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01:30:47

한국 청소년 이슬람 국가 가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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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건 진행
2.1. 실종2.2. 트위터 계정이 알려지다
3. IS 가담의 동기
3.1. 물질적인 부분3.2. 가족사회와의 단절
4. IS 가담 이후
4.1. 첫 번째 가능성: 살해4.2. 두 번째 가능성: 홍보 요원으로 이용4.3. 세 번째 가능성: 탈출4.4. 실종과 사망 추정
5. 여담6. 같이 보기


1. 개요

파일:external/img.seoul.co.kr/SSI_20150121013848_V.jpg
실종 한국인 행적 출처
2015년 1월 10일 튀르키예(당시 국명은 터키)를 여행하던 한국인 김 모 군(당시 17세)[1]이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접경 지역에서 행방불명된 뒤 자발적으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에 가담한 것이 확인된 사건. 그는 몇 차례 소식이 전해진 후 [age(2015-01-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사불명이며 사실상 사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2. 사건 진행

2.1. 실종

파일:external/68fad62262bf8e2efe224840b3a6f5bb7dd9fae1372190e25d27f9c6223654c8.jpg
2015년 1월 17일 주 튀르키예 한국 대사관은 한국인 10대 남성 김 군이 1월 10일에 튀르키예 여행 중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음을 밝혔다. 튀르키예의 일간지들은 해당 한국인 남성이 ISIL에 가담하였다고 보도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 군의 어머니는 김 군이 인터넷으로 만난 튀르키예인 펜팔 친구 '핫산'[2]을 만나기 위해 튀르키예에 갔으며 미성년자인 김 군을 홀로 보내기가 미덥지 않아 같은 교회에 다니던 지인 홍 모 씨를 동행시켰다고 진술했다. 출처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5012001620_0.jpg
김 군은 1월 9일에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접경 지역인 킬리스에 도착했다. 다음날인 10일 아침 김 군은 숙소에서 혼자 나갔고 홍모씨는 김 군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찾아보다가 다음날 대사관에 신고하면서 사건이 알려졌다.

김 군은 중학교를 중퇴하고 집에서 지내 왔으며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고 한다. 부모는 굳이 시리아 국경과 맞닿아 있는 위험 지대인 튀르키예의 가지안테프[3]으로 떠나겠다는 김 군이 걱정되었지만 김 군이 "터키[4]에 보내주지 않으면 죽겠다", "터키 다녀오면 힘내서 공부하고 검정고시 보고 열심히 살겠다"고 말하면서 강하게 설득해서 허락했다고 한다. 출처.

2.2. 트위터 계정이 알려지다

이후 김 군이 투숙한 호텔 직원의 증언, 김 군의 것으로 추정되는 트위터 계정 내용이 알려지면서 점차 김 군이 처음부터 ISIL 가담을 목적으로 출국하였음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으며 자택과 호텔 컴퓨터에 IS와 여러 차례 연락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바탕화면에 ISIL과 관련된 사진 파일이 발견된 것, 킬리스는 주요 관광지도 아니고 시리아 밀입국을 위한 주요 통로라는 점 등이 김 군의 ISIL 가담설을 뒷받침했다. 현지 CCTV를 찾아본 결과 1월 10일 시리아 번호판을 단 불법 택시를 타고 시리아 난민촌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향한 것이 확인된 김 군의 최종 행적이었다. 기사

2월 24일 정보당국 고위 관계자는 김 군이 스스로 시리아에 밀입국한 뒤 IS에 가입한 사실을 확인했고 IS와 대화 채널을 확보했으며 김 군의 송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3. IS 가담의 동기

파일:external/img.khan.co.kr/khan_Hs8Re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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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군의 트위터 계정은 '"지금은 남성이 역차별 받는 시대이다", "난 페미니스트싫다. 그러므로 난 IS가 좋다" 등의 트윗을 올린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김 군의 방에서 'joint IS[5][6]'라고 적혀 있는 쪽지가 발견되면서 IS에 가입하러 간 것이 확실해 보인다. 출처 또 자신의 페이스북에 "난 이 나라와 가족을 떠나고 싶다. 그냥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고 한다. 기사 경찰 측도 김 군이 납치나 강요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시리아 접경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경찰의 결론 이전에도 김 군의 행적이 IS 포섭 절차와 일치한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해 합류는 거의 확실시되었다. 분쟁 지역 전문 PD인 김영미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여기에 대한 견해를 밝히기도 하였다. #

