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7 16:59:43

데틀레프 슈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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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틀레프 슈렘프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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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틀레프 슈렘프
Detlef Schrempf
출생 1963년 1월 21일 ([age(1963-01-21)]세)
서독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레버쿠젠
국적
[[독일|]][[틀:국기|]][[틀:국기|]]
|
[[미국|]][[틀:국기|]][[틀:국기|]]
출신학교 워싱턴 대학교
신장 208cm (6' 10")
체중 107kg (235 lbs)
포지션 스몰 포워드 / 파워 포워드
드래프트 1985 NBA 드래프트 1라운드 8순위
댈러스 매버릭스 지명
소속 팀 댈러스 매버릭스 (1985~1989)
인디애나 페이서스 (1989~1993)
시애틀 슈퍼소닉스 (1993~1999)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1999~2001)
등번호 11번 - 댈러스 / 인디애나 / 시애틀
32번 - 댈러스
12번 - 포틀랜드

1. 개요2. 선수 경력3. 은퇴 이후4. 수상 내역5. 플레이 스타일6. 여담

[clearfix]

1. 개요

NBA에서 뛴 독일의 전 농구선수. 시애틀 슈퍼소닉스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디르크 노비츠키 이전 독일인으로서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진 NBA 선수였다.[1] 노비츠키가 비미국인 All-Time No.1 플레이어로 발돋움하며[2][3][4] 양측의 커리어 차이가 크게 벌어지긴 했지만, 슈렘프 역시 비미국인 NBA 선수로서는 매우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낸 선수이다.[5] 유럽 국적 선수들의 NBA 진출이 그다지 활성화되지는 않았던 80~90년대에 구 유고 출신도 아닌 독일인 플레이어가 All-NBA Team과 3회의 올스타 선정을 이루어냈으니, 당시 기준으로는 유러피언 NBA 플레이어들 중 최고를 논할 만 했다.

다만 슈렘프와 노비츠키는 큰 차이가 있다. 슈렘프는 레버쿠젠 청소년팀에서 뛰다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워싱턴주에 있는 고등학교 농구팀에서 뛰었으며, 이후 워싱턴 대학교에서 맹활약 하며 NCAAPac-10 퍼스트 팀에 선정된 엘리트 유망주 자격으로 드래프트 1라운드 8순위로 지명된 선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선수의 경우 외국인이라 할 지라도 드래프트에선 '외국 선수(international player)' 자격이 아닌 미국선수로 분류되어 동일한 자격을 갖는다.[6] 당시엔 미국과 유럽의 농구 인프라 차이가 엄청났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와 미국식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선수는 (설령 국적이 외국이라도) 미국이 키워낸 선수로서 사실상 미국 선수나 다름없게 취급받았다. 즉 슈렘프는 '독일인이지만 미국 농구 선수'로 여겨졌던 것. 이는 독일인이지만 어렸을 때 미국에 넘어와 고등학교-대학교를 미국에서 나온 숀 브래들리도 마찬가지다.

반면 노비츠키는 독일에서 성장해 프로커리어까지 갖춘 선수가 미국으로 직행해 성공한 최초의 선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이 키워낸 선수가 NBA에서 통한 최초의 사례'라고 볼 수 있는 것. 이 점에서 보면 노비츠키와 비교될 선수는 오히려 마찬가지로 유럽에서 프로데뷔까지 한 선수들이 NBA에서 성공한 블라디 디박, 드라젠 페트로비치, 게오르그 뮤레산, 그리고 토니 쿠코치이다. 물론 위에 언급됐다시피 농구강국이었던 소련-유고 출신이 아닌 독일 선수인 노비츠키의 성공사례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물론 노비츠키와의 비교와는 별개로 아무리 미국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NBA무대를 밟은 유러피언 아니 비미국인 선수 자체가 매우 드문 시기에 NBA에서 대성한 최초의 유럽인 선수인 슈렘프의 의의가 큰 것도 사실이다. 페트로비치와 디박 둘다 89년에, 쿠코치와 뮤레산 둘 다 93년에 데뷔했지만 슈렘프는 85년에 NBA에 진출해 최초의 유럽인 올스타가 되는 등 굵직한 커리어를 쌓아갔다.[7]

2. 선수 경력

2.1. 댈러스 매버릭스

2.2. 인디애나 페이서스

2.3. 시애틀 슈퍼소닉스

2.4.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3. 은퇴 이후

4. 수상 내역

수상 내역
NBA 올스타 3회 (1993, 1995, 1997)
올-NBA 서드 팀 (1995)
NBA 올해의 식스맨 상 2회 (1991, 1992)

5. 플레이 스타일

굉장히 다재다능했던 포워드이다. 수비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부분에서 평균 이상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다.

