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555555,#aaaaaa | 1979년 ~ 현재 | ||||
41대 뤼페 ★ | 42대 에레라 | 43대 쿠발라 | 44대 에레라 ★ | 45대 라테크 ★ | |
46대 로메로 | 47대 메노티 ★★★ | 48대 베너블스 ★★ | 49대 아라고네스 ★ | 50대 레샤크 | |
51대 크루이프 ★★★★ ★★★★ ★★★ | 52대 렉사흐 | 53대 롭슨 ★★★ | 54대 판할 ★★★★ | 55대 페레르 | |
56대 렉사흐 | 57대 판할 | 58대(대행) 데라크루스 | 59대 안티치 | 60대 레이카르트 ★★★★ ★ | |
61대 과르디올라 (과르디올라 체제) ★★★★ ★★★★ ★★★★ ☆☆ | 62대 빌라노바 ★ | 63대 마르티노 ★ | 64대 엔리케 (엔리케 체제) ★★★★ ★★★★ ☆ | 65대 발베르데 ★★★★ | |
66대 세티엔 | 67대 쿠만 ★ | 68대(대행) 바르주안 | 69대 사비 ★★ | 70대 플릭 (플릭 체제) ★ | |
★: 라리가 / ★: 코파 델 레이 /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 ★: UEFA 챔피언스 리그 / ★: UEFA 슈퍼컵 ★: UEFA 컵위너스컵, 인터-시티 페어스컵 / ☆: FIFA 클럽 월드컵 / ★: 기타 대회 | |||||
◀ FC 바르셀로나 감독 (초대~40대) |
[[펩 과르디올라|]] | |
제61대 감독 펩 과르디올라 | |
<colbgcolor=#26559b><colcolor=#ffef00> 감독 |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펩 과르디올라 / 제61대 감독 |
주장 |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카를레스 푸욜 / 제26대 주장 |
코칭스태프 |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도메네크 토렌트 (수석 코치)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티토 빌라노바 (수석 코치)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후안 카를로스 운수에 (골키퍼 코치)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카를레스 부스케스 (골키퍼 코치)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아우렐리 알티미라 (컨디셔닝 코치)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에두 폰스 (피트니스 코치)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로렌소 부에나벤투라 (피트니스 코치)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마넬 에스티아르테 (선수 지원 총괄 코치)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카를레스 플란차르트 (비디오 분석관) |
계약 기간 | 2008년 7월 1일 ~ 2012년 6월 30일 (4년 경과 / 1460일) |
계약 종료 | |
연봉 | 미상 |
전술 스타일 | 티키타카를 기반에 둔 포지션 플레이 ┗ 리오넬 메시의 폴스 나인 (선수 맞춤 전술) ┗ 세 얼간이를 필두로 하는 높은 볼 점유율 ┗ 삼자 패스, 하프 스페이스 공략 ┗ 4-3-3 포메이션 |
성적 | 247경기 179승 47무 21패(승률 76.24%) FIFA 클럽 월드컵: 2회 우승[1] 라리가: 3회 우승[2] UEFA 챔피언스 리그: 2회 우승[3]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4]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3회 우승[5] UEFA 슈퍼컵: 2회 우승[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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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FC 바르셀로나의 제61대 감독 펩 과르디올라 체제를 정리한 문서.2. 선임 과정
선수 시절 주장을 하는 등 바르셀로나의 레전드 출신이었으므로 선수 은퇴 직후인 2007년 바르셀로나 B팀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과르디올라는 부임 후 곧바로 B팀을 1위로 이끌며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면서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고, 이를 눈여겨 보고 있던 바르셀로나의 주안 라포르타 회장은 당시 성적 부진으로 경질을 앞두고 있던 프랑크 레이카르트 감독이 사임하자 그의 후임으로 펩 과르디올라가 지휘봉을 잡을 것이라고 선언혔다. 부임 당시 바르셀로나는 리그 3위, 2년 연속 무관이라는 부진한 성적표와 속칭 검은 양 사건으로 팀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던 상황. 그런데...3. 활동
3.1. 혁명가의 등장
처음에는 선수로서 은퇴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초짜 감독 과르디올라가 바르셀로나라는 명문 구단을 잘 맡을 수 있을지 이런저런 우려의 말들이 나왔다. 하지만 막상 1군 감독으로 데뷔하자마자 펩은 과감하게 대개혁을 실행하며 리빌딩 작업을 결정,[7] 호나우지뉴와 데쿠 그리고 두번째 시즌에는 사무엘 에투[8] 같은 핵심 선수들을 팀에서 내보냈다. 그러면서 메시, 이니에스타, 세르히오 부스케츠 등을 중심으로 시즌 초반부터 바르셀로나에 자신의 철학을 구현해내어 좋은 성적을 내더니 결국 감독 데뷔 시즌부터 6관왕 달성이라는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냈다.이처럼 펩이 등장과 동시에 트레블을 성공시키며 축구계에 파란을 일으키자 유럽 언론들은 그를 두고 '전술 혁명가'라고 칭하며 요한 크루이프가 꿈꾸었던 이상적인 축구가 펩으로 인해 비로소 실현되었다고 평했다.
