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의 행정구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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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회남도(淮南道)는 당나라의 최상위 행정구역인 도(道) 중 하나이다.2. 하위 행정구역
2.1. 양주(揚州)
수나라의 남북조시대 통일 이후 양주로 개편되었다. 양제의 즉위 후 대업(大業) 3년(607년) 군현제를 실시하면서 양주는 강도군(江都郡)으로 개편되었다. 수나라 말 양제는 난리를 피해 강도로 대피했다가 이곳에서 우문화급이 일으킨 정변으로 최후를 맞이했다.무덕(武德) 3년(620년) 두복위의 귀순 이후 당나라는 윤주(潤州) 강녕현(江寧縣)에 양주(揚州)를 설치하고 강도군(江都郡)을 연주(兗州)로 개편했다. 무덕(武德) 7년(624년) 연주는 한주(邗州)로 개칭되었으며, 무덕(武德) 9년(626년) 강녕현을 윤주의 현으로 두면서 한주는 다시 양주로 개칭되었다. 천보(天寶) 원년(742년) 군현제를 실시하면서 광릉군(廣陵郡)으로 개편되었다가 건원(乾元) 원년(758년) 주현제로 회귀하면서 다시 양주가 되었다.
2.2. 초주(楚州)
수나라에서 강도군(江都郡) 산양현(山陽縣)이었던 지역으로 말엽에 장군상(臧君相)이 점령했다. 무덕(武德) 4년(621년) 장군상이 귀순한 뒤 동초주(東楚州)를 설치하여 산양현(山陽縣), 안차현(安且縣), 염성현(鹽城縣)을 관할했다. 무덕(武德) 8년(625년) 서초주(西楚州)를 폐지하고 우이현(盱眙縣)을 관할로 두었으며 '동(東)'을 없애서 초주로 정했다. 천보(天寶) 원년(742년) 회음군(淮陰郡)으로 변경되었다가 건원(乾元) 원년(758년) 다시 초주가 되었다. 건중(建中) 2년(781년) 우이현은 사주(泗州) 관할이 되었다.2.3. 저주(滁州)
2.4. 화주(和州)
2.5. 호주(濠州)
2.6. 노주(廬州)
2.7. 수주(壽州)
2.8. 광주(光州)
2.9. 기주(蘄州)
2.10. 신주(申州)
2.11. 황주(黃州)
2.12. 안주(安州)
2.13. 서주(舒州)
[1] 옛 명칭은 광릉현(廣陵縣)으로, 개황(開皇) 18년(598년) 한강현(邗江縣)으로 개칭되었다가 양제의 즉위 후 강양현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강양현은 강도현에 통폐합되었다가 정관(貞觀) 18년(644년) 강도현의 일부가 분할되어 다시 설치되었다.[2] 남북조시대까지 당읍현(堂邑縣)으로 불린 곳이며 수나라의 남북조시대 통일 이후 육합현으로 통폐합되었다. 무덕(武德) 7년(624년) 연주는 방주로 개칭되고 육합현이 설치되었으며, 육합현의 일부가 분할되어 석량현(石樑縣)이 되었다. 정관(貞觀) 원년(627년) 방주가 폐지되고 석량현이 육합현에 통폐합되면서 다시 양주에 속하게 되었다.[3] 경룡(景龍) 2년(708년) 일부가 분할되어 해안현(海安縣)이 설치되었다가 개원(開元) 10년(722년) 해릉현에 통폐합되었다.[4] 영순(永淳) 원년(682년) 강도현의 일부를 분할하여 설치했다.[5] 천보(天寶) 원년(742년) 강도현, 육합현, 고우현의 일부가 분할되어 천추현(千秋縣)이 설치되었다. 천보(天寶) 7재(748년) 천장현으로 개칭되었다.[6] 전한에서 임회군(臨淮郡) 사양현(射陽縣)이었던 지역으로 서진 때 산양군(山陽郡)이 설치되면서 명칭이 산양현(山陽縣)이 되었다. 초주의 치소가 있었으며, 현의 동쪽에는 사양호(射陽湖)가 있었다.[7] 전한에서 임회군(臨淮郡) 염독현(鹽瀆縣)이었던 지역으로 서진 때 다시 설치되었으며 이후 염성현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수나라 말엽에 위철(韋徹)이 염성현에 사주(射州)를 설치하고 사양현(射陽縣), 안락현(安樂縣), 신안현(新安縣)을 설치했다가 무덕(武德) 4년(621년) 당나라에 귀순했다. 무덕(武德) 7년(624년) 사주와 3개의 현을 폐지하고 염성현(鹽城縣)을 설치하고 초주 관할로 두었다.[8] 전한에서 광릉국(廣陵國) 평안현(平安縣)이었던 지역으로 후한 말엽에 폐지되었다. 이후 서진 때 동양현(東陽縣)으로 설치되었고 이후 안의현(安宜縣)으로 통폐합되었다. 무덕(武德) 4년(621년) 창주(倉州)를 설치했다가 무덕(武德) 7년(624년) 창주가 폐지된 뒤 초주(楚州) 관할이 되었다. 숙종 상원(上元) 3년(762년) 현에서 정국보(定國寶)를 발견하면서 연호를 보응으로 고쳤고 안의현도 보응현이 되었다.[9] 무덕(武德) 7년(624년) 폐지되었다가 건봉(乾封) 2년(667년) 산양현의 일부를 분할하여 회음현을 설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