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11:55:31

주한 일본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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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주한일본대사관.jpg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A동
업무 시간 월~금요일: 오전 9:30~11:30,
오후 1:30~5:00
상급기관 일본 외무성
공관장 미즈시마 코이치(水嶋 光一)
전화 02-2170-5200
누리집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역사
2.1. 연혁
3. 대사관
3.1. 영사관 및 기타 부속시설3.2. 조직 구성
4. 특명전권대사
4.1. 역대 대사4.2. 방위주재관
5. 사건/사고
5.1. 피습 사건들5.2. 주제주 총영사관 수석영사 부인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5.3. 주한일본대사관 소속 무관 군사 기밀 수집 사건5.4. 주한 일본 공사 한국 대통령 비하 발언 논란
6. 역할
6.1. 문제점
7. 대중 매체8. 기타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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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대한민국 일본국 대사관은 일본대한민국에 설치한 외교공관이다. 보통 간단히 '주한 일본 대사관'이라 불린다.

2. 역사

1876년 강화도 조약에 의해 조선과 일본 제국의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임오군란 당시에는 조선군이 쳐들어오면서 공사관 인원들이 도주하는 사건도 있었고 공사관 소속의 무관이 살해당하는 일도 있었다. 을사조약 이후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면서 공사관은 사라졌다. 그 후 1945년에 조선이 독립하고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는데 반일감정 때문에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것은 어려웠다. 대신 대표부 정도만을 설치했다.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면서 외교관계가 복원되었다. 당시 주서울재외사무소의 참사관인 마에다 토시카즈(前田利一)[1]가 주서울재외사무소장으로 승진하여 임시대리 대사 역할을 수행했다. 1966년 3월에 키무라 시로시치(木村四郞七)가 정식 주한 일본대사로 취임했다.

2.1. 연혁

  • 1965년: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됨에 따라 '주서울재외사무소' 가 현 위치에 설치되어 대사관 업무를 시작함.
  • 1966년: 부산에 영사관 설치 및 '영사관'을 '총영사관'으로 승격.
  • 1997년: 제주도(현 제주특별자치도)에 총영사관 설치.
  • 2015년: 지하 3층, 지상 6층으로 대사관 재건축이 계획되어 부지 바로 뒷편의 트윈트리 타워로 이전함. 이후 대사관 신축 건이 백지화됨으로 인해 현상 유지.

3. 대사관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PYH2015011800930001300_P2.jpg
재건축을 위해 철거하기 전의 대사관. 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구 대사관 건물은 1970년 완공되었는데, 노후하고 협소하다는 이유로 증축을 꾸준히 요구했으나 서울 도심의 경우 문화재 100미터 안에는 높이 14m가 넘는 건물은 들어올 수가 없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그동안 문화재청이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일본대사관은 경복궁에서 약 90m 정도 떨어져 있었다.[3]
파일:external/pds.skyedaily.com/145129851598DJlfTzZ5rcTEzdQsEt.jpg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가 우여곡절 끝에 허가가 나왔으며 2015년 재건축에 들어갔다. 지상 6층 건물로 지어지며 완공까지 4~5년을 목표로 공사를 시작했다. 대사관 임시 이전을 계기로 근처 이마빌딩에 있던 영사부도 같이 이전했다.

파일:external/www.kr.emb-japan.go.jp/news_20150619.jpg
파일:external/thumb.mt.co.kr/2015072216168299636_1.jpg

재건축 기간 동안 세들어 사는 트윈트리 타워에 걸린 일장기.[4]

철거 전의 대사관 건물이 다른 주한 대사관들과 비하여 특이했던 점은 대사관 담장이나 건물 외부에 대사관임을 나타내는 명판이나 국장 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 등 시위가 자주 일어나다보니 도중에 훼손될 가능성을 우려하여 설치하지 않은 듯(혹은 설치를 해도 대사관 담장 밖에서 보이지 않게 해 놓은 듯) 하다.[5] 그러나 건물 자체를 경찰들이 대놓고 순찰 방비하고 있고, 건물 층별안내도에도 관련 안내가 적혀 있어서 꽁꽁 숨겨져 있는 정도는 아니다. 또한 대사관 본관보다 시위가 덜한 대사관저/영사관저나 지방 소재의 총영사관에는 대사관/총영사관 명판과 일본 국장을 별 문제없이 붙여놓고 있다.[6]

