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7 21:50:49

박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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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41대 합동참모의장
박한기
朴漢基 | Park Han-ki
파일:합동참모의장 박한기.jpg
<colbgcolor=#801a24><colcolor=#ffffff> 출생 1960년 2월 25일 ([age(1960-02-25)]세)
충청남도 부여군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83년 ~ 2020년
재임기간 제42대 제2작전사령관
2017년 8월 10일 ~ 2018년 10월 4일
제41대 합동참모의장
2018년 10월 11일 ~ 2020년 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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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1A24><colcolor=#ffffff> 배우자 이충희
자녀 슬하 2녀
학력 대신고등학교 (졸업 / 27회)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 / 학사)
임관 학군사관 (21기)[1]
최종 계급 대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합동참모의장
통합방위본부장[2]
주요 보직 제2작전사령관
제8군단장
제53보병사단
제32보병사단 제99보병연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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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경력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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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군인. 최종계급은 대장이며, 최종보직 합동참모의장. 국군 역사상 6번째 학군사관 출신 대장[3]이며, 국군 역사상 2번째 학군사관 출신 합동참모의장[4]이다.

2. 생애

1960년 2월 25일생이며 충남 부여군 출신이다. 서울대신고등학교(27회)를 졸업하고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 79학번으로 입학했다. 1983년, 학군사관 21기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5]

소위 임관 후 육군 제3보병사단 제23연대 제3대대 제11중대 소대장으로 군생활을 시작했다. 중위로 진급하여 동대대 훈련 및 작전항공장교, 동대대 정보장교를 지냈다. 대위로 진급하여 제22보병사단 제56연대에서 1차, 2차 중대장을 모두 지냈다. 이후 동연대에서 작전항공장교와 작전장교를 지냈고, 보병학교로 자리를 옮겨 전술학처 중대공격교관을 지냈다.

소령으로 진급하여 제17보병사단 제101연대 정보과장과 작전과장을, 동사단 작전처 훈련계획통제장교를 지냈다. 중령진급 후 제17보병사단 제102보병연대 제1대대장과 동사단 교육훈련처 교육훈련참모를, 합참 전투준비태세검열실 검열계획담당관을 지냈다. 이후 합참 전비태세검열실 검열계획담당관, 제8군단 작전처 작전과장, 제23보병사단 작전참모를 지냈다. 대령 진급 후 (구)제102보병여단 참모장, 제8군단 교육훈련참모, 제32보병사단 제99보병연대장, 제9군단 교육훈련참모, 제2작전사령부 교육훈련처 부대훈련과장과 계획편성과장을 지냈다.

2009년 준장으로 진급하여 제22보병사단 작전부사단장, 제1군단 참모장, 제1야전군 관리처장, 학생군사교육단 교수부장을 지냈다. 2012년 5월, 소장 진급 후 제53보병사단장과 제2작전사령부 참모장을 지냈다. 2015년 10월, 중장으로 진급하여 제8군단장을 지냈다. 중장 2차 직위를 맡지 않고 1차 직위를 맡고 있던 2017년 8월, 대장으로 진급하여 육군 제2작전사령관이 되었다. 제2작전사령관으로 재임 중이던 2018년 9월, 합동참모의장으로 내정되었다.

2.1. 제2작전사령관


2017년 8월 10일 제42대 제2작전사령관으로 취임했다. 전임 사령관인 박찬주 육군 대장 부부 갑질 사건 을 반영한 탓인지 취임식을 간소하게 거행했다. 날짜도 박종진 제1야전군사령관김운용 제3야전군사령관보다 하루 먼저 취임했다. 이유는 전임 사령관인 박찬주가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되면서 경질 형태로 이임했기 때문이고 본인이 8군단장 부임이전 직전보직이 2작사 참모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취임식만 간소히 하고 이임식은 일체 없었다.

상술했듯이 2작사와 2작사 예하부대에서 다수의 보직을 역임하여 후방 지역방위부대 근무 경험이 풍부한 인물이다. 이 점에서 최근 물의를 빚고 경질된 전임 사령관의 공백을 수습하고, 2작사를 정상 궤도에 올릴 적임자로 평가된 듯.

전임 사령관이 불미스러운 일로 물러나서 그런지, 아니면 본인의 성향이 그런지 알 수 없지만 2작사 본부와 예하부대 모두에 군기 확립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다. 무사고 100일 작전을 실시하여 달성 부대의 전 장병에게 무사고 100일당 위로휴가 1일씩을 준다거나, 감사노트를 작성하여 1000개의 감사를 달성한 장병에게는 2박 3일의 휴가[6]를 주는 등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군기 강화로 인해 원래 활동복 차림으로 실시하던 점호를 다시 전투복 점호로 바꾸는 등 병사들 입장에서 귀찮아진 점도 많아졌다. 이는 2작사 본부와 예하부대 모두 마찬가지이다. 위의 군기 확립 차원에서 시행한 내용들은 다 8군단장 시절에도 예하부대에 강조했던 내용이었다. 합참의장으로도 예외가 아니어서 바로 이전의 두 합참의장이 손꼽히는 덕장이던 것과 대조적으로 좀 빡센 사람이라는 평가가 많다. 부임 초기에 상황보고체계 확립을 한 바 있는데, 의장이 직접 예하부대에 관련 단편명령에 대해 콜비짓(Call-visit)[7] 할 정도였다.