한국일보에서는 기자들이 10대로 위장해서 IS 관련 인물과 직접 접촉하며 김 군의 가담 과정을 그대로 재현했는데 슈어스팟을 통해 온갖 감언이설로 상대방을 꾀더니 개인 정보를 요구했고 확실한 증거까지 대라며 상대방을 압박했다. 기자가 가짜 여권 번호를 알려줬는데 여권 번호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으며 이로써 뭔가 평범한 조직은 아니란 것이 입증되었다. 연락을 끊자 위치를 찾아내서 죽인다고 협박까지 했다. IS의 김 군 포섭 절차와 동일했다. 한국일보 기자가 이를 재현하는 동안 당국에서는 어떠한 추적이나 차단도 없었는데 이 기사에서는 이 점을 통해 누구나 IS에 쉽게 가담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당국의 신속한 조치를 촉구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하지현 교수는 김 군이 망상장애를 앓은 게 아니냐는 추측을 했다. 기사 실제로 친구는 물론 가족과도 전혀 교류를 하지 않고 은둔형 외톨이였던 김 군이 실존하는 현실의 여성과도 대화조차 했을 리 만무하기 때문에 페미니스트가 싫다는 글을 쓰면서 인터넷의 편향된 정보로만 사회를 배운 데다 정신 질환으로 인해 현실 감각을 잃었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동생에게 하루 30통의 전화를 한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3.1. 물질적인 부분

김 군은 물질적인 부분에 더 혹한 걸로 보인다. 수사 결과에 의하면 김 군의 인터넷 즐겨찾기에 IS 대원들의 여러 보상을 다룬 내용이 있으며 'IS 대원이 되면 2주간 훈련을 받고 세계 곳곳에 배치된다. 어디든 좋은 대우를 받는다'는 내용의 사이트를 즐겨찾기했다. 특히 출국 직전 IS의 '복지 혜택'에 대해 집중 검색했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좋은 급여(Good Salary), 무상으로 무기 지급, 럭셔리한 차량 무상 제공 등이 있다는 말에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 '아직 판단이 미숙한 청소년이 지하드를 영웅시해 아무 생각 없이 덜컥 간 거 아니겠느냐'는 예상도 있었으나 지하드 자체에 대한 영웅시보다도 여타 외국인 지하디스트들처럼 이런 물질적인 보장에 대해 혹한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실제로 외국인 지하디스트의 대우가 홍보용 자료에서 말하듯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여권부터 빼앗고 시작하더라는 증언이 수두룩했고 살인이나 자폭 테러 등 위험한 업무 동원은 기본이었으며 탈출하려고 했다가 딱 걸리는 날엔 말 그대로 황천행 예약이다. 더군다나 잔학무도한 이들의 살해 방식을 생각해 보면 그냥 총살당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3.2. 가족사회와의 단절

여러 가지 양상으로 보아 김 군은 가족과 사회를 극도로 혐오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김 군은 부모와 대화를 직접 안 하고 문 틈으로 넣은 쪽지로 대화할 정도로 가족과의 단절이 심각했으며[7] 그나마 동생과는 교류가 어느 정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문자가 동생과의 대화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이마저도 일방적이고 강압적으로 김 군 쪽에서 문자와 전화를 하는 관계였다고 하며 학교에서도 왕따를 당해서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 틀어박히게 되었다고 한다. 즉, 가정에서도 외부 사회 생활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가족과 외부 사회 그 어느 곳에도 김군이 안정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없었다.

