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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0 GMC/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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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inch Gun Motor Carriage M10
파생형 실전 운용국 미디어 모형

1. 개요

미군이 개발한 대전차자주포인 M10 GMC의 실전을 기술하는 문서.

해당 대전차자주포는 미국에서 개발된 최초의 대전차자주포로, 세계 대전 시기 동부전선, 북아프리카 전역, 서부전선을 가리지 않고 사용되었다.

1.1. 대전기

1.1.1. 제2차 세계 대전

1.1.1.1. 북아프리카 전역
1.1.1.1.1. 엘 게타 전투
파일:울버린1.jpg
엘 게타 전투 당시의 비르마르보트 계곡으로 향하는 미 육군 소속 M10 GMC
최초로 투입된 시기는 1942년 말, 북아프리카 전역의 엘 게타 전투였다.

북아프리카에 투입된 M10은 맹활약을 했으며, 차체 장갑이 전면 38mm, 측후면 19mm라는 낮은 장갑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경사장갑을 채용하고 있어 3호 전차의 50mm 포는 근접한 상태가 아니라면 전면에서 도탄 가능한 성능을 지니고 있었다.

아프리카는 대부분이 사막이라 유럽 전선이나 태평양 전선과 달리 장거리에서 주로 대전차 자주포로서 저격을 통해 싸웠기에 단포신 포로는 저격하기 힘든 거리에서 M10은 쾌적하게 독일군 기갑부대를 무찔렀다.

M4A1과 더불어, 북아프리카에서의 승리를 연합군에게 가져다 준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1.1.1.2. 서부전선
1.1.1.2.1. 노르망디 상륙작전
파일:normandyM10.webp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의 영국 육군 제20대전차연대 소속 M10 Mk.II[1]
1943년, 북아프리카에서의 전투가 끝난 이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투입되었는데, 셔먼보다 장갑이 빈약했기 때문에 상륙전 와중 상당히 고전했다.

또한, 지휘관들이나 보병이나 포탑 달리고 돌아가면 전차라고 생각했기에, 상륙작전 당시 M4 셔먼 대신 M10을 공세 병기로 사용하는 삽질을 저질렀으며, 이 때문에 M10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저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 5호 전차 판터가 대량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미군에게 판터 쇼크가 발생하였는데, 영국의 경우 아킬레스 자주포 및 셔먼 VC, IC를 투입하여 해결했지만 미군 소속 M10들은 정면승부가 어려웠으며, 이 때부터 더 강한 화력의 차량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이어졌다.

하지만 90mm M3 대전차포를 장착한 차량들이 유럽 전선에 오기까지는 시간이 너무 걸렸기에, 상부에서는 급한대로 최강의 관통력을 자랑하는 HVAP탄을 보급하여 자주포병들이 대등하게 싸울 수 있도록 하였다.
1.1.1.2.2. 오버로드 작전
파일:attachment/Wolverine.jpg
생 로 전투 당시 독일군을 향해 포격 중인 미 육군 산하 제803대전차대대 소속 M10 GMC[2]
M10은 불리한 상황에서도 셔먼 이상의 대활약을 했는데, 특히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6호 전차 티거5호 전차 판터를 격파한 기록을 세운 것은 대다수가 M10이었다.

특히 서부전선 와중 M10의 대표적인 활약상으로는 1944년 프랑스 샤를마뉴 전투 당시 독일군 소속의 제130전차사단 산하의 제901척탄병연대 소속 네임드 차량이었던 "헤레나"와 425호차 "우르술라"를 제899대전차대대 소속의 M10 단 한대가 격파한 일이 있다.

