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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청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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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가오청융(高承勇, 고승용, Gao Chengyong)
출생 1964년 11월 10일
간쑤성 란저우시
사망 2019년 1월 3일 (향년 54세)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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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유형 연쇄살인
가족 부인, 슬하 2남
신체 170cm

1. 개요2. 생애3. 범행 일지4. 체포5. 재판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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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팟캐스트 프로파일러 배상훈의 CRIME - 바이인 연쇄살인 사건1:비오는 날, 빨간 옷의 여자가 죽는다?![1]
팟캐스트 프로파일러 배상훈의 CRIME - 바이인 연쇄살인 사건2:쌍둥이 형에게 제물을 바치는 싸이코패스

1988년부터 2002년까지 14년 동안 9명의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바이인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바이인에서 저지른 사건 외에도 내몽골 자치구의 바오터우에서 2건의 살인을 더 저질러 총 11명의 여성을 잔혹하게 강간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호적이 외지에 등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DNA 대조가 불가능해 번번이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는 데 성공했으나 공안에서 호적과 관계없이 바이인시에 거주하던 모든 남성의 DNA를 전수 조사하다가 결국 2016년 8월 26일에 검거되었다.

중국판 잭 더 리퍼 혹은 중국판 이춘재라고도 불리는데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장기간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 범행 대상이 여성들 뿐이었다는 점, 범행 후 시체를 잔혹하게 훼손했다는 점, 끔찍한 참극을 벌이고도 철저하게 일반시민으로 위장해 살아 왔다는 점[2]에서 잭 더 리퍼와 유사한 점이 많다. 이러한 공통점 때문인지 세간의 언론들도 그에게 이런 별명을 붙였다.

그가 벌였던 바이인 연쇄살인 사건은 범행 대상과 범인에 대한 괴담[3], 장기 미제사건이었다는 점이 유사해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중국판 '살인의 추억'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실제로 2019년 대한민국에서 밝혀진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이춘재와 가오청융은 생애와 성격 면에서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물론 차이점도 있는데 이춘재는 화성 연쇄살인의 범인임이 밝혀지기 훨씬 전에 이미 다른 살인사건으로 감옥에 보내져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데 반해 가오청융은 범인임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잡히지 않고 사회인으로 멀쩡히 생활했다는 점이다.

2. 생애

1964년 11월 10일 중국 간쑤성 란저우시 위중(楡中)현 출생으로 어렸을 적 꿈은 비행기 조종사였다고 한다. 그래서 비행기 조종사가 되려고 시험을 치렀지만 번번이 낙방해 결국 방적공장의 노동자가 되었다. 공장 노동자로 살면서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1986년에 결혼하고 1988년부터 그의 고향에서 약 120km 떨어진 바이인시에 정착해서 살았으며 2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2013년부터 주거시설이 갖춰진 바이인공업학교 매점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

어렸을 적 꿈을 이루지 못한 탓인지 성격이 매우 내성적이었으며 우울하고 차가운 면이 있었고 사람들과 원만하게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조용히 있는 걸 좋아했지만 부모에게 매우 효성이 깊어 마을에서는 소문난 효자로 알려졌으며 부모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부모님의 대소변을 받는 등 열심히 돌봤고 자신의 가정에 대한 책임감도 강해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을 아들들은 이루게 하려고 했던 모양으로 어려운 살림에도 공부를 열심히 시켜서 중국의 명문대에 진학시키기까지 했고 두 아들은 졸업 후에 연구기관과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를 부러워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게 이웃들에게 '부모 봉양을 잘하는 효자', '어려운 살림에도 자식들을 명문대에 진학시킨 훌륭한 부모'로 칭송받던 그가 사실 중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악랄할 연쇄살인범일 것이라고는 그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부인과 아들들조차도 그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을 전혀 몰랐으며 그가 연쇄살인범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3. 범행 일지

그는 24세였던 1988년 5월 26일 처음 살인을 저질렀는데 그것이 바로 2016년 그가 체포될 때까지 28년 동안 중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바이인 연쇄살인 사건의 서막이었다. 그의 범행 일지는 다음과 같다.
- 1988년 5월 26일, 바이인시 바이인구 융펑가(永丰街)에서 바이인공사(白銀公司) 직원 바이(白) 모 씨(23세, 여)의 집에 침입해 성폭행한 후 목을 자르고 칼로 26군데를 난자해 살해.