실제로 김 군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난 이 나라와 가족을 떠나고 싶다. 그냥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글을 통해 현실에 심한 염증을 느끼던 김 군이 영웅처럼 멋있게 편집해 올리고 많은 돈과 여자를 거느리면서 살 것처럼 홍보한 IS 모집 광고에 빠져들어 현실 도피를 하고 싶었다는 점을 짐작케 해 준다. IS 대원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보면 현실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갈망했을 김 군 입장에선 솔깃할 만한 제안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언론에서 김 군이 방 안에만 있었다는 이유로 '은둔형 외톨이'라고 하여 홀로 방 안에 있고 싶어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김 군은 간절히 떠나고 싶어하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방 안에서 탈출하고 싶었을 것이며 그런 상태에서 IS의 홍보에 유혹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최후의 해방구로서 자살을 택하기도 하며 학교폭력 피해를 입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청소년들도 있지만 김 군은 그래도 어떻게든 새로운 삶에 대한 애착은 있었는데 하필이면 IS라는 썩은 동아줄을 덥석 잡은 것이다.

김군이 동생[8]에게 엄청난 양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만 봐도 학교에서 중퇴하고 가족에게도 소외되면서 극심한 외로움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가 마음을 의지할 사람이 있었다면 이런 일을 막을 수 있었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다. 성인들조차 단지 가족이나 친구들과 떨어진다는 점 때문에 이민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하물며 두 번 다시 가족들을 볼 수 없고 연락할 수도 없는 IS로의 이동은 미성년자에겐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이기 때문이지만 테러 단체에 가입하라고 고문을 당해서 강제로 가입한 것도 아니고, 정신 상태가 완전히 붕괴된 것도 아니라 본인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므로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4. IS 가담 이후

4.1. 첫 번째 가능성: 살해

초기에는 '인질이 되어서 살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고토 겐지의 경우라든지, IS를 탈출하려던 외국인 대원 120명을 처형한 경우 등이 그 예였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탈출하려던 대원의 경우였으니 김 군이 따로 탈출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IS가 다짜고짜 김 군을 인질로 삼아 죽였을 리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4.2. 두 번째 가능성: 홍보 요원으로 이용

일본의 IS 전문가인 츠네오카 코스케(常岡浩介)[9]에 따르면 김 군이 자의에 의해서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IS 대원이 되었다면 일단 당장 인질 신세로 전락하거나 무차별적으로 살해당하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특히 김 군의 나이가 IS 요원 훈련을 받기 시작하는 시점이라 IS 입장에서도 프로파간다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김 군을 중장기적인 선전 선동에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국정원에서는 훈련받고 IS 요원으로 활동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기사

2월 말에 김 군이 IS 가담 후 군사 훈련을 받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훈련 낙오 시 인질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으나, 5월 최종 테스트를 통과하면 ISIL 전사로 투입된다고 전해졌다. 관련 기사 "실종 김 군, IS서 훈련 중... 낙오 땐 인질"

이후 사망 관련 기사가 나온 것을 통해 처형하지는 않았고 홍보 요원으로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냥 외국인 지원병들로 구성된 부대에 배속했는데 전사 추정 시점인 9월 23일에 라카 인근의 외국인 부대에 배속되었던 걸 보면 전투에는 투입되지는 않았던 듯.[10]

4.3. 세 번째 가능성: 탈출

IS를 탈출하려던 외국인 대원들이 처형당했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왔는데 그만큼 탈출 시도가 빈번하다는 의미며 개중에는 빠삐용처럼 탈출에 성공하는 사례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탈출에 성공하여 귀국한 사례도 있다.

김 군의 특성상 비슷한 유형으로 낚인 외국인들의 경우를 고려하면 후회할 가능성이 높다. 김 군이 특별히 이슬람 광신도도 아니고 메시지를 보면 그냥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것이 주요 동기로 보이니 그런 철 없는 마인드로 IS 같은 지옥의 환경에서 버티기는 힘들 것이다.

