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5호 전차 판터의 장단점과 전반적인 평가를 정리한 문서. 내용이 길어 독립되었다.2. 장점
2.1. 중전차급의 차체 전면 방호력
판터의 장갑 배치도 |
카탈로그 스펙으로는 납득이 안 가긴 하지만 독일 병기국의 보고서에 의하면 17파운더 APCBC가 판터의 차체 전면을 관통하려면 하단부를 노려야만 400야드, IS-2의 122mm 철갑탄의 경우엔 차체 전면 하단을 노려 100야드에서나 가능하다고 한다.[1] 포탑은 그만큼의 방어력이 안 나오는데 IS-2의 122mm에 포탑전면이 1500m, 포방패도 500m에서 뚫린다. 미군쪽 테스트 자료에서는 76mm M62 APC로 차체 전면은 건드릴 수 없는데 포탑전면을 1천 야드에서, 포방패를 200야드에서 뚫으며 90mm M77 AP로는 차체전면을 600야드, 포방패 1000야드, 포탑전면 1600야드에서 뚫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90mm HVAP로 사격했을 때 기관총 접합부 등을 취약한 부분을 700m 중반대, 차체 하단을 500m에서 관통하는 데 그쳤다. 미군의 신형 90mm T33 철갑탄으로는 차체 상부를 1km 거리에서 문제없이 관통 가능했지만 보급량이 적었다[2].
이 무지막지한 판터의 정면장갑을 관통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던 소련 병기국은 전쟁 말기에 장갑재의 부족으로 장갑의 질이 나빠져 소련의 85mm에도 정면장갑이 관통되기 시작하면서 한시름 놓았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독일은 소련이나 미국에 비해 경도가 매우 높은 장갑판을 선호했는데, 이 경우 관통될 가능성은 낮아지지만 대신에 장갑재가 일부 금이 가거나 깨져서 대량의 파편을 발생시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고 장갑재의 질 하락과 맞물려 비관통 상태로도 승무원이 파편에 살상되는 경우가 발생하곤 했다.
2.2. 주포의 뛰어난 관통력과 압도적인 명중률
(복원) 작업장에 관광객들께서 종종 찾아오시거든요. 2차대전 때 전차병으로 복무하신 분들께서 셔먼에 탔다가 피탄당했을 때의 사연을 말씀하시고는 하는데, 여기있는 판터를 보시고서는 몸을 부들부들 떠시더라고요. 주포를 보시면서 말이죠. 아직도 그때의 악몽이 떠오르시는 거죠.
ㅡ 탱크, 다시 태어나다(Tank Overhaul) - 판터 편
주포의 관통력은 매우 우수했다. 판터의 주포인 7,5cm KwK 42는 판터에서 처음 실전 도입된 물건이었지만, 75mm 계열 전차포 중에서 못해도 1~2위를 다투는 매우 우수한 관통력을 가진 포다. 퍼싱의 90mm 전차포도 HVAP가 아닌 M82나 M77 철갑탄의 경우 경우 판터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관통력이다. 물론 영국의 17파운더도 만만찮은 관통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3] 명중률까지 고려하면 판터의 주포가 더 우수한데, 17파운더는 시험사격(완벽하게 이상적인 조건, 단 구조적으로 복잡한 분리철갑탄이다. 일반 철갑탄의 경우 반동이 강해서 그렇지 멀쩡한 강선포인데 이렇게 못맞힐 만한 수준은 아니다.)에서도 400야드(약365m) 에서도 56.6%, 800야드(약730m)쯤 가면 21.9%는 거의 기도하면서 쏴야 하는 수준이다. 더군다나 이 시험시 사용한 표적은 폭 2.5m, 높이 2m짜리다! 같은 조건에서 판터쪽은 2000미터에서 48% 수준이다. 따라서 당시에 구할 수 있는 75mm 포 중에서는 최상급이므로 당시의 모든 중형 전차는 손쉽게 격파할 수 있었으며 관통력 면에 있어서는 표준 전투 거리에서 티거의 88mm를 능가했다. 근거리에서 판터의 70구경장 75mm 포가 더 강력한 이유는 탄속이 더 빠르고 탄 구경이 작은 만큼 좁은 면에 그 에너지가 집중되기 때문이었다. 단 고폭탄 성능은 구경의 한계로 인해서 88/56구경장이 강력했고, 표준 전투거리 및 그 이상의 거리에선 무거운 88mm 쪽이 더 오랫동안 자기 운동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어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88mm가 더 우수한 위력을 보인다.[4]ㅡ 탱크, 다시 태어나다(Tank Overhaul) - 판터 편
