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1 02:51:48

기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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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670000> 증조부 조부 부왕 덕성부원군
홍영왕 관왕 경장헌왕 기철
<rowcolor=#670000> 황후
보현숙성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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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원 추존왕
敬莊獻王 | 경장헌왕
본관 행주 기씨
자오(子敖)
부왕 관왕(官王)
왕비 경장헌왕비 이씨(敬莊獻王妃 李氏)
자녀 기철, 기황후 외 4남
작호 영안왕(榮安王)→경왕(敬王)
시호 장헌(莊獻)
생몰 1266년 ~ 1328년
1. 개요2. 생애3. 가족관계4.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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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장헌왕 기자오(敬莊獻王 奇子敖, 1266년 ~ 1328년 3월 3일)는 고려 후기의 무관이다. 본관은 행주(幸州).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간 막내딸 기씨가 원 혜종의 제 2황후인 보현숙성황후 기씨가 되면서 원나라로부터 겸덕승화육경공신(秉德承和毓慶功臣)이 추증(追贈)되었고 영안왕(榮安王)의 왕작(王爵)이 추봉되었으며, 뒤에 경왕(敬王)으로 격상되었다. 시호는 장헌(莊獻)이라 하였다. 고려에서는 첨의정승에 추증되었다. 첨의정승은 고려의 총리격인 종1품 문하시중이 원나라의 압력으로 인한 관제격하 때문에 개칭된 명칭이다. 그의 할머니 임씨는 고려 인종의 왕후 공예왕후 임씨의 종손녀였다.

2. 생애

그의 증조부 기윤숙(奇允肅)은 최충헌 집권 시기에 상장군을 맡았던 인물이다. 당시 아첨해서 얻은 직책이라고는 하지만, 이후 문하시랑평장사까지 된 걸 보면 능력이 아주 없는 인물은 아닌 듯. 기자오가 음서로 관직에 올랐던 걸 보면 당시 꽤 힘있는 집안이었던 모양이다.[1]

기자오는 처음에 산원으로 임명되었고 1290년에 원나라에 반란을 일으킨 카다안이 동쪽의 진번 쪽으로 도주해서 고려를 침입해 살육, 약탈을 하면서 충렬왕강화도로 피난가는 상황에 중군편장이 되어 깃발을 등에 지고 선두로 달리는 등 상당한 공을 세웠다.

이후 여러 차례 승진해 총부산랑을 지냈고 지방에 나아가 선주(宣州: 지금의 평안북도 선천군)를 다스렸는데, 가는 곳마다 직책에 맞게 해서 사람들이 그리워 할 정도였다. 그러나 기자오는 대대로 관직이 있는 가문의 출신이었음에도 벼슬길에서는 그다지 순탄하지 못했다.

성품이 관대하고 온후하면서도 높은 사람에게 청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어진 사대부들과 놀면서 즐거움에 힘썼으며, 집안의 살림살이는 관심을 갖지 않았고 1328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그 뒤 1343년 겨울 10월에는 원나라로부터 영안왕(榮安王)의 왕작이 추봉되었으며 1356년에 기황후의 3대조까지를 추증할 때 기자오는 경왕(敬王)으로 격상되었다. 시호는 장헌(莊獻)으로 왕작과 시호를 합치면 경장헌왕(敬莊獻王)이 된다. 고려에서는 첨의정승에 추증되었다. 첨의정승은 고려의 총리격인 중서문하성의 장관, 종1품 문하시중이 원나라의 압력으로 인한 관제격하 때문에 개칭된 명칭이다.

기록을 보면 기철기황후에 비해 인성은 비교불가일 정도로 꽤 좋은 편이다.

3. 가족관계

  • 증조부 : 기윤숙(奇允肅, ?~1197년 4월 24일), 강정공(康靖公). 금자광록대부(문산계 종2품), 상주국(훈직 정2품), 수태사, 문하시랑 평장사, 판이부사, 상장군.
    • 종조부 : 기홍수(奇洪壽, 1148년 ~ 1209년), 경의공(景懿公), 벽상삼한삼중대광(문산계 정1품), 주국(훈직 종2품), 수태사,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판이부사
    • 조부 : 기홍영(奇洪潁)[2], 은청광록대부(문산계 정3품), 상서우복야, 좌우위보승랑장.
    • 조모 : 군부인 장흥 임씨(郡夫人 長興 任氏) - 판사재감사 임경순(任景恂)의 딸[3], 공혜왕후의 증손녀, 공예태후의 동생의 후손.
      • 삼촌 : 기온(奇薀), 은청광록대부, 동지중추부사, 호부상서, 대장군, 고종(고려)의 사위.
      • 아버지 : 기관(奇琯), 봉익대부(문산계 종2품), 삼사우사, 응양군상호군, 원래 이름은 기장(奇璋)이었으나 충선왕과 이름이 같아 피휘에 따라 개명했다.
      • 어머니 : 연흥군부인 죽산 박씨(延興郡夫人 竹山 朴氏) - 판서 박휘(朴暉)의 딸.
    • 종조부 : 기홍석(奇洪碩), 단위부대의 지휘관인 지유(指諭) 시절 김미(金敉)를 최우의 후계자로 삼으려다 최항을 살해하려던 음모가 발각돼 일파와 함께 유배당한다. 후에 최씨 정권이 몰락한 뒤 복권되어 군부판서, 응양군상장군, 밀직부사 동지밀직사, 감찰제헌을 역임한다.
  • 부인 : 경장헌왕비 익산 이씨(敬莊獻王妃 益山 李氏), 증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 - 전서 이행검(李幸儉)의 딸.
    • 아들 : 기식(奇軾) - 아버지 기자오(奇子敖)보다 앞서 사망했다.
    • 아들 : 기철(奇轍)
    • 아들 : 기원(奇轅)
    • 아들 : 기주(奇輈)
    • 아들 : 기륜(奇輪)
    • 딸 : 조희충(趙希忠)의 처
    • 딸 : 염돈소(廉敦紹)의 처
    • 딸 : 보현숙성황후 기씨(普顯淑聖皇后 奇氏, 1315~1369)
    • 사위 : 원 혜종(元 惠宗)
      • 외손자 : 원 소종(元 昭宗, 1338~1378 재위:1370~1378)

전서 이행검(李幸儉)의 딸과 결혼해 5남 3녀를 뒀다. 참고로 이행검은 충렬왕비인 정화궁주와 얽힌 악연이 있다. 자세한 것은 정화궁주 항목 참조.

4. 대중매체



[1] 아직 말단이었던 최충헌을 발탁한 게 바로 당시 무신정권의 권신이었던 기탁성이었다. 기윤숙과 기탁성의 관계는 불명이나 가문 자체가 최충헌과 인연이 있었던 것.[2] 인왕(仁王)이란 왕작을 갖고 있었단 기록이 있는데 정작 기록에서 그런 봉작을 받았다거나 추봉되었단 기록은 없고, 그냥 왕작을 추봉했다고만 되어있어 시호는 미상이다. 일설에 의하면 기자오의 행장을 참고하던 중 인종(고려) 관련 기록을 착각하여 퍼지게 되었다 한다.[3] 우승선(右承宣) 임환(任桓)의 딸이라는 기록도 있는데 보통 이 기록이 잘못되어 임환의 누나였던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