3.2. 데뷔 시즌 6관왕
펩이 부임하자마자 FC 바르셀로나는 2008-09 ~ 2009-10 시즌에 6관왕#[9]이라는 대업을 달성하였으며 그 후로도 매 시즌 최소 2개 이상의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4년이라는 짧은 부임 기간 내내 엄청난 성적을 남겼다.그 후 바르셀로나는 흔히 티키타카로 불리는 극강의 점유율 패스 축구를 완성하면서[10]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까지 세계를 호령한 역대급 드림팀으로 평가받게 되었고 마찬가지로 바르셀로나 주전 선수들을 상당수 기용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역시 '무적함대'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둘째가라면 서러울 세계 최고의 국가대표 강팀이 되었다.[11] 이러한 면에서 과르디올라가 스페인의 계속되는 최강 행보에도 간접적으로 기여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감독으로서 과르디올라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리오넬 메시의 기량을 만개시킨 것이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메시는 전임 감독 레이카르트 시절부터 이미 떠오르는 유망주로 주목받았고, 호나우지뉴가 막장화된 07/08 시즌에는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발롱도르 2위에 오르는 등 이미 슈퍼스타의 반열에 올라있었으므로 메시의 발견이나 활용법을 온전히 과르디올라의 공으로 돌리기는 어려울 수 있다. 다만 그때 메시에게는 여러 약점이 있었는데, 가장 큰 약점은 '도자기 스타'로 불릴 정도로 유리몸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과르디올라의 부임 후 체계적인 식이요법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거치면서 메시는 이후 어떠한 거친 파울과 몸싸움, 혹사에도 부상당하지 않는 금강불괴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또한 측면 위주의 플레이를 펼치던 메시에게 측면뿐만 아니라 중앙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도록 주문했으며 결국 제로톱의 중심에 메시를 놓으면서 메시의 득점력과 찬스 메이킹 능력을 극대화했으며 메시는 뛰어난 경기력과 가공할만한 스탯을 동시에 거머쥐며 단숨에 세계 최고의 선수로 등극했다.
