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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강화성당 大韓聖公會 江華聖堂 Sts. Peter & Paul's Anglican Church\, Ganghw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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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개신교 / 교회 | |
면적 | 6\,968㎡ | |
지정연도 | 2001년 1월 4일 | |
제작시기 | 대한제국 | |
위치 | ||
}}}}}}}}} |
<colbgcolor=#000000><colcolor=#fff> 성 베드로와 바우로 성당 江華聖堂 | 강화성당 Sts. Peter & Paul's Church, Ganghwa | ||
종교 | 성공회 | |
소속 | 서울교구 강화교무구 | |
지위 | 본당 (Church) | |
주보성인 | 성 베드로와 성 바우로 | |
교구장 | 김장환 엘리야 주교 | |
사목단 | 관할 | 이대성 가브리엘 신부 |
건축정보 | 축성 | 1900년 11월 15일 |
건축자 | 경복궁 도편수[1] | |
양식 | 한옥양식, 바실리카 양식 | |
위치 | 강화성당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길27번길 10 (관청리) |
[clearfix]
1. 개요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성공회 성당. 1900년에 지어진 독특한 양식의 건축물로서 바실리카와 한옥이 절충된 양식이며, 사적 제424호로 지정되었다.2. 역사
1890년 제물포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찰스 존 코프 주교를 비롯한 성공회 신부들이 1893년 강화도 갑곶 나루터에서 선교를 시작하였다.1897년 조선의 해군사관학교격인 통제영학당의 영국인 교관 윌리엄 헨리 콜웰(William Henry Callwell) 대위로부터 땅 3천 평가량을 매입하여 선교본부를 강화성내로 이전하였다.
1900년 11월 15일 찰스 존 코프 주교에 의해 '성 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축성되었다.
3. 구조와 내부
외양은 한옥의 형태를 하였으나, 구조와 내부는 바실리카 양식을 따른다. 바실리카 성당을 한옥 재료로 만들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한국 그리스도교 토착화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건물의 웅장함과 견고함을 고려하여 목재는 수령 백년 이상의 백두산 정송을 마크 트롤로프 신부[2]가 직접 신의주에서 구하여 뗏목으로 운반하여 왔고, 석재와 기와는 강화도 내에서 구하였다. 도목수는 경복궁 중수에 참여했던 도편수였고, 중국인 석공과 강화 지역의 교우들이 참여하여 1년여 만에 완공되었다. 그 당시로는 최고의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
기와 지붕에 십자가를 올린 모양새나, 한자 현판 등이 이국적이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묘한 분위기라 관광지로 많이 찾는 모양. 4칸x10칸 건물로 전통 건물의 개념에서 본다면 상당히 큰 편이다. 반면 면적에 비하면 그리 높지는 않다.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유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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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동문리 근대한옥 |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제대 및 세례대 | 문경 가은양조장 |
강화성당 내부 세례대 |
사진 중앙에 보이는 석재 구조물이 세례를 받을 때 사용하는 세례대[3]이다. 사진에는 오른쪽부터 修己[4]/洗心[5]/去惡[6]/作善[7]이라고 한자로 새겨 교인들의 마음을 다잡게 한다.
이와 유사한 바실리카-한옥 건축물로는 같은 지역의 온수리성당, 충청북도 청주시에 위치한 수동성당 등이 있다. 특히 수동성당은 찾아가기가 까다롭긴 해도[8] 외벽 등이 깔끔하게 단장되어 꽤 예쁘다.
4. 여담
- 강화도에는 같은 이름의 천주교 성당도 있는데 하필이면 직선거리로 200m 안팎되는 근접거리에 있다. 그래서 내비게이션에 그냥 강화성당이라고 검색하면 천주교 강화성당이 주로 잡히며 '성공회 강화성당'이나 '강화읍성당'이라고 검색해야 이 성당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지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두 성당이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을 찍고 가도 수월하게 찾을 수 있다.
- 제대가 전례적 동쪽(Ad Orientem)을 향하고 있는 벽제대이기에 현재 감사성찬례도 전례적 동쪽을 향한 채 집전된다. 감사성찬례 자체는 성공회 기도서 2004 (2018년 개정판)에 따른 감사성찬례이다. 한 달에 한 번 켈틱 감사성찬례를 거행한다.
