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18:41:17

괴츠 폰 베를리힝엔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Goetz_von_Berlichingen_in_Weisenheim_am_Sand.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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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기타
3.1. 괴츠의 강철 의수
4.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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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괴츠 폰 베를리힝엔(Götz von Berlichingen)[3]
(1480년 11월 15일~ 1562년 7월 23일)

신성 로마 제국의 제국 기사(Reichsritter)이자 용병이다.

본명은 고트프리드(Gottfried)이며 괴츠는 줄인 이름. 이명무쇠 손의 괴츠(Götz of the Iron Hand). 이 이명을 얻은 이유는 젊은 시절 전장에서 오른팔을 잃었으나, 대장장이로부터 강철로 만들어진 의수를 장착했으며 이후로도 용병으로 용맹을 떨쳤기 때문이다. 팔이 잘렸는데도 의수를 장착하고 싸운데서 알 수 있듯이, 대단한 다혈질의 전투광으로 전쟁터에 나서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더욱 무서운 건 무슨 소설이나 만화에 나오는 가상 인물이 아니라 실존했던 인물이다.

2. 생애

전쟁 참가 경험으로는 독일 농민전쟁에서 농민군 측에 서서 싸웠던 것이 유명하다.[4] 이외에도 1542년 헝가리 십자군으로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 참전했고, 1544년 신성 로마 제국군의 일원으로 프랑스와의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전쟁 이외의 취미 겸 생업은 강도질이었다. 괴츠는 당시 독일에 만연했던 도적 기사로서 결투 관습을 많이 악용하여 사실상 강도질을 벌이고 다녀 재산을 증식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괴츠의 강도질 수법은 길가에서 만만한 놈이 지나가면 강도질을 벌여서 물건을 빼앗고 결투라고 사후 승인하는 것이었다.

사실 괴츠가 아주 특수한 사례는 아니고 이런 도적 기사들은 독일 뿐만 아니라 중세 유럽에서 흔했다. 세력이 약하고 가난한 기사들과 용병들은 각국의 용병 일을 하다가 일거리가 없으면 생계가 막연한지라 먹고 살기위해 강도질로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특히 많은 연방 국가로 쪼개져 있어서 공권력의 행정 공백지가 많은 독일에서 도적 기사들의 악명이 매우 높았다.

당연하지만 이런 도적 기사의 갈취는 금전적으로 큰 손실을 불러와서 유럽의 국왕과 영주들, 그리고 상인들이 중심이 된 자유도시에서는 도적 기사 소탕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이들은 싸움터를 많이 다녀본지라 무술 실력이 뛰어나고[5] 이들의 거점인 성은 접근이 어려운 지형에 지어진 경우가 많아서, 소탕이 쉽지 않았다. 결국 대포를 동원하고서야 도적 기사들의 성을 소탕할 수 있었다.

괴츠가 상인을 20명이나 잡아가서 몸값을 받기 위해 가두려는데 성 지하에 감옥이 모자라 더 이상 사람을 가두지 못해서 한탄했다는 기록도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중죄인을 제외하곤 죄인을 가두는 감금을 웬만하면 하지 않았다. 가두더라도 오래 가두지 않고 풀어서 쫓아내는게 다반사였다. 왜냐하면 감금을 하면 먹이고 살려두어야 했기에 죄인을 먹여살릴 식량이 아깝다는 이유에서였다. 또한 감옥도 많은 사람을 가둘수 있을 만큼 넓지 않았다. 중세 유럽의 재판이 즉결 처분을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괴츠는 여러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결투를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풀려난 일도 있다.

일평생 전쟁터를 전전했지만, 말년에는 호른베르크(Hornberg) 성을 구입하여 성주가 되어 평온하게 마쳤다. 그것도 만81세에 죽었으니 현대에 비해 평균 수명이 훨씬 짧았던 중세 유럽의 기준으로는 굉장히 장수했던 것이다. 늙그막에는 자신의 일생 중 일부였던 전쟁 경험을 상세히 다룬 회고록을 집필하기도 하였다.