2차대전 이후 별다른 후계가 없는 88mm와 달리 이 75/70 주포는 전후 판터를 보상으로 받아 운용했던 프랑스[5]가 포신을 상당히 줄이는 등의 개조를 하여 AMX-13에 장착하여 냉전시기에도 사용된다.[6] 프랑스가 15톤도 안 되는 경전차에서 쓸 수 있도록 개조한 화포는 체급 대비 화력으로는 매우 쓸 만했다. 그러나 포탄을 바꾸는 등의 개량을 거쳐도 2차 대전 말에 개발되어 46년부터 배치된 신형전차인 T-54와 센츄리온의 전면을 무슨 수를 써서도 관통할 수가 없었기에 결국 AMX-13은 대전차고폭탄을 사용하는 90mm로 바꿔달게 된다.[7] 이스라엘 역시 공여받은 셔먼전차를 개조하여 원래 판터의 주포를 변형한 이 AMX-1375의 주포를 장비하기도 했는데 여기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T-54를 잡을 수가 없어 AMX-30에 장착된 105mm포를 변형한 프랑스제 105mm포를 장착하게 된다.
하여간 2차대전 기준으로 보면 무척 높은 관통력을 가진 주포라고 보면 되고 단지 구경의 한계는 확실하여 아직까지 사용되는 소련제 100mm D-10[8]등과는 달리 아무리 냉전기 기술을 사용한 개량을 해도 46년형부터의 전차들에게는 이빨이 안먹히는 한계가 확실한 주포라고 보면 된다.
이 외에도 판터의 주포에는 반동을 이용해 압축 공기를 뿜어서 포연을 배출하는 일종의 배연기도 있었다. 이는 KwK 42 기반 포를 사용한 4호 구축전차 모델에도 있는 기능이었다.
2.3. 전술적 기동성
방어력과 화력의 양립으로 무게도 적절하게 맞췄고, 여기에 티거에서 썼던 강력한 마이바흐 HL230 엔진을 탑재해 상당히 우수한 기동성을 가졌다. 게다가 티거와 동일하게 제자리 선회가 가능해 전술 기동은 훌륭했다.[9] 특히 독일 특유의 여러 겹으로 된 보기륜은 정비 면에서는 악몽과도 같았지만 궤도가 지면에 닿는 압력을 줄여서 부드러운 지형에서도 33톤 가량으로 훨씬 가벼운 셔먼 전차에 준하는 적응성을 보일 수 있었다. 스웨덴의 노획 판터 테스트에서는 험지 기동성에서 파이어플라이를 간단히 압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 #내가 보기엔 판터와 타이거가 우리 전차보다 기동성은 물론 험지 주파능력이 뛰어났다. 셔먼이 퍼지는 장소에서도 판터와 타이거가 기동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 미국 전차 소대 부사관 찰스 A. 카든 하사
- M4 sherman at war, michael green & brown
- M4 sherman at war, michael green & brown
판터 전차 궤도는 1인치 정도 지면을 파고든 상태에서 시속 18마일을 기록함. 같은 조건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M4A3E8의 속도는 대략 동일했다. 일부는 판터보다 늦거나 빨랐다. 포장 도로에서의 비교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판터의 최고 속도는 시속 38마일임. 일반적인 지면에서 판터의 궤도는 기동시 2분의 1인치 깊이의 자국을 남겼다. (광폭 궤도를 사용하는)M4A3E8 역시 비슷했으나 기존의 좁은 궤도를 사용하는 셔먼 전차들은 궤도가 지면 아래로 파고들었으며 2인치 깊이의 자국을 남겼다. 연결 핀 두 개를 제거하면 분리가 가능한 궤도를 가지고 있으며 궤도 장도는 대형 너트 하나를 통해 조절이 가능하다. 시험에 참여한 승무원들은 판터의 궤도 관리가 미국 전차 궤도보다 간편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75마일 정도 도로와 야지에서 기동했지만 지침서에서 예상된 문제는 드러나지 않았다. 이 전차를 노힉했을 당시 궤도는 손상되어 있었다.