그런데 건축허가 이후 위안부 문제 등으로 한일관계가 급속히 얼어붙고 외무성에서 예산 배정을 보류하면서 4년간 현장이 방치되다시피 했다. 결국 기한 내에 건축을 하지 않아 2019년 4월 10일자로 건축허가가 취소되며 세들어 사는 트윈트리 타워에 그대로 살게 되었다. 건설을 제대로 추진하지 않고 방치한 이유에 대해선 몇몇 추측들이 있지만 대사관 직원들 이야기에 의하면 업무 공간이 쾌적하고 전망도 좋은데다 건물 앞 인도가 협소하여 시위 공간으로 부적합해서 경비 측면에서도 유리하기 때문인지 그냥 눌러살기로 한듯 싶다. 비슷한 예로 예전 대우그룹 사옥이었던 서울스퀘어에서 세들어 살고 있는 주한독일대사관, 주한에스토니아대사관, 주한유럽연합대표부 등이 있다.

3.1. 영사관 및 기타 부속시설

일본과 가까운 지역인 부산광역시 동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각각 총영사관을 두고 있다.[7] 사실 일본 내의 한국 영사관에 비하면 숫자가 적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본인들의 방문이 잦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일본인이나 제일교포 입장에서는 꽤 편리하다는 모양. 특히 부산총영사관의 경우 타국의 대사관에 준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업무도 많다고 한다.[8]
  • 주제주일본국총영사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1100로 3351, 9층 (노형동, 세기빌딩)
    • 영사업무 관할: 제주특별자치도 전역

3.2. 조직 구성

  • 대사: 미즈시마 고이치
  • 부대사 겸 총괄공사: 미바에 타이스케
  • 정치공사:
  • 경제공사: 나미오카 다이스케
  • 문화공사:
  • 방위주재관:

2024년 7월 26일 기준.

4. 특명전권대사

한일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해 파견된 주한대사들 가운데 외교부한테 불려가는 일이 가장 많은 대사이다.

주한일본대사는 일본 외무성에서 순위권에 꼽히는 요직이다. 한국의 국력과 위상 덕분에 주한대사 자체가 어느 나라 직업외교관들에게나 중요한 포스트로 꼽히기도 하지만, 한일관계의 정치적 민감성과 특수성으로 인해 일본 외무성의 주무국으로 간주되는 아시아대양주국(アジア大洋州局)에서도 한국의 비중은 상당히 높은 편이므로[10] 일본 직업외교관에게 주한일본대사는 (주미/주중일본대사만큼은 아니더라도) 요직일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한국어에 능통하고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소위 코리안 스쿨(コリアンスクール)로 분류되는 일본 외교관들에게 주한일본대사 자리는 외교관 커리어의 정점 혹은 그에 버금가는 자리로 간주된다.[11]

게다가 2010년대 이후로는 주한일본대사를 1차 혹은 2차 대사 보직으로 역임한 외교관들이 더 중요한 자리로 영전하는 경향도 관찰된다. 벳쇼 코로 18대 주한일본대사는 한국에서 임기를 마친 이후 2016년 주UN일본대사로 임명되었으며, 나가미네 야스마사 19대 주한일본대사는 주영일본대사를 거쳐 외교관 몫의 일본 최고재판소 재판관 자리까지 올랐다. 그 후임인 도미타 고지 20대 주한일본대사도 이후 주미일본대사로 영전했다. 주한일본대사관에서 근무한 직원들 또한 이후 외무성 내 주요 보직을 맡는 등, 주한일본대사관 근무경력은 일본 외무성 직원들의 커리어패스에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한일관계에 따른 외교 마찰이 잦고, 위에 쓰여 있듯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대사고 총괄공사고 외교부에 불려가는 경우가 많아서 그만큼 업무강도는 상당히 강하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역시 마찰을 빚고 있는 주중일본대사관보다도 더 힘들다고 할 정도. 보통 요직은 커리어 관리 및 진급, 출세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선호도가 높고 경쟁률이 치열하다는 것이 일반적임을 감안하면, 주한일본대사 자리는 그야말로 한일관계의 특수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직위이다.[12]

현임 미즈시마 고이치 대사는 주이스라엘일본대사를 거쳐, 2024년 5월 17일부터 주한일본대사로 재직 중이다.[13]