다른 선진국 출신의 고독한 청년들도 왕따라든지 희망 없는 상태에서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IS의 유혹에 낚였다가 막상 도착해 보니 현실은 시궁창임을 깨닫고 IS를 탈출하려고 한 사례가 많다. 탈출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IS가 탈출 시도를 알아차리면 곱게 죽이지도 않는다. 목에 폭탄을 둘러 얼굴을 터뜨려 날려 버리거나 목을 썰어 버리는 등 잔혹하게 죽이는 데 특화된 자들이다. 거기에 인권 따위도 없으므로 이런 곳에서 죽음을 감수하고서도 어떻게든 벗어나려 탈출을 시도하는 외국인 대원들은 끔찍하게 죽는 한이 있어도 계속 머무를 수는 없다고 느낄 만큼 버티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한 번 한국에서 탈출을 시도해 본 김군이라면 두 번 탈출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북한이탈주민 강화도 경유 월북 사건처럼 한 번 탈출 경험이 있는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또 탈출을 시도하게 마련이다. 김군처럼 이미 고국에 질려 한 번 탈출해 봤던 외국인 대원들은 또 탈출하는 경우가 많아 '한 번 배신한 놈은 또 배신한다'며 IS에서도 외국인 대원들은 특별 감시한다. 특히 IS가 수세에 몰리면서 와해된 상황에서 한국에서조차 현타가 와서 그냥 막연히 이 바닥을 뜨고 싶었던 김군이라면 IS에서 만족하기보다는 또 현타가 와서 탈출에 대한 욕망을 느낄 수도 있다.

결국 크게 가능성을 추려 보자면 IS는 2019년에 사실상 와해됐으니 탈출하다가 붙잡혀 죽었거나 탈출하지 못했다면 연합군의 폭격에 죽었거나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IS의 와해를 틈타 탈출한 것이지만 소식이 없다. 살해당한 것이 거의 확실해도 어쨌거나 시신 등 사망했다는 증거가 없고 가족들이 계속해서 전단지를 돌리는 김명철 실종 사건, 이방연 실종사건처럼 공식적으로는 '행방불명' 상태다.

김 군의 가족들의 실낱 같은 희망이라면 탈출에 성공한 김 군이 이슬람권 어딘가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것이다. 살아 있다면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아랍어를 현지인과 소통할 수 있을 정도로 익혔을 가능성이 높아 현지인들과 동화되어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다.

또 한 가지는 유럽으로 탈출해 신분세탁하여 난민으로 살고 있을 가능성이다. 난민에게 여권을 보여달라고 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신분세탁이 어렵지는 않다.[11] 물론 유럽으로 갔다면 들켰을 확률이 있긴 하지만 난민 구역은 일반적인 관광객들이 거의 가지 않는 곳이며 언론인들도 취재를 잘 하지 않는 곳이다. 거기에 IS에서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외모가 많이 변했을 수도 있고 애초에 그의 외모가 언론에 공개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설령 한국인 관광객이 그를 봤다고 해도 못 알아보고 지나칠 수 있다.

국정원에서도 김 군의 행적을 추적해 왔다. 김군이 IS로 합류한 시점부터 계속 추적했으며 한때 추적에 성공했던 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행적이 묘연해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생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추적 중이라고 한다. # 물론 행적이 확인되어도 그가 귀국을 원치 않는 이상 국정원에서도 어찌 할 방법은 없다.[12] 이게 잘못되면 국가 기관이 한 사람을 국제 납치한 꼴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엄청난 범죄자가 된다는 사실쯤은 이미 인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만약 살아 있다고 해도 귀국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국정원도 생존 여부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마당이라 가족들과 연락을 하는 순간 여러 가지로 골치가 아파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물론 망명에 성공했다면 한국에서 처벌될 가능성은 낮지만 한국 정부가 김 군의 IS 자진 가담 사실을 해당 국가에 전달하면 그 국가에서도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설령 살아 있고 망명에 성공했어도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 지낼 수밖에 없다. 즉, 가족들 입장에서는 그가 살아 있다고 해도 재회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며 사망한 것과 별 다를 바 없는 상황이 된다.

4.4. 실종과 사망 추정

2015년 9월 30일자 머니투데이 사건팀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그가 미국-요르단 연합군의 공습으로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정보당국으로부터 김 군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김 군이 소속된 것으로 알려진 IS의 외국인 독립중대[13]가 9월 23일자 미국-요르단 연합군 공습에 피격되어 부대원 상당수가 숨진 것으로 확인돼 김 군도 사망했을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중동 현지 한 소식통에 따르면 "김 군은 IS 분파 내 200여 명으로 구성된 외국인 부대에 소속돼 있었으며, 두 그룹으로 나눠 이동하던 중 김 군이 속한 그룹이 공습을 당해 80여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고 사망한 지 최대 24시간 내 매장하는 이슬람의 장례 풍습이나 공습 특성상 시신이 크게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개별적으로 시신을 확인해 신원을 제대로 파악하기 매우 어렵다. 그래서 김 군의 사망 여부를 100% 확신하지는 못하는 상태지만 김 군이 포함됐던 부대원 대다수가 전사한 사실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됐다고 한다.

