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金沙彌(? ~ 1194)
고려 무신정권 때 농민 봉기인 김사미·효심의 난의 주도자.
2. 생애
김사미의 출신에 대해서 뚜렷한 기록은 없지만 사미[1]라는 이름을 봐서는 승려 출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운문[2] 출신이라고 된 걸 봐선 운문사 관련 인물이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3] 세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1193년 7월 경상도의 운문에서 신라 부흥을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초전에서 세력을 일으킨 효심과 합세했으며 경주 출신인 이의민과 내통[4]하여 8월에 이의민의 장남인 이지순으로부터 물자와 기밀 등을 제공받고 전존걸이 이끄는 진압군과의 싸움에서 그들을 연달아 패퇴시켰다. 그러나 상장군 최인, 대장군 고용지 등이 이끄는 진압군의 공격을 받고 타격을 입자 1194년 2월 직접 행영에서 나와 항복했지만 참수되어 목숨을 잃고 만다.
3. 대중매체에서
- 소설 《김사미와 효심》에서는 인물 소개에 따르면 법성이라는 법명을 가진 승려이자 신라의 왕손으로 이름은 김대영. 경주 농민군을 이끌다가 관군에게 패해서 친구인 이학진, 박부라 등과 함께 운문사로 숨어들었다가 운문 농민군을 조직해 최고 지도자가 되었지만 병마사 행영인 강릉에 가서 항복했다가 병마사 최인에게 즉시 참수되었다.
- 2022년 신작인 박시백의 고려사에서는 경상도 일대에서 효심과 함께 난을 일으키는 모습으로 첫 등장한다. 처음에는 관군을 상대로 우세한 기세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패하자 직접나와 항복을 청했는데 이때 목이 잘리면서 등장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