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4-21 17:42:27

대한제국군 호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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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帝國 扈衛隊[1]

1. 개요2. 상세3. 소속 장병

1. 개요

대한제국군 궁내부 소속 부대.

2. 상세

황제의 근접 경호를 담당했다. 처음에는 시종원에 속하였다. 지휘관은 총관(摠管)이라고 하였다. 1897년에 창설되었다.[2]

궁궐과 한성부의 경비를 맡았던 부대는 대한제국군 시위대로 별개의 조직이다. 호위대장은 대한제국군 원수부의 군무 국장이 겸직했으며 부대 규모는 730명 수준으로 대대급이었다. 그러나 1905년 4월 16일 일제군제 개혁으로 인해 해산되었다.

3. 소속 장병

호위대 총관은 장성급 장교가 맡았다. 정식이 아닌 서리 임명자가 많았다.

호위대의 실질적인 지휘는 대대장급인 참령이 임명되었다.

1900년 6월 17일 승정원일기 기사
[1] 호위하다 할 때의 護衛가 아닌 扈衛를 썼다.[2] 고종은 을미사변을 일으킨 조선군 훈련대 때문에 한국인 군인을 크게 불신하였고, 고종의 이런 한국인 불신은 징병제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로 거론되기도 한다. 1890년대에 잠시 고종은 서양인 선교사들을 근접 경호원으로 활용할 정도였다. 엄귀비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 명성왕후가 사저에서 지내던 의친왕을 책봉하고 등용하며 선교사들과 연락책으로 활용하였다. 순종이 자녀를 낳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자 명성왕후는 차차기 대권주자로 의친왕을 찍어 두고 키웠고 의친왕도 자신의 생모와 민비의 악연에도 이를 정치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의친왕은 이로 인해 잠시 정치적으로 활동하지만, 엄귀비가 영친왕을 낳으면서 다시 소외되고 해외로 보내져 8년을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