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7 13:51:35

국부론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Wealth_of_Nations.jpg
1. 개요2. 시대상3. 주요 내용
3.1. 분업3.2. 이기심에 대한 오해3.3. 보이지 않는 손
4. 평가5. 번역6. 여담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국부론》은 좋은 책이 아니다. 위대한 책이다.
토드 부크홀츠,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국부론(, The Wealth of Nations)은 그레이트브리튼 왕국(現 영국)의 학자 애덤 스미스가 1776년 3월 9일 출간한 책으로, 산업 혁명의 태동으로 변화하던 경제를 풀어내어 고전 경제학의 기초를 정립한 것으로 평가된다.

애덤 스미스가 찰스 타운센드 공작의 아들을 개인과외하며 유럽 각지를 여행하고 1766년에 영국에 귀국한 뒤 1776년까지 10년간 커콜디에서 자신의 서재에 파묻혀 지내며 쓴 책이다. 원제는 《국부의 형성과 그 본질에 관한 연구(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으로, 일상 대화에서 원제를 말하기에는 꽤나 길기 때문에 일상 대화나 비격식적인 글에서는 국부론으로 짧게 부르는 경우가 많다.

경제학을 잘 모르더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바로 《국부론》에서 등장한 말이다.

핵심 주제는 제목에도 나와있듯이 국가의 경제력, 그러니까 한 국가가 얼마나 잘 사는지를 어떻게 판단하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애덤 스미스의 답은, 국고에 쌓여 있는 돈이나 자산은 경제력의 기준이 되지 못하고, 그 나라가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물건을 생산할 수 있는가에 따라 경제력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시대상

《국부론》이 나오던 당시 전통적으로 우수한 토지를 바탕으로 중농주의를 채택한 프랑스[1]신대륙을 바탕으로 넘쳐나는 금과 새로운 문물들을 중점으로 한 상업, 즉 중상주의[2]를 밀어붙인 에스파냐가 아닌 산업 혁명을 바탕으로 성장한 영국이 세계적 부국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적으로 부의 원천은 토지에서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실제로 중세는 토지가 많을수록 부자이던 시대였다. 그러다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식민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금과 새로운 문물들은 그간 땅만 있으면 돈이 굴러오던 경제와는 다른 새로운 경제, 즉 무역업이란 장르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애초부터 서유럽 지방 중에서도 기름진 땅을 독차지하는 프랑스도, 가장 먼저 신대륙을 발견해 독점무역을 해오던 에스파냐도 아닌 불과 중세 시대까지만 해도 별 볼 일 없는 섬나라에 불과하던 영국이 산업 혁명 이후 이 두 나라를 제치고 부국으로 자리잡은 이유는 당시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당시의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돈이 움직이는 현상을 설명해야 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탄생한 책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다.

3. 주요 내용

'부(富)가 가능한 마지막 단계에 이른 나라에서는 노임과 자본이자 모두 매우 낮아질 것이다. 직업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자 간의 경쟁이 심해지기 때문에, 급료는 현재의 노동자 수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 줄어들 것이며, 국가는 이미 인구가 충분할 정도로 늘어났기 때문에 노동자 수는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제1편 제9장〕

3.1. 분업

현대에 와서 분업을 하지 않는 공장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로 대부분의 공장은 하나의 물건을 만드는 데 여러 가지의 공정을 거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BC4세기 그리스 작가 크세노폰(Xenophon)의 《키루스의 교육(Cyropaedia)》에서 이미 분업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지적한 바 있다. 근대에 들어서 윌리엄 페티 경(Sir William Petty)이 네덜란드 조선소의 효율적인 생산 방식을 견문하여 분업의 이점을 재발견하여 이후 분업에 대한 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 애덤 스미스는 분업을 분석한 결과, 3가지의 특징을 알아냈다.
  • 생산성 향상
하나의 예시를 들어서 을 만드는 공장이 있다고 치자. 이곳에서 일하는 공돌이 A는 하루에 핀 20개를 만들 수 있다. A랑 똑같은 수준의 공돌이가 10명이 있다고 하면, 이 핀 공장은 하루에 200개 초과의 핀은 만들 수 없다.

그런데 이 핀 공장이 공정을 18개로 나누어 공돌이 10명에게 작업을 시켰더니[3] 하루에 약 48,000개를 생산할 수 있었다. 분업 하나만으로 생산성이 무려 240배로 뛰었던 것이다.