지금 시점에서 본다면 메시의 실력이 워낙 출중하니 과르디올라가 아니어도 언제, 어느 팀에서라도 빛을 보게 되었을 거라는 가정을 할 수 있겠지만 메시가 유망주에서 한 단계 위로 올라서야 할 중요한 시점에 과르디올라를 만나면서 감독과 선수간에 엄청난 시너지를 낸 것을 보면 과르디올라의 공로가 매우 크다는 걸 알 수 있다.[12]
물론 알렉산드르 흘렙,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영입 같은 잘못도 있었지만, 잘못된 선수 영입으로 돈을 날리는 일도 적은 편. 다만 선수를 영입할 때의 보는 눈은 개선할 여지가 보인다. 25M을 허공에 흩뿌린 영입과 같았던 드미트로 치그린스키[13]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바르셀로나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바르셀로나의 유스가 워낙 튼튼한 이유도 있다. 또한 영입 자체도 위의 두개가 워낙 커서 그렇지 나머지는 꽤 준수한 영입이었다. 특히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의 영입은 처음에는 돈낭비라고 까였으나 그를 센터백으로 활용하는 신의 한수를 두었다. 마스체라노가 없었다면 얇은 바르셀로나의 수비진으로는 챔피언스 리그와 리그 우승을 동시에 차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막스웨우, 아드리아누 코헤이아, 알렉시스 산체스의 영입도 제 값 이상은 했다는 평. 다비드 비야나 세스크 파브레가스 같은 경우는 본인 의사만으로 영입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치는 중이다.[14]
애초부터 선수들의 사생활 문제로 몰락해가는 팀을 살리기 위해 투입된 만큼[15] 일 중독자로 유명했다. 항상 수첩을 들고 다니며 전술과 전략을 연구하고, 선수들 각각 움직일 수 있는 경로나 포지션 같은 걸 따로 연구하며, 온갖 컨디셔닝은 물론 선수단 식단 메뉴까지 하나하나 다 챙기는 극도로 완벽주의적 매니징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완벽주의적 성향을 선수들에게도 요구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데, 가장 유명한 일화가 매일 밤 12시에 아무 선수에게나 전화를 걸었던 사건이다. 선수가 집에서 휴식을 취하다 전화를 받으면 아무 일 없이 넘어가지만 클럽에서 노는 등 집 밖에 있다가 전화를 안 받으면 즉각 불이익이 돌아갔다. 젊은 선수은 잘 따랐지만 앙리나 아비달 같은 고참 선수들은 매우 불편해 했다고. 메시의 식습관을 통제하기 위해 구단 내 탄산음료 자판기를 몽땅 없애버리라고 명령한 적도 있으며 트레이닝 세션에서도 무엇을 먹는 지까지 다 통제해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고 티에리 앙리가 증언한 바 있다. 심지어 헤라르드 피케와 같은 요주의 인물(?)들은 아예 사립탐정까지 붙여서 감시했다고 한다. 이렇게 강한 통제력과 철저한 매니지먼트를 추구하는 그의 성향은 라마시아 시절부터 그를 스승으로 모셔온 대다수의 선수들에게는 익숙한 일이었지만[16] 자유분방한 성향과 극강의 에고를 지닌 즐라탄같은 선수는 이에 적응하지 못했기에 펩과 충돌하게 되었다.
이렇게 일에 매달려서인지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있다. 과르디올라 감독 본인도 쉬고 싶은지 바르셀로나 감독직을 머지 않아 그만두고, 휴식 후 다른 팀의 감독을 맡는 걸 생각하고 있다고 인터뷰하기도.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 되었다.
바르셀로나의 선수진이 워낙 좋아서 선수빨이라는 억까도 듣는다.[17] 그래서 이러한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 다른 팀의 감독을 함으로써 능력을 보여야 한다는 소리도 많았다. 그러나 2010년대 바르셀로나 선수단의 압도적인 팀워크와 플레이 스타일을 구현한 것이 과르디올라의 능력임에는 틀림없다.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다는 식으로 그의 능력을 폄하하기엔 그 이전 최악이었던 바르셀로나의 상황을 생각하면... 오히려 지금의 밥상 자체를 펩이 직접 차린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18] 또한 세르히오 부스케츠와 페드로 로드리게스, 제라르 피케 등을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로 성장시킨 것에도 그의 공이 아주 크다.[19]
3.3. 역대 최강의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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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부임 첫 시즌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며 트레블을 완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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웸블리에서 다시 한 번 퍼거슨의 맨유를 격파하며 빅이어를 들어올린 과르디올라 |
또한 이 당시 펩은 바르셀로나의 선수단이 점차 자신의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듯하다. 이에 대한 고민 끝에 알렉스 퍼거슨과 라파엘 베니테즈에게 상담을 청했고, 두 감독 모두 선수단을 갈아치워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모양. 특히 스쿼드 물갈이 정평이 나있는 퍼거슨의 경우, ‘선수들을 갈아치워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도 모르는 사이에 선수들이 너를 갈아치우고 있을거다’라고 강하게 경고 했다고. 하지만 메시를 비롯해 새계최고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는 팀을 자신의 손으로 찢어발기는 일은 펩으로서 엄청난 부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 시간에 이르는 회장과의 면담에서 그는 무제한 선수 영입을 보장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1년간 휴식을 취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아쉽게도 이 시즌에 리그-챔스 모두 놓쳤으나, 코파 델레이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유종의 미는 거뒀다.