사연은 이러한데, 당시 "헤레나"와 "우르술라"가 포함된 총 7대의 5호 전차 판터 소대가 며칠동안 전진을 하지 못한 채로 소강상태에 빠져있었다. 계속 이런 상태가 지속되니 견디다 못한 전차소대는 보카쥬 근방 마을을 일직선으로 돌파해 빠져나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판터 소대는 마을까지 순조롭게 진입했으며, 마을 인근에 주둔중인 미군이 판터의 소음을 감지하고 격파하려 했으나 그들을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우르술라"가 농가의 경작지를 우회하면서 후방을 노출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 M10이 바로 사격하여 격파했고, 나머지 한대인 "헤레나"가 이를 보고 놀라 사격하려 했으나, M10의 사수는 재빨리 HVAP를 장전하여 사격해 "헤레나"의 정면 장갑을 뚫고 격파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나머지 5대는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다 인근 농장에서 미군에 의하여 포로가 되었다고 한다.
파일:M10sirocochars.jpg
자유 프랑스 육군 제2기갑사단 소속 M10 네임드 차량 "시로코" 420154번차[3]

이 밖에도 M10은 여러 국가에 공여되며 그 활약을 톡톡히 했는데, 네임드 차량에 관한 일화 중 하나로, 1944년 8월 파리 해방전 당시, 필리프 르클레르 장군 휘하 제2기갑사단 소속 420154호차, 통칭 "시로코"라는 이름의 M10은 프랑스 파리 에투알 개선문에서 무려 1.8km 거리의 드 콩코르 광장에 있는 판터를 저격 후 격파하는데 성공한 전설적인 장거리 저격 기록을 세웠다.
1.1.1.2.3. 아르덴 대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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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지 전투 당시의 미 육군 소속 겨울 위장 M10 GMC
아르덴 대공세에도 M18 헬캣과 함께 다수가 사용되었으며, 기동성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헬캣과 달리 은엄폐를 한 후에 적 전차의 측면을 가격하는 형식으로 독일 전차들을 격파하였다.

76mm M7 포의 화력은 독일제 PaK 40 포보다 위협적이었던 데다가, 대전차 자주포라는 특성상 은신하고 있었기에 진격 시에 기습을 받을 것을 염려했다고 한다.

특히, HVAP 탄의 보급이 이 시기부터 드디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기에[4] 당시 독일 전차 군단의 주력인 판터를 상대로 대등하게 전투가 가능해졌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
1.1.1.2.4. 콜 마르 포켓 전투
파일:scan_pic0218_rdax_500x272.jpg
격파된 M10에 올라타 사격중인 어디 머피를 묘사한 일러스트[5]
1945년 1월 30일 프랑스 동부 알자스 지역의 마을, 콜 마르 포켓에서 어디 머피는 직전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방으로 이송되는 것을 거부하였는데, 이 때문에 중대에서 유일하게 남은 장교였던지라 중대장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당시 B중대의 상황은 매우 안좋았는데, 235명이었던 인원이 1월 26일 시점에 중대원 총원 18명으로 감소해 있었다.

얼마 안가서 6대의 독일군 전차와 다수의 보병들이 B중대를 향해 공격을 시작했는데, 머피는 중대원들에게 숲 속으로 이동하여 엄폐사격을 명령하고, 자신은 독일군의 직접사격을 받으며 중대지휘소에 홀로 남아 무전으로 중대를 지휘하며 자신의 M1 카빈으로 사격을 하였다.

그러나 곧 탄약이 바닥나버려 머피는 임기응변으로 적 전차의 포격으로 파괴된 M10 위에 올라타 자신의 몸을 노출시킨채 12.7mm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으로 몰려드는 적 보병을 사살하기 시작했다.

자살행위에 가까운 이 절망적인 전투는 한 시간 가량 지속되었는데,[6] 계속해서 아군이 쓰러지자 기에 질린 독일군은 겁에 질려 결국 후퇴하게 되었다.

전투 직후 머피는 다리에 총상을 입은 것을 제외하면 극적으로 살아남았으며, 무려 350명 이상을 처치하는 활약을 보였다.

