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37:26

현(고려 거란 전쟁)



파일:고려 거란 전쟁 로고 화이트.svg

[ 등장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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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고려거란전쟁_현종_neat_ver.jpg
파일:고려거란전쟁_강감찬_neat_ver.jpg
파일:고려거란전쟁_양규_neat_ver.jpg
그 외 등장인물 및 특별출연은 등장인물 (고려·거란·기타 국가) 문서 참고.
[ 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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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고려 거란 전쟁 OST Part 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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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고려 거란 전쟁 OST Part 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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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고려 거란 전쟁 OST Part 3.jpg
||<width=25%> ||
[[고려 거란 전쟁/음악#s-2.1|
Part 1

비상]]
서도밴드
2023. 12. 15.
[[고려 거란 전쟁/음악#s-2.2|
Part 2

폭풍]]
김장훈
2023. 12. 29.
[[고려 거란 전쟁/음악#s-2.3|
Part 3

적동
(붉은겨울)
]]
안예은
2024. 01. 18.
[[고려 거란 전쟁/음악#s-2.4|
Part 4

그 겨울에
나는
]]
IYAGI (이야기)
2024. 02. 03.
그 외 오리지널 스코어는 음악 문서 참고.
[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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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고거전 현.jpg
캐릭터
등장 회차 1 ~ 3회
배우
김한솔

1. 개요2. 작중 행적3. 어록4. 기타

[clearfix]

1. 개요

KBS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의 등장인물.

2. 작중 행적

천추태후김치양의 아들. 천추태후는 왕씨로 삼으려 하나 드라마에서는 이 배역의 성씨를 규정하지는 않았다. 천추태후는 조카인 대량원군 대신 현을 목종의 후계자로 밀어붙이며, 말 안 듣는 큰 아들이나 위협이 되는 조카와는 달리 어린 둘째 아들에게는 친절하게 대한다. 김치양 역시 천추태후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친자인 현이 고려 황제의 후계자가 되는 것을 꿈꾼다. 반면 목종은 고려의 황위는 오로지 태조 대왕의 후손에게만 물려줘야 한다는 의지가 확고해서, 현의 태자 책봉을 강하게 반대하고 아예 우복야(김치양의 관직 이름)의 아들이라고만 호칭하며 동생으로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목종과 김치양은 정면으로 대립하게 된다.

결국 3회에 강조가 정변을 일으켜 개경에 진입하면서 아버지 김치양과 함께 살해당한다. 김치양은 현을 두고 "내 자식이 아니라 태후의 자식이니 용손이란 말이다!" 라고 악을 썼으나 소용이 없었다.[1][2]

3. 어록

어머니, 그럼 저는 이제 왕현이 되는것이옵니까? 김현이여야 하는 것 아니옵니까?
아침에는 효경을 공부하고 낮에는 불경을 읽었사옵니다.
예, 꼭 성군이 되어서 어머니를 꼭 기쁘게 하겠사옵니다.

4. 기타

  • 실제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배역명은 창작이다. 드라마 천추태후에서는 어머니의 본관 황주를 따른 황주소군이라는 호칭에 김진이라는 이름으로 배역을 만들었는데 이 또한 창작이다.
  • 우연의 일치로 담당 아역 배우의 이름이 본작의 공동 연출인 김한솔 PD와 동일하다.


[1] 사실 틀린 말은 아닌 것이 고려에서는 모계 혈통 역시 인정했으므로 굳이 아버지의 성씨를 따르지 않더라도 왕위 계승을 주장하는 것이 이론상 가능하기는 했다. 실제로 천추태후는 6대 왕인 성종의 여동생이었으나 표면상으로 근친혼이 두드러지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할머니 신정왕태후의 성을 따랐다. 즉 어머니인 천추태후가 태조의 직계 후손이기 때문에 김치양의 아들도 엄연히 왕위 계승권을 주장할 수는 있는 것이다. 이는 고려 왕실에서 근친혼이 성행했던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2] 아무리 이론상 가능하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상일 뿐이다. 무엇보다 정말로 현이 목종의 뒤를 잇게 되면 이는 왕조 교체인데 여염집도 아닌 이상 명분도 없는 왕조 교체를 고려 사람들이 용납할 리가 없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무엇보다 고려는 이미 유학이 들어와 불교와 함께 시행되고 있던 국가이기도 했고 또, 이미 대량원군이라는 후계자가 있는 만큼 굳이 왕씨도 아닌 김치양의 아들을 왕으로 삼을 이유도 없었다.[3] 다만 역시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베이는 장면이 노골적으로 묘사된 김치양과 창왕과는 달리 현을 베는 군사 쪽으로 화면이 전환되었다가 이후 칼에 맞은 시체를 보여주는 것으로 사망 장면을 검열했고, 시체의 훼손 정도 또한 김치양보다 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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