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릴 문자 (Кириллиц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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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Ъ ъ러시아어 키릴 문자의 28번째 글자. 초기 키릴 문자 이름은 예르(ѥръ). 글라골 문자에서 유래한 키릴 문자이며 러시아어에서 일컫는 명칭은 твёрдый знак(트뵤르디 즈나크, 경음 부호)이다.
2. 역사
2.1. 러시아어
명칭은 'твёрдый зна́к(tvёrdyy znak, 뜨뵤르듸 즈나크)'. 자음 뒤에 붙어 발음의 경계를 형성한다. 즉 경음 부호를 경계로 앞과 뒤를 띄어 발음하라는 표시다. 이때 경음 부호 앞의 자음이 유성음일 경우 무성음화는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объе́кт는 '아브옉트' [ɐbˈjekt] 정도로 발음된다. 으라고 생각하면 편하다.현대 러시아어에서 이 부호는 음가를 가지지 않지만, 원래는 PBS[1] 및 그 후손 언어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던 짧은 모음(ultra-short vowel) */u/[2]을 표기하던 글자였다. 현대 러시아어에 큰 영향을 미친 고대 교회 슬라브어(Old Church Slavonic, 이하 OCS로 표기)에서는 이 글자를 '예르(ѥръ)'라고 불렀고, 마찬가지로 짧은 모음 /u/로 발음하였다[3]. 고로 당시에는 'сънъ(꿈, 현대 러시아어로 сон)' 같이 지금 러시아어 학도들이 보면 충공깽에 빠질 단어도 충분히 나올 수 있었고, 자음 연속이 상당히 빈번한 현재와 달리 당시 러시아어는 개음절 언어에 가까웠다. [4]
허나 슬라브어 특유의 강세 발달에 따라 강세가 있는 ŭ(strong yer)는 о가 되었고(예: угълъ(구석, 모퉁이)[5] /ˈu.ɡŭ.lŭ/ > угол [ˈu.ɡəl]), 강세가 없는 ŭ(weak yer)는 탈락하여 사라졌고(Havlík's law)[6] 원래 개음절이 중심이었던 러시아어에 폐음절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ъ의 빈도가 줄기 시작했고, (관례에 따라) 자음으로 끝나는 단어의 맨 마지막에는 꼬박꼬박 붙는 식으로 숨통만 붙어 있다가[7] '공간 낭비다'라는 지적에 1918년 철자법 개혁 이후 폐지되었고, 타자기나 인쇄기 등에서도 아예 글자가 빠져버리면서 사용 빈도가 확 줄었다.
현대에는 자음 뒤에 붙어 발음의 경계를 형성할 때 한정하여 부활하였지만, 1930년대까지는 이 경우에도 아포스트로피(')를 대신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1918년 이전에는 съѣздъ라고 적던 것을 1918년 이후에는 с’езд로 적었다. 때문에 1920~30년대 소련 공식 문서를 보면 об'ект, об'явление, под'езд, с'езд와 같은 표기를 자주 볼 수 있다. 심지어 1924년 제정된 소련 헌법 역시 원문에는 ъ 대신 '가 찍혀 있다. 이러한 표기는 1940년대 이후 러시아 키릴 문자 타자기에 ъ가 들어가면서 차츰 사라져 갔으며, 신문에서도 1950년대를 기점으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여전히 수기로도 아주 드물게 ъ를 '로 대체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이러한 대체 현상은 비단 러시아어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같은 키릴 문자를 쓰는 벨라루스어에서도 나타났는데, 아예 ъ가 폐지되고 '로 완전히 대체되어 ъ는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
위에서 볼 수 있듯 원래 러시아어에는 규칙적인 강세 규칙이 있었으나, 강세의 약화 및 철자법 개정 등으로 인해 강세 규칙이 무너져버려 현재는 단어를 보고 바로 강세를 유추하기가 힘들어진 편이다.