2.2. 합동참모의장

2018년 9월 17일, 신임 합동참모의장에 내정되었다. 합동참모의장이 되기 위해선 국회 국방위원회의 청문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전임자의 청문보고서가 통과되어야 비로소 본인의 청문 일정을 진행할 수 있다.

경력을 보면 알겠지만 다른 역대 합참의장과는 달리 합참을 비롯한 합동부대 근무 경험이 없다.[8] 주요 보직을 모두 육군에서 역임한 육군 야전통이라 합동 경력이 아예 없는데다 그렇다고 비육군 출신도 아니라서, 3군 전체에 대한 작전권을 책임지는 합참의장으로서는 적합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었으나, 지휘 역량보다 국방개혁 동력 유지를 위해 비육사 출신을 군 지도부에 중용한다는 정부의 정책 의지가 더 강조된 것으로 풀이된다.[9]

10월 10일,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었고 이튿 날에 정식 취임했다. 박 의장은 취임식에서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그래서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멈춰서는 안 되는 길이 될 것”이라며 “우리 군은 국가와 국민이 이 길을 안심하고 담대히 걸어갈 수 있도록 힘으로 든든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합참의장에 취임한 이후 '선승구전'(先勝求戰)[10]을 자주 강조하고 있다. 사실상 그의 지휘 철학이라고 할수 있을 듯.

2019년 6월 강원도 삼척항 목선 귀순 사건에서 군의 경계 실패와 해명 과정에서의 미숙 등을 들어서 남영신 지상작전사령관 등과 함께 경고 조치를 받았다. 군 경력의 대부분을 후방 지역 부대에서 역임한 입장에서, 후방에서의 경계 문제가 부각된 이번 사건은 그에게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이 되었다.

2019년 11월 어윤용 원사를 6대 합참주임원사로 임명했다.

자신보다 기수상 아래에 있는 서욱 육군참모총장이 2020년 8월 28일 국방부장관에 지명되었고,[11] 박한기 합참의장의 임기 역시 만 2년이 다 되어감에 따라 전역이 예상되었는데 8월 31일, 원인철 공군참모총장이 신임 합참의장으로 지명되었다.


2020년 9월 23일 합참의장 이.취임식 및 축하연을 마지막으로 전역하였다.

전역식 날 받은 훈장은 보국훈장 통일장으로 보국훈장 중 가장 격이 높은 훈장이다. 이는 예비역 대장에게만 주어진다.

3. 경력

4. 여담

  • 이전까지 동기생활관[13]을 사용하고 있던 2작사 예하부대들도 모두 건제단위 생활관(분대 생활관)으로 회귀시키고 사단별로 각각 정해지던 동기제도도 1개월 동기제로 통일시켰다. 또한 부대마다 다르지만 아침 점호 때 뜀걸음 바퀴수를 늘리거나, 뜀걸음을 하며 군가를 부르게 하거나 아침에 게양을 하면서 애국가를 크게 부르게 하는 등의 차이도 생겼다.
  • 2010년 이후로 진급한 대장 중 거의 드물게 이취임식이 아니라 취임식만 한 사람이다. 2작사 때는 위에 써있으니 넘어가고 합참의장은 전임 의장이 장관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공석인 상태로 취임식만 한 셈. 이후 남영신 대장, 안준석 대장도 취임식만 했다. 대신 이임 대장이 모두 행사 주관자(남영신은 서욱 장관, 안준석은 남영신 총장)이었다.
  • 후방지역에서 풍부한 경험이 있어 후방지역작전에 관한 분야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수정해나갔으며 특히, 2작전사 장병(장교,부사관,용사)들은 이분이 취임 후 '출동 MATRIX'라는 '상황 발생시 누가 부대에 잔류하고 있고 출동병력이 누가 있고 각 차량에 어느 인원이 타야 할지에 대한 것'을 정리해서 하루하루 최신화하는 등 다소 행정적인 요소들이 많이 생겨 불만들이 속출했다. 또한 이 매트릭스를 상급부대에서 제대로 시행하는지 불시점검도 진행하여 하루는 주말에 상황이 걸려 외출 외박자들을 모조리 복귀시키는 해프닝도 생겼다. 그러다보니 본질은 흐려지고 매일 기계같이 최신화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후 합참으로 간 이후엔 육군 전 부대가 위와 같이 하도록 지시했다. 이 중 제일 황당했던 일은 후방지역에도 도시 시가전 상황이 있을 수 있기에 소위 '길리슈트'를 폐위장막으로 각 부대에서 만드는 해괴한 일도 있어 많은 장병들의 고통의 목소리가 오고 갔다. 품질도 저질일 수밖에 없는 데다가, 쓸데 없는 FTX훈련을 찍어내다시피 하여 병사들의 혹사가 잇달아 발생했다. 어느 순간에 이르러(아마 인사이동이겠지만) 해당 작업은 누구도 시키지 않게 되었다.
  • 여담으로 이상의 前 합참의장과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제8군단장을 거쳐서 정권 교체 이후 대장으로 진급하였고, 전임 합참의장이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하면서, 그 후임으로 들어왔다. 또 차이점은 이상의는 합참 근무 경력이 없고 박한기는 합참 근무 경력이 적지만 합참의장 자리에 오른 것도 비슷하다.