다른 기사에 따르면 김 군은 예상과 달리 IS에서 외국인 지원병들에게 별다른 보상을 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14] 후회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몰래 소지하고 있던 개인 스마트폰으로 종종 가족들에게 연락하며 한국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직접 밝히기도 했다고 하지만 이 사실이 발각되어 폰을 압수당했다고 한다. 물론 이후에도 외국인 부대에 그대로 배속되었던 걸 보면 스파이로 몰아 처형할 정도로 병력의 여유가 넘치던 2014년과 사정이 달랐던 모양이지만 그래봐야 감금 생활은 변함이 없었다. ISIL이 외부에 선전해 온 이미지와 실상이 얼마나 동떨어졌는지를 잘 알 수 있는 사례다. 'IS 한국인 대원' 김 군 "여기 온 것 후회"... 동생에게 전한 말

특히 약 100여 명(20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눴으니까) 중 80명이 사망했을 정도면 나머지도 대부분 중상자일 것이며 개별 탈출조차 어려울 정도로 광범위한 지역에 무차별 폭격이 가해졌을 게 뻔한지라 김 군의 신변이 안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것 때문에 사망설에 무게가 실렸으며 관련 기사도 나왔다. 사건이 발생한 지 4년 후인 2019년 3월 23일 IS는 공식적으로 모든 영토를 잃고 완전히 토벌되었지만 그의 근황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한편 가족들은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냈고 김 군의 생환만을 바라고 있었다. 2015년 9월 30일자 보도에 따르면 김 군의 사망설로 인해 특히 어머니가 상당히 불안한 상태로 걱정했다고 한다. 김 군의 어머니는 인터뷰에서 "전화 벨소리만 들려도 힘이 든다"며 "힘들게 하루하루 견디고 있다. 어찌 애타게 기다리며 살란 말인가"라고 전했다. IS 김 군 사망 추정, 어머니 "힘들게 하루하루 견디고 있다"

만에 하나 그가 기적적으로 구출되어서 생환했다고 할지라도 일정한 치료 후 법정형이 사형뿐인 형법여적죄기소될 게 뻔하니 재판부가 이를 인정하게 된다면 사형이 사실상 폐지된 대한민국에서는 그냥 사실상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과 마찬가지로 남은 평생을 감옥에서 보낼 수밖에 없다.

사형은 형이 집행되는 것 그 자체가 처벌이므로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는 가석방도 안 된 채 무한히 기다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악인 건 설령 이후 징역 등 자유형으로 감형된다고 해도 종전 사형 집행 대기 기간은 기간 산입이 안 된다는 점이다. 물론 감형이 된다면 가석방은 가능해지지만, 테러 집단에서 활동한 그를 감형시켜 줄 가능성은 극히 적을 것이다.

같은 법, 같은 장의 '제102조(준적국)'에서는 '제93조 내지 전조의 죄에 있어서는 대한민국에 적대하는 외국 또는 외국인의 단체는 적국으로 간주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후술할 국가보안법으로 우회하는 방법 대신 여적죄를 직접 적용할 수 있다. 설령 대한민국을 적대함이 확실하지 않다고 해도 '제104조(동맹국)'도 함께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동맹국 미국을 상대로 적대하고 항적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 수 있게 된다. 또는 국가보안법상 목적수행죄(여적죄) 국가보안법 제4조 제1항에서는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이 그 목적 수행을 위한 행위를 한 때 처벌한다'고 규정하면서 제1호에 형법 제93조(여적죄)에서 정한 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군은 2015년 1월 11일에 실종되어 5년 이상 생사가 분명하지 아니하므로 대한민국 민법에 의하여 실종 선고 요건을 충족했다.[15] 김군의 유족이 실종 선고를 청구했는지는 불명이지만 일단 법적으로 사망자로 간주할 요건은 갖춰진 셈이다. 이러한 경우 그가 마지막으로 생존한 것이 확인된 2015년 1월 11일부터 실종 기간이 만료된 2020년 1월 10일(특별실종이라면 2016년 1월 10일) 사망한 것으로 간주하여 처리된다. 다만 민법상 실종 선고는 사법(私法)상 권리의무관계를 정리하는 것일 뿐, 형사 절차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16] 만약 수사 기관이 그에 대한 여적죄 등의 혐의를 수사하려고 해도 피의자가 행방불명되었기 때문에 기소중지 처분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사망 사실이 확인된 후 공소권 없음 처분을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나리오다. 게다가 2015년경에 폭격을 맞은 것이 사실이라면 온전한 시신은 고사하고 유골조차 남아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6.25 전쟁 참전 용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전차자주포 같은 포격이나 폭격을 정면으로 맞을 경우 사람이 아예 없어진다고 한다. 통상 전쟁 영화 등에서 병사들이 폭격을 맞은 후 심하게 다친 모습으로 후송되는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과 동정심을 느끼지만 실상은 목숨은 부지해서 후송되는 것 자체가 운이 좋은 케이스에 속하는 것이다.[17] 따라서 이 사건 자체가 영구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