- 1945년 3월 27일 노획된 판터 G형을 셔먼과 비교 테스트한 미군 보고서
- 1945년 3월 27일 노획된 판터 G형을 셔먼과 비교 테스트한 미군 보고서
다만 후진의 경우 변속기의 기어가 영국의 처칠 시리즈마냥 1단밖에 없다는 문제로 시속 2~4km라는 굼뱅이 기어가는 속도를 보여준다.
2.4. 성공적인 생산성과 높은 가성비
이전 모델인 4호 전차가 중량 25톤에 가격은 10만 라이히스마르크였던 것에 비해 판터는 주포와 조준경, 포탄 등의 무장이 완비되었을 때 중량이 45톤에 달했으나 가격은 약 17만 라이히스마르크 수준으로, 무게가 80% 증가한 반면 생산비용은 70%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또한 4호 전차보다 늦게 양산되었음에도 생산량을 따라잡을 정도로 생산성이 좋았다. 덕분에 연합군의 폭격과 특수강 고갈 등의 악재에 시달리던[10] 1944년에도 판터는 한 달에 약 300대 가량이 생산될 수 있었다.2.5. 야간 투시 장치 장착
FG-1250 밤피르 적외선 야시장치 |
3. 단점
3.1. 거대한 차체
M4 셔먼과 판터간의 크기 비교[13] |
3.2. 부족한 포방패, 차체 측후면 장갑
판터의 측면 장갑은 상부 30도에 초기형 40mm, G형 이후 50mm이며, 하부는 수직 40mm였다. 이 수치는 판터 운용 메뉴얼인 판터피벨에 따르면 소련의 주력 대전차포인 76.2mm 포를 270도 방위 어느 거리에서도 방호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 초기형 대전차포인 영국의 2파운더나, 소련의 45mm 대전차포에도 1km밖의 원거리에서 관통될 수 있는 수치였다. 물론 당시 타국의 중형전차들(셔먼 38mm, 크롬웰 46mm, T-34 45mm)과 비슷하기 때문에 판터만의 약점도 아니었으며 3호, 4호 전차(30mm)에 비해서 발전한 수준이었다.그럼에도 판터의 약점이라고 언급되는 이유는 소련군이 주력으로 운용하던 대전차 무기인 대전차 소총탄의 14.5mm탄의 경우, 서멧탄심 사용 시 50m 안이라는 근거리에서 쏘았을 때 최대 관통력이 45mm였기 때문에 크롬웰과 T-34도 방호 가능한[14] 보병이 쏜 총알[15]을 판터의 차체하부는 100미터 이내에서 관통될 가능성이 있었는데 이는 앞의 중형전차들 보다 한참 무겁고 비싼 판터에게는 문제가 있었다. 때문에 판터 2를 설계하면서 이를 해결하도록 했지만 판터 2는 취소되었기 때문에 측면에 5mm짜리 추가 사이드 스커트 장갑(합계 45mm)을 다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외장형 장갑은 파손될 확률이 높았고 실제로 운용되던 판터의 사진을 보면 중간에 빠져 있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측면은 확실한 약점이었고 실전사례로는 소련의 T-70이 45mm 주포로 판터의 측면을 관통 격파한 경우도 있었다.
전면 방어력도 강력한데다 국내에서는 무게로 전차를 구분하려는 경향이 강해 "중형 전차의 기능을 제한적으로나마 겸비한 중전차", "나쁘게 말하면 포지션이 애매한 중형전차" 등 어떻게든 중전차와 연관 지으려고 하는데. 확실히 체급은 소련의 IS-2, IS-3 중전차급이 맞으나 운용은 중형전차로 굴렸으며, 소련의 평가는 "구축전차에 더 가까운 전차"였다.
그도 그럴게 위의 이런 낮은 측후면 방어력으로 인해 IS-2는 판터를 상대할 때에 굳이 철갑탄을 사용하는 수고를 하는 대신 그냥 장전되어 있는 고폭탄으로 적당히 측면이 보이는 판터를 쏴버리는 방식이 더 간단했다고 한다. 122mm 고폭탄에 맞으면 포탑 측면이 말 그대로 박살이 났기 때문. #
IS-2가 중전차임에도 중형전차로 운용된 판터를 상대로 대전차전에서 열세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역으로 판터의 얇은 측면 장갑이라는 명백한 약점은 티타임을 주지 않는 한 연합군의 평범한 중형전차들에게도 쉽게 관통될 수 있었고, 중전차인 IS-2의 측면 장갑에 비하면 방어력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났다.