[1] 서울시립대 '79학번[2] 통합방위란 적의 침투·도발이나 그 위협에 대하여 국군·예비군·민방위대 등의 각종 국가방위요소를 통합하고 지휘체계를 일원화하여 국가를 방위하는 것을 말하며(네이버 사전 인용), 통합방위본부장은 중앙통합방위위원회(국무총리가 수장) 소속으로 군사조언을 한다.[3] "국군 6번째"라고 쓰여있는데, "육군 6번째"이기도 하다. 육군의 주 병과인 보병/포병/기갑은 육사 출신만 맡는 게 아니기 때문에 비육사 출신도 이론상 대장진급이 가능하지만, 해군은 기술군 특성이 강해서 사관학교가 주 병과인 항해를 전담하기 때문에, 공군도 기술군인 데다 학군 출신이 조종 특기에도 들어가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나올 수 있지만 (사회에서 비행교육을 받고 임관하는 학군 출신들의 고등비행교육 통과율이 70 ~ 100%에 상당할 정도로 높고, 공사 출신은 50%대 안팎이다. 게다가 대령부터는 조종 + 공사 출신도 진급을 장담할 수 없다), 공사 출신과는 달리 학군 출신들은 대부분 민항 진출을 하기 때문에 (= 군에 남는 인원이 별로 없다), 그리고 육군 ROTC와는 달리 공군 ROTC는 항공대, 한서대와 교통대에서만 배출하여 인원이 적어서 학군사관 출신 대장은 절대로 나올 수가 없다. 또한 공군대장은 공군참모총장이 유일한데, 학군 출신들이 사관학교에 비해 1~2년 정도 진급이 더디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비행단장(준장), 사령관 (소장 ~ 중장) 정도까지는 가능할지 몰라도 참모총장은 파격적 인사를 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즉, "국군 n번째 학군출신 대장"은 사실상 "육군 n번째 학군출신 대장"과 같은 말이라고 봐도 좋다.[4] 첫 번째 학군 출신 합참의장은 김진호 육군 대장이다.[5] 육사 39기, 3사 20기와 임관동기다.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이 육사 39기, 황인권 제2작전사령관이 3사 20기다.[6] 원래는 4박 5일이었다.[7] 부대에 직접 전화를 걸어 점검하는 것[8] 원래 비육사는 합참, 연합사 등 합동부대 작전라인으로 가기 힘들다. 육사 이너서클이 강할 뿐더러 저런 곳에 근무하려면 기본적으로 영어 실력이나 교육 성적이 좋아야 하는데, 이런 부분도 따라가기 힘들다.(물론 이 역시 육사 출신들의 주장일 뿐 본질적으로는 육사가 요직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9] 박한기 장군은 경력이 저렇다 보니 합참의장 물망에 오르지도 않을 정도로 가능성 낮은 후보였고, 대부분은 육군참모총장 김용우 대장의 영전이 유력하다고 보았다. #1 #2 김용우 대장은 합참에서 민군작전부장, 신연합방위추진단장과 전략기획본부장 등 군사전략분야의 주요 직위를 역임했다.[10] 손자병법의 제4편인 '군형'(軍形)에서 유래한 내용으로, 원문은 "勝兵(승병) 先勝而後求戰(선승이후구전)"인 것을 4글자로 줄인 것이다. 쉽게 말해서 "이겨놓고 싸운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11] 서욱 육군참모총장은 육사 41기로 기수상 학군 23기인 남영신 지상작전사령관과 동기이다.[12] 육군 제2야전군사령부가 동년 동월 육군 제2작전사령부가 되었다. 그바람에 보직이 비게 되었다. 하지만 바로 부대훈련과장으로 영전했다.[13] 병영부조리를 없애겠다고 동기들끼리 생활관을 구성했지만 이렇게 해놓으니 동기들끼리 서로 치고박고 하는 일이 왕왕 발생하고 있다. 쉽게 말해 학교 같은 반을 떠올리면 된다. 하지만 병영 생활에서 휴식 개념이 도입되는 등 장점 또한 있는 정책이라 (그래서 대부분 병력이 부서별로 움직이고 출퇴근 개념이 확립된 공군에서는 꽤 오래전에 도입했음에도 잘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국방부에서도 상당히 고민이라는 듯... 그래서 전입 초기에는 계급별 생활관을 쓰다가 전입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분대생활관을 쓰는 등의 여러 방안을 일선부대들에서 고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