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3 16:27:50

쇠 쇠
부수
나머지 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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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획
총 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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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획
미배정
-
일본어 음독
ショウ
일본어 훈독
-
표준 중국어
zhāo
* 연한 빨간색으로 표기된 신자체는 본래 한자가 비상용한자임을 나타냄
  • 괄호를 친 독음은 특이한 상용독음을, 연한 빨간색으로 표기된 독음은 비상용독음 또는 본래 한자가 비상용한자임을 나타냄

1. 개요2. 음가3. 사용례
3.1. 낱말3.2. 지명3.3. 인명
4. 모양이 비슷한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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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볼 조, 볼 교, 쇠 쇠
파일:zhao.png
(쇠 금)자에 (칼 도)자가 합쳐진 글자로 쇠에 칼로 새기는 모습을 표현한 회의자이다. 주나라 시대 이후에 등장한 문자이기 때문에 갑골문은 없고 금석문 이후의 형태만 전한다. 설문해자에서는 깎다(刓也)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 외의 뜻으로 보다(見也), 힘쓰다(勉也), 멀다(遠也), 쇠뇌틀(弩機)이라는 뜻이 있고, 한국 한정으로 쇠 쇠라고 해서 로도 읽으며 인명자로 쓰인다.

한자 급수로는 "쇠 쇠"로만 어문회 특급Ⅱ로 분류되어 있으며, 인명용 한자음으로는 '소' 또는 '쇠'로 쓸 수 있다.

2. 음가

이 글자를 쓰는 이름의 경우 국내 대부분의 사전이나 백과사전의 설명에서 로 표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글자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이름의 경우 그 음가를 "쇠"로 달고 있다. 이는 '乭(돌)'과 마찬가지로 구결에서 비롯된 훈으로 보인다. 구결에서 刂는 '利'에서 비롯되어 '이'로 읽었으므로, 金에 刂를 달아 金刂로 적고 '쇠'라고 읽는 독법이 있었다. 그것이 하나의 글자로 합쳐져 釗가 된 것이다. 그런데 乭의 경우는 乙은 乚/乙의 형태로 방으로나 쓰이지 乙형태 그대로 발로 쓰이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반면 刂는 같은 위치에서 부수로 활발히 쓰였기 때문에 중국에서 쓰이는 釗와 우연히 모양이 겹쳤다. 따라서 한국인의 인명에서만 로 표기함이 마땅하다.[1] 단국대 동양학연구원에서 발간한 '한국한자음사전'에서는 국의자로 설명하며, 국음은 "쇠"라고만 설명하였다.

아예 중국에서 쓰이지 않는 국자와는 달리 중국에 존재하는 자가 한국에서 특별한 뜻으로만 쓰이는 경우 국의자(國義字)[2], 한국 한정의 음이 존재하는 경우를 국음자라고 하는데[3] 이 글자는 전자와 후자에 모두 속한다. 즉 형태는 같지만 사실상 동형이자 관계에 속한다.[4] 비슷한 예로 垈가 있다. 이 글자는 한국 국자로는 "터 대"라는 글자지만, 일본에서는 ぬだ라고 읽는 지명용 국자이다. 다만 이 글자가 다른 글자에 비해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비슷한 상황인 다른 글자 頉(본음 이, 국음 탈), 媤(본음 사, 국음 시)의 경우 중국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벽자라서 충돌될 여지가 없는 반면에 이 글자는 주 강왕의 이름으로 사용되어 이후 중국에서 인명자로 널리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당장 아래 인물 목록을 보면 알겠지만 이 글자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이래 꾸준히 인명에 사용되었고 현재도 이 글자를 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중국에서 이 글자를 나타내는 반절은 止遙切, 之遙切(광운), 莊交切(집운), 古堯切(광운)강희자전 釗항목, 광운 蕭韻로 나타나며, 이 글자의 상고음은 [kljew]로 추정되고 있다. 광운 및 집운에서 설명하는 반절의 경우 앞의 두가지는 모두 章母+宵韻 3등(중고음 [tɕiɛu])임을 나타내는 반절로 이에 합당한 음가는 과거의 표기법으로는 "죠"며 현대 한국어 표기로는 "조"가 합당하다.[5] 古堯切절의 경우 見母+蕭韻 4등(중고음 [kieu])를 나타낸 것으로 "교"로 읽는 것이 합당하다.[6] 네이버 한자사전네이버 한자사전 釗항목에서는 이 음가에 대해서 로 음가를 나타내고 있으나 후술할 집운의 莊交切을 따른 것이거나[7] 音昭를 따라 "소"로 표기한 것이나 昭는 조(止遙切)와 소(時饒切)라는 두가지 음이 모두 있지만 중국에서는 "조" 쪽이 주류음이고 "소" 쪽은 비주류 음이었다. 근고한어에서 중국 쪽에서는 거의 "조"로만 읽었다. 당장 상고음-중고음의 변천 과정과 강희자전의 반절을 함께 보면 여기서 쓰인 "조"나 "교"로 읽는 것이 합당하다.[8]

집운에서 나오는 莊交切의 경우 이전에 편찬된 절운부터 광운에 이르기까지의 운서가 모두 절운의 확장판에 가까웠던 반면에[9] 집운은 之母가 권설음화되고 있는 현실에 맞추어 莊母[ʈ͡ʂ][10]로 옮긴 것인데 이를 따르면 "죠"가 된다. 이 집운의 莊交切을 따르면 "소"로 표시될 근거도 있다고 할 수 있다.[11] 그러나 집운의 내용에 따르면 쇠뇌틀, 힘쓰다는 "교"(堅堯切)[12], 쇠뇌틀, 달아나다, 힘쓰다 일때는 "교"(祁堯切)[13][14], 깎다, 주 강왕의 이름, 힘쓰다, 쇠뇌틀은 죠(조)(之遙切)[15]으로 읽도록 규정하며 오직 주강왕의 이름에서만 "죠"(속음 "쇼")(莊交切)[16]로도 읽을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즉 주강왕의 이름을 제외한 경우는 사실 "소"로 읽을 여지가 전혀 없으며 이 음가 또한 전술한 상고음이나 중고음을 감안하면 "조" 혹은 "교"로 읽는 것이 훨씬 합당하다.[17] 그리고 어느 쪽이든 "쇠"로 읽을 수는 없다.

