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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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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창단과 격동기2.2. 빌 벨리칙의 부임2.3. 톰 브래디 & 빌 벨리칙의 시대
2.3.1. 톰 브래디의 입단과 '패트리어츠 왕조'의 시작2.3.2. 2000년대 중후반 ~ 2010년대 초반2.3.3. 2013 시즌2.3.4. 2014 시즌2.3.5. 2015 시즌2.3.6. 2016 시즌2.3.7. 2017 시즌2.3.8. 2018 시즌2.3.9. 2019 시즌
2.4. 왕조의 마침표, 포스트 톰 브래디 시대2.5. 빌 벨리칙과의 이별,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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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FL의 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역사를 정리한 문서.

2. 역사

2.1. 창단과 격동기

1959년 사업가 빌리 설리반(1915~1998)의 주도로 보스턴 패트리어츠를 창단했으며, 이듬해 AFL 창립 시 합류했다. 창단 초기에는 독자 홈구장을 구하지 못해 니커슨 필드, 펜웨이 파크', 앨럼나이 파크[1], 하버드 파크[2] 등을 전전했으나, 보스턴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1961년 전 보스턴 칼리지 감독 마이크 홀로박을 감독으로 맞아들여 1963년에 처음으로 플옵 진출을 달성해 결승전까지 갔으나, 샌디에이고 차저스에게 51-10으로 졌다. 다만 그 이후 1975 시즌까지 플레이오프 진출에 연속으로 실패해 밑바닥을 찍었다.

1970년 AFL이 NFL과 통합되면서 패트리어츠는 AFC 동부지구로 편입됨과 동시에 보스턴 외곽지역의 위성도시인 폭스버러에 홈구장을 새로 지어서 그 곳으로 이주했다. 이때부터 현 명칭으로 바꾸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뉴잉글랜드는 미국 독립 13주 중 북쪽지역에 속한 매사추세츠주, 코네티컷주, 로드아일랜드주, 버몬트주, 메인주, 뉴햄프셔주 6개 주를 통칭하는 별명이다.

1973년, 오클라호마 대학교 전 감독 척 페어뱅크스가 감독직에 부임해 1라운드 4번 픽으로 뽑힌 역사상 최고의 오펜시브 가드 중 하나로 평가받는 '호그(멧돼지)' 존 해나(앨라배마대)를 앞세워 1976 시즌에 플레이오프에 다시 진출했고, 1978 시즌에 첫 지구 우승도 달성했으며, 1985년 슈퍼볼에도 진출했지만 시카고 베어스에게 46-10으로 패했고, 1986 시즌 때는 지구 우승을 달성했으나 1라운드에서 덴버 브롱코스에게 22-17로 졌으며 1993 시즌까지 7시즌 연속으로 플옵에 못 갔다. 그 사이 팀 내부적으로는 좋은 것보다 안 좋은 쪽이 더 알려졌는데, 1983년 드래프트 때 15번 픽으로 뽑힌 토니 이즌은 댄 마리노 등 드래프트 동기들과 달리 평범했으며, 1984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뽑힌 어빙 프라이어는 AFC 컨퍼런스 파이널 며칠 전에 그에게 가정폭력을 당한 아내의 부엌칼에 손을 심하게 베인 게 세간에 폭로돼 논란이 됐고, 1986년에는 프라이어와 토니 콜린스, 스티븐 스탈링, 케네스 심즈, 로널드 제임스, 레이몬드 클레이본 등 6명이 마리화나를 피운 게 발각되어 물의를 빚었다.

1988년 빅터 키암, 1992년 제임스 오스와인에게 각각 소유권이 넘어갔고, 특히 오스와인 구단주는 팀을 자신의 고향 세인트루이스로 이전시키려다 무산됐다. 다른 한편 1993년에 야인이던 '빅 튜나' 빌 파셀스 前 뉴욕 자이언츠 감독을 삼고초려 끝에 영입하고 빨강과 파랑밖에 없던 팀 컬러에 은색을 추가시켜 새 전환기를 맞았다. 그러던 중 1994년 포장업체 '더 크래프트 그룹'의 사주 로버트 크래프트는 오스와인에게서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인수하였고, 팀의 재정은 더욱 부유해진다. 한편, 팀의 전권을 부여받은 빌 파셀스는 부임 첫 해 드래프트에서 워싱턴 주립대학교 출신 쿼터백 드류 블레드소를 1번으로 뽑은 뒤 1995년에는 피츠버그대 출신 러닝백 커티스 마틴을 전체 74번으로 영입하는 등 선수진을 새로 짰고, 1996 시즌에는 슈퍼볼 31에 진출했다.

그러나 슈퍼볼에선 브렛 파브가 이끄는 그린베이 패커스와 맞붙었다가 패커스의 데스먼드 하워드[3]의 99야드 킥리턴 터치다운 한 방을 맞고 결국 35-21로 졌다.

