제품 공정을 거치는 비엘루흐(Bieluch) 공장이 위치한 지역이기도 하다.

5. 기타

남쪽으로 자모시치와 접하다 보니 역사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엮이는 일이 많다. 상술한 헤움 우화에도 자모시치가 종종 나오는데, 보통 번성하고 세련된 자모시치인들과 어리석은 헤움인들을 비교하며 조롱하거나 현대 도시인의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를 비판할 때 주요 소재로 나타난다.

이름이 비슷한 헤움노(Chełmno) 시[10]와 헷갈릴 수 있는데, 헤움은 루벨스키에 주의 도시인 반면 헤움노는 한참 떨어진 쿠야프스코포모르스키에 주에 위치한 도시로 서로 접경하지도 않는다. 지역 문화적으로도 헤움은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쪽에 가깝고, 헤움노는 독일 쪽에 가깝다.


[서머타임] [2] 구라 잠코바(Góra Zamkowa)라고도 불린다.[3] 2023년 기준[4] 일명 국내군(Armia Krajowa)[5] 폴란드어 이름은 Yitzchok Bashevis Zinger, 이디시어 이름은 יצחק באַשעוויס זינגער. 둘 다 "이츠호크 바세비스 징게르"라고 읽는다.[6] 이로써 인기 작가의 반열에 든 싱어는 1978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7] 해시계는 시계 한가운데의 바늘에 햇빛이 비쳐 생긴 그림자로 시간을 알게 하는 도구이다. 그런데 지붕을 설치하면 햇빛이 가려져 시간을 볼 수 없다.[8] 송어는 원래 강에 사는 어류이다. 당연히 강에 던져버리면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9] 당연히 모스크바가 아니라 헤움에 도착한 것이다.[10] 지명의 어원은 헤움과 동일하다고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