3.3. 포탑 회전 문제
판터 D형은 전기식 모터를 달았음에도 수동과 비교될 만큼 느려터진 포탑회전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A형부터 엔진 출력에 따라서 1회전을 15초 ~ 93초로 선택할 수 있는 유압식 회전 장치를 장착함으로써 회전속도는 개선할 수 있었다. 하지만 판터는 작은 포탑에 70구경장의 긴 포를 장착해 무게 밸런스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차체 경사각도가 20도 정도면 포탑회전출력이 부족해 포탑을 돌리기가 힘들었으며 그보다 더한 경사에서는 포탑이 제 무게를 못이겨 멋대로 돌아가기도 했다. 이 점은 미군이 노획한 판터를 실험했을 때도 동일했다.다만 심각한 문제점까진 아니었는데 사실 길 경사가 20도면 엄청나게 가파른 거다. 어지간히 가파른 산복도로도 실제로는 경사 10도에도 훨씬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사 12도를 넘어가면 험지용 차량이 아닌 일반 승용차들은 사실상 통행이 어렵다.
3.4. 낮은 신뢰성
붉은 군대가 3호 돌격포나 4호 전차를 사용하는 것은 그 신뢰성과 부속품의 충분함[16]으로 권할 만 하다. 하지만 신형 판터와 티거를 노획하여 사용해도 부서지면 고치려는 노력을 하지 마라. 그것들의 엔진과 변속기, 현가장치는 너무나도 나쁘다.
ㅡ 소련 병기국 1944
ㅡ 소련 병기국 1944
트랜스미션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주행거리 100km 이하일 시 5%가 전투불능수준을 보였고. 주행거리 1500km 이하에선 무려 90%가 전투불능수준을 보였다. 이는, 엔진공간이 협소한 것과 연료배관과 배기관 등의 문제가 겹쳐진 문제로, 결과는 위에 언급된 초기형(D형)의 대량 비전투손실. 추후, 트랜스미션은 개량하고 엔진은 종전 때까지 출력 제한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조치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설계안에서 무게를 지나치게 증가시킨 것도 문제가 되어, 연합군이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엔진의 평균수명을 주행거리 1,000km로 기록했고, 신뢰성 면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1944년에 영국군이 노획한 판터의 테스트 당시, 경사를 오르던 중 화재가 발생한 뒤, 3단 기어가 고장나 저단으로 시험을 계속했음에도 다시 화재가 발생해 전소되는 사태가 발생했고 # 1945년에 신품 판터를 노획해 테스트했을 때도 온갖 고장과 화재가 식별. 결국 테스트를 중지했다. #
특히 최종구동장치에서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여, 연합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44년 노르망디에서 방기된 판터의 전차의 50% 이상이 최종구동장치에 이상이 있었다.
독일군은 이 짧은 수명을 지닌 전차를 어떻게든 더 오래 써먹기 위해 짧은 거리라도 열차에 실어서 이동시켰다고 하는데, 전장상황에서 항상 열차를 쓸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하는 만큼 전략적으로 난점이 되었다.
전후 프랑스가 버려진 판터를 재운용 했으나, 운용하는 데 힘든 전차인 것만 재확인하고 퇴역시켰다.
3.5. 낮은 정비성
판터의 변속기 교체 작업 |
3.6. 중량과 그에 비례하는 짧은 항속거리
판터는 IS-2보다 고작 1톤이 가볍고 M26 퍼싱보다 오히려 더 무거운 중형전차의 탈을 쓴 중전차급 체격이어서 연합군의 중전차들만큼 무겁고 운송이 힘들고 연료를 많이 소모했다. 판터는 애초에 연료를 다 쓰기도 전에 퍼지기 마련인 낮은 신뢰성을 가진 전차지만 어떻게 안 퍼진다고 해도 T-34의 반도 못 가는 항속거리는 큰 문제가 되었다. 또한 무거운 무게는 교량이나 특수지형의 이용도 불편하게 했다.위에서 언급되었던 내용을 정리하자면 신뢰성 문제로 오래 자력주행을 할 수 없으며 어차피 기름 먹는 하마라 퍼지지 않아도 항속거리가 짧은데 정비까지 힘들었다. 즉 여러모로 지원체계[18]와 높은 숙련도가 필요했던 물건이였다.
