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18 23:38:54

현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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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俊爀
1906년 ~ 1945년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사회주의자다.

2. 생애

1906년, 평안남도 개천군 북면 용등리의 빈농가#에서 태어났다. 중동학교연희전문학교 문과를 거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하고, 대구사범학교에서 교유로 심리학, 영어, 한문, 교육사 등을 가르쳤다.

연희전문학교 시절부터 사회주의에 심취했던 그는 교내 비밀결사인 사회과학연구그룹을 지도했다. 그러나 동맹휴교를 주도하다 체포되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학교를 떠난다.[1]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현준혁은 개천과 영변 일대에서 적색농민조합 준비 운동과 조선공산당 운동에 참여하다 또 다시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한다. 1940년 출소한 이후 한동안 고향에서 은신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인사들과 접촉하는 한편 조선공산당 평남지구위원회를 결성하고 서기에 취임한다. 8월 27일 평남인민정치위원회가 출범하자 부위원장이 되어 위원장 조만식과 함께 위원회를 이끈다. 당시 현준혁은 '합리적인 공산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민족진영에도 환영받을 수 있는 유력인사였다.

그러나 9월 3일 조만식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 차에 달려든 괴한에게 암살됐다.[2] 해방된 이후에 벌어진 최초의 정치 테러 사건이었다. 더군다나 이 이후로 이북의 공산주의 세력의 주도권을 잡은 것은 김용범의 지지를 받는 김일성이었다...

암살범의 정체를 두고 좌우의 공방이 오갔는데 사회주의 계열 적위대 복장을 하고 있던 탓에 사회주의 내부의 권력 다툼에서 희생됐다고 보는 관점이 있는 한편, 소련군정의 비밀 문서는 현준혁의 암살을 백의사의 치밀한 공작 하에 벌어진 테러로 의심했다. 자신이 백의사 단원이었다고 주장하는 백근옥은 자신의 동생인 백관옥이 현준혁의 암살범이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1] 현준혁이 체포되던 해 대구사범에 입학한 신입생이 박정희다. 현준혁사건을 계기로 박정희는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공산당 선언, 자본론 등을 찾아 읽게 된다.[2] 9월 28일이라는 설도 있지만 그의 묘비와 여러 증언을 종합할 때 3일에 암살됐다고 보는 편이 조금 더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