4.1. 역대 대사

역대 특명전권대사
  • 임시대리대사(공사) 마에다 토시카즈(前田利一) [14]
  • 임시대리대사(참사관) 요시다 켄조(吉田健三)
  • 1대 키무라 시로시치(木村四郞七)
  • 2대 카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15]
  • 3대 우시로쿠 토라오(後宮虎郞)
  • 4대 니시야마 아키라(西山昭)
  • 5대 스노베 료조(須之部量三)
  • 6대 마에다 토시카즈(前田利一)
  • 7대 미카나기 키요히사(御巫清直)
  • 8대 야나이 신이치(梁井新一)
  • 9대 야나기 켄이치(柳健一)
  • 10대 고토 토시오(後藤利雄)
  • 11대 야마시타 신타로(山下新太郞)
  • 12대 오구라 카즈오(小倉和夫)
  • 13대 테라다 테루즈케(寺田輝介)
  • 14대 타카노 토시유키(高野紀元)[16]
  • 15대 오시마 쇼타로(大島正太郎)
  • 16대 시게이에 토시노리(重家俊範)
  • 17대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 18대 벳쇼 코로(別所浩郎)
  • 19대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17]
  • 20대 도미타 고지(富田浩司)[18]
  • 21대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 22대 미즈시마 고이치(水嶋光一)

4.2. 방위주재관

일본은 일본국 헌법 9조에 따라 군대를 보유할 수 없기 때문에 국방무관이라는 명칭 대신 방위주재관(防衛駐在官)이라 부른다.

한때 야마노 마사시(山野正志) 1등공좌(공군 대령)가 재직했었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표기한 방위백서 한국어판을 배포하자 국방부에서 야마노를 초치해 항의하기도 했다. 야마노 외에도 고토 노부히사(後藤信久) 1등육좌(육군 대령), 쿠로다 마사히코(黒田全彦) 1등해좌(해군 대령)도 무관으로 근무 중인데 야마노가 최선임인 모양. 출처

2019년 기준으로 와타나베 타츠야(渡邉 達也) 1등해좌와 나가시마 토오루(永島透) 1등육좌가 재직 중이다.

5. 사건/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5.1. 피습 사건들

타 국가의 대사 및 대사관에 비해 습격 사건이 상대적으로 자주 일어나고 있다.[19]

2010년 7월 7일에는 당시 주한일본대사였던 시게이에 토시노리(重家俊範)대사가 서울프레스센터에서 강연을 하는데 독도 관련 단체 회원이 콘크리트 덩어리를 던지는 일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통역을 담당하던 대사관 직원 호리에 마유미가 손에 부상을 입었다. 해당 회원은 2015년에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을 일으켰다.

2012년 1월에는 자신의 외조모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한국인임을 주장하는 한 중국인이 대사관에 화염병을 투척하기도 했다. 해당 인물은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7월 9일에는 일본 극우세력의 평화의 소녀상 말뚝 테러에 항의하려는 목적으로 한 시민이 대사관 경내에 트럭을 이끌고 돌진하려다가 체포되었다.

2015년 12월 31일에는 김샘[20] 외 29명의 평화나비 네트워크 소속 대학생들이 한일 위안부 합의에 항의하는 불법시위를 하면서 일본대사관 내부로 무단침입을 시도하다가 경찰에 연행되었다. 이들 중 김샘과 나머지 2명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공동주거침입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결국 대법원에서 벌금형이 확정되었다. 김씨는 벌금 200만원, 같이 기소된 2명은 각각 벌금 50만원과 30만원을 선고받았다. #[21] 이후 일본 입국 금지 여부가 적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한일 무역 분쟁 이후에는 사건사고가 더 심해졌다. 2019년 7월 19일에는 한 70대 남성이 대사관 앞에서 분신을 시도했다. # 20일에는 민노총 등 좌파성향 시민단체들이 집회를 열었다. # 결국 22일에는 대사관이 우리 외교부 측에 공관 경비 강화를 요청했다. # 같은 날에는 대사관 산하의 부산 주재 일본 총영사관에 민족주의 성향 단체에서 활동하는 대학생 6명이 무단침입, 공관 내에서 반일 시위를 벌이려다가 한국 경찰에 의해 연행되었다. 8월 8일에도 어떤 남자가 고추장물을 던지는 사건이 있었다. #

5.2. 주제주 총영사관 수석영사 부인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

관련 홈페이지

2019년 7월 15일, 일본 총영사관 소속 관계자 부인이 음주운전 뺑소니를 일으키며 논란을 일으킨 가운데,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되었다. 제주 서부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사고후미조치) 혐의로 주 제주 일본국 총영사관 수석영사의 배우자 A(48)씨가 입건됐으며 최근에 기소의견으로 불구속 송치했다고 15일 밝혔다.