2.2. 빌 벨리칙의 부임

빌 파셀스 감독이 1997년 뉴욕 제츠로 떠난 후, 전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DC 피트 캐롤이 감독직에 부임하였다. 1997년, 1998년 모두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1999년 8승 8패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였지만, 1999년 팀 내부 간의 분열이 가속화되면서 시즌 후에 해임되었다. 그 후임으로는 빌 파셀스 시절 DC를 맡았던 빌 벨리칙이 부임하게 되었다.[4]

빌 벨리칙의 부임 과정은 꽤나 복잡했는데, 원래 벨리칙은 빌 파셀스를 따라 1997년 뉴욕 제츠로 이동하여 제츠의 DC를 맡고 있었다. 그러나 파셀스가 1999년에 감독직을 내려놓고 단장으로 영전, 벨리칙을 후임자로 추천하여 내정했으나, 벨리칙은 하루 만에 제츠 감독을 사임하고 패츠로 가버렸다.[5] 이로 인해 뉴욕 제츠가 반발하여, 아직 벨리칙과의 계약 관계가 남아있다면서 벨리칙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였고, 여기에 대하여 NFL의 사무국이 개입하여, 패츠가 뉴욕 제츠에 2000년 드래프트 1라운드 픽을 주고 벨리칙을 데려오는 것으로 해결이 되었다.

2.3. 톰 브래디 & 빌 벨리칙의 시대

2.3.1. 톰 브래디의 입단과 '패트리어츠 왕조'의 시작

팀의 전권을 부여받은 벨리칙은 DC 로미오 크레넬, OC 찰리 와이스 등 자신과 함께 일했던 코디네이터들과 함께 선수진 구조조정에 나섰다. 드류 블레드소를 중심으로 나머지 선수들을 대폭 갈아치우고 코치진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시키는 등, 가혹하리만큼 과감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전임 코치진들의 이름을 따서 공격전술 '롤 에르하르트-레이 퍼킨스 시스템', 수비전술 '척 페어뱅크스-행크 불러 시스템'을 각각 확립시켰다.

부임 첫 해 5승 11패로 부진하긴 했으나, 드류 블레드소에게 10년 계약 연장을 체결해 주는 등 더 나은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노력했다. 2001년 9월 11일 2주차 뉴욕 제츠전에서 블레드소가 부상을 당하자 전년도 드래프트 6라운드 출신 톰 브래디를 과감히 후임 쿼터백으로 기용했고, 브래디의 천재적인 활약으로 11승 5패를 달성해 슈퍼볼까지 나서서 세인트루이스 램스를 상대로 역전승을 이뤘다.

이에 따라 1986년 이후 멈췄던 보스턴 소속 프로팀의 우승가뭄을 해갈해주면서 보스턴 레드삭스, 보스턴 셀틱스, 보스턴 브루인스에 밀린 보스턴 변방의 버린자식 팀이라는 설움도 날려버리고 NFL 최고의 인기구단 중 하나로 성장한다. 2002년 질레트 스타디움 완공 후 그리로 이전해 2003~2004 시즌에 각각 2연속 우승을 달성해 21세기 왕조의 지위에 올랐다.

2.3.2. 2000년대 중후반 ~ 2010년대 초반

2000년대 이후에는 AFC의 최강팀이자 언제든 슈퍼볼 우승을 노릴 수 있는 1순위 후보의 팀으로 꼽히고 있으나, 근래 플레이오프에서는 이상하게 재미를 보지 못했다. 천적인 덴버 브롱코스 징크스라거나, 2007 시즌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기세였던 16전 전승을 해놓고 정작 슈퍼볼 XLII에서 일라이 매닝이 이끄는 뉴욕 자이언츠에 패하여 전승준에 그친다거나, 2010 시즌에도 최고 승률을 기록했음에도 플레이오프에서 뉴욕 제츠에 패하며 슈퍼볼 진출이 좌절되는 등의 수모를 겪었다. 심지어 2007 시즌 초반에 '스파이게이트' 사건으로 이듬해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뺏겼다.

2012년에는 전체 2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2라운드에서 휴스턴 텍산스를 완파하며 슈퍼볼 2년 연속 진출을 노렸지만 예상치 못한 볼티모어 레이븐스에게 일격을 당하며 홈에서 패해 2년 연속 진출에 실패했다.

2.3.3.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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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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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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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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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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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20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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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20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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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왕조의 마침표, 포스트 톰 브래디 시대

2.4.1. 20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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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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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202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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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202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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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빌 벨리칙과의 이별, 새로운 시작

2.5.1. 202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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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스턴 칼리지 대학풋볼팀의 홈구장[2] 하버드 대학 풋볼팀 홈구장.[3] 우승 후 슈퍼볼 역사상 전무후무한 스페셜팀 출신 MVP가 된다. 참고로 하워드는 미시간 대학교 출신으로 1991년 해당년도 최고의 대학 미식축구 선수에게 수여하는 '하이스만 상' 수상자였다.[4] 이것이 빌 벨리칙의 첫 감독직은 아니다. 1991년~1995년 이미 클리블랜드 브라운스 감독을 역임한 경험이 있었다. 다만 이때는 팀도 팀이었던데다 초짜였던지라 개인적으로는 흑역사정도로 기억되고 있다.[5] 뒷이야기로 스승인 빌 파셀스가 물러나면 후임으로 구단 전권을 받기로 구두약속이 되어있었으나, 파셀스가 단장으로 영전, 구단에 계속 남아 영향력을 행사하자 약속을 어긴 것에 원한을 가졌고, 이후 패츠 감독으로 부임하여 제츠에게 철저하게 복수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