5. 여담

모방 행위를 걱정하는 여론도 있었는데 실제로 김 군의 트위터에 동조자들이 몰려들어 팔로워가 이틀새 6배 급증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으며 그 팔로워 중에는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도 잠깐 있었다가 사라졌다. 김 군을 팔로우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김 군을 취재한 언론인이거나 그의 행적을 궁금해한 사람들이라 실제로 모방할 가능성은 없었지만 말이다.

김 군 팔로워 중 IS에 가입하겠다는 이들도 있었다고 하며 실제로 트위터에 IS에 가입하겠다고 IS 요원과 연락하는 사람도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자칫하면 제2, 제3의 김 군이 나타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국가적으로 관련 사이트를 차단했다고 밝혔으나 위의 한국일보 기자도 접속 차단이 없었다고 절대 방심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애초에 인터넷 특성상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는 것도 아니지만 김 군의 사망 추정 기사와 김 군이 IS에 들어간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는 기사가 나온 후에는 이러한 사람들의 숫자도 줄어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에 하나 가담했을 경우 김 군의 사례처럼 본인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과 친구, 지인, 그리고 국가 기관의 수많은 사람들까지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일본 방송국에서 김 군의 행적에 대해서 상당히 상세하게 정리한 재연 다큐멘터리를 방송하여 많은 한국 네티즌들에게 주목을 받았다.[18] 지나치게 부분적인 이유나 센세이셔널한 내용은 자제하고 집단괴롭힘히키코모리 문제에 괴로워하던 청소년이 IS의 유혹에 빠졌다는 식으로 분석했다.

관련 기사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기자도 있다.
インターネットと孤独感に国境がない以上、日本でも同じような問題は容易に起こりうるかもしれない。テロに屈しないという言葉の意味は一体何なのか? その内実については、熟慮すべきだろう
인터넷과 고독감에 국경이 없는 이상 일본에서도 같은 문제는 쉽게 일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테러에 굴하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 내용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2015년 5월 31일 SBS 스페셜에서 김 군의 근황을 공개하기로 했으나 방송에서는 김 군을 만난 것은 아니고 IS에 한국인 초소가 세워질 정도로 김 군 이외의 한국인들[19]이 많이 있다는 내용이 방송되었으며 IS 훈련 장면 중 영천 FC 옷을 입은 사람이 사격 훈련을 진행하는 장면도 나왔다. 당시 SBS에서 인터뷰한 전직 IS 대원의 발언에 따르면 김 군과 성인 한 명을 더 만났으며 두 사람이 같은 언어(한국어)를 쓰고 있다고 증언했고 여러 명의 한국인 IS 가담자를 봤다는 증언이 시리아 반정부군 소속 정보국의 '바크리 카카' 시리아 임시 정부 정보국 부국장에서도 나왔다. 부국장이 봤던 IS 대원에 대해 "그(IS 대원)는 한국에서 왔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김 군 사망 추정 IS에 한국인 또? 전직 대원 발언 '깜짝'