이 부상에도 머피는 후송을 거부하고 중대에 남기를 고집했으며, 상부에서는 이 엄청난 일기당천을 보여준 머피를 크게 칭송하며 명예 훈장을 수훈했다.
1.1.1.2.5. 휘르트겐 숲 전투
파일:M10_Moving_Thru_Hürtgen_Forest_893rd_Tank_Destroyer_Battalion.jpg
휘르트겐 숲 전투 당시의 미 육군 제893대전차자주포대대 소속 M10 GMC
일명 가장 지옥같은 전투라고 불리웠던 휘르트겐 숲 전투에도 동원되었는데, 벌지 전투 때와 같이 독일 전차 군단을 격파하는데 활약하였다.
1.1.1.2.6. 독일 본토 진격전
파일:30th_Infantry_Division_And_823rd_Tank_Destroyer_Battalion_M10_Germany_1945.jpg
독일 본토 진격전 당시의 미 육군 산하 제30보병사단 보병들과 제823대전차자주포대대 소속 M10 GMC[7]
1945년 즈음에 들어서며, 주력 전차인 셔먼 시리즈들도 업건을 진행하며 M10과 동일한 화력을 지닐 수 있게 되었던데다, 후계자인 M36 GMC이 전장에 투입된 상황이었지만, 고속철갑탄의 보급량이 늘어나면서 계속해서 전선에 투입되었고, 나치 독일의 전차군단을 격파하는데 일획을 그었다.
1.1.1.3. 시칠리아 침공
파일:ch7fijm6lut01.jpg
시칠리아에 상륙한 미 육군 소속 M10 네임드 차량 "베시"[8]
연합군이 시칠리아에 상륙할 당시에도 M4 셔먼과 함께 많은 수량이 동원되었다.
1.1.1.4. 이탈리아 전선
파일:762px-M10_tank_destroyer_italy_1945_sm.jpg
이탈리아 전선 당시 64번 국도에서의 미 육군 제701대전차자주포대대 소속 M10 GMC[9]
이탈리아 전선에서도 셔먼과 같이 다수가 사용되어 스위스 방면으로 도주하는 독일군을 섬멸하는데 공을 세웠다. 공교롭게도 나치 독일군도 노획한 M10을 마찬가지로 전선에 투입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1.1.1.5. 독소전쟁
1.1.1.5.1. 바그라티온 작전
파일:3ec3e62eade8209e5d752764473e6fc4.jpg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승무원과 함께 촬영된 소련 육군 소속 M10
1944년 1월과 1945년 1월을 통틀어 총 52문의 차량을 받았으며, M10을 21문씩 제1223자주포연대, 제1239자주포연대를 새롭게 창설하여 배치한 후, 바그라티온 작전에[10] 투입했다.

한 줌도 안되는 매우 적은 수량에다, 전쟁 말기에 투입되어 큰 인지도는 없지만 M10의 활약도는 매우 뛰어났다.

특히 제16전차군단 산하의 제1239자주포연대의 일화가 유명한데, 당시 폴란드 루블린 탈환 직후에 뎀블린 지역으로 이동하여 동일 군단 산하 제1441자주포연대[11]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1944년 7월 30일, 제1441자주포연대와 제1239자주포연대는 이동 중 독일 루프트바페의 기습을 당하게 되는데, 제1441자주포연대는 다수의 차량을 손실하는 큰 피해를 입었으나, 제1239자주포연대의 경우에는 M10의 전차병들이 5문이 격파되는 와중에도 상단에 장착되어 있던 M2 중기관총으로 대공사격을 하여 Ju 88 한기를 격추시키는 성과를 달성하기도 했다.

동년 8월 1일에는 생존한 차량 17문을 모아서 8월 5일까지 바르샤바에서의 독일군의 저항을 저지하는데 큰 공을 세우게 되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연대 산하 4호차가 단독으로 전차 3대 격파, 장갑차 2대를 격파하는 쾌거를 이뤘다고 한다.

또한, 제1239자주포연대는 단독 차량이 독일 기갑 부대를 상대로 무려 기만 전술을 펼쳐 대승을 거둔 일이 있었는데, 연대 소속 "니콜라이 크라스노프" 중위가 지위하는 M10의 조종수였던 "이반 이바노비치 피뉴틴"의 수기에 따르면 어느 날, 짙은 안개 속에서 이동 중에 판터 6대를 마주쳤다고 한다. 이내 순간적으로 당황한 크라스노프 중위였지만, 판터들은 M10을 같은 판터로 오인하고 공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크라스노프 중위는 판터들의 뒤를 따라가라고 지시, 천천히 기동하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지던 순간, 판터들이 일제히 방향을 꺾기 시작했고, 중위는 포를 쏘라고 명령, 판터 한대가 M10의 탄을 맞고 주저앉아 버리자 나머지 판터의 전차병들은 아연실색하며 혼란에 빠졌고, M10의 포수는 침착하게 조준하여 나머지 판터 5대 모두 측면을 노려 사격 후 격파하는데 성공하였다.