스미스는 분업에 의해 생산성이 향상되는 원인에 대해서는 1) 전문화된 노동자들이 숙련도가 향상되기 때문이고, 2) 한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전환할 때 낭비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며, 3) 매일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노동자들이 작업능률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공구나 기계류를 고안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내놓았다.
  • 화폐의 사용
분업을 일으키는 것은 한 물품을 다른 물품과 거래하고 교환하는 인간의 기질[4]이므로 교환 경제가 확장됨에 따라 분업의 수준 또한 높아진다. 그러나 물물 교환 시대에는 한 사람이 필요로 하는 물품이 다른 사람이 잉여로 가진 물품과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예를 들면 양조업자가 육류를 필요로 하지만, 도축업자가 맥주를 충분히 가지고 있을 때는 아무런 교환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 아무도 교환을 거절하지 않을 특정 상품을 갖고 거래하려고 노력하게 되었으며, 초기에는 가축, 소금, 조개 껍데기 등이 이용되었으나[5] 결국 내구성이 높아 장기간 보존이 용이하고 가치의 손실없이 분할할 수 있는 금속이 선호되었다.

처음에는 금은동철이 아무런 표시도 없는 덩어리째로 사용되었으나 거래할 때마다 중량을 재고 금속의 순도를 매번 확인해야 하는 불편함을 해소할 필요성에서 중량이 일정하고 순도가 표시된 금속 화폐인 주화가 등장하였다. 주화는 중량을 재는 수고를 들이지 않고 그 개수를 세어 주고 받을 수 있었다.

한편 물물교환이 사라지고 화폐가 사용되면서 상품의 교환가치를 화폐로 평가하게 되었다. 즉 화폐는 그 자체로는 사회의 수입이 아니지만, 자본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고 그것에 의해 구매할 수 있는 재화를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 점차 화폐가 상업의 보편적인 매개체가 되고 모든 종류의 재화가 매매되거나 교환되면서 시장이 형성될 기초를 형성했다.
  • 규모의 경제 및 시장 사회의 형성
시장이 형성되기 이전 사회에서는 한 마을이 제공하는 수요의 규모는 지나치게 협소하기 때문에 하나의 마을에서 독립된 직종으로서 대장장이, 석공, 목수, 도축업자, 양조업자 등을 유지할 수 없었고, 각각의 농장 혹은 가족 내에서 자체적으로 모든 일을 몸소 해내야 했다. 스미스의 예에 따르면 스코틀랜드의 외진 고지 내륙 지역에서는 못 제조업자와 같은 직업이 존재하는 것부터가 불가능했다. 하루 1천 개의 못을 제조하는 제조업자는 1년 300일을 일하면 30만 개의 못을 제조할 수 있지만, 스코틀랜드 고지에서는 단 하루치인 1천 개의 못도 판매할 수 없었다.

수상 수송이 발달하면서 대량의 화물을 저렴한 비용으로 운송할 수 있게 되었다. 18세기 당시 마부 2명이 모는 말 8필의 광궤 4륜마차는 런던과 에든버러 사이를 4톤의 화물을 싣고 6주일만에 왕복하는 반면, 화물 200톤을 적재한 선박은 불과 6~8명의 선원만 필요로 하면서도 거의 같은 시간에 같은 거리를 항해할 수 있었다. 따라서 200톤의 화물을 런던에서 에든버러로 운송하려면, 육로로는 100명의 생계비와 말 400필, 마차 50대의 유지비가 소요되는 반면, 수로로 옮길 때는 불과 6~8명의 생계비와 200톤급 선박1척의 유지비만 소요된다.

수운의 발달로 수송비용이 폭락하면서 하천과 연안을 낀 도시들에서부터 분업이 확립되고 상업 사회가 형성되었다. 더이상 이웃 농촌에서만 원자재를 공급받을 필요가 없게 된 도시들은 멀리 떨어진 지방 및 외국에서 원자재를 수입하고 공산품을 판매할 수 있었다. 몇몇의 한정된 촌락을 벗어난 더 넓은 범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수요를 바탕으로 성장한 도시들은 대량의 수요를 요구하는 전문적인 제조업 업종의 등장을 가능케 했고, 또한 농촌의 잉여 생산물을 위해 대규모 시장을 제공함으로써 농촌의 경작과 개량에 자극을 주기까지 했다.