기자회견에서 1년의 휴식 후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겠다고 공식 선언. 그런데 벌써 맨유, 첼시, AC밀란, 인테르와 같은 유수의 클럽으로부터 링크가 나고있다. 2012-13시즌이 끝난후 여름에는 돌풍의 핵이 될 듯. 사실 이전부터 건강에 대한 얘기도 많았고, 감독을 오래 할 생각이 없다는 뉘앙스의 말을 하기도 했었으며, 계약 자체도 매년 1년 단위 계약을 고수해왔기 때문에 대다수의 바르셀로나 팬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 결국 4개 시즌 동안 무려 14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바르샤를 우주 최강팀으로 만든 혁명가 과르디올라는 끝내 작별을 선언하고 쏟아지는 박수갈채와 함께 바르셀로나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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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경기 결과
5. 공격 포인트 순위
6. 평가
자세한 내용은 펩 과르디올라/감독 스타일 문서 참고하십시오.FC 바르셀로나의 감독으로 부임한 2008-09 시즌부터 트레블을 달성하며 통칭 세 얼간이와 메시의 시대로 대표되는 바르사의 최전성기를 열어젖혔다. 이후 2010-11 시즌에는 축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팀 중 하나를 만들어내는 등 4시즌 연속으로 바르사 역사에 이름을 길이 남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팀 역대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의 반열에 올라섰다.
기간 대비 실적만 따진다면 당연히 과르디올라가 이견의 여지없는 역대 최고의 바르셀로나 감독 소리를 들어야겠지만, 현재 라 마시아로 대표되는 바르셀로나의 육성 시스템과 과르디올라가 이상적으로 구현해낸 토탈 풋볼과 티키타카라는 개념을 먼저 클럽의 색깔로 정착시킨 과르디올라의 은사 요한 크루이프의 존재 때문에 온리 원탑은 아니고 투탑으로 여겨지고 있다.[20]
7. 같이 보기
[1] 2009, 2011[2] 2008-09, 2009-10, 2010-11[3] 2008-09, 2010-11[4] 2008-09, 2011-12[5] 2009, 2010, 2011[6] 2009, 2011[7] 그가 바르셀로나에서 약 12년 동안이나 활약한 레전드 출신이었기 때문에 강력한 카리스마로 바르셀로나 선수들을 통제할 수 있었다. 비슷한 예로 반대편의 지네딘 지단이 있다.[8] 데쿠와 호나우지뉴는 곧바로 팀에서 방출된 반면, 에투는 과르디올라 부임 첫 시즌만 같이 보내고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트레이드되어 나갔다. 원래 펩으로부터 주전 자리를 보장해 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갈등했던 에투는 그래도 남아서 경쟁 해보겠다고 하면서 과르디올라와 면담을 진행했고 한 시즌 더 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좋은 활약으로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다. 본래 펩은 호나우지뉴가 잔류하기를 원했으나 호나우지뉴는 어느새 자신을 향한 주변의 험악해진 시선과 팀 내 갈등에 염증을 느끼며 자신이 바르사에 더 이상 남아있다가는 팀 전체 분위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 여기고 펩에게 바르셀로나를 떠나겠다고 통보를 했다. 이에 펩은 호나우지뉴가 AC밀란으로 이적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고 한다. 펩이 호나우지뉴의 잔류를 원했던 이유는 자신이 꾸며나갈 전술에 어울릴수 있는 선수였기 때문이다.[9] 6개 대회를 전부 우승했다. 이 기록은 달성 당시에는 유일무이한 6관왕 기록이었으나 2019-20 시즌에 한지 플릭의 FC 바이에른 뮌헨도 이 기록을 달성했다.[10] 오늘날 바르셀로나의 축구는 요한 크루이프 때부터 꾸준히 시도되고 있었다. 그것을 제대로 완성한 사람이 오늘날의 펩.[11] 이견이 있을 수도 있으나, 이 시기의 FC 바르셀로나는 축구 역사를 통틀어 역사상 가장 강한 축구 팀으로 꼽힌다고 해도 무방하다. 스페인 국가대표팀 역시 바르사 선수들이 핵심 주축으로서 메이져대회 3연패를 기록하며 역대급 팀으로 평가받는다.