IS 특수부대 전사들이 태권도를 시연하는 영상이 발표된 후 김 군이 태권도를 가르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오히려 다른 한국계 가담자나 태권도를 배운 외국인이 가르쳤을 가능성이 더 클 듯 하다. 영상: IS 태권도 훈련 공개... "김 군, 태권도 전파했나?" 애초에 태권도는 1970~80년대 무술 붐을 타고 국제적으로 광범위하게 뻗어나간 무술이자 스포츠이며 이미 1980년대에 지상파 뉴스나 언론에서 요르단군이라든지 카타르군이 태권도를 군대 무술로 수련하고 한국인 사범을 초빙해 군직을 주었다는 보도도 나올 정도였다. 더불어 1990년대 영화매트릭스에서 네오에게 프로그램 주입해서 무술 가르치는 그 장면에서 태권도를 주입하는 게 나올 정도다. 당연히 아랍권에도 알려져 있고 수련자들도 다수 존재하는 무술이기 때문에 한국인만 태권도를 할 줄 안다는 건 넌센스다. 무엇보다 올림픽 정식 종목이다. 가라데무에타이 같은 스포츠도 시범 종목은 몰라도 정식 종목은 되지 못한다는 걸 생각하면 태권도가 얼마나 메이저 스포츠인지 알 수 있다. 관련 영상을 분석한 안보 당국자에 따르면 국제태권도연맹(ITF)식 품새에 가깝다고 한다. 이쪽은 세계 여러 나라에 널리 퍼져 있긴 하지만 북한이라면 모를까 한국에서는 거의 하지 않는다. #

이런 배경을 배제하고 보더라도 사범 자격도 의심스러운 미성년자 한국인에게 굳이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더군다나 상기했듯 자기 방 안에 틀어박혀서 가족과도 소통을 거부하던 김군이 태권도를 배워 뒀을 가능성 자체가 전무하다.[20] 일본히키코모리 청년에게서 검도가라테를 사사한다는 말만큼이나 개연성 없는 추측이다.

김군 외에도 새로운 ISIS 가담자가 나타났는데 2017년 10월에 입대한 대한민국 육군 공병 출신으로, 현역일 때 공병 장비를 훔쳐서 테러를 준비 중이던 한국 자생 ISIS 대원이 2019년FBI로부터 정보를 공유받은 경찰에 의해 검거되었다. 테러방지법에 의한 최초의 한국인 검거 사례다. 기사

한편 2019년에는 역으로 쿠르드족 '인민수비대'에 가담해서 이슬람 국가와 교전한 한국인도 발견되었다. 물론 이 경우는 IS라는 극악무도한 자들과 싸우기 위해 현지 동맹군에 입대한 것이므로 김군과 달리 가담 자체는 합법에 해당할 수 있지만 어찌 됐건 여행금지 국가에 들어간 것이고 너무 위험했기 때문에 귀국 후 한국 당국에서 여권 반납을 명령하고 재출국을 막았다.[21] 이후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걸로 추정된다.

그나마 2019년에 알 바그다디가 미군에게 사살당하고 IS의 세력이 엄청 줄었으며 저렇게 들어간 이들이 위에 서술한 대로 속았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탈영을 시도한 뒤 돌아와 "유럽에서 빈민층으로 지내는 게 IS에 가담하여 받던 대우보다 낫다"고 증언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저런 망상이나 하고 가는 가담자는 크게 줄었다.

