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03:58:08

나카무라 미나코 실종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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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 미나코 양을 찾는 전단지[1]
이름 나카무라 미나코 (中村三奈子)
출생 1979년 9월 18일 (생존 시 [age(1979-09-18)]세)
일본 니가타현 나가오카시
실종 1998년 4월 6일 (당시 18세)
가족 어머니 나카무라 쿠니 (1943년생), 언니
학력 나가오카고등학교 (졸업)
1. 개요2. 갑작스러운 행방불명3. 대한민국으로 입국?4. 사건의 의문점5. 사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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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8년 4월 6일에 발생한 일본미해결 실종사건. 실종자 나카무라 미나코가 대한민국에 입국했다는 정황이 드러나자 대한민국에서도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2. 갑작스러운 행방불명

나카무라 미나코는 니가타현 나가오카시에 살던 여학생이었다. 아버지는 미나코가 태어나기 전에 사망했고, 언니는 간사이 지방에 있는 대학에 다녔기 때문에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1998년 3월 나가오카고등학교를 졸업한 미나코는 국립대에 지원했지만 불합격, 재수를 위해 4월에 대학입시 학원에 다니기로 했다. 실종 당일 학원에 등록하러 갈 예정이었지만 학원에도 가지 않았고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미나코에게 입시학원 등록비로 주기로 한 돈 50만 엔 중에서 미나코가 3만 엔을 빌려간다고 남긴 메모를 찾아내었다. 메모에는 '3만 엔 빌려가요. 제 통장에서 인출해주세요.' 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미나코가 왜 학원에 가지 않았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미나코의 방 쓰레기통에서는 잘게 조각난 영수증이 발견되었는데, 하나하나 맞추어 보니 니가타 현청에서 증명사진을 찍은 뒤 받은 것이었다.

경찰이 수사에 들어가자 미나코가 실종되기 9일 전인 3월 25일에 여권을 신청했음이 밝혀졌다. 증명사진 영수증도 이때 발행된 것이었다. 여권은 실종 사흘 전인 4월 3일에 발급되었지만, 여행을 가려고 한 흔적도 없었고 가족들 또한 미나코가 여권을 발급받은 줄 전혀 몰랐다. 미나코가 살던 나가오카시에서도 여권발급이 가능했지만, 굳이 니가타시까지 가서 여권을 발급받은 이유는 니가타에 있는 현청에서 신청하면 더 빨리 발급받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사건 당일 미나코는 여행을 가려는 차림도 아니고 그저 평상복을 입고 집을 나섰으며 딱히 짐을 꾸리지도 않았다. 다만 평상시 외출할 때 타고 나가던 자전거는 집에 두고 나갔으므로 걸어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터였다.

3. 대한민국으로 입국?

그런데 엉뚱하게도 실종 다음날인 4월 7일 니가타 공항으로 출국해 서울로 향했다. 경찰이 추적해보니, 여권이 발급된 4월 3일 누군가 미나코의 이름으로 나가오카의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김포국제공항대한항공 KE764[2] 비행기 탑승권을 예매했다. 여행사 직원에 따르면, 자신을 나카무라 미나코라 밝힌, 목소리가 허스키하고 중년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서울행 탑승권 예매를 의뢰했다고 한다.

전화를 건 여자는 니가타 공항에서 항공권을 수령하겠다고 말하는 등 대한민국 여행을 자주 한 듯 익숙해 보였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왕복 항공권이 아닌 편도 항공권을 원했고 숙소 예약은 필요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자 문제 때문이었는지 복편인 4월 14일 KE763편 김포발 니가타행 티켓도 같이 구매하긴 했다. 항공편 요금은 48,000엔이었다. 문제는 일본에 돌아가는 항공편 탑승기록이 없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 KE763편 그 어디에서도 나카무라 미나코의 흔적은 없었다.

니가타 공항의 직원도 '나카무라 미나코'라는 이름을 기억했다. 그런데 미나코의 이름으로 항공권을 받아간 사람은 실종된 미나코의 인상착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화려한 블라우스를 입은 중년의 여성이 나카무라 미나코의 이름을 대면서 탑승권을 수령했다고 한다. 미나코의 이름을 댄 여자는 표를 챙겨 비행기에 오른 후 서울로 갔지만 서울에 도착한 뒤 행방은 오리무중에 빠졌다.

4. 사건의 의문점

가족들에 따르면 미나코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혼자서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실행하리라곤 상상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입시공부의 중압감과 스트레스 때문에 가출했다고 하자니 외국여행을 고작 몇만 엔에, 그것도 짐도 거의 없이 간다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가족들은 "입시학원 등록비 중에서 3만 엔을 들고 갔고 여러 가지로 생각해서 (갖고 있던 용돈 등을 포함해서) 미나코가 소지한 돈은 많아 봐야 5~8만 엔 정도였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게다가 여행사 직원과 공항 직원에게 목격된 여성이 과연 나카무라 미나코인지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그녀가 해외여행 경험이 전혀 없다는 가족들의 한결같은 증언과는 달리 여행사 직원과 공항 직원이 본 사람의 인상은 여행을 여러 번 해봐서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나카무라 미나코의 이름을 내세워서 대한민국행 비행기 탑승권을 사고 대한민국에 갔거나, 미나코를 누군가가 대한민국으로 데려갔을 개연성도 충분히 있어 보인다.