3.7. 부족한 관측장비
조준경의 경우 TZF 12a 2.5배 ~ 5배로 조정할 수 있는 가변배율 조준경에 시야각도 2.5배율일 때 28도.[19] 5배율에서 14도라는 상당한 고성능이었다. 게다가 SF14Z 같은 삼각관측기 덕에 장거리 조준능력도 좋았다. 다만 소련 전차나 미국 전차에는 달렸던 포수용 보조조준경이 없었기 때문에 시야각이 좋다고는 해도 숙련된 전차장이 정확히 표적 방향을 지시해주지 않으면 포수가 표적을 찾기가 어려웠고, 이는 후술될 프랑스군의 운용 보고서에서도 비판되는 요소다. 사실 이는 독일군 전차들의 대부분이 그러했고 숙련도가 높은 차장과 포수로 극복을 했으나. 말기에는 동부전선의 소모전과 팔레즈 포켓으로 인해 숙련된 승무원들을 잃어버리고 그 자리에 초보 차장과 포수를 바로 전장에 보내는 바람에 말기에 벌어졌던 전차전에서 독일이 예전 명성과 다르게 연합군 전차들에게 털리는 사태가 발생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조준장치를 M4 셔먼과 비교할 경우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조준경이 장착되었기 때문에 간단한 비교는 어렵다. 극초기형 셔먼의 경우는 시대가 시대인지라 무배율 조준경만 달렸을 정도로 뒤쳐졌지만 흔했던 M70의 경우 3배율 13도 스코프로 열세인 정도였다. 그러나 후기형 76mm 셔먼의 경우는 M71처럼 5배율 13도 같은 고성능 스코프도 등장하게 된다. 게다가 이런 후기형 셔먼의 경우 포수용 보조조준경으로 1.x~6가변배율식 M10D 잠망경도 흔히 장착되었고 조종수나 무전수도 회전 가능한 잠망경으로 주변을 감시할 수 있어 근거리에서 위협을 찾는 것이 빨랐다. 덧붙여 미국은 명품 민수용 사냥용 스코프를 만든 경험이 많기 때문에 독일처럼 품질은 좋았다. [20] 전설적인 셔먼 전차장인 에이브람스가 아라쿠르 전투에서 75mm 포로 판터를 때려 잡을수 있던것도 안개낀 환경에서 셔먼의 근거리 표적 획득 능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셔먼의 경우 전차장이 탈취레버로 포수가 정밀조준을 하기 앞서 포탑을 선회해 표적에 지향할 수 있었던 데 반해 판터는 그런 것도 없어서 더욱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후기형 셔먼의 경우 전차장이 지시한 표적을 5~6초 정도면 포수가 사격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판터는 그 4~5배의 시간(20~30초)이 걸렸다.[21]
3.8. 포탑 공간
포탑 내부가 상당히 좁았다. 실제 내부를 살펴본 영상을 본다면 쉽게 느낄 수 있는 점으로서 특히나 탄약수의 공간의 경우 탄약을 원활히 장전하는 것 자체가 불편해보이는 점으로 이런 좁은 전투공간이 장기적인 전투에서는 상당한 피로도와 전투능력 저하로 직결 된다는 점에서 나름 중요한 문제다. 원래 전차의 포탑 자체가 좁기는 한데 승무원의 거주성에 직결되는 포탑링이 좁은 게 문제. 판터 포탑링은 76mm M4 셔먼보다 작고 T-34-85보다 조금 넓은 수준밖에 안 된다. 심지어 거주성이 매우 불편하기로 유명한 IS-2보다도 좁다. 물론 판터는 포와 포탄의 사이즈가 비교적 작기 때문에 IS-2급은 아니겠지만 T-34-85와 비슷한 포탑링에 크고 강한 포를 달았으니 승무원의 거주성이 좋을 수가 없다. 독일도 어느 정도 포탑의 단점을 인지했는지 F형에 달릴 계획이었던 슈말투름 포탑은 기존의 포탑과 비교해서 무게는 줄어들었는데 더 튼튼하고 내부 공간이 더 넓었다.[22]4. 총평