그리고 명나라 대에 발간된 홍무정운에서는 반절에 之遙切을 제시했으며 강희자전에도 止遙切,之遙切의 음가를 제시하였고, 분운촬요에서도 소운에서 昭로 묶여 있어(전술했다시피 조선에서는 밝다는 "소"로 비추다는 "조"로 읽었지만, 근고한어에서 昭는 "조"로만 읽었다.) 근고한어에서는 거의 한국한자음 "조"로만 읽혔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별도의 반절이 없을 경우 명청대 인물에 대해서 이 글자는 "조"로 읽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즉, 이 글자가 중국인의 이름으로 사용될 경우 쇠로 읽을 이유가 없다. 따라서 이 글자가 중국인의 이름으로 쓰일 때는 발음이 /zhāo/(止遥切)라면 로 /jiāo/(古堯切)./qiáo/(祁堯切)라면 로, /cháo/(莊交切)만 "소(본음 조)"라고 읽을 수 있다. 는 한국인의 이름으로 사용될 때에 한해서 읽어야 한다.

3. 사용례

3.1. 낱말

  • 가막쇠(釗\[고유어 음차\]): 한 끝을 감아 고리못을 달고, 한 끝은 갈고리 모양으로 구부려 배목에 걸도록 만든 쇠. 흔히 문짝을 잠그거나 움직이지 못하게 할 때 쓴다.
  • 등자쇠(釗 / 쇠): 두 부재를 감아 목재의 이음을 보강하는 디귿 자 모양 쇳조각인 감잡이.
  • 발쇠(釗 / 쇠): 쇠뇌를 쏘다. 쇠뇌는 순우리말이다.
  • 요구쇠(釗\[고유어 음차\]): 갈고랑이 모양으로 생긴 쇠.

3.2. 지명

3.3. 인명

신해혁명 이전의 중국인의 이름에 釗자가 들어가는 경우 상당한 혼란이 있다.

4. 모양이 비슷한 한자

  • (요리할 결)
  • (벌일 렬)
  • (죽일/묘금도 류)
  • (벨 예)
  • (절 찰)
  • (소리 현)


[1] 참고로 한국에서 국자가 아닌 국의자의 예는 釗 외에 시집 시로 쓰이는 , 탈날 탈로 쓰이는 頉(중국에서는 頤의 이체자)가 있다.[2] 太가 콩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3] 印을 끝이라고 읽는 경우.[4] 다만 釗의 경우 같은 형태의 글자가 중국에 있다는 인식은 국내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원종이 주나라 강왕의 이름을 본받으려 자신의 휘를 釗로 고쳤다가, 동형이자 이름의 고국원왕이 비명횡사를 한 사실을 알고서 이름을 되돌렸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5] 같은 반절에 속한 한자들은 모두 "조" 내지 "초"로 발음된다.[6] 참고로 이 반절도 사정이 복잡한 편이다. 다만 한국의 자전에서는 이 음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원음인 "교"로 적고 있다. 반면 중국에서는 대표자인 驍가 근고한어에 이르면서 曉에 이끌려 속음 xiao가 되면서 같이 xiao로 읽히는 글자도 있었고(梟 등) 澆처럼 원음대로 jiao가 된 경우도 있고 한국에서는 澆(堯에 이끌려), 邀(원래부터 교와 요가 둘다 있음)에 이끌려 "요"가 된 글자도 있는 매우 문제가 많은 반절이다.[7] 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운학이 발달하기 전에 한국에서 쓰이던 운서가 집운의 요약판에 해당하는 배자예부운략(광운의 요약판인 예부운략에 집운의 기준을 적용한 수정본이다.)이었기 때문.[8] 상고음이 kljew였는데 중고음에서 tɕiɛu, kieu의 형태로 음이 분화된 것은 당시 한자음에서 광범위하게 보이던 현상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고음항목의 구개음화 항목 참고 바람.[9]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절운부터 광운까지의 운서를 절운계 운서라고 부른다.[10] 조기 중고음 시기에는 tʃ로 발음 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만기 중고음으로 갈수록 권설음화되었다. 현재도 권설음으로 발음된다.[11] 집운의 莊交切에 속한 한자의 경우 소(巢)처럼 소로 읽는 경우와 抓처럼 조로 읽는 경우가 갈리기 때문.[12] 爾雅勉也一曰弩機[13] 群母+簫韻 4등으로 중고음 /gieu/에 해당한다. 병음으로는 /qiáo/[14] 弩機也一曰逸也勉也[15] 說文刓也周康王名一曰勉也一曰弩機[16] 闕人名周康王[17] 후한대의 설문해자止遥切의 반절은 止遙切, 당운, 정운의 음가는 之遙切, 광운에서의 반절은 止遥切.[18] 현대 중국어 외래어 표기법상 발음은 리자오.[19] 국가와 공공에 공로가 있고 공무 등에 장기 재직해 성적을 올린 자에게 수여하는 일본의 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