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20:06:09

헨리 5세(연극)


1. 개요2. 명대사3. 영상화4. 기타

1. 개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연극. 1600년 첫 대본이 인쇄되었으며 셰익스피어 사극 4부작[1] 중 마지막 작품이다.

전작 <헨리 4세 2부>에서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한 헨리 5세가 다시 백년전쟁을 일으켜 아쟁쿠르 전투에서 승리하고 프랑스 공주 카트린 드 발루아와 결혼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2. 명대사

Once more unto the breach, dear friends, once more;
Or close the wall up with our English dead.

한 번 더 돌파구로, 친애하는 동지들이여, 한 번 더.
아니면 우리 잉글랜드인의 시신으로 벽을 메우자구나.

아르플뢰르 공방전 중인 3막 1장에서 헨리 5세가 한 연설의 도입부. 특히 첫줄의 "Once more unto the breach"가 이후 나온 많은 창작물에서 인용된다. 연설 마지막 줄인 "이렇게 외쳐라. '주여, 해리, 잉글랜드, 그리고 성 게오르기우스의 편에 서소서!'"[2]도 나름 유명하지만 "한 번 더 돌파구로" 만큼은 아니다.
And Crispin Crispian shall ne'er go by,
From this day to the ending of the world,
But we in it shall be remembered-
We few, we happy few, we band of brothers
For he to-day that sheds his blood with me
Shall be my brother

크리스핀 데이[3]는 오늘로부터 세상이 끝나는 그날까지,
우리를 기억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어지지 못하리라.
적은 우리, 적지만 행복한 우리, 우리는 한 형제들이다.
오늘 나와 함께 피 흘리는 자는
모두 나의 형제일지라.

아쟁쿠르 전투 직전 4막 3장에서 헨리 5세가 하는 그 유명한 'St. Crispin's Day Speech(성 크리스핀 데이의 연설)'의 일부. 아쟁쿠르 전투만 언급되면 빠지지 않는 유명한 장면이다.[4]
이 구절에서 제목을 차용한 작품에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위 해피 퓨가 있다. 전자는 이 구절의 긍정적 의미를 강조했지만, 후자는 비꼬는 듯한 부정적인 어조.

3. 영상화

4. 기타

  • 1600년 최초 출판본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The cronicle history of Henry the fift with his battell fought at Agin Court in France. Togither with Auntient Pistoll. As it hath bene sundry times playd by the Right honorable the Lord Chamberlaine his seruants. 대충 번역하자면 "헨리 5세와 그가 프랑스 아쟁쿠르에서 벌인 전투에 대한 사극. 에인션트 피스톨도 함께함. 궁내장관 각하의 가신들이 많은 횟수를 공연함" 정도다.
  • 전작에서 할 왕자로 등장했던 헨리 5세 뿐만 아니라 할 왕자랑 어울리던 이스트칩 하류층들도 재등장하지만 대우가 좋지 않은 편이다. 폴스타프는 이미 죽었으며 바돌프는 프랑스 교회를 약탈하다 걸려서 교수형당한다. 이후 님도 함께 교수형 당했다는 언급을 보면 살아남은 것은 피스톨과 그 아내가 된 퀴클리 정도.[7] <헨리 4세 2부> 마지막에서 왕으로 즉위한 할 왕자가 폴스타프를 손절했을 때부터 예정된 결말이었을지도 모른다.
  • 아쟁쿠르 전투의 전력차와 교환비가 크게 뻥튀기 되어있다. 실제 프랑스군은 많아봐야 2만여명이었는데 극중에서 웨스트모어랜드 백작은 프랑스군이 6만명[8]이라고 가늠한다. 여기서 엑시터 공작이 병력차가 1대 5에 프랑스군이 전혀 지치지 않았다는 말을 했으니 잉글랜드군은 12,000명 정도인 듯. 전사자 또한 프랑스군은 만 명 전사에 1,500명 포로지만 잉글랜드군 전사자는 겨우 "다섯하고도 스물"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 호레이쇼 넬슨이 이 연극을 좋아했던지 'we happy few'와 'band of brothers' 표현을 종종 썼다고 한다. 엠마와 주고받던 편지에서는 넬슨을 헨리로 지칭하기도 하였다고.


[1] <리처드 2세>, <헨리 4세 1부>, <헨리 4세 2부>, <헨리 5세>[2] Cry 'God for Harry, England, and Saint George!'[3] 아쟁쿠르 전투가 있었던 10월 25일은 기독교에서 막시미아누스에 의해 참수되어 성인이 된 성 크리스피누스와 성 크리스피니아누스를 기념하는 날이다. 두 형제는 제화공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4] 번역 출처[5] Non nobis domine, non nobis, sed nomini tuo da gloriam. 시편 115장 1절의 한 구절로 해석은 공동번역 성서 기준으로 "야훼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다만 당신의 이름을 영광되게 하소서." 원작 희곡에서도 언급되기는 하지만 헨리 5세가 "우리가 할 것은 미사를 보는 것 뿐이오. '논 노비스'와 '테 데움'을 부릅시다."라고 말하는 정도다.[6] 시즌 2인 장미 전쟁은 <헨리 6세 1부>, <헨리 6세 2부>, <헨리 6세 3부>와 <리처드 3세>가 원작이다.[7] 사실 피스톨도 끝이 좋지 않은게 5장 1막에 플루엘렌에게 개처럼 두들겨 맞고는 자기 Doll이 프랑스 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문제는 이 Doll이 전작에 나온 창녀 돌을 말하는 걸수도 있겠지만 퀴클리의 이름인 넬을 잘못 쓴거라는 추측도 있다는 것. 거기다가 피스톨은 잉글랜드로 돌아가면 포주소매치기 일을 하면서 살겠다고 한다.[8] three score thous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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