208cm라는 스몰 포워드 포지션에서는 반칙급 떡대를 가지고 있었고, 확률 높은 외곽슛 옵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수비하기 까다로운 선수였다. 또한 슛에 능한 것과는 별개로 페자 스토야코비치와 같은 전형적인 슈터와는 거리가 있었는데, 비록 최전성기 페자만큼의 득점력은 아니었지만 사이즈를 살린 포스트업 스킬도 괜찮았고, 전반적인 공격 툴은 더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8]

수비에서는 트위너 기질이 있어 그리 뛰어난 수비수는 아니었지만, 허슬이 뛰어나 리바운드나 수비에서도 운동능력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늘 최선을 다하는 선수였다. 특히 리바운드는 3번 포지션에선 최상급으로, 현대라면 3번보다는 스트레치4가 훨씬 어울릴 선수.

맨투맨 수비가 장점은 아니었지만 팀전술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나고, 수비 전술 내에서 움직이는 능력과 스위치 디펜스 타이밍을 잡는 능력이 뛰어났다. 96년 파이널에서 시애틀이 벌떼 수비로 마이클 조던을 견제할 당시, 주로 매치업이 되던 게리 페이튼이나 허시 호킨스 외에도 슈렘프나 빈센트 어스큐와 같은 다른 윙들도 득달같이 조던을 더블팀하고 견제하였다. 또한 조던이 다른 동료에게 빼주기 전에 커버하는 환상적인 로테이션 수비를 보여주었다.

커리어 평균 어시스트가 3.4개이고 시즌 평균 6.0개까지 찍어본 적 있을 정도로 패싱 센스도 발군이었으며, 최전성기에는 20-10-5에 가까운 엘리트 스탯라인을 뽑아냈다. 그는 스탯상 최전성기이던 92-93시즌에 그는 19.1점 9.5리바운드 6어시스트 1스틸을 기록했다.

전반적으로 득점 방식, 리바운드, 수비 등 모든 면에서 현대농구에선 스트레치 4 플레이 스타일을 선보이는 선수였다. 어찌보면 시대를 잘못 타고난 선수인데, 피지컬이 강한 편이 아니었던 그는 90년대에 파워 포워드 수비를 맡기에는 힘들어서 스몰 포워드를 맡아야 했다. 이 때문에 항상 맨투맨 수비에선 약점이 있었다. 대신 전술 이해도와 허슬이 뛰어나 스위치 디펜스나 팀수비에서 좋은 역할을 했다. 특히 외곽 플레이어 에이스를 락다운하는 데는 역대 최고 수준이었던 시애틀의 팀 수비에서 은근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 슈렘프였다. 96년 파이널에서 보듯이 당시 시애틀 특성상 계속 스위치가 이뤄졌는데, 3번 포지션에서 뛰는 슈렘프 같은 선수들이 마이클 조던 같은 외곽 선수들에게 센스있게 붙을 때 붙고 (주매치업이 오면) 다시 떨어지는 타이밍을 잘 맞춰야했는데 슈렘프가 워낙 영리하다보니 이 타이밍을 귀신같이 잘 맞춰주었다.

수비에서 슈렘프의 장점은 기동력과 키가 있다보니 누구와 스위치되어도 잠깐은 막아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 플레이를 예로 들면 218cm 거구인 룩 롱리를 막는 상황에서 베이스라인에서 공을 잡은 조던이 롱리의 스크린을 타고 돌파해 들어가자 바로 조던에게 스위치 들어가 반대쪽에서 헬프를 들어온 허시 호킨스와 함께 더블팀을 했고, 수비에 막힌 조던이 외곽으로 공을 빼주는 사이 상황을 슥 보더니 페인트존을 견제하고 있다가 외곽의 조던에게 공이 다시 가자 곧바로 조던에게 붙었다. 다만 위에 언급한대로 외곽수비수로 쓰기엔 장신의 한계로 사이드스탭이 느리고[9], 골밑수비수로 쓰기엔 파워가 너무 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농구에 정말 딱인 선수인데, 피지컬한 맨투맨 수비보다 팀전술 이해도가 더 중요한 현대농구에서라면 슈렘프의 수비력은 약점보다는 강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렇다고 앤서니 메이슨이나 현대의 드레이먼드 그린 정도로 스위치 수비의 달인까진 아니었지만(이 둘은 맨투맨 수비도 슈렘프보다 훨씬 좋다) 그래도 현대농구에서면 슈렘프의 높은 BQ가 더욱 활용도가 높았을 것이다. 또한 공격에서도 활용도가 더욱 높았을 선수.

6. 여담

하킴 올라주원과 생년월일이 같다.

