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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에서 보수주의자가 리버럴들을 비판하기 위해 사회과학에서 약자를 뜻하는 '언더독(underdog)'과 맹목적인 견해, 독단을 뜻하는 '도그마(dogma)'를 합성한 용어. 힘의 차이를 근거로 선악을 판단하려는 오류로, 약자는 무조건 선(善)하고, 강자는 무조건 악(惡)하다고 믿는 인식을 가리키는 말이다.[1] 두 단어 모두 'dog'가 들어가며,[2] '언더독의 도그마(Underdog's dogma)'로 풀어서 쓰기도 한다.2. 문제점
2.1. 용어, 내용의 문제
언더독 효과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는 그 전부터 리버럴에 비판적인 미국의 우익들에게서 나왔으며, 현재의 '언더도그마' 비판론과 유사한 논리는 전부터 존재했지만, '언더도그마'라는 단어 및 그 시초는 티 파티 소속의 강경 보수 혹은 극우 인사인 마이클 프렐의 저서(#)의 제목일 뿐이다. '언더도그마'라는 용어가 학술적 용어는커녕 미국에서 유행어로도 자리잡은 적이 없고, 단지 '언더도그마'라는 책이 조금 관심을 받으면서 이 책의 제목이 거론된 것이다.실제로 검색해 보면, 마이클 프렐의 책 제목으로서 거론된 경우나 관계 없는 고유명사로 거론된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100% 한국에서 사용된다.
1. 영어 위키백과에는 Underdogma 문서 자체가 없다.
2. Quora에서는 단지 5건 정도의 질문글 제목에서만 'Underdogma'가 검색된다. 또한 답변도 대부분 사용률이 극히 적다고 말한다. 예시1 예시 2 게다가 이 질문글 중 다수는 비영어권 사람의 질문으로 보인다(한국인일 가능성이 있다).
3. 레딧에서는 단지 4건 정도의 글만 'Underdogma'를 거론하고 있으며, 그 글은 모두 프렐의 책의 제목을 인용하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논한 것이다.
4. 어반 딕셔너리에 항목이 있기는 한데(#), 추천수와 비추천수가 매우 적다2022-07-07 기준 18/3). 어반 딕셔너리의 다른 유행어 항목들이 가볍게 1000 단위를 넘기는 것과 비교해 보면 이 정도는 그냥 개인이 끄적인 정도에 가깝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인이 작성했을 가능성도 있다.
즉, 각종 출처를 검색해보거나 직접 미국인들에게 문의해 봐도 '언더도그마'라는 용어가 유행어로 사용되었다는 근거는 찾을 수 없다. 단지 마이클 프렐이 동명의 책을 쓰자 그 책의 서평 등이 쓰이면서 이 용어가 조금 거론되었을 뿐이다. 이 책은 특정 성향의 지지자들에게서 호평을 받기는 했지만, 아주 유명한 책으로 보기도 힘들다. 사실 한국에서도 프렐은 처음 '언더도그마'의 조어자로 알려지다시피 한 인물이다.[3]
'언더도그마'라는 용어가 유행어로 사용되는 국가는 한국뿐이며 프렐의 책에 대한 서평 밖에 '언더도그마'라는 키워드로 언론에서 쓴 기사는 한국에서만 여럿 나온다.[4] 사실 나무위키에서 보면 현지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용어가 적극적으로 항목으로 작성된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어느 정도는 그 용어를 밀어 준다는 의미도 있고,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쓸 공간이 필요하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물론 일단 책 제목이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나무위키 성 평등주의 날조 사건 같이 완전한 문헌오염은 아니긴 하다.
이 용어의 유행은 나무위키가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5] 언더도그마가 급속도로 특정 계층에게서 널리 사용된 2010년대 이후는 한국 사회에 유행하는 특정한 정치적 성향이나 감성적 성향[6]이 '언더도그마'라는 신조어와 잘 맞아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유사 신조어들과 달리 영어로 되어 있고 뭔가 학술적 용어처럼 느껴지게 하는 효과가 있어서 이 용어가 많이 퍼진 것으로 보인다.[7] 나무위키에서 조금이라도 비슷해 보이는 항목이나 서술들에 '언더도그마' 항목이 계속 연결되기 시작한 것은 그 기폭제였다.
