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0 02:42:16

김경범(축구)

김경범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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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클럽
파일:강릉시청 축구단 엠블럼.svg

1대
파일:양평 FC 엠블럼(2015~2021).svg

2대
파일:춘천시민축구단 엠블럼.svg

5대
}}} ||
대한민국의 축구감독
파일:109453_74411_5027.jpg[1]
이름 김경범
Kim Kyeong-Beom
출생 1965년 3월 5일 ([age(1965-03-05)]세)
강원도 강릉시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신체 178cm
학력 강릉성덕초 - 강릉중 - 여주상고
직업 축구선수(수비수[2]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유공 코끼리 (1985~1986)
상무 축구단 (1987~1988)
일화 천마 (1989~1997)
부천 SK (1998)
강릉시청 축구단 (1999~2002)
감독 강릉시청 축구단 (2003~2005)
동대부고 (?~?)
서울 유나이티드 U-18 (2013~2015)
양평 FC (2018~2019)
춘천시민축구단 (2020~2021)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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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이자 現 춘천시민축구단의 감독.

K리그 338경기에 출장해 최초 300경기 출장자이자 한때 최다 출장 기록 보유자였다.

2. 선수 경력

흔히 최초의 고졸 출신 K리거로 알려진 김경범은 강릉성덕초와 강릉중학교를 거쳐 강릉상고에 입학해 여주상고로 졸업, 직후 유공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데뷔하게 된다. 유공에서 2년을 보낸 후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해 잠시 공백기를 가졌다.

1989년 신생팀인 일화 천마에 당시 5천만원이라는 거액의 계약금으로 입단했다.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아시아 예선 대표로 발탁되기도 하였다.

일화에서 박종환 감독의 신임을 받으며 1992년 리그컵인 아디다스컵 우승을 시작으로 일화의 1993~1995 최초의 리그 3연패, 1995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등 숱한 우승컵에 기여했다.

또한 1997년 프로 축구 최초의 300경기 출전 금자탑을 세우는 등 일화 수비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1997시즌 종료 후 일화에서 자유 계약 선수로 방출당했고 이후 친정팀인 부천 SK에 입단해 1998시즌 36경기를 소화했지만 조윤환 신임 감독 아래 세대교체에 들어가며 1년 만에 팀을 떠났다.

프로통산 338경기 9골 33도움을 기록하며 당시 프로 축구 역대 최다 출장 신기록 보유자였다.[3]

부천을 떠난 후 전국실업축구연맹전에 참가하는 신생팀이자 고향팀인 강릉시청 축구단에 창단 멤버이자 플레잉 코치로서 입단했다. [4]

3. 지도자 경력

2003년 K2리그로 개편된 리그에 참가하는 강릉의 2대 감독에 부임했고 2003 시즌 준우승을 거뒀다. 2005 시즌 중도 사임했다.

그 뒤에는 동대부고, 서울 유나이티드 U-18 등 유소년 축구 감독을 맡다가 2018년에 당시 K3리그 어드밴스에 참가하던 양평 FC의 감독으로 부임, 대한축구협회 FA컵에서 2018년상주 상무, 2019년아산 무궁화를 꺾는 대사건을 일으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경범 감독의 계약 마지막해에 양평은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K3리그K4리그로의 개편이 이루어진 2020년춘천시민축구단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2020시즌 종료 후 K4리그 강등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으나, 춘천시민축구단 운영위원회는 동년 11월 18일 춘천시청 회의실에서 권기민 운영위원장 등 위원 7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제11차 운영위원회의를 열고 김경범 감독에 대한 1년 유임을 의결했다. 다만 운영위원회는 춘천시민축구단이 내년 K4리그에서 4위 안에 들어야 하고,시즌 도중 연패를 당하면 해임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붙였다.# 시즌 중반 점까지 거듭된 부진과 연패로 경질될 위기에 처했으나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지만 K4리그 4위 진입에는 실패해 계약이 만료됨에 따라 팀을 떠나게 되었다.

4. 여담



[1] 우측이 김경범 감독.[2] 풀백[3] 이 기록은 2003년까지 7시즌이나 이어졌으며 2003년 김현석에 의해 깨졌다.[4] 강릉에서 6급 공무원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