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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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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fdaee,#104b60> 김형직
金亨稷 | Kim Hyong Jik
파일:225px-金亨稷_1.jpg
출생 1894년 7월 10일
조선 평안도 평양부
(現 평양시)[1][2]
사망 1926년 6월 5일 (향년 31세)
중화민국 지린성
(現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본관 전주 김씨[3]
학력 숭실학교[4]
직업 무면허 의사, 독립운동가, 사회운동가
경력 전 순화학교, 명신학교 교원
조선국민회원
순천의원 운영
백산무사단 단원
광제의원, 무림의원 운영
종교 개신교 (장로회)
이념 민족주의, 반공주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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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fdaee,#104b60><colcolor=#000,#fff> 부모 아버지 김보현
1871.10.3 ~ 1955.9.2 (향년 83세)
어머니 리보익
1876.5.31 ~ 1959.10.18 (향년 83세)
형제자매 남동생 김형록
남동생 김형권
1905.11.4 ~ 1936.5.5 (향년 30세)
아내 강반석 (1911년 결혼)
1892.5.7 ~ 1932.7.31 (향년 40세)
자녀 장남 김일성 (개명 전 김성주)
1912.4.15 ~ 1994.7.8 (향년 82세)
차남 김철주
1916.6.12 ~ 1935.6.14 (향년 19세)
삼남 김영주
1920.9.21 ~ 2021.12.13 (향년 101세)
후손 손자 김정일
1941.2.16 ~ 2011.12.17 (향년 70세)
김만일
1944 ~ 1947 (요절, 향년 3세)
김평일
1954년 8월 10일 ~ ([age(1954-08-10)]세)
김영일
1955.9.30 ~ 2000.5.10 (향년 44세)
김현
1971 ~ 2007(?) (향년 36세?)
손녀 김경희
1946년 5월 30일 ~ ([age(1946-05-30)]세)
김경숙
1951년 ~ ([age(1951-01-01)]세)
김경진
1952년 ~ ([age(1952-01-01)]세)
김백연
1987년 ~ ([age(1987-01-01)]세)
증손 김정남
1971.5.10 ~ 2017.2.13 (향년 45세)
김정철
1981년 9월 25일 ~ ([age(1981-09-25)]세)
김정은
1984년 1월 8일 ~ ([age(1984-01-08)]세)
김인강
? ~ ([age(?)])
증손 김혜경
1968년 ~ ([age(1968-01-01)]세)
김설송
1974년 ~ ([age(1974-01-01)]세)
김춘송
1977년 ~ ([age(1977-01-01)]세)
김여정
1988년 9월 26일 ~ ([age(1988-09-26)]세)
현손 김한솔
1995년 6월 16일 ~ ([age(1995-06-16)]세)
현손 김주애
2013년 2월 19일 ~ ([age(2013-02-19)]세)
}}}}}}}}}

1. 개요2. 사상3. 가계4. 북한의 우상화와 반공주의 내력 은폐5. 남북통일 후의 재평가?6. 여담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이자 일제강점기사회운동가, 의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초대 최고 지도자인 김일성의 아버지로 유명하다.

집안은 할아버지 김응우 이래로 지주 이평택(李平澤) 집안의 묘지기였으며, 조만식숭실학교 후배이기도 하다.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났다.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이런저런 교사일을 전전하다가 1917년 조선국민회에 참가했으며, 이듬해 2월 평안남도 일본 제국 경찰에 의해 동지들과 같이 검거되어 형사소추를 받다가 그 해 출옥했다.[6] 관련 기사. 1925년에는 지린성으로 옮겨 활동하였다.

2. 사상

북한에서는 김형직이 아들 김일성에게 '지원(志遠, 뜻이 원대함.)' 사상과 '동지(同志, 같은 뜻.)' 사상이라는 두 자루의 권총을 유산으로 물려주었다고 선전하며, 그가 태어난 지 120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찬양하고 있다. #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반공주의 성향독립운동가였다. 그가 만주에 있을 무렵 남만주에 공산주의 운동이 있었는데, 당시 일어난 적색 테러들 때문에 김형직은 공산주의와 공산주의자들을 상당히 미워하였다. 실제로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약도 팔지 않고 치료조차 해주지 않았을 정도라 한다. # 이런 반공 성향으로 인해 공산당에게 원한을 사 여러 번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1926년 31세라는 꽤나 젊은 나이에 원인 불명의 병으로 사망했다는 주장도 있고#반면 공산주의자에게 테러를 당해 죽은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무엇이 정확한지는 학계의 연구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현재로서는 남에서든 북에서든 살해당했다는 설이 거의 정설로 전해져 있다.

그의 아내 강반석 역시도 사회운동가로 활약한 바 있다. 여성들에게 독립운동을 하자고 가르친 것도 모자라 힘든 가정에서도 열심히 남편을 도왔다. 북한 당국이 후대에 조작하고 윤색하여 어디까지 진실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조선국민회에 참가하고, 김형직이 공산주의자들한테 암살당한 이후, 강반석이 조선 내로 들어와 신간회에 민족주의자 측으로 참가한 것이 확인된다고 한다.