[12] 당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디에고 마라도나와 비교해 보면 차이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마라도나는 메시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해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고, 결국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광탈하며 메시의 대관식을 미룬 주범 중 하나가 되었다.[13] 치그린스키의 수비 기량 자체는 좋았으나, 바르셀로나의 팀 스타일과 맞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14] 파브레가스는 유스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바르셀로나라는 팀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였다. 그를 오랜만에 본 코치가 볼터치가 왜 이리 나빠졌냐며 놀라기도 했다.[15] 이 시기 바르셀로나는 애초에 사생활까지 강하게 통제할 수 있는 감독을 원하고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펩 다음의 유력 후보는 보드진에게 강하게 감독직을 원한다고 어필하던 주제 무리뉴였다고 한다.[16] 즐라탄이 자서전에서 디스한 바에 따르면 나머지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이런 시스템과 펩의 성향을 아주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고 팀 전체가 학교 분위기였다고 한다. 당시 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던 라마시아 출신들의 경우 유스 시절부터 펩과 그의 수석 코치 빌라노바의 가르침을 받아왔으며 특히 리오넬 메시는 청소년기부터 잠자는 시간에 식단까지 다 짜주고 구단에서 키우는 로봇같았다고 할 정도로 빡센 관리를 받으며 자라왔으니 익숙했을 만도 하다. 다만 바르셀로나 측에서 제작한 다큐에 출연한 기자들의 말에 따르면 펩의 집권기 말년에는 이들조차도 힘들어서 나가 떨어질 정도였다고 한다.[17] 마냥 선수빨이라기엔 펩 등장 이전 직전 시즌 레이카르트 시절은 애초에 무관이었고 펩 시대 이후의 바르셀로나도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한건 엔리케 단 한명 뿐이다.[18] 사실 역대 최강의 팀 소리를 듣는 바르사 전체의 압도적인 포스로 인해 감독인 과르디올라는 물론이고 바르셀로나 선수들 역시 잘나가는 것은 항상 'xx빨'이라며 까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메시가 잘하는 것은 샤비, 이니에스타빨이며 샤비가 잘하는 것은 메시 혹은 전술빨, 과르디올라는 선수빨이라는 식. 그런데 이는 달리 말하면 그만큼 당시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조직력이 탄탄했다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19] 지금은 당대 최고를 넘어 역대급 미드필더로 거론되는 차비 에르난데스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도 사실 과르디올라 부임 이전까지는 확실한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로 평가받지 못했다. 실제로 차비는 과르디올라가 정식 감독으로 데뷔하기 직전에 개최된 유로 2008, 이니에스타는 과르디올라가 정식 감독으로 데뷔하여 트레블을 달성했던 2008-09 시즌을 기점으로 해서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로 평가받게 되었다.[20] 흔히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레전드가 누구냐고 할 땐 선수로서는 역대 최고의 실력을 겸비했으며 현대 바르셀로나의 상징과 같은 선수인 리오넬 메시가 넘사벽, 그 다음으로는 메시 이전 시대의 에이스였던 호나우지뉴, 수비진에는 최고의 리더십과 수비 실력까지 갖춘 카를레스 푸욜과 그 시대 최고의 라이트백이였던 다니 알베스와 샌터백인 제라르 피케 미드필더로서 최강자였던 차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르히오 부스케츠, 그리고 과르디올라가 떠난 2010년대 중후반에 바르샤 공격의 핵심이었던 루이스 수아레스와 네이마르 주니오르 등이 따라붙고 감독으로서는 유스 시스템을 정비하고 토탈풋볼과 티키타카를 정착시켜 클럽의 기틀을 다진 요한 크루이프와 그 토탈풋볼이란 개념을 이상적으로 구현하고 완성시킨 과르디올라가 손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