전체적으로 장갑, 화력, 기동성의 주요 요소에서 매우 우수한 성능을 보였고 가성비도 좋은 편이긴 했지만 단순한 스펙만을 놓고 보았을 때는 알 수 없는 문제가 꽤 컸다.[23] 측면을 잡힐 일 없는 장거리 교전, 그리고 장거리 이동이 필요없으며 미리 적들이 올 방향을 예상하고 대비 가능한 방어적 상황과 고관통력과 높은 명중률을 지닌 주포가 유리한 대전차전투에서 확연한 고성능을 발휘했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취약점을 보일 수 있었는데, 이는 특히 수세에 몰린 43년 이후의 나치 독일의 상황에서 우월한 교전비를 내기에 유리했다. 정면 중장거리 교전에서는 판터의 우월한 전투력에 더해 방어상황에 효율을 십분 발휘하여 정면으로 쳐들어오는 적과 싸워 승리했으나, 우회해오는 적들에게 포위당하면 전략기동이 안 되어 도망이 불가능해 후퇴가 더 합리적인 판단인 상황에서도 끊임없는 교전만을 강요받을 수 밖에 없었고 후퇴하다 퍼져서 전차를 자폭시킨 후 버리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러한 경우 죄다 비전투손실로 기록되었다. 판터가 전차의 전투력이 중요한 대전차전에서 명백히 우수한 교전비를 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전투력 이외의 고질적인 문제점들, 그리고 전차 성능 외적인 문제이지만 독일의 제공권 상실 등으로 인한 손실이 훨씬 컸다. 따라서 판터의 교전비를 볼 때에는 단순한 전차간의 교전비가 아닌 유기/자폭/포격/공습 등으로 인한 전차 내외적인 문제로 발생한 손실 등을 모두 고려해서 봐야 할 필요성 또한 제기되고 있다.신뢰성 문제의 경우 판터의 평가를 크게 낮추는 요소인데, 1943년 6월 도입된 이후로 계속 문제를 일으켰다. 전반적인 신뢰성은 개선된 부분이 있었으나 최종구동장치의 문제는 끝까지 해결하지 못했고[24], 구동계와 엔진화재 문제 등도 전후 프랑스와 소련에서도 공장을 한동안 가동하고 특히 프랑스의 경우 판터를 상당한 규모로 운용하면서도 해결하지 못한 것을 보면 사실상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였을지도 모른다.[25]
그런 이유로 해서 역사적으로 사용한 측과 상대한 측의 평가가 가장 상반되는 전차 중 하나로 직접 사용한 독일과 프랑스군의 평가는 거의 짜증스러운 분위기였고[26] 당한 측인 미소영 3국의 평가는 아주 높은 전차이기도 하다.
판터를 주력전차로 분류하자는 주장도 꽤 있다. 그러나 MBT는 자국의 독트린에 맞춰 다목적성과 일원화를 꾀한 전차를 뜻하기 때문에 중구난방이였던 나치 독일의 기갑체계의 일부중 하나에 불과한 판터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27]
또한 판터의 영향을 받아 MBT가 등장했기 때문에 판터가 MBT의 시조라는 주장 역시 많이 나왔는데, 미소영 3국의 1세대 MBT들도 판터의 영향을 특별히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발전한 경향이 높기에 이 주장이 틀렸다. 3국의 주력전차들은 전부 자체개발 전차들이었는데 T-54의 전신인 T-44와, M46의 전신인 M26 퍼싱의 프로토타입인 T-43, T20 모두 판터가 쿠르스크에서 데뷔하기 전에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또한 영국군의 센추리온 전차 MK I의 경우 처음부터 보병전차와 순항전차를 통일한 유니버설 탱크를 목표로 해서 판터와는 거의 관계가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직접적인 후손인 레오파르트 1 역시 독일 국방군 전차 계보와는 관계없이 기동성 그리고 상대적인 경장갑과 강력한 한 방에 중점을 두고 만들어졌다.
