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현대 스타리아 기반의 구급차 |
이 문서는 한국에서 운용되었거나 운용 중인 구급차의 내용을 수록한다.
2. 역사
2.1. 일제강점기~1960년대
역대 대한민국의 구급차 변천사 그래픽 |
1938년 일제강점기부터 최초의 구급차가 경찰 소방대에 배치됐으며, 닷선 14 모델 자동차가 사용되었다고 알려진다. 목적 답게 위급한 환자를 이송하는 역할을 했는데 조선인들은 대개 혜택을 못 봤고 대부분 조선 거주 일본인들이 혜택을 봤다.
그러나 6.25 전쟁으로 모든 기반시설이 사라지고 재해구호라는 개념이 사라져서, 1950년대 및 1960년대에 구급차는 서울 등 대도시의 대학병원 / 종합병원들이나 군용 구급차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민간용 구급차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진다.
2.2. 1970년대
카이저 M725 | 현대 미니버스 |
1970년대부터 화재 및 사고현장에서 환자 후송 및 봉사활동인 야간 통행금지시간 응급환자 이송용으로 1972년에 전주소방서, 1974년에는 서울/부산소방본부 및 대전소방서[1] 등에 일본 ODA의 경제적 원조를 통해서 최초로 제대로 된 민간용 구급차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이때부터 시골이나 지방도시 등에는 응급환자를 자체적으로 이송하던 민간 구조대도 있었다.[2]
그러나 그당시는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전국단위로 지정된 구급차의 호출번호가 없어서, 서울이나 부산 등 전국 대도시의 대형 종합병원에나 가야만 구급차를 호출할 수가 있었다. 그나마 '구급차는 통금시간에나 부르는 것'이라고 면박을 듣기 일쑤였다. 결국 택시를 타고 병원에 직접 가야 하는 등 불편하기가 일쑤였다. 특히 도시도 아닌 농촌지역에선 더욱 상황이 열악하여 뜻하지 않은 사고 등이 닥쳤을 때 제대로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없었다. 교통사고 나서 택시 타고 병원에 가다 죽거나 불구가 된 사람도 많았다.
2.3. 1980년대
1980년대 119구급대에서 활동한 기아 봉고 구급차 |
이에 1980년 전국 대도시들을 시작으로 구급업무를 시범적으로 전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사고시는 물론 전반적인 야간 통금시간 응급환자의 긴급이송 목적으로 구급차를 이용하는 야간 응급환자 이송센터를 운영한다. 그리고 1981년부터 시범 발대한 119 구급대가 사용하는 소방서용 구급차가 왜건형 승용차를 이용하여 도입된 후 1982년부터 조직 전면발족 후에도 이어지다가 이후 1983년 1월 소방법 개정으로 구급업무가 정식으로 소방의 업무에 추가되었다. 그리고 기아 봉고 등등 미니 승합차량 등이 구급차로 사용되었다.
이 때를 기점으로 특전사 예비역 의무병과 대한민국 해군 의무부사관[3] 및 예비역 간호장교들을 대거 소방공무원으로 특채하면서 119 구급대가 형성되었다. 초창기에는 구급차 운전사와 구급대원의 2인 1조로 구성되었다. 여성 소방공무원들은 전원 간호장교 전역자들이었으며, 이들은 국군에서 풍부한 임상을 겪어본 베테랑이었다. 이때 당시의 유니폼은 소방관의 근무복 위에 의사 가운을 입고 헬멧이나 기동모 등을 착용하고 활동하였다.
1981년에 서독의 바덴바덴에서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1988 서울 올림픽 유치가 확정되자 조직을 정식으로 발족하고 1982년 1월 1일을 가해 전국적으로 조직을 발대했다. 그리고 1983년에는 소방법 개정으로 구급환자 이송을 정식 업무에 추가했으며 이때 조직이 더 확대되어 소방파출소[4]에도 구급차를 사용하게 되었다.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고 화재와 긴급구조 및 응급환자 이송 번호는 119로, 범죄신고 번호는 112로, 그리고 113은 간첩신고 번호로 정비하여 지금까지 사용했다. 그러면서 기존에 깔아놓은 112번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2002년까지 형사순찰차[5]와 112 순찰차에 범죄신고 112를 써 놓기도 했다.
