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11:32:23

김민기(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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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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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72v3jpgxR1sqk8veo8_r2_500.png 1995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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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1992~1996)
김민기
(1997~2010. 5. 25.)
박현준
(2010. 7. 28.~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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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金敏基 | Min-ki Kim
출생 1977년 5월 19일 ([age(1977-05-19)]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남정초 - 배명중 - 덕수상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7년 고졸우선지명 (LG)
소속팀 LG 트윈스 (1997~2010)
지도자 설악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10~2011)
덕수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11~2014)
중앙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14~2015)
화성시 유소년 야구단 코치 (2015~2016)
광천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17~2018)
저니맨 외인구단 감독 (2019)
영문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19~2020)
덕수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20~2023)
한국마사BC 코치 (2024~)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프로 경력
3. 피칭 스타일4. 지도자 경력5. 여담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LG 트윈스 소속의 투수. 전 저니맨 외인구단의 감독.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덕수상고 재학 시절만 해도 부산고백차승, 군산상고정대현 등과 함께 특급 고졸 유망주로 분류되었으며 49회 황금사자기의 우승과 최우수선수를 차지할 정도로 기대를 모았던 선수이다.[1]

2.2. 프로 경력

1997년 고졸우선지명을 받아 LG 트윈스에 입단했다.[2]

주로 중간계투로 등판했으며, 간간히 마무리 전환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영 좋지 않아 다시 계투로 돌아갔다. 데뷔 초창기에는 선발로 뛰었고,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선발로 나서기도 했다.

유망주로써 기대와 달리 프로에선 기대만큼의 활약을 하지 못했으며, 7승 5패를 기록했던 2002년에 좀 날아다니는 거 같더니 제구가 안 잡혀서 계속 부진했다. 2008년까지 매 시즌 꾸준히 1군에서 모습을 보였지만 2006년(55경기 6홀드 6세이브), 2007년(69경기 17홀드 1세이브)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믿을 만한 중간계투라는 인식을 심지 못했다. 그나마 커리어 하이였던 2007 시즌의 평균자책점도 4점대다. 이 두 해는 극심한 투고타저 시즌이었으니 더더욱. 연도별 성적을 보면 거의 대부분의 시즌에 참담한 방어율을 찍었다. 이런 선수가 300경기 넘게 등판했다고 하니, 당시 LG의 투수 자원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경기를 패전조 내지 롱 릴리프로 뛰었고, 이런 선수는 어디에든 한 명쯤 있기 마련이다. 전성기 구위는 꽤 괜찮아서 선발 중간계투 마무리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막 굴렀는데, 구위를 말아먹는 제구 때문에 시즌 막바지 가면 결국은 패전처리.

선발투수로서의 커리어하이는 2002년인데 LG 선발 중 가장 낮은 방어율인 3.18을 기록하며 토종 에이스 역할을 했었고 LG 트윈스의 2000년대 마지막 한국시리즈 진출에 기여를 했다.

KBS에서 베테랑 야구 캐스터로 활동한 덕수상고 대선배인 유수호는 김민기에게 "게으른 성격 때문에 더 크지 못했다"는 쓴소리를 남기기도 했다. 그로 인해 방화신기 2기 멤버 중 한 명, 김민기름으로 불렸다.

2009년엔 부상으로 3경기밖에 나오지 못했고, 결국 2010년 5월 26일 투수 정성훈과 함께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되었다.

이후 기회를 노리며 김성근 감독이 있는 SK 이적을 타진했지만, 부상이 악화되어 은퇴했다.

통산 성적은 307경기 33승 39패 14세이브, 평균자책점 5.04.

그나마 인상적인 기록이 하나 있는데, 1999년 5월 17일 잠실 두산전에서 7회에 1이닝 4K를 잡아낸 게 있다. 이후 7,288일이 지난 2019년 4월 30일 잠실 kt전에서 차우찬이 5회초에 4K를 잡아 냈다.

3. 피칭 스타일

아마추어 시절에는 150km/h의 구속을 앞세운 파이어볼러였다. 그러나 어깨 부상 이후로 130대 후반에서 140대 초반 수준으로 구속이 떨어졌고 힘으로만 승부하던 스타일에서 기교파 스타일로 변화하였다. 투구시 어깨통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팔스윙 폭을 줄이면서 ‘정확한 직구’로 승부를 거는 투구패턴을 사용했고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 변화구도 적절히 던졌고, 박명환으로 부터 슬러브를 전수받아 던지기도 하였다.

4. 지도자 경력

이후로는 설악고 투수코치를 맡았다가, 모교인 덕수고의 투수코치로 부임해 2012~2014년 청룡기 3연패의 한 축을 맡았었다. 경기도 화성시에서 유소년 야구단 감독하다 신윤호가 운영하는 사회인야구 연습장에서 레슨을 하였다.

2017년 5월 창단 예정인 충남 홍성군광천고등학교의 투수코치로 부임하였다.[3]

이후 2018년 10월 17일 저니맨 외인구단 제3대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몇 달 뒤 조용히 사임하고 영문고 코치로 옮겼다.

2020년 봉황대기를 앞두고 모교인 덕수고 코치로 부임했다.

5. 여담

  • 이사만루 2019에서는 특폼이 없지만 싱커가 사기로 유명했다.
  • 팀 내 선수들 중에서는 투수 신윤호와 친했다고 한다.[4]
  • 주로 활약하던 시기가 LG의 암흑기였고 그로 인해 방화신기로 묶였지만 통산 성적은 역대 LG의 상위급 유망주 중에서 가장 좋은 편이다.[5] 상위 순번으로 계약금을 엄청나게 받고도 1군에서 털리면서 조용히 은퇴하는 선수들이 부지기수임을 감안하면 나름 LG의 성공작이라고 볼 수 있겠다.
  • 2006년 4월 2일 KIA전 9회에 구원 등판한 김민기는 연속안타를 내주고 강판 당하자 투수 코치에게 공을 넘겨주는 대신 홈 플레이트 뒤편 그물에 던져버리고 마운드에서 내려가 버렸다. 선발로 시즌을 출발한 뒤 구원으로 보직이 변경된 것에 불만을 표출한 것. 결국 다음날 2군으로 떨어진[6] 김민기는 시즌이 거의 끝나가는 9월에야 다시 복귀할 수 있었다. 팀 내 자체 징계로 벌금 300만 원도 냈다.

6. 관련 문서


[1] 결승전에서 선발투수 황선우의 뒤를 이어 4회에 구원등판해 2안타 1실점으로 막고 마산고에 3-1 승리를 거뒀다. 김민기는 3경기에 등판해 14와 2/3이닝동안 2실점으로 2승을 거뒀다.[2] 당초 연세대학교에 진학할 예정이었으나 프로 직행으로 선회한 것이다.[3] 야수코치는 정원석이다.[4] 박명환야구TV에서 신윤호가 직접 밝혔다.[5] 선발 에이스로 활약해 팀의 KS 진출에 큰 기여를 한 2002년에는 WAR 2.4를 기록했고 통산 WAR도 7.7을 기록했다. 게다가 WAR 쌓기 힘든 보직인 중간계투로 주로 나섰음에도 착실히 이 성적을 쌓았던 것이다.[6] 김진성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