경찰은 A씨가 지난 5월27일 오후 6시께 제주시 연동 한라수목원 인근 도로에서 앞서 가던 차량과 충돌한 후 차에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500m 가량 도주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사고를 내고 도주하던 그는 곧바로 추격에 나선 피해 차량 운전자에게 현장에서 붙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했으며, 그 결과 A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25%로 운전면허 취소 수준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당시 차량은 영사관 소유였던 것으로 알려져 비난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특히 A씨는 경찰관이 음주측정을 요구하자 약 40분 동안 차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원성을 샀으며, 그 후 이어진 경찰 조사에서는 관련 혐의를 모두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5.3. 주한일본대사관 소속 무관 군사 기밀 수집 사건

자위대 소속 영관급 국방무관두명이 전직 국군정보사령부 직원으로부터 군사 기밀을 수집한 것으로 밝혀져서 한명은 외교적 기피 인물로 추방당하였고, 다른 한명은 귀국 조치를 받았다. 기사 원본

5.4. 주한 일본 공사 한국 대통령 비하 발언 논란

2021년 7월 15일, 주한일본 총괄공사 소마 히로히사(相馬弘尚)가 한국 언론 JTBC 소속 박소연 기자와의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있다"[22]라는 성적 표현을 사용해 모욕한 사건이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주한 일본 공사 한국 대통령 비하 발언 논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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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6. 역할

외교 공관이므로 당연히 일본국적이 아닌 자가 일본의 사증을 취득하거나, 일본인들이 일본 여권 발급 등을 보려고 할 때 방문하게 되며, 재외선거를 할 때도 방문하게 된다.

해외자녀교육진흥재단 측에서 일본인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교과서를 배부하는 곳이기도 하다. #

2005년 3월 1일 이후부터 한국국적자가 단기체재사증 취득을 위해 방문할 일이 없다. 그러나 일본에 사증 없이 입국하지 못하는 한국체류 외국인이 일본 단기체재 사증 취득 혹은 국적 불문하고 취업이나 유학 등의 중장기 재류사증 취득을 위해서는 방문해야 한다.[23]

한국국적자가 사증신청시, 본인확인서류로 주민등록증[24] 혹은 등본/초본 중 하나가 필요하니 주의. 운전면허증은 인정이 안된다.

6.1. 문제점

일본/사회/문제점에서도 알 수 있듯, 데이터 전산화 및 디지털화에 대해 혁신의 속도가 매우 느리고 각 관청과의 소통이 불량하다.

특히,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울산광역시, 경상남도, 경상북도 전역을 담당하는 주부산일본국총영사관의 경우 일본의 사증을 취득하는 경우 취급하는 문서의 종류가 다르며, 네이버검색 엔진에 관련 내용을 검색하는 경우 주부산일본국총영사관 홈페이지가 아닌 주한일본대사관으로 리다이렉트되므로 이용자들의 불편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25] 주부산일본국총영사관에서 요구하는 경상도 소속 민원인 서류 영남 내 사증 대행 기관

또한, 이미 일본 외무성문부과학성이 처리하여 대행사를 방문하지 않고 영사관을 통해 신청이 가능한 경우에도 무조건 대행사를 거쳐 사증을 발급하도록 안내하는 경우가 있으니 자신의 상황을 잘 파악하여 원칙대로 처리하여야 한다.[26]

7. 대중 매체

게임 웬즈데이는 1992년이 배경인데 위안부 할머니가 1인 시위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8. 기타

구 일본대사관 앞은 평화의 소녀상이 처음 설치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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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마다 구 일본대사관 부지 앞에서 수요집회도 열린다.[27] 상술한 바와 같이 대사관은 이전하였으나, 수요집회는 장소를 옮기지 않고 그대로 구 대사관 앞에서 열린다.