- 토착화 성당답게 사용하는 종도 전통적인 범종이다. 범종의 표면에는 연꽃 문양이나 비천상, 보살상 등 불교적인 이미지 대신 십자가를 넣었다. 당목으로 범종을 치는 당좌 부위에도 전통적인 연꽃 장식 대신 십자가 문양을 넣었다. 원래 1914년 영국에서 가져온 서양식 종을 사용했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태평양 전쟁 물자로 쓰겠다는 이유로 강제 반출당하고[9] 1989년 성당 신자들이 모금하여 현재의 십자가 장식 범종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범종 밑에 명동(鳴洞)이 없다.[10]
- 18~19세기 당시 주류 성리학에 밀려, 하곡 정제두와 그의 제자들이 강화도에서 '강화학파'를 이루어 양명학을 발전시키고 있었다.[11] 19세기 말 강화도에서, 지식의 실천을 강조하던 유교 학파인 양명학과 포용성이 강한 기독교 종파인 성공회가 서로 조우하게 되었던 것[12]. 前 성공회대학교 총장 이정구 어거스틴 신부[13]는 강화읍성당은 양명학과 성공회 신학의 융합이라며 다음과 같이 언급하기도 했다.성공회의 포용주의는 강화에서 꽃피운 하곡학(양명학)의 포용성과 조우함으로써 국내 다른 지역의 한옥 성당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유교와 불교와 무속이 상호융합된 토착화 양식으로 자연스럽게 태동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성당 아래쪽에 주차장과 화장실이 있으며 성당 주차장 방향의 도로 윗쪽으로 가면 산으로 이어진다. 성당 근방에 초등학교가 있으므로 차량으로 진입시 서행하자.
- 건축 당시 사용한 도면이 남아 있지 않다. 아니, 애시당초 도면이 있었는지가 의문이다. 경복궁 중건에 참여했던 도편수가 이 성당을 지었는데, 도면 없이 그냥 지은 건물이라는 설이 있다(...). 지금이야 투시조사 등 비파괴방법으로 재현한 도면이 있으니까 안심해도 좋다.
- 2009년에 극우성향 감리회[14] 신자가 방화를 시도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 얼마 남지 않은 100년이 넘은 기독교 건축물이 순식간에 사라질 뻔했던 것이다. 감리회 자체는 성공회 저교회 성향을 가진 신자들에서 갈라져 나온 교파로서 에큐메니즘 운동에 적극적이지만, 한국의 감리회가 일부 근본주의 성향 목회자들에게 휘둘리는 경향이 조금 있다 보니, 몇몇 몰지각한 신자가 이런 짓을 저지르려 한 듯하다.[15]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중도~진보 성향의 교단이지만, 근본주의나 극우에 가까운 성향을 보이는 교인이나 목회자가 몇몇 있다.
- 홍영선(베드로) 신부가 성당을 개보수하였는데, 몰지각한 근본주의 성향의 개신교 목사들이 몰려와서 단청을 트집 잡아 사찰을 본떠 만든 마귀의 건물이고 사탄의 집이라며 시위를 하기도 했었다. 전국 곳곳을 다녀보면 한옥으로 된 개신교 예배당도 생각보다 꽤 많다.
- 당연한 일이지만 미사 중에는 관광 목적의 성당 출입이 금지된다. 다만 이웃 종교인 천주교와 개신교 신자의 경우 미사 참례를 허용하며 영성체도 가능하다.
[1] 설계도도 없이 지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2] 후에 조선교구장이 된다.[3] 아래는 이전에 있던 희미한 사진의 파일이다.