한편 그 자체가 상거래의 안전을 전제 조건으로 하는 도시의 상업과 제조업은 농촌에 질서와 선정, 개인의 안전과 자유를 도입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다. 외국 무역과 제조업이 도입되기 전, 대지주는 소유지의 잉여 생산물을 교환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대신 다수의 가신, 식객을 부양하면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을 뿐 아니라, 잉여 생산물의 소비자가 대지주와 그 부하들로 한정된 상태에서는 농노나 소작인들도 대지주에게 종속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외국 무역에 의한 제조업이 확립되자, 대지주들은 특히 사치품을 구매하기 위한 소비를 충당하기 위한 목적으로 점차 가신과 필요없는 소작인을 해고했으며, 동시에 보유한 토지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얻기 위해 나머지 소작인들에게 토지 개량을 위한 장기 차지계약을 인정하게 되었다. 소작인은 장기간 토지 차용권을 보유하고, 잉여 생산물을 소비할 시장이라는 대안이 존재함으로써 지주로부터 독립했고, 해고된 가신들은 대지주가 농촌을 폭력과 권력으로 지배하는데 더이상 이용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농촌에서 일상의 정치를 교란할 권세가들이 사라져 가고 농민이 종속에서 해방되면서 도시와 같이 사법과 행정이 확립되었다.
  • 산업 혁명에 따른 대량생산으로 애덤 스미스의 견해가 확증을 얻게 되었다.
과거 중세시대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만 해도 공업의 대부분은 가내수공업이 주류를 이루었고, 그나마 복잡한 공정도 동네 대장간에서 대부분 해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공산품의 가격이 상당히 고가를 형성하여 대부분의 공산품은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심지어 같은 물건이라도 그날 생산자의 컨디션에 따라 품질에 차이가 났기 때문에 분명 같은 상품이라도 퀄리티에 따라 가격이 다른 경우가 상당히 흔했었다.

그러나 증기기관의 발명과 산업혁명으로 인해 여러 공정으로 쪼개진 공장은 수작업보다 퀄리티가 높은 공산품을 일정한 품질로 대량생산할 수 있었다. 위에서 언급된 핀은 분업만으로 240배가 뛰었는데, 여기에 증기기관을 통한 자동화까지 더하게 되면 생산성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이는 가내수공업으로 생산된 저품질&소량&고가의 공산품을 빠른 속도로 대체했으며, 과거 특권층의 전유물이 저렴한 가격으로 그것도 더욱 양질의 제품을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즉 그만큼 공산품 시장이 확대되고 시장이 활성화되며, 규모가 팽창하게 되어 시장이 경제를 주도하게되는 본격적인 시장경제체제의 시초이기도 하다.

3.2. 이기심에 대한 오해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심(Self-Interest)을 경제 행위의 주요한 동력으로 봤다.

간혹 이기심을 selfishness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오해다. 흔히 예로 드는 빵집 사장이 빵을 만드는 행위는 selfishness와는 별 상관이 없다. 그가 빵을 만드는 행위는 돈을 벌기(gain) 위한 행위인 것이다. 즉, 이득(interests)으로 연결된다.

아울러 인간의 이기심은 사회 도덕적 한계 내에서 발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점은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국부론을 읽지 않고 전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저자인 애덤 스미스도 이런 오해를 싫어했고, 심지어 죽기 전에는 묘비에 국부론의 저자가 아니라 도덕감정론의 저자로 적어 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책에서 일부만 발췌하여 내용을 왜곡하는 일이 예나 지금이나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3.3. 보이지 않는 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보이지 않는 손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평가

'경제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에 경제학이란 새로운 학문을 탄생하게 만들었다. 경제학의 기초를 닦은 것과 동시에 고전 경제학의 시발점이며 경제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한 번쯤은 읽어봐야 할 명저이다. 즉, '경제학'의 시작이다.