3. 기타

그를 모델로 한 작품으로는 괴테희곡괴츠 폰 베를리힝엔》이 있다. 이 작품에서 괴츠는 농민을 위해서 싸우다가 명예롭게 죽음을 맞는 자유로운 전사이자 시인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는 실제 역사와 다른 각색으로 실제로 괴츠가 독일 농민전쟁에서 농민군 측에 참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3년간 유폐되었다가 풀려났고, 전쟁 후기에는 진압군 측에 서서 수천 명의 농민들을 살상했다. 끝까지 농민들 편에 섰다가 죽음을 맞은 영웅은 동시대인인 플로리안 가이어 쪽에 가깝다

17 SS장갑척탄병사단의 부대명이자 상징이 바로 이 괴츠 폰 베를리힝엔이다. 그 외에도 히틀러가 비공식 석상에서 H급 전함 H-39의 함명 후보 중 하나로 언급한 바는 있지만, H-39 자체가 건조하다가 스크랩 되버려서 별 의미는 없어졌다.

3.1. 괴츠의 강철 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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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괴츠의 강철 의수는 현재도 유물이 남아 있으며 괴츠가 말년을 보낸 호른베르크 성에 전시되어 있다.

전체가 철로 만들어진 건틀렛의 내부에 용수철과 톱니바퀴 등을 끼워넣어서 배치한 구조이다. 이 의수를 써서 괴츠는 검을 잡을 수 있었으며, 깃털펜을 사용하여 글을 쓸 수 있었고, 심지어 카드놀이까지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현대에 나오기 시작한, 뇌신경에서 나온 전기신호를 인식하여 연결된 인조 팔을 실시간으로 조종하는 의수는 아니고 섬세하고 복잡한 기계식 제어장치로 손모양을 그때그때 바꿔서 고정할 수 있을 뿐이다. 즉, 다치지 않은 왼손으로 일일이 나사를 돌려 오른쪽의 의수를 펜 잡는 모양으로 만들고 거기에 펜을 끼우고 글을 쓰는 식으로 사용한 것이다.

4. 대중매체

Dies irae의 등장인물 마키나흑원탁 안에서의 칭호가 괴츠 폰 비를리힝엔이며 강철로 된 팔을 갖고 있다.

설정을 보면 알지만, 미우라 켄타로의 만화 베르세르크에 나오는 가츠와 이름도 컨셉도 굉장히 닮았다. 하지만 미우라 켄타로는 인터뷰에서 구상 당시에는 괴츠에 대해서 전혀 몰랐고, 비슷한 것은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밝혔다.

Re:CREATORS앨리스테리어 페브러리의 기술 이름 중 하나다.
[1] 아래의 글귀는 "Mich ergeben! Auf Gnad und Ungnad! Mit wem redet Ihr! Bin ich ein Räuber! Sag deinem Hauptmann: Vor Ihro Kaiserliche Majestät hab ich, wie immer, schuldigen Respekt. Er aber, sag's ihm, er kann mich im Arsch lecken!"의 일부로, 대략 "날 보고 자비를 빌고 항복하라고? 네놈이 누구랑 이야기하는 줄 아느냐? 내가 도적이냐? 너희 대장에게 가서 언제나처럼 황제 폐하를 위해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고 전하거라! 그리고 내 엉덩이나 핥으라 전해라!"로 직역할 수 있다.[2] 이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본 인물의 일지를 각색하여 만든 연극의 한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로, 그의 인 야크스트하우젠이 제국군으로 인해 포위당했을 때 항복을 요구받자, 그가 창문 밖으로 소리지르며 내놓은 대답이다. 연극 대사에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ass의 독일어인 arsch를 썼으나, 실제로는 "내 뒷부분이나 핥아라."고 말했다고 한다.[3] 실제 발음은 베얼리힝엔에 더 가까우나, 독일어의 외래어 표기법을 따라 베를리힝엔으로 적는다.[4] 다만 원해서 농민군이 된 것이 아니고 지휘관이 부족했던 농민군의 협박으로 살기 위해 되었다. 이 때문에 농민군을 진압하러 온 슈바벤 동맹군에게 붙잡혀 3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5] 한 도적 기사는 도시에서 체포되어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에 마지막 소원으로 자신의 말을 보고 싶다고 부탁했다. 말이 가까이 오자 그는 처형인들을 쫓아버리고 말에 올라타서 그대로 성벽을 뛰어넘고 도시를 빠져나가 도망쳤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다만 무기를 잡으면 인간흉기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을 잡을때 활과 석궁이 필수적이였지만 사실 판금 갑옷은 활로는 잘 안박힌다. 석궁 또한 장전시간이 꽤나 걸리고 방패로 막으면서 변칙각도로 근접하면 진형을 형성한 대규모 전투가 아닌 이상 게릴라전 혹은 소규모 전투에서는 어느정도 커버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