참고로 나무위키의 이 문서가 개설되었을 때 사법(판결 등)과 의료[8]를 중심으로 서술되다가 자신이 비판하고 싶은 대상을 '언더도그마'로 규정하여 비판한 서술들이 계속 추가되어서 그대로 온 것이다.[9]
2.1.1. 관련 용어
이 문서로 리다이렉트되는 '레미제라블 콤플렉스' 역시 실체가 없는 표현이다. 실은 신림동 고시촌에서 생겨난 용어인데, 사람마다 표현이 조금씩 달랐다. 한때 게시되어 있던 사례 문서의 기타 사례에서는 행정법에서 트럭 운전수의 면허 취소 판례를 다루고 있었는데, 배경 지식이 없이 판례들이 나열된 문제가 있었다. 이를 설명할 목적으로 발명된 용어이며, 강사별로는 '늙은 노모'로 부르기도 했다. 물론 정치사회적 의도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강의에서 판례 설명을 위해서 사용한 것이다.이후 리그베다 위키 시절부터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대항한 표현으로 사용하는 용어로 사례가 추가되면서, 원래 문서가 만들어진 이유가 된 사례는 구석 한켠으로 밀려나버리고 정치색을 가지게 되었다.
또 다른 리다이렉트인 '동정 과잉' 역시 한국어 사전에도 없고, 영어권에서 사용되는 사례도 발견할 수 없다. 비슷한 것은 'Hyper-Empathy Syndrome' 정도이나, 이건 정치적인 용어가 아니라 일종의 정신질환을 말하는 것이다. # 아마 이 용어를 한국어로 억지로 번역해서 '동정 과잉'이라는 표현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논리학에서 말하는 '동정에 호소하는 오류'에서 나왔거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은 가난한 자들에게 국한된 용어가 아니라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과 생존을 위해 침묵하는 것을 뜻하는 용어이다. 대표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은 부조리에 침묵하는 데에 쓰인다. 해당 문서에 적어진 예시도 사장의 갑질과 범죄에 침묵하는 직원들을 다루고 있다.
2.2. 행위의 문제
언더도그마 상황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 이성보다 감성이 더 중시되며 원칙과 절차가 유명무실해지는 점이다. 흔히 약자는 배려와 구호의 대상이 되기 쉽고 대중들은 강자보다는 약자에게 동정과 공감을 보내게 되는데, 이곳까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누구는 무고한 피해자이고, 누구는 억압적인 악당이라는 식'의 극단적인 판단으로 치달으면 사회 문제로 번진다.'언더도그마'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또는 'Might makes right(힘이 곧 정의다)'의 대척점에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동일한 범죄를 저지를 때 생계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형량을 낮게 처벌해야 한다는 식으로, 곧 '가난한 사람들'(혹은 기타 '불쌍한' 사람)은 처벌을 약하게 받아야 한다는 식으로 적용되는 논리이다. 이를 보편화하면 기업가와 노동자, 생산자와 소비자 등 경제 주체들을 집단별로 갈라서 탈세 등의 행정범죄에 대해 어느 한쪽에는 무거운 형량을 매기고 다른 쪽에는 적은 형량을 매겨야 한다는 식의 논리로 향하게 된다. 인신공격의 오류처럼 자신들은 절대선이고 상대방들은 절대악이라는 전제를 까는 것과도 비슷하다.
대개 사회적 약자와 사회적 소수자들은 속담 '곳간에서 인심난다'처럼 스스로 권리를 챙기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도덕적 관점에서 약자를 옹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먹히기 쉽다. 물론 사회적 강자라고 하여 권리를 항상 잘 챙기리란 법은 없지만, 그래도 그런 이들의 경우는 자신의 권력 덕분에 목숨이 왔다갔다 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까지 가기는 어렵다. 사회적 약자는 편견에 따라 처음부터 유죄로 추정되어 억울하게 피해하는 경우가 있고[10], 반대 심리로 언더도그마가 생기는 것이다. 현대 미국의 리버럴 세력이 언더도그마 논리를 주장하는 것도 흑인이나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에 대한 경찰이나 사법 기관의 차별적인 법집행이 미국 사회 내에서 사회적으로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관련 내용은 '강강약약' 문서에서 찾을 수 있다.