6. 같이 보기


[1] 1997년생. # 2010년에 중학교에 입학했다가 자퇴했다. #[2] 튀르키예 IS 지부의 간부로 추정된다. 기사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JTBC 소속 기자가 구글링으로 알아냈다.[3] 가지안테프 남쪽은 여행경보제도에서 여행금지국가시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점 때문에 철수 권고 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훗날 대지진이 발생하여 사상자가 여럿 나온 그 가지안테프다.[4] 인용문이므로 당시 표기법 그대로를 사용한다.[5] '공동 IS'라는 표현은 어색하니 'IS에 가담하였다'는 뜻의 'joined IS'를 잘못 쓴 걸로 보인다.[6] 김 군 가족의 수사 비협조로 의심된다는 추측이 있는데 이 때문에 언론에서 IS에 납치 또는 조심스럽게 가입한 것 같다고 난리가 났다가 뒤늦게 방에서 김군이 직접 IS에 가입하러 간다는 메모(JOINT IS)가 발견되었다고 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주장이 있지만 평소에 대화가 없는 은둔형 외톨이 상태의 가정이라면 모르다가 뒤늦게 확인했을 가능성도 있으니 추측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7] 실종 김 군, 쪽지로 부모와 대화하는 은둔형 외톨이?[8] 2015년중학교 3학년이었다. 2000년생.[9] 일본의 프리랜서 기자로, ISIL 핵심부에 직접적으로 선이 닿은 유일한 외부 인사였다. 실제로 ISIL 수반과의 인터뷰를 진행할 정도로 이쪽 분야에 대해서는 최고 전문가다. 일본인 기자 억류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ISIL에 연락을 취해 기자의 목숨만은 살리려고 했으나 일본 외무 당국에서 "테러리스트와는 어떠한 형태로든 교섭할 수 없다"면서 츠네오카의 교섭 주선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10] 사실 IS 입장에서 김 군 같은 외국 출신의 외로운 늑대형 지원병들은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자원이었기 때문에 의외로 전투에 적극 투입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역으로 서방의 공습도 이들에게 집중되었는데 시리아인 징집병들이나 용병들과 달리 끝까지 싸울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11] 게다가 IS에 가담 시 외국인의 경우 여권부터 뺏어간다는 소문도 있기 때문에 혹시 살아 있다고 쳐도 그의 수중에는 여권이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휴대폰도 그의 가족과 연락하다가 IS에 걸려서 뺏겼으므로...[12] 만약 그가 한국으로 귀국을 원했다면 이미 관련 인사에게 의견을 타진했을 가능성이 높다.[13] 200명 정도로 구성된 부대가 독자적으로 움직였다는 걸로 봐서 독립 부대로 추정된다.[14] 제대로 해 줬으면 그 많은 탈출자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전 외국인 지원병들 중에는 간신히 살아 고향으로 돌아온 뒤 "IS를 믿은 내가 멍청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였다"며 "차라리 유럽 밑바닥에서 그냥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게 나았다"고 증언하며 분노를 쏟아내는 외국인들도 있었다.[15] 전지에 임한 자는 1년이 경과하면 실종 선고가 가능하고, IS 가담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도 있을 것이다.[16] 서울지방법원 1996. 8. 27. 선고 93노8195 판결. "민법 제27조 소정의 실종선고는 실종자의 종래의 주소 또는 거소를 중심으로 하는 실종기간 만료시의 사법적 법률관계만을 종료케 하는 것으로서 (중략) 공법상의 법률관계에 관하여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므로, 피고인에 대하여 실종선고 심판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형사사건에 있어서까지 사망한 것으로 인정되어 당사자능력을 상실하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에서 실종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에 대한 형사재판 판결이다.[17] 대부분 후송되는 케이스는 정통으로 폭격을 맞지 않지 않은 파편상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단상부터 내장 파열 등 극심한 부상을 얻는 만큼 폭격의 위력은 매우 강력하다.[18] 귀차니즘이 있는 사람이라면 30분 정도 건너뛰어 봐도 된다. 이 영상은 1시간 28분짜리다.[19] 한국인으로 소개되었지만 한국계 외국인인지, 북한 주민인지, 정말 대한민국 국적 사람인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인터뷰에 응한 시리아 국민회의 인사들의 답변 내용에 그냥 Korea(북한)도 있었지만 South Korea도 있었기에 그 Korean들 중 전부 다는 아닐지라도 일부는 대한민국 국적자일 가능성이 있다.[20] 히키코모리가 되기 전에 태권도장에 다닌 적이 있었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가르칠 수준은 아니었을 듯 하다.[21]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IS와 싸우기 위해 현지 저항군에 가입했다고 한다. 언론에서 다룬 건 이 사람뿐이지만 실제로 가입한 한국인은 더 많을 것으로 보이며 IS가 와해되고 그들에게 잡혀 노예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거의 다 구출된 2017년 이후에는 대부분 고국으로 돌아왔다.[22] 둘 다 비정상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위험 지역으로 갔지만 트래비스 킹은 2023년 주한미군 월북 사건을 일으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에서도 추방당했고 본국으로 돌아갔다는 중대한 차이점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