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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이형근 | 2대 원용덕 | 3대 정일권 | 4대 송호성 | 5대 김백일 | |
6대 최덕신 | 7대 김홍일 | 8대 이준식 | 9대 안춘생 | 10대 김종오 | |
11대 박병권 | 12대 장창국 | 13대 백남권 | 14대 이한림 | 15대 강영훈 | |
16대 김용배 | 17대 박중윤 | 18대 정래혁 | 19대 이세호 | 20대 김희덕 | |
21대 심흥선 | 22대 최세인 | 23대 최우근 | 24대 정승화 | 25대 백석주 | |
26대 차규헌 | 27대 김복동 | 28대 최연식 | 29대 황인수 | 30대 지일환 | |
31대 최문규 | 32대 장준익 | 33대 민병돈 | 34대 이필섭 | 35대 임인조 | |
36대 김정헌 | 37대 장성 | 38대 김정남 | 39대 장창규 | 40대 한승의 | |
41대 오남영 | 42대 박준근 | 43대 김충배 | 44대 김선홍 | 45대 임충빈 | |
46대 김현석 | 47대 정승조 | 48대 이봉원 | 49대 박종선 | 50대 박남수 | |
51대 고성균 | 52대 양종수 | 53대 최병로 | 54대 김완태 | 55대 정진경 | |
56대 김정수 | 57대 강창구 | 58대 전성대 | 59대 권영호 | 60대 정형균 | |
61대 소형기 | |||||
※ 초대~13대, 17대, 19대, 51대, 58대, 60대, 61대: 대령, 준장, 소장 / 14대~59대: 중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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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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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무 | 대한민국 육군 |
1988년 ~ 2022년 | |
학력 | 동인천고등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책과학대학원 (행정학 / 석사[1]) |
임관 | 육군사관학교 (44기) |
최종 계급 | 중장 (대한민국 육군) |
최종 보직 | 육군사관학교장 |
주요 보직 | 제8군단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제55보병사단장 육군본부 인사관리복지차장 제1야전군사령부 인사처장 국방부 인사기획관리과장 제73보병사단 제206연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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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예비역 장성. 최종 계급은 중장이며 최종 보직은 육군사관학교장이다.2. 생애
경상남도 김해군에서 태어났으며, 유년 시절은 경기도 인천시[2]에서 보냈다. 이후 인천신흥국민학교, 동인천중학교, 동인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 육군사관학교 44기로 입교하였다. 1988년 학사 학위 취득과 함께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병과는 보병, 직능은 인사이다.
3. 주요 직위
4. 여담
- 오랜만에 육사 출신 8군단장이 나왔다. 전임자인 박한기 중장(학군 21기)[12], 황인권 중장(3사 20기)[13], 이진성 중장(3사 22기)[14], 이창효 중장(3사 19기)[15] 모두 비육사 출신이다. 후임 8군단장은 육사 1년 후배 여운태이며, 이후 육사 2년 후배인 박안수가 맡고 있다가 해체하였다.
- 인사 직능으로 육군 정책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군 인사에 큰 발전을 이룬 많은 정책개발과 제도 개선으로 후배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군 내에서는 인사분야의 대가로 알려진 만큼 조직 운영과 지휘능력에 대한 평이 좋다.
- 55사단장 시절 각 병영 생활관마다 냉장고를 설치했고 연병장을 재정비하였으며, 봉화카페를 설립하여 면회객과 용사 복지를 엄청 챙겼다. 이러한 점에서 용사들에게 주어지는 휴가를 삭제하고 당직 근무자들과 전문하사에게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한 후후임자 3사 출신 배현국 장군과는 엄청 대조를 이룬다. 결국 배현국 장군은 중장을 못 달고 3사 1기수 후배인 고창준 장군이 대장으로 진급하는 것을 지켜보고 전역하기에 이른다.
- 8군단장 재임 중 군단 장병 복지시설 개선에 힘썼다. 군단 내에 카페 2개를 신설했고 사령부 입구 쪽 카페 내부에는 보드게임도 있다. 게다가 치킨집[16]도 신설하였는데 8,800원에 한 마리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서 좋은데 맛도 좋아서 용사들이 자주 애용하고 있다.