- 1994년 7월 27일, 바이인 공전국(供電局) 여사원 독신자 숙소에 침입해 스(石) 모 씨(19세, 여)를 성폭행한 후 목을 자르고 칼로 36군데를 난자해 살해.

- 1998년 1월 13일, 바이인시 바이인구 성리가(胜利街)에서 양(楊) 모 씨(29세, 여)의 집에 침입해 성폭행한 후 목을 자르고 칼로 16군데를 난자해 살해한 후 귀에서 두정부까지 13×24cm의 살을 도려냄.

- 1998년 1월 19일, 바이인시 바이인구 수이촨로(水川路)에서 덩(鄧) 모 씨(27세, 여)의 집에 침입해 성폭행한 후 목을 찌르고 칼로 8군데를 난자해 살해한 후 왼쪽 유두와 등에서 30×24cm의 살을 도려냄.

- 1998년 7월 30일, 바이인 공전국 직원 쩡(曾) 씨의 집에 침입해 그의 8살 딸을 성폭행한 후 허리띠로 목을 졸라 살해.

- 1998년 11월 30일, 바이인시 바이인구 둥산로(東山路)에서 바이인공사 직원 추이(崔)모 씨(16세, 여)의 집에 침입해 성폭행한 후 목을 자르고 칼로 22군데를 난자해 살해한 후 양쪽 유방과 양손, 음부를 모두 도려냄.

- 2000년 11월 20일, 바이인 면방적공장 노동자 뤄(羅) 모 씨(28세, 여)의 집에 침입해 성폭행한 후 목을 잘라 살해하고 양손을 잘라냄.

- 2001년 5월 22일, 바이인시 바이인구 수이촨로에서 부녀보건소 간호사 장(張) 모 씨(28세, 여)의 집에 침입해 성폭행한 후 칼로 16군데를 난자해 살해.

- 2002년 2월 9일, 바이인시 바이인구 타오러춘(陶樂春) 호텔 객실에 침입해 투숙객 주(朱) 모 씨(25세, 여)를 성폭행한 후 목을 잘라 살해.

이외에도 내몽골 자치구의 바오터우에서 2건의 살인 사건을 더 저질렀는데 11명의 피해자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젊은 여성이었다. 그는 체격이 비교적 왜소한 편이었고 키도 약 170cm 정도로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에 성인 남성들은 건드리지 못하고 만만한 여성들만 건드렸다.[4] 더군다나 첫 범행을 저지른 1988년은 그의 큰아들이 태어난 해이기도 했다. 즉, 아내와 자식들까지 둔 가장이 무고한 여성들을 잔인하게 해친 것도 모자라 자신의 범행을 철두철미하게 숨긴 채 태연하게 가장 노릇을 해 왔다는 것이다.

위 범행 일지를 보면 가장 눈에 띄는 건 범행 주기다. 사실 연쇄살인범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자주 범죄를 일으키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분석을 진행했던 미국의 유명한 프로파일러 펫 브라운의 말에 따르면 연쇄살인범의 감정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타입이며 극도로 기분이 나쁠 때에만 살인을 저지른다고 한다. 첫 살인 사건은 1988년에 일어났는데 2차 사건은 1994년에 일어나 그 주기가 6년 2개월이었는데 3차 사건은 1998년 1월에 일어나 그 주기가 3년 6개월로 줄어들었으며 이후에는 1999년을 제외하면 매년 최소 1건씩 살인을 저질렀다.

이는 살인을 거듭하면서 그 자신이 살인에 맛을 들였다고 볼 수 있다. 유명한 쾌락 살인마 정남규는 일찍이 "담배 끊는 건 할 수 있어도 살인 끊는 건 못 하겠다."고 할 정도로 자신이 살인 중독을 앓고 있음을 밝혀 세간을 경악시킨 바 있다. 가오청융도 범행 주기가 시간이 갈수록 짧아지는 것에서 살인에 맛을 들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살인에 앞서 성범죄가 수반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안에서는 범인이 여성혐오를 앓고 있는 사람일 것이라고 추리한 바 있다. 또 눈여겨봐야 할 것은 3차 사건부터 시신의 일부를 도려내는 짓을 했다는 것이다.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도초반에 일어난 사건에서는 사체를 훼손하는 일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체를 훼손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보인다.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을 분석했던 미국의 프로파일러 펫 브라운은 연쇄살인 사건 사이에 범인이 범행에 실패한 적이 있었고 그때 생긴 분노를 다음 희생자에게 풀었기 때문에 사체가 훼손되었다는 견해를 보인 바 있었고 2차 사건과 3차 사건 사이에 1건의 살인미수 사건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이러한 공통점을 볼 때 가오청융도 2차 사건과 3차 사건 사이에 범행에 실패한 적이 있었던 게 아닐까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4.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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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체포되는 가오청융.