[1] 미군도 1944년 8월 3대의 노획된 판터를 대상으로 자국의 3인치(76.2mm, 흔히 76으로 불리는 그것.) 대전차포와 17파운더 대전차포의 관통력 비교 실험을 시행한 결과, 200야드 이상의 거리에서 발사된 포탄중 판터의 차체 정면 상부의 경사장갑을 관통하는데 성공한 것은 400 야드 거리에서 발사된 17 파운드 APDS 한 발뿐이며, 정면 하단부의 경우 600 야드거리에서 17파운드 APCBC 한발이 관통에 성공하고 76mm HVAP는 모두 관통에 실패, 400야드의 거리에서야 17파운드 APDS 와 APCBC, 76mm HVAP가 모두 관통에 성공하고 이 거리에서도 76mm APC(M62)는 관통에 실패 했음을 보고 하고 있다. 이 자료와 독일 병기국의 보고서를 대조하면 17 파운더 대전차포의 APCBC탄으로 판터를 정면에서 격파하려면 400 야드 거리에서 하단부를 노려야 한다는 독일 병기국의 보고서는 어느 정도는 신뢰할 만하다고 볼수있다.[2] IT WILL PENETRATE THE GLACIS PLATE OF THE "PANTHER" TANK UP TO 1,100 YARDS RANGE. #[3] 둘 다 APCBC를 사용해서 수직장갑을 관통시킬 경우 판터의 주포가 500m에서 168mm, 1,000m에서 149mm, 1,500m에서 132mm를 관통하고 17파운더는 500m에서 163mm, 1,000m에서 150mm, 1,500m에서 137mm를 관통한다. 관통력'만' 놓고 본다면 둘 다 비슷한 관통력을 가진 셈.[4] 판터의 75mm KwK 42 주포의 성능이 뛰어나서 얼핏보면 사소해 보일 수 있는 단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독일군이 이전에 사용하던 75mm 대전차포 및 전차포와 호환성이 전무하다는 단점이 있다.독일군 전차 포탄 관통력 표를 참고하면 각자 다른 75mm 포인 Pak 40, KwK 40, KwK 37이 발사체중 Pzgr. 39를 포함, 그외 일부 포탄을 공유하는 걸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Pzgr. 39의 경우 Pak 40과 KwK 40의 경우 탄피 길이만 다르고 발사약의 양과 발사체는 동일한 걸 사용하게 때문이다. 즉 판터 이전의 75mm는 전차와 대전차포가 탄피길이는 달라도 발사체를 호환 가능했다. 그러나 판터의 KwK 42는 Pzgr. 39/42로 발사체가 다르니 이전까지의 포들과는 발사체를 공유할 수 없어서 판터와 4호 구축전차 중 PaK 42(KwK 42의 대전차포 버전으로 구축전차에 탑재한다.)를 쓰는 경우에만 포탄을 공유 가능했다. 물론 이것이 큰 문제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판터와 4호 구축전차의 생산량을 합친 경우와 3호 돌격포, 4호 돌격포, 4호 전차, 헤처, 거기에 PaK 40 대전차포의 생산량을 생각해보면 생산과 보급 측면에서는 어떻게든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겠지만 만약 판터의 주포가 티거의 88mm KwK 36를 썼다면 88mm 대공포(Flak 41은 제외)들과 티거와 포탄을 공유하기 때문에 이 생산과 보급에서 생기는 문제는 조금이라도 나아졌을 것이다.[5] 2차대전 시기 전차기술분야에서 엄청난 발전을 이룬 미소영 3국과 달리 빠른 항복으로 인해 프랑스의 전차기술은 전간기 수준에서 크게 발전하지 못했기에 프랑스는 미소영 3국과 비교적 대등한 전차기술을 보유했다고 판단되었던 나치의 기술을 많이 카피해서 가능한 빨리 미소영 수준의 전차기술을 습득하려 했다. 그러나 나치의 전차기술은 이미 타국에 비해 열등해져 한계가 보이는걸 방어전 상황을 이용하여 신뢰성이나 정비성 같은 부분을 무시하고 억지로 공격력과 방어력을 높여 만들어낸 경우가 많았고 이런 열등한 기술을 바탕으로 만든 프랑스의 AMX M4, AMX-50 같은 프로토타입 전차들은 나치전차들이 가지고 있던 매우 낮은 신뢰성과 같은 문제가 동일하게 발생하여 프랑스가 2차대전 종전과 동시에 시작한 자국산 주력전차 개발을 AMX-30까지 늦추게 된다.[6] 출처: 워게이밍 AMX-13 영상. AMX-13 항목에 링크가 있다.[7] 60년대 유고테스트 등의 결과를 보면 2차대전 독일군의 주포는 오로지 88/71만이 구형이었던 T-54를 전면에서 85mm주포로 티거2 상대하듯 극도로 제한적으로 상대할 수 있다. APDS는 커녕 APCR도 개발하지 못하고 나치가 망했다.[8] 신형 T-55는 D-10으로 관통력(CE) 750mm급 ATGM까지 쏜다. 