물론 학문적 체계가 확립되기 전이었을 뿐 《국부론》 이전이라고 해서 경제에 대한 관념이 없었다고는 볼 수 없다. 당장 국부론 자체가 기존의 경제관이던 중상주의에 대한 반박과 중농주의에 대한 보충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매우 체계적인 현대의 경제학과는 달리 과거의 경제학은 그냥 상인들이나 정부 관료들 사이에서 전해오는 일종의 구전 학문에 가까웠으며 그 내용도 어떻게 하면 금과 은을 더 축적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 즉 일종의 상업무역론에 가까웠다. 즉 단순한 금과 은의 양이 아니라 '부' 라는 것의 기준을 명확히 정의하고 이것을 어떻게 측정하며 어떤식으로 움직이는지를 논리적이고 수학적으로 관찰하는 학문으로서의 국부론은 경제학을 탄생시켰다고 볼 수 있다. 국부론에서 정의한 '부(Wealth)'는 생산성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현재 세계 국부 평가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이라는 지표를 사용하게 됨으로써[6] 결정적으로 전 세계 경제 시스템 자체를 재설계하는 데 공헌했다.

적어도 경제학을 접하고 있는 사람은 이 책의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국부론을 성경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이건 경제학이 종교 같은 무언가이고 국부론이 그 경전이라는 뜻이 아니라 경제학에서 국부론이 차지하는 자리를 표현하는, 구미 기독교 문화권에서 유래한 하나의 관용어다. 바이블 문서 참고.

이에 그치지 않고 스미스는 그러한 부를 국가가 어떻게 유지하고, 축적할 것인가에 대한 정책적 조언도 가미한다. 바람직한 시장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을 오히려 강조하며, 범선을 비롯한 당대의 군수산업은 오히려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치산업(원문엔 infant industry)에 대한 국가의 보호를 이야기하는데, 열등한 농업 국가인 영국이 프랑스 농산물에 잠식될 것을 우려한 맬서스당대 대중들에겐 맬서스의 안티 쯤으로 여겨졌지만 라이벌이자 후대에 고평가를 받는 이 등에게 영향을 준 내용도 존재한다. 한마디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있는 경제학의 기원을 마련한 책이다.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자본론, 일반이론과 함께 정치경제학 4대 고전이라 불리기도 하며, 자본론과 일반이론은 난해한 수학공식과 어려운 말들이 많아서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국부론은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는 책이라 보기 편한 책이다. 아무래도 저자가 교육자 출신이라서 그만큼 상대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줄 알았기 때문인 것 같다.

5. 번역

한국어 번역본은 유인호 역(동서문화사 → 학원출판공사 → 동서문화사), 최임환 역(을유문화사 → 올재), 김수행 역(동아출판사 → 비봉출판사), 정해동, 최호진 공역(범우사) 등이 있다.

6. 여담

카를 마르크스자본론공산주의 진영을, 아돌프 히틀러나의 투쟁제3의 위치를 상징한다면 자본주의 진영을 상징하는 책은 바로 국부론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국부론은 본격적인 자본주의의 시작과도 같다. 서양이 동양을 앞지른 시점이 바로 국부론 출판 시점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국부론의 원서는 발간된 지 250년 가까이 된 고서이므로 저작권없다. 물론 번역이나 편역 등은 저작권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원서는 인터넷으로도 공개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읽어볼 수 있다. PDF 다운로드

7. 관련 문서


[1] Quesnay 등의 학자가 중농주의 이론을 발전, 집대성해 스미스 이전의 경제학적 기틀을 마련한다.[2] 축적한 금붙이 등을 경제력의 원천이자 측정 기준으로 본 중상주의는 생산물(농산물)을 강조한 중농주의에 밀리게 된다.[3] 10사람 중 몇 사람은 실제로 두세 가지 작업을 혼자서 하고 있었다.[4] 이 기질이 인간의 본성에 의한 것인지, 이성과 언어의 기능에 따른 결과인지에 대해 잠깐 언급되나 주목하는 부분이 아니라며 넘어간다.[5] 이것을 상품 화폐(commodity money)라고 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상품 화폐로써 주로 면포와 비단이 사용되었다.[6] GDP는 특정 '기간'의 부가가치 생산의 합이라는 '유량'(Flow) 개념이다. 국부론이 나오기 전의 국부를 측정하는 기준은 스미스가 비판한 중상주의의 시점에서는 국가의 부(富)인 국가가 보유한 이나 의 양, 즉 '저량'(Stock) 개념이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지적한 생산성, 즉 Flow 개념의 국부 측정이 더 합리적이라는 것을 입증하면서 저량 개념의 국부 측정은 사실상 사라졌다. 현대의 외환보유액 정도가 Stock 개념의 국부인데 외환보유액을 국부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