3.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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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하에 3남을 두었으며 장남이 북한의 건국자인 그 김일성이다. 초명은 김성주.
  • 장남 김일성 (1912 ~ 1994) - 북한의 건국자. 슬하 최소 5남 4녀 이상.
  • 차남 김철주 (1916 ~ 1935) - 전사. 후손 없음.
  • 삼남 김영주 (1920 ~ 2021) - 슬하 1남 1녀.

===# 가계도 #===
한성희
홍일천
김혜경


2
신정희
(리씨)
김혜순
리혜경
김솔희
홍영숙
서영라
김이순
장길선
김영숙
김춘송
(자녀)
(부인)
(장남)

3
(셋째)
(아들)
(남편)
(딸)
(딸)
김경진
김인강
(부인)
김은송
김성강
(부인)
(자녀)
제갈순복
김송죽
김백연
김형록
김영성
(부인)
(부인)
김정현
(부인)
김원주
김구일녀
김형실
김형복

4. 북한의 우상화와 반공주의 내력 은폐

한반도 북부에 공산국가를 건설하고, 주체사상을 만들어 죽어서도 인민의 영원한 수령이 된 김일성의 부친이 공산주의자가 아닌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은 역사적인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두혈통인 김일성의 친아버지라는 이유로 북한 정권에 의해 대대적으로 우상화되었다.

당연히 북한 주민들은 그가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며, 공산주의자에게 살해당한 사실 또한 철저히 은폐되었다. 북한에서는 그가 일본 경찰을 피해다니다 동사했다고 묘사한다. 오로지 그가 독립 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른 사실만을 조명하여, 그를 민족의 우상으로 만들었다. 이 점은 김일성의 할아버지인 김보현도 마찬가지여서, 역시 대한제국 시대에 관료로 근무하며 사회주의와 먼 삶을 살았지만 우상화를 위해 묘사와 일대기가 조작되었다.

평안북도 후창군은 후에 그의 이름을 따 김형직군으로 개칭되었으며, 곳곳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그의 며느리이자 손자 김정일의 어머니인 김정숙의 이름을 딴 김정숙군(옛 함경남도 삼수군 신파면 일대)과 그의 동생인 김형권의 이름을 딴 김형권군(옛 함경남도 풍산군)도 이와 마찬가지 케이스다.

김형직 군의대학도 있었으나 2017년 즈음에 림춘추 군의대학으로 개칭되었다.[7]

5. 남북통일 후의 재평가?

남북통일 이후에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흔적을 모두 없애는 과정에서 김형직도 영향을 받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으나, 김형직은 북한 정권 수립 이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후손들의 악행과는 일절 연관이 없다. 그의 잘못이 있다면 자식을 잘못 두었다는 것이겠으나, 이건 개인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대한민국은 연좌제를 적용하지 않으므로 김형직을 단지 자식의 과오 하나로 격하시킬 수는 없다. 또한 김일성이 북한 정권 수립 이후 저지른 만행들은 모두 그가 사망한지 한참 뒤에 일어났다.[8] 그렇기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는 시도는 없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나 독립운동가로서의 생전 업적이 거의 알려지지 않아 건국훈장을 줄 가능성 역시 낮다. 김형직의 생애나 업적을 북한에서 김일성 우상화를 위해 모조리 왜곡하느라 기록물 등의 사료들이 유실되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은 독립운동가였으며, 일제 강점기에 사망했고, 철저한 반공주의자였기 때문에 북한 공산주의 정권과의 연결점은 없으므로 차후 연구를 통해서 독립유공자로 지정되거나 어떠한 훈장이 추서될 가능성은 있다.[9]

그래서 만약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다시 재평가하려면, 대중들의 상반된 인식을 차츰 좁혀야 할 것이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익숙한 인물일 것이나, 남한 주민들에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데다가 아는 부류들도 보통 전쟁을 일으켜 엄청난 사망자를 유발한 김일성의 아버지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남쪽이 쉽사리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당장 위의 김원봉부터가 국내에서 여론이 대립하는 중이다.[10] 실제로 건국훈장을 서훈받은 강진석이 김일성의 외삼촌이란 것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외가도 아닌 친부이므로, 담론 형성 시에 큰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

만약 훈장을 내린다면 그 후손이 현물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다름아닌 김일성 가문의 현 수장 김정은이면 어떡하냐는 반응도 있으나, 장남 직계인 동시에 반북성향인 김한솔[11]이 받게 될 가능성도 있다. 오히려 김정은더러 훈장 대리 수령하라고 남에서 북으로 통지를 한다면 김정은이 오히려 이것을 굴욕으로 생각하고 노발대발할 수도 있다.[12]말 그대로 호부견자

6. 여담

아내인 강반석미국 선교사 넬슨 벨의 중매로 만났다는 야사가 있다. 참고로 넬슨 벨은 세계적인 복음 설교가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장인이다.