9. 관련 문서



[1] 1984~1991년 주한 일본대사 역임. 경성제국대학 졸업생으로 인천에서 태어난 일본인이다.[2] 남산 근처.[3] 당시에는 경복궁 뒤편에 청와대와 총리공관이 위치해 있었고, 경복궁 태원전 자리에는 95년 이전까지 청와대와 서울 도심을 방어하는 30경비단까지 주둔하고 있었으므로 허가를 내줄 경우 대통령 관저와 총리공관, 수도권 핵심 군부대가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4] 맨 오른쪽은 요르단 국기이며, 트윈트리 타워 B동에 주한 요르단 대사관이 입주해있다. 현재는 주한 멕시코 대사관도 B동에 입주하여 가운데 깃대에는 태극기 대신 멕시코 국기를 게양하였다.[5] 상대적으로 시위가 적었던 1990년대 초반까지는 대사관 명판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이후 수요집회 등의 시위가 많아지면서 없앤 듯하다. 그보다 훨씬 전인 1974년에 광복회 회원들에 의해 대사관 명판이 한 번 훼손된 적이 있기는 했다.[6] 이는 한국처럼 공관 앞에서 반일시위가 자주 일어나던 중국 주재 일본대사관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2013년 신축된 주중일본대사관에는 외부에 국장을 별 문제없이 붙였다.[7] 우리나라도 일본 내에 대사관을 제외하고 후쿠오카, 오사카, 삿포로 등 주요도시에 총영사관을 설치하고 있고 외교관 뿐만 아니라 경제협력관, 치안담당관(경찰주재관) 등을 파견하여 재일한국인을 지원하고 있다.[8] 이때문에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 등으로 외교부가 제대로 빡이 쳐버리면 대사와 함께 부산총영사까지 세트로 묶여서 끌려오는 경우도 많다(...)[9] 해당 지역 거주자들은 부산의 영사관에서 사증신청을 해야하므로 주의할 것.[10] 북미국장이 출세 0순위 자리인 한국 외교부와 달리 일본 외무성은 아시아대양주국장이 항상 유력한 차기 사무차관 후보가 되며, 한국을 담당하는 북동아시아1과는 아시아대양주국 내에서도 주요 과에 해당한다. 여기에 북한 담당 북동아시아2과까지 고려하면, 주한일본대사의 역할은 더 커진다.[11] 외무성 본부에서 한국을 담당하는 북동아시아1과장도 일본 외무성의 코리안 스쿨에게는 상징적인 보직이며, 마찬가지로 한국의 일본통 외교관(이른바 재팬 스쿨)들에게도 본부에서 일본을 담당하는 아태1과장과 아시아태평양국장은 반드시 거쳐가고 싶은 요직이다.[12] 마찬가지로 주일한국대사직도 한국 외교부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요직 중의 요직이고 근무 난이도가 헬인 것도 동일하다.[13] 공교롭게도 전임 아이보시 고이치 대사 역시 이스라엘에서 1차 대사 보직을 거쳐 한국에 2차 대사로 부임했다.[14] 1921~2002. 인천광역시 출신 히키아게샤로, 경성제국대학 을 졸업하였으며 오랜 한국 생활로 인해 기본적인 한국어 의사소통이 가능했다.[15] 특이하게 무덤이 일본이 아닌 한국에 있다.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에 있는 하늘묘원의 천주교 묘지 내에 있다.[16] 불멸의 이순신 게임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하나이다. 2003년~2005년 7월 재임.[17] 주한일본대사에 이어 주영일본대사까지 지내고 퇴직한 후, 외교관 몫의 일본 최고재판소 재판관으로 부임했다.[18] 2019년 10월 15일에 임명된 인물로 과거 주한 일본 공사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여담으로 토미타의 아내는 미시마 유키오의 장녀인 노리코이다.[19] 특히 극좌, 극우 성향의 한국인에게.[20] 나무위키에 등재된 프로게이머 김샘과는 동명이인이다. 이석기한상균 석방 집회에도 참여한 바 있다.[21] 엄연히 불법시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겨레 등 좌파언론은 김샘을 옹호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22] 한국 대통령 혼자 일본 정부를 상대로 신경전을 벌인다는 것을, 마스터베이션(자위한다)이라는 표현을 쓰며 발언했다.[23] 원칙적으로 재류자격인정증명서가 필요하지만, 재류자격인정증명서가 교부되었을 때 해당 외국인이 단기체재로 일본국내에 있다면 일본국의 입관에서 재류자격인정증명서를 첨부하는 형식으로 재류자격변경신청이 가능.[24] 주민등록증 발급신청 확인서 원본제출도 가능. 만약 비자신청을 위해 제출해버렸다면 주민센터에 가서 일본대사관에 제출했다는 것을 설명한 다음에 재발급 받자.[25] 경상도 민원인이 주한일본대사관 하단에 위치한 '영사업무에 관한 문의' 이메일에 문의를 할 시 주부산일본국총영사관 측에서 왜 대사관에 문의하였는지 캐묻는 경우가 있다.[26] 원칙대로 처리하는 경우 일부 영사관 인원이 왜왔냐며 면박을 주는 경우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27] 고베 대지진도호쿠 대지진 당시에는 각각 1주씩 휴회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