2.2. 기타
고대에는 분명히 음가가 있었고, Ь와 대비되던 글자였다. 짧은 /u/ 발음이나 /ə/ 정도로 발음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현대 러시아어에서는 Ь와 달리 음가가 완전히 사라져 앞에 오는 자음이 뒤에 위치한 모음과 연음되지 않음을 표시하는 기호로만 사용된다. 예를 들어 "촬영"을 의미하는 'Съёмка[ˈsjɵmkə]'는 [스욤커], 남성 이름 '세묜(Семён)'의 애칭인 'Сёмка[ˈsʲɵmkə]'는 [숌커] 정도로 읽는다. 원래 러시아어에서는 뒤에 모음이 오지 않는 경음 자음 뒤에는 이 글자를 붙이는 게 규칙이었는데[9], 사실상 음가가 사라졌기에 공간만 차지한다는 지적이 들어와 1917년 철자법 개혁때 '연음되지 않을 경우'에만 사용한다고 규정했고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다만 이 때문에 러시아어에서 중요한 강세 규칙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한글의 아래아처럼 예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으로 러시아의 경제지인 콤메르산트가 자사명을 Коммерсантъ라고 적는다. 아예 자사의 메인 심볼을 Ъ로 정했을 정도.일부 키릴 문자 표기법에서는 작은따옴표, 라틴 문자 표기법상에서는 큰따옴표(ʺ)로 옮긴다. 다만 라틴 문자를 통한 과학적 전자(scientific transliteration)에서 사용하는 ʺ(U+02BA)는 키보드 상에서 입력 가능한 "(U+0022)와는 인코딩 상의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소련 초기에 이뤄진 문자 개혁 시기에는 아예 Ъ를 작은 따옴표로 대체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1918~1940년대 자료를 보면 이따금씩 с’езд, об’ект, об’ём, об’явление와 같이 쓰인 것들을 찾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어나 벨라루스어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성공하여 Ъ를 폐지하고 작은따옴표를 사용하고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어와 벨라루스어에서 사용하는 기호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우크라이나어에서는 키보드 상에서 입력 가능한 '(U+0027)를 사용하며, 벨라루스어에서는 ’(U+2019)를 사용한다.
옛 슬라브어의 특성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불가리아어엔 이 발음이 /ɤ/(강세모음) 또는 /ɐ/(비강세모음) 음소로 남아 있어 бъ̀лгарски를 [ˈbɤɫɡɐrski](벌가르스키), Бълга̀рия를 [bɐɫˈɡarijɐ](발가리야)라고 읽는다.
3. 기타
한국어의 키릴 문자 표기법에서도 이 문자가 연음되지 않음을 나타내는 용법으로 쓰인다. 가령 '평양'을 한국어의 키릴 문자 표기법 중 하나인 콘체비치 표기법대로 쓰면 'Пхёнъян'이 된다[10] 문제는 사람들이 콘체비치 표기법을 잘 몰라 거센소리 'ㅍ'으로 읽어야 하는 'Пх'를 글자 그대로 [px\](프흐)처럼 읽어버리는 경우가 잦고, 러시아어 특유의 강세 규칙에 따라(강세가 я에 들어간다) 실제로는 '프힌얀'~'핀얀' 정도로 읽어버린다.한편 캅카스 지역의 많은 언어들에선 경음부호가 서로 다른 자음을 구별하기 위해 쓰인다. 캅카스 산지의 언어들엔 방출음이나 구개수음처럼 러시아어에 없는 발음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가령 다게스탄에서 쓰이는 아바르어를 예로 들면 г는 러시아어에서처럼 그냥 /ɡ/ 발음이지만 гъ는 구개수음인 /ʁ/ 발음을 나타낸다. 타지크어 키릴 문자에서는 경음부호가 성문 파열음 /ʔ/을 표기하는 데 쓰인다.
[1] Proto-Balto-Slavic. 현 동유럽 지역 언어들의 공통 조상.[2] 앞의 별표(*)는 해당 음가가 재구한(reconstructed) 음가임을 의미한다.[3] 모음이 약화되었다고 해서 reduced vowel이라고 한다. 학계에서는 관행적으로 'ŭ'로 전사한다.[4] 예를 들어 현대 러시아어의 где(=where)는 OCS къде에서 유래하였다. ъ가 탈락하고 후행 자음에 영향을 받은 к가 г로 변해 현재에 다다랐다. 참고로 불가리아어는 지금도 къде라고 쓴다.[5] 더 예전에는 ѫгълъ[6] 하블리크의 규칙에 따라, 단어의 맨 마지막 ъ는 강세가 없으며, 그 앞 음절의 ъ는 강세가 있고, 그 앞 음절의 ъ는 강세가 없는 식으로 이어진다... 긴 모음(full vowel: ъ 및 ь가 아닌 모음)이 나타날 때까지 이런 식의 엇갈림이 계속된다. 또 다음 음절에 긴 모음이 있을 경우(followed by a non-reduced vowel in the next syllable) ъ는 강세가 없다.[7] 예를 들어 'Я вас любил(푸시킨의 시 제목이기도 하다)' 같은 경우 과거에는 Я васъ любилъ로 적었다.[8] 여기서 별표는 문법적으로 잘못된 단어를 의미한다[9] 때문에 푸시킨의 명시인 «Я вас любил»은 당시의 표기법으로는 «Я васъ любилъ»이다. 푸시킨이라는 이름도 'Пушкинъ'이라고 썼다.[10] 다만 현실에서는 관용적 표기에 따라 'Пхеньян'이라고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