납북 일본인 문제 해결을 주장하는 단체인 "특정 실종자 문제조사회"측은 이 사건이 납북 사건일 개연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만약 북한이 납치했다면 왜 굳이 북한과 가까운 중국 베이징이나 다롄이 아닌 DMZ로 엄격하게 분단되어 있는 대한민국 서울에 입국했느냐는 점이 의문스럽다. 실제로 1990년대 중반에 일어난 한국인 납북 사건은 대체로 중국 동북 3성 지역에서 일어났다. 일본인을 굳이 서울까지 데려가서 거기서 다시 북한으로 끌고 갔다고 하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북한의 공작원이 대한민국 입국을 위한 일본인 위장 신분을 얻기 위해 미나코에게 접근해서 대한민국 여행을 미끼로 꼬드려서 사건 당일 납치해 북한으로 끌고 갔고, 목소리가 허스키하다는 중년 여자(아마도 북한 공작원)가 미나코로 행세하여 서울에 입국하여 공작활동을 한 게 아니냐고 추정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1998년이란 시점은 일본 정부납북 일본인 문제를 공식 제기한 1991년보다 이후라서 과연 북한 공작원이 대담하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겠느냐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실종된 나카무라 미나코는 1978년생으로 당시 만 18세였는데, 생년월일이 떡하니 써있는 여권으로 중년 여성 공작원이 대한민국 입국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모험으로, 설령 허술한 심사로 대한민국 입국에 성공한다고 치더라도 굳이 이런 위험까지 감수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3]

여하튼 미나코 실종사건에 어떤 제3자가 개입했음은 분명하다. 당시 대한민국행 편도 티켓만 4만 엔이 넘었다. 니가타 공항까지 가는 교통편까지 고려하면 미나코가 소지했을 5~8만 엔으로는 왕복 비행기표를 결재하기도 빠듯했다. 그러나 과연 무슨 목적으로 미나코에게 접근해 대한민국, 또는 다른 곳으로 납치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사건의 경위를 살피면 살필수록 알 수 있듯, 여러 부분들이 상당히 미심쩍다. 출국의 계기, 당사자의 출국 여부, 여권을 니가타시에서 발급받은 이유[4] 등등을 제외하고 생각해도 그렇다. 심지어는 다른 탑승객의 목격담[5]에 따르면 '나카무라 미나코'를 자칭하며 여행사에 방문하고 해당 항공편에 탑승한 여자가 공항에서 할머니쯤 되어 보이는 여자에게 끌려가는 듯한 장면을 보았다고 한다. 또한 미나코의 어머니가 직접 나카무라 미나코의 이름으로 작성된 출입국 카드 기록을 보았더니 미나코 본인의 필체인 듯했다고 한다.[6]

출입국 카드의 입국 후 체류장소 항목에는 물결표(~)만 적혔는데, 항공사에 의하면 경유편을 탑승했을 때의 기재법이라고 한다. 블라우스의 여성이 여행에 능숙해보였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티켓도 경유편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 이후 나카무라 미나코는 어떤 비행기에도 탑승 기록이 없다. 납북 사건이라면 굳이 대한민국을 목적지로 할 이유가 없다는 점, 혹여 북한 공작원 등이 신분을 탈취했다면 굳이 본인을 꼬여낼 필요가 없었다는 점[7] 등이 여전히 의문스럽다. 그렇다고 단순 가출이라기엔 블라우스의 여성의 인상착의나 특징(허스키한 목소리, 여행에 능숙)이 나카무라 미나코와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해명하기 어렵다. 사건 발생 전날까지도 어머니의 일을 돕고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등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고 한다.

5. 사건 이후

미나코의 어머니 나카무라 쿠니(1943년생)[8]는 지금도 딸의 행방을 찾아 대한민국을 찾느라 대한민국 언론에 종종 보도되기도 한다. 한국 간 딸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동아일보) 2012년까지 15년 동안 12번이나 찾았다고 한다. 대한민국 경찰청일본의 협조요청을 받고 미나코의 행방에 대해 수사했으나 서울에 입국했다는 출입국 기록만을 확인했을 뿐 특별한 다른 증거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어머니는 실종 21년째인 2019년 2월 23일 KBS1 노래가 좋아에 출연하여 미나코를 찾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명동에서 미나코의 전단지를 손수 배포하기도 했다.

납북이 의심되는 실종자를 찾기 위한 일본 민간 단체인 '특정실종자문제조사회(特定失踪者問題調査会)'는 2003년 나카무라 미나코 역시 북한에 납치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특정실종자'로 분류했다. #

[1]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몇 년 동안 게시되었던 전단지이며, 아직까지 주한일본대사관 안에 게시되어 있다.[2] 현재 KE764와 KE763 항공편은 니가타와 인천 사이를 운항한다. 1998년 당시는 인천국제공항 개항 전이었다. 기재는 A300 항공기를 투입했다.[3] 물론 사건 당시는 전자여권이 도입되기 한참 이전으로 아직까지 사진부착식 여권이 사용되었으므로 기재 내용의 조작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했다. 하지만 이미 돌아다니던 장물을 구하거나 이미 발급된 일본 여권을 입수하면 되었을 것을 왜 굳이 미나코까지 끌여들어서 급하게 신규발급을 시켰는가는 설명되지 않는다.[4] 거주지 발급보다는 일주일 정도 더 빨리 발급을 받을 수는 있었다고 하지만, 역시 왜 그렇게 빨리 발급받아야 했는지는 알 수 없다.[5] 입고 있던 블라우스가 화려해서 기억에 남았다고 하는데, 납북설의 설득력도 낮아지는 부분이다. 공작원이 누구나 언급할 만큼 눈에 띄는 옷을 입을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여행사에서 비행기표를 수령한 여자가 '나카무라 미나코'의 이름으로 비행기에 탑승했다는 점이다.[6] 단, 전문가의 감정이 아닌 어머니 개인의 의견이다.[7] 나카무라 미나코의 여권 정도만 있었어도 무리가 없었을 것이고, 일본에서 활동하던 신분도 있었을 것이다.[8] 미나코의 아버지는 미나코가 어렸을 때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