사실 범인의 DNA를 확보한 지는 오래였는데 피해 여성들의 몸 안에서 정액이 검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인을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었던 이유는 바로 호적 때문이었다. 당시 공안에서는 범인이 바이인시에 거주하는 사람이라고 확신하고 바이인에 호적을 둔 사람을 대상으로 DNA를 대조했지만 가오청융의 호적은 바이인이 아니라 란저우의 위중현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번번이 미꾸라지처럼 수사망을 빠져 나갈 수 있었다.

마지막 사건이 일어난 지 14년이 지나도록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자 경찰 측에서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는데 그것은 바로 DNA 전수 조사였다. 호적 등록 여부와 관계없이 일단 바이인시에 거주하던 모든 남성들의 DNA와 지문들을 대조하는 수법으로 범인을 찾아냈고[5] 마침내 첫 사건으로부터 무려 28년 3개월 만인 2016년 8월 26일 범인 가오청융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가족들과 이웃들은 가오청융이 그 끔찍한 살인범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효자', '훌륭한 부모' 등으로 칭송받을 정도로 동네에서 평판이 매우 좋은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모두들 공안이 착오를 했겠거니 생각했지만 현장에 남겨진 지문과 DNA가 그의 것과 정확하게 일치했고 그 같은 확실한 물증에 그도 자백하면서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편 가오청융이 검거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6차 사건의 희생자 추이 씨의 가족들은 모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당시 16세에 불과했던 추이 씨가 처참하게 살해당한 후 아버지는 딸을 잃은 충격으로 쓰러져 사망했다고 한다. 추이 씨의 오빠는 "가오청융이 검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여태껏 웬만한 일에는 눈물 한 번 보이지 않으셨던 어머니가 통곡을 하셨다."고 언론에 전했다.

5.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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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모습.

결국 검찰은 가오청융을 살인죄 등 4가지 죄목으로 기소하였고 재판은 2017년 7월 18일에 비공개로 진행되었는데 재판 내내 무덤덤한 태도로 일관하고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아서 유가족의 분노를 샀다고 한다. 변호사가 죽는 게 두렵냐고 묻자 그는 이미 자기는 죽을 준비가 되었다고 대답했다고 하며 범행 당시 범행을 멈추기만 하면 금단 증상 비슷한 걸 느꼈다고 한다. 쾌락살인이 의심된다.#

그가 범인이라는 결정적인 증거인 지문과 DNA가 고스란히 있는 이상 무죄 판결을 받기는 불가능해졌다. 엄벌주의가 아직도 남아 있는 중국에서는 단순 살인범이라도 사형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연쇄 강간살인범인 그도 사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결국 2018년 3월 30일 1심에서 살인, 성폭행, 강탈, 사체 훼손 등의 죄목으로 사형 판결이 내려졌고 상소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최고인민법원의 사형 심사를 거쳐 2019년 1월 3일 약물주사형으로 사형이 집행되면서 만 54세로 죽었다.#

6. 기타

이 사건으로 청융의 가족들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으며 두 아들 중 한 명은 이 사건의 영향으로 다니던 회사를 관뒀다고 한다. 실제로 흉악 범죄자의 가족들도 적지 않은 고통을 받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보성 어부 살인 사건의 범인 오종근의 첫째 아들이 충격과 수치심으로 2008년 자살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1] 사건 자체가 워낙 잔혹해 방송도 미성년자와 임산부, 노약자의 청취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분석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범행 방식에 대한 묘사가 나오니 주의하자.[2] 단 이춘재는 화성 연쇄살인 이후 3년 뒤에 청주 처제 살인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3] 빨간 옷을 입은 여성을 노린다.[4] 심지어 피해자 중에는 8살짜리 아이도 있었다.[5] 일설에 의하면 직접 찾아낸 것이 아니라 비슷한 DNA를 가진 경범죄자(바이인 연쇄살인 사건 문서에 의하면 숙부라고 한다.)가 나타났고 이에 가오의 친척일 것으로 판단하여 수사 범위를 좁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