2.2.1. 악용 및 오용
순수하게 논리적 의미에서 '언더도그마'에 대한 비판론과[11] '언더도그마 비판론'을 펴는 사람들[12]이 주로 주장하는 사례들은 별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전자에 동의한대도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또 다른 측면으로 극히 편향되어 있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후자의 사람들이 제시하는 언더도그마의 사례가 원래의 정의(定義)와 큰 관련이 없으며 그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억지로 연결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미러링(신조어)'처럼 그 말뜻 자체는 혐오표현이 아니지만, 실질적인 맥락에서는 혐오표현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볼 수도 있다.201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용어 '언더도그마' 자체의 오남용 사례도 많아졌는데, 용어의 사용 사례가 증가하면서 그에 수반하여 오남용 사례도 함께 늘어난 것이다. 사회과학 용어인 '언더독 효과'와는 달리 학술적 용어에서 출발한 것도 아닌지라 이념적 혹은 정치적인 프레임에 근거하여 특정한 메시지를 담기에 좋은 용어였기 때문에 오남용이 늘어난 면이 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마련이라 자신과 관련하여 좋으면 찬동하고 싫으면 꺼리는 경향이 있다. '언더도그마' 비판론을 펴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특정 분야에서는 '언더도그마'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피해자성',' 피차별성'을 강조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곧 자신이 비판하는 대상에만 '언더도그마'라는 프레임을 규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례로 한때는 홀로코스트 때문에 유대인이 언더독으로 응원받았지만, 이제는 정반대가 되어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이 언더독으로 응원받고 유대인이 되려 오버독으로 비난되는 위치이다.[13] 이런 논지를 따르는 사람들은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선악을 논하기 힘들 만큼 서로에게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는 관계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신조어, 유행어는 객관적인 토론에 사용하기엔 다소 부적절한 면모가 있으며,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을 띤 점을 잊으면 안 된다. 굳이 쓰려면 사회과학에서 존재하는 '언더독 효과' 내지 '역차별' 등의 용어들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 오해
흔한 오해지만, 마르크스주의나 사회주의, 사민주의 같은 좌파가 언더도그마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사회주의자들이 무산계급의 편을 드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구조의 붕괴를 확신함과 함께 착취 구조를 비판하기 때문이다. 즉 분배 정의에 대한 관점 때문이지[14] 피지배계급의 개인적 도덕성, 인품이 착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쉽게 말해서 사회주의 계열의 좌파들이 무산자들을 대변하는 이유는 그들이 불공정한 처우에 놓여 있다고 생각해서이지 그들의 개별적 인품에는 별 관심 없다. 좌파들은 오히려 정치경제학적 사안을 도덕주의적으로 판단하려는 태도를 배격하는 편이다.심지어 어떤 좌파들은 지배계급이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더 선할 수밖에 없다고까지 말하기도 한다.[15] 그리고 선함마저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게서 빼앗아 버리게 된 착취 구조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현실 사회주의 정치인들만 봐도 인간의 선함을 믿지 않는 냉혹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4. 관련 어록
이 사람은 부모님을 잃은 슬픔을 잊으려고 마약을 복용한 것입니다. 재판장님께서도 부모님을 잃은 슬픔을 잘 아시잖습니까? 저는 이 사람이 비록 마약을 복용하기는 했지만, 용서해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16]
출처: 위기철의 논리 3부작
출처: 위기철의 논리 3부작
너희는 또한 가난한 사람의 송사라고 해서 치우쳐서 두둔해서도 안 된다
출애굽기 23장 3절 (공동번역)
출애굽기 23장 3절 (공동번역)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예수, 마태복음 5:3-12[19]
예수, 마태복음 5:3-12[19]
만약 어떤 사람의 밑바닥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에게 권력을 줘 보세요. 누구나 역경(adversity)을 견딜 수는 있지만 오직 위대한 한 사람만이 성공(prosperity)을 견딜 수 있습니다. 자비의 측면에서가 아니면 결코 권력을 남용하지 않은 것이 링컨의 위업입니다.
