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22 17:13:12

휴버트 모람

이름 휴버트 모람
Hubert Morham
출생 미상
스코틀랜드 왕국 이스트로디언 모람
사망 1306년 9월 7일
잉글랜드 왕국 런던
아버지 토머스 모람
형제 토머스
직위 모람 기사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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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에서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에 맞섰다가 처형당했다.

2. 생애

스탠하우스, 두니페이스, 가스, 캐슬랭킨 영지를 소유한 영주인 토머스 모람의 아들이다. 그는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당시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잘샐긴 스코틀랜드 기사로 명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1296년 던바 전투에 참여했다가 패전을 면치 못하고 형제 토머스와 함께 체포된 뒤 런던 탑으로 끌려갔다가, 1297년 스코틀랜드에서 윌리엄 월레스앤드류 모레이의 반란이 일어나자 이들을 진압하는 조건하에 풀려났다. 하지만 그는 곧 방침을 바꿔 윌리엄 월레스의 휘하에 들어갔고, 1298년 폴커크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에 대적했으나 패전을 면치 못했다.

1299년 친척 길버트 말허브와 함게 스털링 성을 포위해, 수비대가 식량난을 견디지 못하고 그 해 말에 항복하도록 유도했다. 이때 그는 에드워드 1세의 친척으로서 호위 없이 에든버러로 가던 중이던 파이프 백작부인 조앤 드 클레어[1]를 납치했다. 그는 조앤을 캐슬랭킨에 있는 형제 토머스 모람에게 데려갔으며, 그녀의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결혼을 강요했지만 실패했다. 1299년 4월 22일 이전에 잉글랜드에 체포된 뒤 에드워드 1세에게 복종하도록 강요당했다. 1300년 2월 에든버러 성의 잉글랜드 수비대의 지휘관으로 발탁되었다.

1301년 여름, 스코틀랜드의 수호자 존 드 소울스가 잉글랜드를 향한 유격전이 큰 성과를 거두자, 휴퍼트는 스코틀랜드 쪽으로 돌아섰다. 이후 사이먼 프레이저, 알렉산더 애버네시 등과 협력해 라나크셔의 스트라세번 인근 스톤하우스에서 스코틀랜드로 침입한 잉글랜드 2개 부대 간의 연락망을 교란함으로써, 그들이 계획대로 통합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1304년 이전에 체포된 뒤 런던 탑에 수감되었다. 1304년 초 남아있던 스코틀랜드 반군 귀족들이 에드워드 1세에게 충성을 맹세했지만, 그는 이미 런던 탑에 갇혔던 아버지 토머스와 함께 항복을 거부했다.

1306년 3월 로버트 1세가 자신을 스코트랜드 왕이라고 선언하며 에드워드 1세에 대적하자, 휴버트의 전우인 사이먼 프레이저가 가담했다. 휴버트는 간수에게 프레이저가 잡히지 않았다고 내기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사이먼 프레이저는 얼마 후 체포되었고, 에드워드 1세는 사이먼과 휴버트의 처형을 명령했다. 1306년 9월 7일 사이먼 프레이저가 처형되기 몇 시간 전, 그는 시종 토머스 뒤 보이스와 함께 교수형에 처해졌다.


[1] 제7대 글로스터 백작 길버트 드 클레어의 딸이자 제7대 파이프 백작 던컨의 미망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