- 2018년 11월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재임 당시 장군에게 전하는 용사들의 이야기란 병사주도 세미나에 참석하였다. 이창효 8군단장[17]과 같이 찍은 사진이며 표정이 좋지 않아 병사가 개진한 의견이 기분을 나쁘게 한 거 아니냐는 말도 있었지만 사진이 교묘한 순간에 표정이 찍혔다는 평이다.사진
- 8군단장 재임 중 사령부 영내 시설 개선과 장병복지에 신경을 많이 썼다. 재임 중 진행한 영내 시설 개선 사업으로 체육관 리모델링, 연병장 트랙 공사, 간부식당 및 병영식당 인테리어, 위병소 시설 개선 사업 등이 있다. 특히 사령부 본청내부는 복도를 갤러리처럼 꾸며서 근무환경을 크게 개선했다. 항상 거쳐간 부대마다 시설이나 근무여건이 크게 개선되어 부하들의 평이 매우 좋다. 또한, 사격장 안전진단후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마좌리사격장을 9개월간의 공사를 통해 전군 최고의 안전한 사격장으로 탈바꿈시켜 365일 사격이 가능토록 하여 교육훈련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 육군사관학교장으로 재임 시에는 생도들에게 정신적 강인함과 국가관을 강조하여 약화되어가는 생도생활을 보다 강도높게 개선하고자 여러분야에서 제도의 개선을 검토하고 TF를 구성하여 새로운 도약을 추진하였으나 전반기 인사에서 예상밖으로 조기 전역조치되었다.
- 본인의 육사 동기인 박정환, 1년 후배 안병석, 전동진이 대장으로 진급하였고, 임관 1년 후배인 ROTC 출신 신희현도 대장으로 진급하였다. 본인은 8군단장 시절 예하 부대에서 북한이탈주민 철책 훼손 귀순 사건을 겪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대장 진급에 실패했다. 다만 강창구 중장은 일단 직능이 인사였기 때문에 작전 출신 중장들끼리 대장 진급을 두고 경쟁하는 인사구조 특성상 애초에 대장 진급은 불가능에 가까웠다.[18] 게다가 애초에 육사 44기는 문재인이 버린 기수[19]라서 문재인 정부에서는 단 1명도 대장에 오르지 못했다가 합동참모차장으로 좌천된 후 끝까지 존버탄 끝에 정권이 윤석열 정부로 바뀔 때까지 버티는 데 성공한 박정환 혼자 대장에 올랐다. 결국 정책연구관 보직을 받고 전역하였다.
5. 관련 문서
[1] 석사 학위 논문: 분쟁지역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 결정요인 분석 : 걸프전, 코소보전과 이라크전 군사개입을 중심으로 (2004. 08.)[2] 현 인천광역시[3] 인사직능 대령 최고 요직이다. 재직 당시 평시 예비역의 현역 재임용제도 시행방안을 기획하였다.[4] 전임 이창효, 후임 김재석[5] 육군 장교 인사를 총괄하는 요직 중 요직이다. 권한이 막강한 만큼 대체로 육군참모총장의 측근이 보임한다고 알려져 있다.[6] 전임 정진경, 후임 여운태[7] 진급 당시 육본에서 '인사 직능이 오랜만에 중장으로 진급된 만큼 길을 막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다'라는 느낌의 발언을 하였다고 한다.[8] 취임 1년 후 북한이탈주민 철책 훼손 귀순 사건이 발생했다.[9] 전임 이창효, 후임 여운태[10] 전임 김정수, 후임 전성대[11] 이창효 중장도 아주 드물게 군단장 직위를 두 번 역임하였다. 수도군단장과 8군단장.[12] 최종 계급 대장, 최종 보직 합동참모의장[13] 최종 계급 대장, 최종 보직 제2작전사령관[14] 최종 계급 중장, 최종 보직 지상작전사령부 부사령관[15] 최종 계급 중장, 최종 보직 제8군단장[16] 이름은 ‘충용88꼬꼬’이며, 본근대 병사들이 인근 또래오래에서 치킨 만드는 법을 배워서 튀겨준다.[17] 이창효 중장은 전임 55사단장을 역임하고 촬영 당시에는 수도군단장이었으며 2019년 11월, 이창효 중장의 후임 8군단장으로도 강창구 중장이 취임하였다.[18]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시킬 때에는 군수, 인사 직능을 합쳐 기수 당 1명씩 올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강창구 중장은 같은 인사 직능인 육사 동기 한영훈 소장을 경쟁에서 이기고 올라온 것이다. 다만 전역은 더 먼저하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한영훈이 대한민국 국군 장성급 장교 최대의 한직인 육군보병학교장으로 좌천했기 때문에 한영훈이 더 오래 버틸 수 있었다. 병과학교장은 극한직인 대신 자기 임기 다 채울 수 있다.[19] 작전 직능에 육사 44기 선두주자인 강인순조차 대장은 커녕 중장조차 낙마했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ROTC출신인 남영신이 육군참모총장에 올랐다. 이 정도면 아예 대놓고 문재인이 육사 44기를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강인순의 병과가 기갑이라서 버림받았다기에는 같은 기갑인데도 그래도 중장에는 올라간 제갈용준의 사례가 있어서, 설령 강인순이 보병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평가가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