2.4. 1990년대
쌍용 이스타나 | 현대 리베로 |
1990년대는 80년대의 승합차형 구급차와 더불어 현대 리베로나 기아 봉고같은 1톤 트럭들이 박스형 구급차로 운용되었다. 1995년 이후 잇다른 대형참사로 안전에 대한 의식이 재고되고 2002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확정하자 119구급대를 증편했으며 특히 응급구조사 제도 실시로 응급구조학과 졸업생들이 구급대원으로 입직하고 임상 경험이 풍부한 간호사[6]들이 구급대원으로 소방공무원 특채 대상이 되면서 여성 구급대원+ 남성 응급구조사 구조대원[7]+ 운전 전담 기관원[8] 위주의 3인 1조 시스템의 현 119 구급대 체계가 완성되었다.[9]
오늘날 우리가 아는 지금의 한국형 민간용 구급차의 원조는 인요한 박사와 오텍이 개발한 구급차. 이 구급차는 인요한이 오래 활동한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의 소방본부에 보급되었으며, 지금도 인요한에게 호남 소방공무원들이 크게 고마워한다. 긴급구조 119에도 인요한의 사연이 나온 바 있었다. 대한민국 실정에 안 맞는 왜건형 승용차에 비해 공간이 넓어 의료장비를 넣기 쉬웠으며 내구성도 좋은지라, 1986년 이후부터 한국형 구급차가 대거 일선 소방관서에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대한민국에도 포드 트랜짓, 벤츠 스프린터 등 대형 외제 구급차가 도입되었으나[10] 골목이 많고 일방통행이 잦은 대한민국 특성에 맞지 않아서[11] 결국 퇴출되어 스타렉스로 일괄 교체되었다. 특히 가장 도로사정이 열악한 부산광역시에 포드 구급차가 대거 들어와 원성이 잦았다.
2015년에 오텍에서 감염병 대응을 위하여 쏠라티를 개조한 음압/특수구급차를 개발했다. 당시에는 감염병 대응 체계에 대한 국가적인 공감대가 크게 없던 시기라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코로나19 판데믹 이후로 감염병 확산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면서 전국의 소방과 응급 의료체계에 보급되었다.
2.5. 2000년대~현재
2000년대에도 1990년대 구급차가 운용되었으나, 2000년대 후반대에서 점점 다른 현대 스타렉스 등 승합차형 구급차량으로 교체되었다.
해운대에 배치된 벤츠 스프린터 구급차 | 서울 광진소방서에 배치된 벤츠 스프린터 구급차 | 서울 강남소방서에 배치된 포드 트랜짓 구급차 |
2000년대 말~2010년대 초에는 포드 트랜짓, 벤츠 스프린터 등 대형 외제 구급차가 도입되었으나[12] 골목이 많고 일방통행이 잦은 대한민국 특성에 맞지 않아서[13] 결국 퇴출되어 스타렉스로 일괄 교체되었다. 특히 가장 도로사정이 열악한 부산광역시에 포드 구급차가 대거 들어와 원성이 잦았다.[14]
제주에서 운용한 재도색 버전 벤츠 스프린터 구급차 |
심지어 2016년에 재도색한 구급차까지 있었다.
2017년 평창 동계올림픽 대비를 위해 강원소방에서 도입한 현대 솔라티 구급차[15] |
2017년에 강원특별자치도 소방본부[16]에서 다음 해에 있을 평창 동계올림픽을 대응하기 위하여 다목적 구조차와 함께 솔라티 구급차를 강원 주요도시에 배치하였다. 벤츠 스프린터에서 문제가 된 수리가격 [17] 이 어느정도 해결되어 소방에서도 무리없이 굴릴 수 있게 되었다.
2022년 대구에 배치된 솔라티 음압구급차 |
2020년에 오텍에서 감염병 대응을 위하여 쏠라티를 개조한 음압/특수구급차를 개발했다. 코로나19 펜데믹 이후로 감염병 확산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면서 성우특장 솔라티 음압구급차와 함께 전국의 소방과 응급 의료체계에 보급되었다.