[1] 마침 후배인 노비츠키 역시 슈렘프와 마찬가지로 댈러스 매버릭스에서 드래프트 되었다.[2] 2006-07 시즌 MVP, 2011 NBA 파이널에서의 역사적인 승리 및 파이널 MVP, 4회의 퍼스트팀을 포함한 총 12회의 All-NBA Team, 총 14회의 올스타, 통산 득점 역대 6위 등 어마어마한 금자탑을 쌓았다. 캐나다의 스티브 내시, 스페인의 파우 가솔, 마크 가솔 형제, 프랑스의 토니 파커, 아르헨티나의 마누 지노빌리, 세르비아페자 스토야코비치도 이렇다 할 비교대상이 못되는 수준.[3] 동시기의 스티브 내시는 2004-05, 2005-06 시즌 백투백 MVP와 180 클럽을 4차례나 달성해 내고 이중 3번은 3시즌 연속 기록을 달성했지만 파이널 진출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해 우승과 파이널 MVP는 수상하지 못하고, All-NBA Team도 3회의 퍼스트팀을 포함해 총 7회, 올스타도 총 8회로 지노빌리에 비해 MVP 수상 횟수를 제외하면 다소 밀린다. 스페인의 파우 가솔은 2001-02 시즌 비미국인 최초의 신인왕을 수상하고, 우승도 2회 기록했지만 MVP와 파이널 MVP는 단 한 번도 수상한 적이 없고, All-NBA Team은 총 4회, 올스타는 총 6회로 개인 수상 커리어는 노비츠키, 내시에 비할 바가 못되고, 토니 파커도 우승 4회에 2007 NBA 파이널에서 파이널 MVP를 수상했지만 아무래도 노비츠키의 2011년 파이널에서의 퍼포먼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밀린다는 평가가 많고, All-NBA Team은 총 4회, 올스타는 총 6회로 마찬가지로 파이널 MVP를 제외하면 노비츠키, 내시에 비할바가 못된다. 마누 지노빌리는 우승 4회를 기록하고, 식스맨상 1회를 수상했지만 All-NBA Team은 총 2회, 올스타도 총 2회로 개인 수상 커리어는 노비츠키, 내시, 파우 가솔, 파커에 비할바가 못된다. 마크 가솔은 우승 1회에 올해의 수비수상 1회를 수상했지만 All-NBA Team은 퍼스트팀 1회를 포함해도 총 2회, All-디펜시브 팀도 총 1회, 올스타도 총 3회에 불과하다. 페자 스토야코비치는 선수 시절 마지막 소속팀인 댈러스에서 노비츠키와 같이 우승 1회를 기록했지만 All-NBA Team은 총 1회, 올스타도 총 3회 밖에 선정되지 못해 가장 개인 수상 커리어가 떨어지는 편이다.[4] 다만 마크 같은 경우 NBA 데뷔가 2008년이어서 다른 다섯 명에 비해 데뷔가 많이 늦은 편이다. 그래도 1982년생인 파커와의 나이 차이는 세 살 밖에 안 어리긴 하다.[5] 최근에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데니스 슈뢰더, 댈러스 매버릭스막시 클레버 등의 독일출신 선수들이 NBA에서 활약하고 있다.[6] NBA 드래프트 기준으로 외국 선수들은 국적이 아닌 다음 조건에 따라 분류된다. 1) 드래프트 이전에 최소 3년간을 영구적으로 외국에서 거주하고 농구를 했을 것, 2) 미국의 대학에 입학한 적이 없을 것 3) 미국 고등학교를 졸업한 적이 없을 것. 참고로 이 기준은 NBA 로스터에서 자체적으로 '외국 선수' 분류하는 방법과도 또 다른데, 이 분류는 국적과 상관없이 '미국 본토 바깥에서 출생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아이러니하게 독일 국적인 슈렘프는 드래프트 기준으론 미국 선수로 분류되었지만, 미국령 버진 아일랜드 출생으로 미국 국적을 갖고 있는 팀 던컨은 NBA식 로스터 분류법으론 외국 선수로 분류된다.[7] 93년에 슈렘프는 올스타에 선정되었지만 올NBA팀 선정엔 실패, 반대로 페트로비치는 올스타엔 탈락하고 올NBA서드팀에 선정되었다. 즉 최초의 유러피언 올스타는 슈렘프, 최초의 올NBA팀 멤버는 페트로비치이다. 물론 슈렘프는 91년,92년에 식스맨 상을 받음으로서 유럽인으로선 처음으로 NBA에서 메이저 상을 수상한 선수가 되었다.[8] 포워드는 외곽이라고 해봤자 20피트(롱2 거리) 내외까지만 오가던 당시 시대상 때문에 3점슛은 커리어 초창기에 거의 쏘지 않았지만, 3점 라인 안에서는 조금만 수비와 거리가 벌어지면 곧바로 풀업점퍼를 넣거나 속공에서 스탑앤 팝 점퍼, 포스트업 후 페이더웨이 등 다른 포워드들과 달리 골밑돌파보단 외곽에서 주로 득점하는 선수였다. 비교하자면 운동능력이 떨어진 커리어 후반의 래리 버드와 유사한 스타일로 득점하던 선수. 당시 시대상 때문에 3점슛 갯수는 커리어 9년차까지 무의미한 수준이었으나 단축라인 도입 첫 시즌인 94-95시즌에 삼점슛 1.1개를 51.4% 확률로 넣으며 재미를 본 이후 옵션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으며, 정상화 이후엔 3점 갯수가 확 줄었지만 성공률은 은퇴 때까지 4할을 넘겼다.[9] 시애틀의 경우 어떤 상황에서도 조던에게 최소 2,3명이 붙었고, 여기서 오는 수비공백을 극강의 수비 로테이션으로 극복했기에 이 점이 별 약점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반면 빠른 발로 커버할 수 없고,골밑에서 피지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는 빅맨이 강한 팀에게는 시애틀이 유독 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