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2:56

김완태(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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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8940>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83년 ~ 2018년
임관 육군사관학교 (39기)
최종 계급 중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육군사관학교장
주요 보직 수도군단
육군본부 군수참모부장
제3야전군사령부 참모장
제32보병사단
육군사관학교 생도대장

1. 개요2. 생애3. 주요 직위4. 기타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군인. 최종 계급은 중장이며, 최종 보직은 육군사관학교장이다.

2. 생애

충청북도 청주시 출신이다. 운호중학교를 거쳐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육군사관학교 제39기로 입교[1]하여, 1983년 졸업과 함께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3. 주요 직위

4. 기타

  • 강직하고 소신이 강한 무인형이라는 평이 있었다. 이로 인해서 오해를 사고 견제를 받는 일들이 있었다.
    • 수도군단 예하 17사단 제3경비단장인 노 모 대령(진)[5]이 음주 사격 지시를 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당시 문재인 정부에서 발언권이 큰 편이었던 서주석 국방부 차관이 이를 엄중 징계할 것을 지시했으나 김완태 군단장이 이에 대해서 '조사 후 잘못한 만큼만 징계' 할 것을 결정하는 바람에 위에서 찍혔다고 한다. 당시 참모들의 증언에 따르면 현장을 조사한 관련 참모들의 난상 토론과 김정유 17사단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잉도 과소도 아닌, 잘못한 만큼만 징계하라고 지침을 내리는 등 엄격하게 처리한 것으로 후에 알려졌다. 당시 언론에는 솜방망이 처벌 의혹이 있었으나, 합리적인 처벌이었던 셈.[6]
  • 육군사관학교장 재직 시절에도 정부와 입장이 달라 갈등 관계를 형성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육군사관학교를 지방으로 이전하고 태릉 지구를 개발할 것을 추진했으나, 김완태 교장이 8개월의 임기 동안에 육사의 지방 이전을 저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다양한 활동을 한 것이 오해를 사게 되어 음해성 루머와 정규재 TV에 생도라고 속여 보도를 하기도 했지만, 월간조선 기자가 추적 취재하여 22년 월간조선 12월호에서 상세하게 보도되기도 하였다. 가장 이슈가 되었던 박근혜 대통령 휘호석은 김완태 학교장의 전임자인 최병로 학교장(육사 38기)이 제작하고, 또한 야산으로 옮긴 것으로 확인되었다.
  • 육군사관학교 독립유공자 흉상 철거 논란을 두고 최초 설치 당시 교장인 김완태 장군이 문재인 정부와 코드를 맞췄다는 신원식 국방장관 후보자의 말을 반박하고 나섰다.# 위의 육사 교장 시절 일화들에도 나오듯이, 문재인 정부와 마찰까지 빚어가며 자신의 소신을 지키다가 임기 중 전역했던 인물이었기에 설득력을 얻고 있다.
  • 보통 한 기수에서 인사/군수 직능 보직의 중장은 1석만 나오는데 진급에 성공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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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용우, 제갈용준, 장재환, 이진원 장군과 육사 동기다.[2] 재직시에는 8.18도끼 만행사건 이후 두 번째 유엔사 관할구역 작전인 한강하구 작전에서 중국 어선의 나포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고, 귀순자 유도작전까지도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의 극찬을 받은 바도 있다.[3] 문재인 정부와 편치 않은 관계였고 결국 후속 인사에서 바로 교체되어 2018년 5월에 이임하고 8월에 전역했다.[4] 세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특히 국제 정치를 전공한 이력과 본인의 취미인 음악의 역사 자료를 모으고, 오랜 시간 독립운동역사를 공부한 경험을 살려, 직업 군인과 크게 관련 없는 강의를 하는 특이한 인물이다. 세 과목을 모두 수강한 졸업생의 말에 의하면, 대학 재학 동안 수강한 과목 중 가장 인상 깊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강의를 진행하는 교수님이라고 이야기 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또한 학생들이 질문이나 면담을 요청하면 친절하게 응하며 밥을 사주기도 하고, 매 학기 성적 우수자 및 생활 여건이 좋지 않은 학생들에게 대학 발전 기금을 통해 개인 장학금을 수여하는 등의 보이지 않는 선행을 베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5] 육사 50기.[6] 해당 장교는 경징계를 받아 대령 진급이 확정되기는 했으나, 다른 자리(수도군단 정보참모)에서 사고를 쳐서 보직해임이 이뤄졌다고 한다.[7] 당시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는 39기 중에서 인사참모부장 출신인 류성식 소장이었다. 그러나 동기인 홍OO 소장의 전역 지원서 문제로 기소유예가 뜨는 바람에 한직(학교장)으로 내쳐지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던 김완태 군수참모부장이 39기 인사/군수 직능 몫으로 진급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