2021년, 스타리아의 공개로 스타리아 구급차의 배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3. 도색
구도색 | 신도색 |
대한민국의 구급차는 예전에는 적색과 백색이 혼합된 도색을 사용하였으나, 1980년대 후반에 적색+녹색+백색이 모인 도색으로 변경되었고 경광등도 녹색으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2014년부터는 라임색+적색+백색에 붉은 색 경광등이 적용된 새로운 도색이 탄생하여 지금에 이른다. 라임색은 색으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빛을 반사하는 도료로 만들어서 밤에도 잘 보이는데, 덕분이 안전성이 향상되었다. 시인성이 눈에 띄게 늘어나서 2차 사고가 줄어든 것인데, 소방공무원의 제복이 주황색으로 통합된 이유 중 대표적인 이유가 바로 시인성이다. 물론 예전에 도입된 구도색 차량도 같이 활동하다가 연식이 오래된 차량은 대차되고 연식이 아직 많이 남은 차량은 재도색을 진행하였다. [18]
[1] 1986년 대전직할시 승격 전까지 대전은 충청남도 대전시였다. 대전소방본부도 뒤늦게 생겼고 원래 충남소방본부 담당이었다. 1974년 당시 대한민국에 직할시는 부산직할시 하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서울을 제외하고 소방'본부' 단위로 있는 곳도 부산직할시밖에 없었다.[2] SBS에서 방영하던 토요미스테리 극장에 이 민간 구조대 관련 괴담이 나온다. 말은 구조대지만, 실은 야간 통행금지 때 응급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역할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이들은 1981년 소방서에서 119구급대를 발족해서 구급업무를 실시하게 되자 구급업무를 소방본부에 넘기고 자진 해체했다.[3] 해군 의무병과 의무부사관은 대한민국 해병대에서도 근무한다.[4] 2000년대부터 명칭이 지금의 119안전센터로 바뀌었다.[5] 이스타나 형사순찰차 도입부터 범죄신고 112 미표기.[6] 간호조무사는 구급대원에 특채될 수 없다.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간호사만 가능하다.[7] 119 구조대는 그 특성상 응급구조사 보유자가 많으며 대개 군 특수부대나 해병대 출신들이라서 구급법 등 야전의무를 배워본 경험도 있다.[8] 기관원은 화재진압을 담당하는 화재진압대원이지만 구급 교육을 이수해 아주 문외한이 아니다. 구급 교육제도가 생기기 전인 1990년대에는 3인 1조 구급대의 경우 운전 전담 기관원은 구급업무를 하지 않고 운전만 담당해 실질적으로는 2인 1조가 많았다.[9] 사실 2010년대 후반까지 인원이 확충되지 않아 2인 1조로 구급대를 운용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2018년부터 소방공무원을 대규모로 채용하면서 이 문제는 거의 해결되었다.[10] 전형적인 1990년대식 미국 따라하기 정책인데, 미국 구급차를 들여오면 선진소방이 구현된다고 생각하고 대한민국의 도로에 맞지 않는 LCV를 억지로 들여왔다.[11] 특히 골목길에 주로 밀집한 주택가 화재 시 진입이 불가능해진다.[12] 전형적인 1990년대식 미국 따라하기 정책인데, 미국 구급차를 들여오면 선진소방이 구현된다고 생각하고 대한민국의 도로에 맞지 않는 LCV를 억지로 들여왔다.[13] 특히 골목길에 주로 밀집한 주택가 화재 시 진입이 불가능해진다.[14] 당시에 외국에서 제작해 수입한 구급차도 있지만, 차량만 수입해 특장을 국내에서 제작한 차량도 존재했다.[15] 옆에 스타렉스와 비교해보면 크기 차이가 더 확실해진다.[16] 그 당시엔 강원도 소방본부[17] 사이드미러 교체에 무려 100만원을...[18] 때문에 신형 도색에 구형 적색 경광등을 장착한 차량도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구형 차량에 신형 도색을 새로 한 경우와 특별한 요청으로 녹색 경광등을 장착한 경우다. 물론 신형 도색 적용 이전에도 붉은 경광등을 부착하고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