로버트 잉거솔[20]
로버트 잉거솔[20]
5. 관련 문서
[1] 때론 앞뒤를 뒤집어서 착한 사람은 무조건 약자고 나쁜 사람은 무조건 강자라는 뜻으로도 쓰인다.[2] 'dogma'는 영어 'dog'랑 아무 상관이 없다. 그냥 그리스어 'dokein'에서 유래한 말이므로 우연히 라임이 맞았다고 봐야 한다.[3] 그럼에도 나무위키에는 마이클 프렐이 정치학자라고 서술된 문서도 있었고, '언더도그마' 항목이 정치학, 사회학 관련 항목으로 분류되어 있기도 하는 등은 사실과 거리가 먼 내용이 많았다. 사실 하부 분류까지 되어 있는 '방대한' 이 문서의 대다수 내용도 주관적 견해로 채워져 있다.[4] 주로 경제신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5] 구글에서 완전히 로그인하고 VPN과 같은 수단으로 외국 IP로 검색해 보거나 덕덕고와 같이 개인정보를 활용하지 않는 검색엔진으로 지역설정을 끄고 'underdogma'를 검색해 보면(한국 IP의 영향을 받지 않게) 1페이지 이내에 나무위키가 검색된다.[6] 이것은 때로는 이념마저 불문한다. 곧 여당 지지자나 제1야당 지지자나 이런 감성에는 큰 차이 없다는 것이다.[7] 유사한 정서를 담은 표현에는 '호의가 계속되면은,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의 왜곡된 사용), '감성팔이', '거지근성', '노예근성' 등등 여러 혐오표현들이 있다. 실제로 이러한 문서들은 이 문서로 많이 링크된 적이 있다.[8] 주로 의사들에 대한 비판을 '언더도그마'로 규정하는 내용들.[9] 그러다가 기생충 등 히트 영화를 평론하는 글에서 언더도그마를 거론하거나(근데 정작 의견이 극과 극으로 갈렸다. 기생충이 '언더도그마'라는 주장과 언더도그마를 비판했다는 주장, 둘 다 아니라는 주장 또는 계급주의적이라는 관점이 모두 있다.) 민식이법 등에 대한 의견에서 언더도그마가 거론되거나, 경제신문에서 언더도그마를 거론하는 등을 거쳐 이 용어가 알려져갔다.[10] 미국에는 동일한 죄에 대한 재판에서 백인에 비해 흑인이 더 무거운 형벌을 받는 경향은 분명히 존재한다.[11] 그런데 이럴 때는 그냥 언더독 효과나 논리학의 '연민에의 호소' 등을 거론하면 된다.[12] 대체로 대안 우파, 넷우익, 한국의 청년 우익 등과 연관이 있다.[13] 매일경제 2012-04-09일자 "[서평]'언더도그마"…강자는 비난받을 수밖에 없나"[14] 노동가치론에 따르면 가치를 창출해낸 주체는 노동자 개별이지만 그 잉여가치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가 가져간다.[15] 이러한 이유에 대해 좌파들은 주로 부르주아들이 개인적으로 더 선할 수 있는 여유가 많기 때문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계약 상에서 어떤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무산자 계급은 그것이 먹고 사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악착같이 싸울 유인이 높은 반면, 부르주아 계층들은 대개의 경우 분쟁에 있어서 싸움을 할 유인이 상대적으로 적다. 즉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것.[16] 부모님을 잃은 슬픔 때문에 마약을 복용했다는 사실이 정상참작되는지의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마약은 가난하거나 불쌍해 보인다는 이유로 약한 처벌을 받을 성질의 범죄는 아니다. 마약이 얼마나 비싼데. 덧붙여 이 예문은 유명 정치인 박지만의 아들의 사례를 연상시킬 수도 있다. 위기철의 논리 3부작의 예문들은 이 예문과 같이 다분히 정치적인 뉘앙스를 띄는 것들이 많다. 다만, 적어도 전쟁 직후인 우리나라 1950년대라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당시 신문 기사를 보면 '일진들에게 끌려가 얼떨결에 마약 주사를 맞는 십대 초중반 청소년들'같은 사례가 많이 나오는데, 지금이라면 국민학교 중퇴라는 저학력과 어린 나이, 강요에 따른 것 등을 참작해 실형은 면케 하고 치료를 시켰겠지만, 저 당시엔 징역 6개월을 때렸다. 저들도 사회의 피해자일 수도 있으니 지금 기준으로는 너무 가혹한 처벌이지만, 나라 예산이 부족해서 저런 식으로 처분했다.[17] 이 대사는 #오해 문단에 적힌 사회주의자 또는 좌파들의 사고방식을 아주 잘 보여준다.[18] 다만 오웰은 후에 스페인 내전 참전과 제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생각을 바꾸었다. 물론 사회주의자인 것은 바뀌지 않았다.[19] 이 말만 보면 좀 모호해 보일 수 있으나, 많은 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가치의 전복'이자 정치적인 구절로 해석한다.[20] 한동안은 에이브러햄 링컨이 뱉은 말로 잘못 알려졌다. #