반면 제1223자주포연대는 제1239자주포연대와 달리 수기나, 정보가 극히 드물어 활약상을 알기가 힘든데, 그나마 알려진 활약상 중 하나는 러시아의 명배우인 "블라디미르 자만스키(1926년생)"가 이 연대 소속으로 활동했다는 것으로, 1944년에는 자신도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전차장을 구출하였으며, 이듬해인 1945년 2월 2일 벨라루스 전선에서 6호 전차 티거 1량과 4호 전차 1량, 그리고 탄약 수송차 1량을 격파 후 독일군 50명을 처치하여 훈장을 2회나 수여받은 일화가 있다.

제1223자주포연대의 M10은 1945년 5월 1일, 종전 시기에 고작 10문만 살아 남았으며, 그 중 4문 만이 겨우 완벽히 운용 가능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수기나 정보가 적을 뿐이지, 제1239자주포연대 못지 않게 매우 치열하게 전투를 치렀음을 알 수 있다.
1.1.1.6. 태평양 전쟁
1.1.1.6.1. 필리핀 전투
파일:M10_Wolverine_Tank_Destroyer_77th_Infantry_Division_632_Bn_Ormoc_Leyte_Philippines_December_1944.jpg
필리핀 전투 당시 레이테 섬에서의 미 육군 제77보병사단 산하 제632대전차대대 소속 M10[12]
태평양 전쟁 당시 소수의 차량이 필리핀 탈환전에서 포격용으로 사용되었다.

대전차전에서의 활약은 불분명한데, 일본군의 전차는 37mm나 57mm 포로도 충분히 싸우고도 남았기에 대전차전보다는 포격전에 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1.2. 냉전기

1.2.1. 6.25 전쟁

1.2.1.1. 중공군 제5차 공세
파일:9976823A5CFCFE4906.jpg
중공군 제5차 공세 당시 부산항에서의 캐나다 육군 제25보병여단 C중대 소속 M10 IIC 아킬레스[13]
한국 전쟁 중 벌어졌던 중공군 제5차 공세 와중, 캐나다군 제25보병여단 C중대에서 M10 아킬레스가 주력 차량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실전을 치루기 이전, 이미 중공군의 엄청난 물량공세와 지옥같은 전투를 치렀던 영국 제8후사르연대에서는 아킬레스 자주포의 오픈탑 구조라는 문제와, 고폭탄의 화력 부족 때문에 대보병전에서의 취약하다는 점을 제25보병여단 측에 설파하였다.

때문에 C중대 측에서는 전차를 교체할 것을 의논하였으며, 이 때, 영국군 측에서는 자국의 최신 전차인 센추리온 Mk.III를 대여해주는 대신 자신들과 함께 작전할 것을 권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독자적인 군사작전권을 유지하겠다고 영국 측에 전달한 이후 미군 측에서 M4A3E8을 대여해주면서 아킬레스 자주포들은 대체되었고, 잔존 개체들은 캐나다 본국으로 송환되었다고 한다.


[1] 1944년 6월 6일 프랑스 소드 해변에서 촬영된 사진이다.[2] 1944년 7월 18일 촬영된 사진이다.[3] 1943년 1월 피셔 공장에서 생산된 차량이다.[4] 다만 해당 탄환은 1945년까지 18,000발만이 생산되었고, 그마저도 M7 포 전용의 탄환은 이 중 절반을 살짝 넘기는 58%에 불과하였다.[5] 당시 촬영된 사진은 없었다.[6] 그 격렬하다는 전차전도, 공중전도 겨우 몇 분 이내로 끝나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로 영원과 같은 시간이다.[7] 1945년에 촬영된 사진이다.[8] 1943년 7월 10일 촬영된 사진이다.[9] 1945년 촬영된 사진이다.[10] 정확히는 벨라루스 전선, 동프로이센 전선, 폴란드 전선 총 3곳의 전선이었다.[11] 제1239자주포연대와 달리, 제1441자주포연대는 SU-85를 운용하고 있었다.[12] 1944년 12월에 촬영된 사진이다.[13] 1951년 4월 25일에 촬영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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