냉전기 기술로도 CE 390mm급 HEAT 사용이 가능하다.[9] 단, 교범에서는 변속기의 마모가 심각해서 위급상황이 아니면 제자리 선회를 하지 말라고 서술되어 있다.[10] 표면경화강을 쓴 것도 이 때문이다.[11] 야간 가시장치를 최초로 장착한 것은 T-26이다. 물론 투시장치는 아니었고, 그냥 서치라이트 2정.[12] 현대전차는 이것과는 수준이 다른(적외선 전등을 비추는 방식은 적도 적외선을 볼수 있는 카메라를 장착하면 공짜로 잘 볼 수 있다.) 흑체의 복사열이 스스로 발생시키는 적외선을 이용한 InSb냉각형 열화상장비를 장착한다. 물론 열상을 개발하는 업체들의 홍보자료나 학술자료들도 그 조상은 판터와 FG-1250으로 인용하고 있다.[13] 같은 중형전차임에도 수치 상으로 비교할 경우 판터가 M4 셔먼보다 전고, 전장, 전폭 등 모든 방면에서 크기가 20~30cm 정도 더 크며, 오히려 중전차로 개발 과정 도중 변경된 M26 퍼싱과 더 유사한 체급이었다. 특히 전비중량의 경우 퍼싱을 근소하게 앞지른다.[14] 다만 크롬웰은 공간을 가진 이중장갑의 합산이기 때문에 표면 장갑은 무조건 뚫린다. 거기다 그 공간장갑 내부에 서스펜션이 있기 때문에 재수 없게 서스펜션이 맞을 확률이 있었다.[15]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위의 대전차포보다도 은엄폐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잘 위장된 대전차포는 다섯 대의 전차보다 가치가 있다는 티거 에이스 오토 카리우스의 어록도 있는 판국인데 그보다 더 했다는 뜻이다.[16] 나치가 T-34를 노획하고 개조해서 사용했듯 소련도 스탈린그라드 이후 노획한 3,4호 계열 차량이 매우 많아 소련제 주포로 개조하여 사용하기도 했다.[17] 도면을 보면 운전수와 무전수의 출입구를 포함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곳을 통해 교체해야 했다.[18] 문제는 정작 대전 말기 독일의 보급망은 거의 붕괴했기 때문에 이런 보급관련 물품들이 제때 도착하지 못하는 편에 속했다는 점이다.[19] 양안조준경이기에 14+14도 하여 28도[20] 다만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셔먼 전차병의 증언에 따르면 보통은 포수 조준경으로 포탑을 조금씩 돌리며 주변을 감시하는 경우가 많은던 듯 하다.[21] 전후 프랑스군의 운용보고서에서의 비교 내용이다.[22] 내부 공간과 별개로 슈말투름 포탑은 포방패 형태를 구축전차에 달린 것과 같은 돼지코(Saukopf) 형태로 바꿔서 샷트랩 문제도 해결해보려고 했다.[23] 전장은 다르지만 리토리오급 전함과 매우 유사한 경우이다. 리토리오급 전함 역시 우수한 화력과 나쁘지 않은 방어력, 속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상대하는 측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너무 짧은 포신 수명, 맞으면 되려 피해가 커지는 어뢰 방어 구조, 주포와 지나치게 근접한 부포 등 크고작은 단점들이 많았다.[24] 최종구동장치가 개선된 야크트판터의 선례를 따라 G형 후기 생산분부터는 '어느 정도' 신뢰성이 개선되었으나, 완전한 해결은 아니었다.[25] 판터가 도입된게 1943년 6월인데 종전까지 저 구동계통의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결국 출력을 조절하는등 임시조치를 취하는 데 그쳤다.[26] 독일 측도 4호 전차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지형적응력, 고장이 나지 않으려면 아주 숙련된 조종수가 필요한 낮은 신뢰성, 소구경 장포신 대전차포의 시가전에서의 불리함, 시야확보의 불리함과 상대적으로 부족한 측후면 방어력으로 인한 측면과 근접전에서의 약점, 쉽게 화재가 날 수 있는 설계상 미스 등 4호 중형 전차와 비교하여 판터의 세부능력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보고서가 매우 많다. 물론 이전의 티거와 비교하여 더 빠르다는 면에서 전술적 기동전을 중시하는 장성들은 판터를 티거보다 더 좋아하기도 했다.[27] 소련군은 쿠르스크에서 판터를 최초로 노획한 후 테스트를 거쳐 판터가 체급상으로는 중전차기는 하나 구축전차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