[4] 수기. 몸을 바르게 하고[5] 세심. 마음을 깨끗이 하고[6] 거악. 악을 제하고[7] 작선. 선을 행하자.[8] 교동로47번길 33, 순위치는 청주의 번화가인 성안길에서 그리 멀지 않다. 다만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하여 작정하지 않고 찾아가기는 좀 거시기하다.[9] 당시 일제는 성당의 종을 뜯어가는 것도 모자라서 성당 정문 앞 계단의 난간까지 뜯어갔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천주교는 서울 명동성당의 제대 앞 철제 영성체 난간이 통째로 뜯겨나간 바 있다. 이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일본성공회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해 반성하고 참회하면서 강화성당 축성 110주년을 맞은 2010년에 원형대로 난간을 복원해줬다.[10] 우리나라에서는 범종을 치는 소리가 더 은은하게 멀리 퍼지도록 범종 밑으로 움푹 패인 공간을 만들거나 항아리를 묻는데, 이를 명동(鳴洞)이라 부른다. 일본이나 중국에 없는 우리나라식 방법이다.[11] 당시 유생(儒生)들 사이에서는 성리학(주자학)만을 바른 학문으로 여기고 양명학을 이단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성리학 내에서도 서로 편을 갈러 싸우기에 바빴으니, 아예 결이 다른 유학이었던 양명학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12] 양명학의 거두이자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 선생은 양명학의 양지(良知)라는 개념을 기독교의 '성령'과 비교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결국 박은식의 양지론은 양명학의 기반 하에서 기독교의 '성령'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격을 가진 신으로의 개념까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13] 후에 본 성당의 관할사제를 잠시 맡았다.[14] 강화도 인구 중 35% 가량이 감리회 교인으로 강화도 내 최대 종교이다. 감리회와 성공회는 같은 개신교이고, 감리회 자체가 성공회에서 파생된 교회인데도 본토와는 달리 강화도에서는 의외로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다. 실제로 근본주의 극우성향의 몇몇 목사들은 설교 시간에 가톨릭은 물론이고 성공회와 WCC성향의 교회들까지 디스하기도 한다(...)[15] 교회일치운동에 대한 찬반 여부를 접어두고라도, 방화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중범죄이다.
[4] 수기. 몸을 바르게 하고[5] 세심. 마음을 깨끗이 하고[6] 거악. 악을 제하고[7] 작선. 선을 행하자.[8] 교동로47번길 33, 순위치는 청주의 번화가인 성안길에서 그리 멀지 않다. 다만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하여 작정하지 않고 찾아가기는 좀 거시기하다.[9] 당시 일제는 성당의 종을 뜯어가는 것도 모자라서 성당 정문 앞 계단의 난간까지 뜯어갔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천주교는 서울 명동성당의 제대 앞 철제 영성체 난간이 통째로 뜯겨나간 바 있다. 이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일본성공회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해 반성하고 참회하면서 강화성당 축성 110주년을 맞은 2010년에 원형대로 난간을 복원해줬다.[10] 우리나라에서는 범종을 치는 소리가 더 은은하게 멀리 퍼지도록 범종 밑으로 움푹 패인 공간을 만들거나 항아리를 묻는데, 이를 명동(鳴洞)이라 부른다. 일본이나 중국에 없는 우리나라식 방법이다.[11] 당시 유생(儒生)들 사이에서는 성리학(주자학)만을 바른 학문으로 여기고 양명학을 이단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성리학 내에서도 서로 편을 갈러 싸우기에 바빴으니, 아예 결이 다른 유학이었던 양명학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12] 양명학의 거두이자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 선생은 양명학의 양지(良知)라는 개념을 기독교의 '성령'과 비교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결국 박은식의 양지론은 양명학의 기반 하에서 기독교의 '성령'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격을 가진 신으로의 개념까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13] 후에 본 성당의 관할사제를 잠시 맡았다.[14] 강화도 인구 중 35% 가량이 감리회 교인으로 강화도 내 최대 종교이다. 감리회와 성공회는 같은 개신교이고, 감리회 자체가 성공회에서 파생된 교회인데도 본토와는 달리 강화도에서는 의외로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다. 실제로 근본주의 극우성향의 몇몇 목사들은 설교 시간에 가톨릭은 물론이고 성공회와 WCC성향의 교회들까지 디스하기도 한다(...)[15] 교회일치운동에 대한 찬반 여부를 접어두고라도, 방화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중범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