생전에 '아버지 세대(자신의 세대)에는 자각(自覺)하고, 아들(김일성) 세대에는 실천하고, 손자(김정일) 세대에서는 흥(興)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하는데, 이 말이 2010년대 당시 북한 노인들 사이에서 새삼스럽게 회자되었다고 한다. 이제 조선은 손자 세대를 넘어 증손자(김정은) 세대에 이르렀으니 망하는 일만 남았다(…)는 것. 왜 흥함 다음이 망함인지는 잠시 잊자. 아마도 김정은 후계 구도를 불안하게 바라본 민심이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묘하게 마야력스럽다.

한편 아들 김일성에 대해서 '인생은 건강하고 장수할 터이니 80대에는 뱀과 까마귀를 주의하여라.'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이 예언과 관련하여, 1994년 김일성 사망 당시 주민들 사이에서는 "수령님께서 서거하시기 직전에 묘향산 별장으로 가던 중, 도로 가운데 똬리를 틀고 있는 구렁이를 발견한 부관이 '돌아가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수령님께서 이 말을 무시하고 차에서 내려 지팡이로 구렁이를 쫒아버리는 바람에 갑자기 서거하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고. 영원히 살 것만 같았던 김일성이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 직전에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이를 김형직의 예언과 연결 지어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해석하려 했던 북한 주민들의 사고가 묻어 나는 사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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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
항일무장투쟁 타도제국주의동맹 (1926) · 카륜회의 (1930) · 명월구회의 (1931) · 조선인민혁명군 (1932) · 민생단 사건 (1932~1936) · 남호두회의 (1936) · 미혼진회의 (1936) · 동강회의 (1936) · 조국광복회 (1936)
6.25 전쟁 전쟁 발발 책임 · 승패 인식
백두혈통
우상화
김응우 (제너럴 셔먼호 사건) · 김형직 · 강반석 · 김정숙 · 김정일 출생지 왜곡
관련 서적 미제와 일제의 조선침략 죄행 · 백두혈통 우상화 교과서 · 세기와 더불어 · 조선력사
* 괄호 안의 연도는 북한의 주장에 근거한 연도이며, 실제 역사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단체 및 사건이거나 실제와는 다른 연도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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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주 김씨 집성촌이다.[2] 부군면 통폐합 이후 행정구역 기준으로는 대동군 지역이다.[3] 몇 세손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일성의 사망일을 예언한 것으로 화제가 된 풍수지리사 손석우의 저서 『터: 육관 도사의 풍수·명당 이야기』에 따르면 31세손(또는 해석에 따라 32세손)이 된다. 그러나 현존하는 어떤 문헌에서도 교차검증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주장이다.[4] 지금의 숭실중고등학교.[5] 아들공산주의를 추종하던 공산주의자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아이러니다. 사실 김일성의 행적만 봐도 젊은 시절에는 몰라도 말년에는 진정한 공산주의자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 그나마 민족주의 자체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김형직의 유지를 잘 계승하긴 했다. 그것도 본인 입맛에 맞게 심하게 왜곡시켜서 계승한 게 문제일 뿐이지.[6] 남만주의 독립운동 단체인 정의부 산하단체인 백산무사단의 회원으로 있었다.[7] 다만 '김형직사범대학'이라는 곳은 남아있다.[8] 김형직은 1926년에 사망했고, 그 당시 장남 김일성은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였다. 그리고 북한 정권은 1948년에 수립되었으니 무려 22년이나 차이난다. 그가 죽은지 22년도 더 뒤에 일어난 북한 정권에서 일어난 만행들을 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9] 명백히 북한 공산주의 정권 수립에 큰 기여를 했으며, 6.25 전쟁에서의 활약으로 인해 로력영웅까지 받은 김원봉조차도 독립유공자였으니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국내에 들끓는데, 김형직이라고 그렇게 못 될 이유는 없다.[10] 단, 김원봉은 실제로 공산주의 활동을 한 것을 넘어 북한 정부 수립에도 가담한 인물이기에 대한민국 입장에서 혹평할 만한 요소가 있는 반면 김형직은 생전에 아주 철저한 반공주의적 성향을 가진 독립운동가였을 뿐더러, 결격 사유라고 치자면 아들이 하필 김일성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인지도가 매우 낮다는 것 정도이다. 물론 이 결격 사유가 개인의 도덕성이나 성품, 자질 등과는 하등 아무런 연관이 없으나, 대한민국이라는 국체의 근간을 뒤흔들 정도로 매우 중대하기에 논란이 될 수 있는 것.[11] 북한 김씨일가 체제에 반대하여 해외로 망명했던 김정남의 아들이다.[12] 특히나 김정은은 2024년 들어서 두 개의 조선을 언급하며 아예 대한민국과 선을 긋고 있어서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준다면 더욱 크게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